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흐름으로서의 이미지
-쓰기와 그리기 그리고 낙서-
채창완
‘쓰기’와 ‘그리기’는 하나이다!
이는 사이 툼블리(Cy Twombly )의 작품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마치 벽에 있는 낙서를 보는 듯한 그의 작품은 거대한 빈 화면에 선과 임파스토(impasto:그림 안료를 두텁게 칠하는 화법)로 구성된다. 다양한 문자와 숫자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선들로 화면은 마치 진동하는 듯하다. 두터운 임파스토와 가는 선의 대비는 뭉침과 풀림의 긴장을 이어간다. 이와 같이 그의 그림 그리기는 칠한다는 개념에 ‘쓴다’는 개념이 더해진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문자와 숫자 또는 기호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결코 문장 속에서 지니는 질서와 의미를 이미 떠나있다. 그것의 의미는 화면 속에서 조형적 울림 속에 감춰진다. 전율과 진동 그리고 감정의 흐름 속에서 그러한 기호와 문자들은 이미지로 다시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림1 : Cy Twombly, <Untitled>, 1961, Oil and crayon on canvas, 130 x 150 cm
일반적으로 ‘쓰기’는 늘 문장 구조와 논리, 규칙 그리고 의미에 의해 구속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낙서’를 통해 그러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물론 ‘낙서’에는 철저히 익명성이 보장됨으로 어떠한 구속이나 사회적 체면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무의식적이면서도 즉각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래서 낙서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격발(激發)’은 강렬하다. ‘쓰기’와 ‘그리기’의 중간에서 ‘낙서’는 자신의 위치를 점한다. 툼블리의 작품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낙서’도, ‘쓰기’도, ‘그리기’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 전부를 포함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감정의 표현이면서 또한 존재 자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의미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은 원초적으로 체험된다. 마치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흰 도화지에 선을 그을 때 느꼈을 존재의 ‘원초적 체험’ 말이다. 아이는 그 순간 자신의 ‘손’의 존재를, 흰 도화지 위의 ‘선’을,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통한 존재의 체험을 동시에 느낀다. 그곳에서 ‘쓰기’와 ‘그리기’ 그리고 ‘낙서’는 하나가 된다.
그림2 : Cy Twombly, <Untitled>, 1959, Oil ,crayon and pencil on canvas, 147.7 x 242 cm
희열, 격정(激情), 그리고 감정의 격발.
이러한 말들로 그의 작품을 간단히 정의할 수 있을까? 그의 그림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격발’은 결코 슬픔이나 기쁨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특별하게 어떤 하나의 감정을 표현했다기 보다 끓어오르는 감정의 운율을 그대로 화면에 쏟아 놓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보는 이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계속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시편 22편의 기자가 표현한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의 격발’을 체험한다. 격정의 순간. 그 순간에 고통 받는 자는 몸과 정신이 산산이 부서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해체되고 결국 존재의 파편들만 나뒹구는 순간. 하나님 조차도 침묵을 하는 듯한 어둠의 순간. 마치 그의 작품은 그러한 순간의 격정을 이미지화한 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희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랑의 격정을 느낄 수도 있다. 감정의 쏟아냄과 감정의 흐름. 그의 그림은 이러한 “감정의 흔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마치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이미지로 기록한 것처럼.......
“나는 쏟아진 물처럼 퍼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시 22편 14절]
그림3 : Cy Twombly, <Untitled>, 1968, Oil , chalk and tempera on cloth, 172.7 x 215.9 cm
그림4 : Cy Twombly, <Untitled>, 1961, Oil , crayon and pencil on canvas, 256 x 30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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