2020.5.24. 승천주일_설교
사도 1:1-11 / 시편 47 / 에페 1:15-23 / 루가 24:44-53
이별-승천, 그 새로운 시작
채야고보 신부 (artist / 성공회 사제)
저의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마음에 들게하소서.(시편19:14)
아멘.
이별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슬픔에 대한 정서가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우리에게 혹독한 아픔을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기에 이별은 더욱 커다란 공허함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을 담은 대중음악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려는 이별은 이러한 정서와는 많은 거리가 있습니다.
분명 제자들은 이미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과 한 번의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이별은 커다란 상실감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안겼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십자가 처형 이후에 주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과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숨어서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여러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의심과 안도의 마음으로 그런 부활하신 주님을 제자들은 맞이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루가는 이러한 정서와 분위기의 전환을 루가복음 말미에 시도합니다.
루가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 다른 복음사가와는 다르게 자신이 구속사를 기록한다는 입장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이러한 역사관이 반영이 되는데, 이는 세 가지 시기로 구분됩니다. 세례 요한의 시기를 ‘선지자의 시대’ 또는 ‘율법의 시대’로, 예수의 활동 시기는 ‘예수의 시대’로, 그리고 승천 사건을 기점으로 그 이후를 이제 ‘성령의 시대’ 또는 ‘교회의 시대’로 각각 구분했습니다. 루가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는 종말이 지연된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 성령의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사하시는 시대입니다.
승천에 대한 기록은 마르코 복음 16:19-20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이는 시편 110:1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코의 기록은 승천에 대한 강조점이 루가보다 덜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르코의 승천 기록에 만족하지 못했던 루가는 이를 두 개의 시기를 잇는 가교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승천에 대한 기록을 루가복음의 마지막과 사도행전의 첫 장에 중복해서 기록했습니다. 루가는 승천으로 ‘예수의 시대’가 끝이 나고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승천 사건’은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에 획기적인 전환을 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즉,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이고 우리가 경배할 분이심을 분명히 깨닫게 된 거죠. 루가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시기에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루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논란을 승천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단순히 신성이나 인성을 각각 주장했던 이단들의 공격에 맞서 인성과 신성이 나뉘지 않은 상태에서 승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부활 사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몸의 승천에 대한 모티브는 구약의 ‘에녹(창세 5:24)’이야기와 ‘엘리야 승천기(2열왕 2:1-18)’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에녹과 엘리야의 경우와 다르게 예수께서는 실제로 죽음을 경험하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다는 점입니다.
승천 사건 이후 제자들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미’했다는 표현이 마지막 52절 53절에 나옵니다. 이제 승천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경배와 찬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προσκυνήσαντες(프로스쿠네산테스)" 그들이 경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여기에서 루가는 두 가지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예배의 대상이란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약속한 때가 이를 때까지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힌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승천 후 오순절까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서 ‘경배’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승천 후 열흘째 되는 날 약속하신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시대, 선교의 시대, 예배의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이별이 제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 51절에 “그들을 떠나”에서 “떠나”는 ‘떠나다, 분리하다’라는 뜻의 διίστημι(디이스타마이)의 단순과거인 διέστη (디에스떼)를 사용합니다. 보통 헬라어의 시제는 ‘시간’보다는 ‘동작의 종류’를 나타냅니다. 우리말이나 영어의 시제와는 다른 개념이죠. 물론 디에스떼 처럼 ‘직설법’에서는 시간의 의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차적일 뿐입니다. ‘단순과거 또는 부정과거’는 특별히 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동작의 단순한 발생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를 아오리스트(aorist)라고 부릅니다. 단순과거(aorist)는 단순히 과거 동작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고 그 ‘동작’ 자체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떠나다’는 뜻의 ‘디에스떼’는 뒤에 나오는 ‘ἀνεφέρετο(아네페레토)’ 즉 승천했다는 말과 연계해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떠남이 먼저고 승천이 그다음입니다. ‘떠남’의 의미는 곧 ‘승천’을 전제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승천 앞에 나오는 ‘떠남’은 그 동작이 반복해서 일어날 가능성도 배재되어 있습니다. 그냥 승천 사건 앞에 놓인 하나의 동작인 거죠. 그러나 ‘승천하다’라는 ‘아네페레토’의 시제는 ‘미완료’입니다. 미완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 종결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종말에 하느님을 믿는 자들의 승천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가는 ‘승천하다’를 미완료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루가의 편집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루가가 예수님의 “떠남”을 과거완료나 미완료를 사용하지 않고 “아오리스트, 단순과거”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은 이 떠남을 시간을 특정하지 않은 특수한 사건임을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승천하셨다는 의미로 미완료형 ἀνεφέρετο (아네페레토)를 쓴 것과는 무척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떠남’은 시간을 특정할 수 없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려두고 떠나시는 것이 반복해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승천을 통해 제자들과 잠시 이별하시지만 오순절에 성령으로 다시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를 고아같이 절대 버려두지 않고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는 약속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핍박과 박해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기다리라’는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승천의 이별이 없었다면 제자들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겁니다.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득한 과거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제자들이 무엇을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잠시 이별하지만,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다시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승천으로 말미암은 이별은 단 한 번의 사건이 됩니다. 이렇게 승천의 이별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약속이 됩니다. 루가는 이러한 이별 후 다시 재회하는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아프게 했던 과거와의 이별,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한 과거로부터의 자유함.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그러나 이러한 이별은 단 한 번으로 족합니다. 헬라어 미완료 시제처럼 아픈 과거가 현재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붙들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이별이 필요합니다. 아주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손길과 정이 깃들어 있는 이 성당. 아마도 성당의 구석구석을 보시면 많은 추억들이 넘쳐나실 겁니다. 특히 이 성당과 오랜 인연을 가지신 교우분들은 더욱 그러할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쉬움을 과거의 일로 남겨두기보다 시간을 특정하지 않는 ‘단순과거’처럼 우리의 가슴속에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 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야 승천의 사건 전에 ‘떠남’이 먼저였던 것같이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기회는 오순절의 제자들처럼 우리를 기쁨과 희망으로 춤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어제 서품을 받은 저 또한 오늘의 말씀이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들과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이별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가져왔던 모든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고, 저를 붙들고 있던 많은 인연으로부터 ‘떠나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받은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 ‘이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희망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승천주일 (가해) 성서 말씀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나이다. 간절히 비오니,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는 우리가 비록 육신은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1:1-11
1 이 책을 데오필로님께 드린다. 나는 먼젓번 책에서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치심을 다 기록하였다. 2 곧 예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 승천하신 그 날까지의 일을 시초에서부터 낱낱이 기록하였다. 3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4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6 사도들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시편 47
1 너희 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
. 기쁜 소리 드높여
.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2 주님은 지존하시고 지엄하시다. ◯
. 온 누리의 크신 임금이시다.
3 우리 앞에 만민을 무릎 꿇리시고 ◯
. 뭇 민족을 우리 발아래 두셨다.
4 당신의 사랑, 야곱의 자랑거리, ◯
. 이 땅을 우리에게 손수 골라 주셨다.
5 환호 소리 높은 중에
. 하느님 옥좌에 오르신다. ◯
. 나팔 소리 나는 중에 주님 올라가신다.
6 찬미하여라 하느님을,
. 거룩한 시로 찬미하여라. ◯
. 찬양하여라 우리 왕을,
. 거룩한 시로 찬양하여라.
7 하느님은 온 땅의 임금이시니, ◯
. 멋진 가락에 맞추어 찬양하여라.
8 하느님은 만방의 왕, ◯
. 거룩한 옥좌에 앉으셨다.
9 세상의 통치자들을 한 손에 잡고 계신 ◯
. 끝없이 높으신 우리 하느님,
.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뭇 나라의 영수들이 ◯
. 그 백성과 더불어 모여 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1:15-23
15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시편 110:1)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시편 8:6).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루가 24:44-53
44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7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49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두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51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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