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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체험으로서의 미술_안셀름 키이퍼

James Chae 2011. 9. 3. 11:46

 

 

 

역사적 체험으로서의 미술 

 

 

채창완

 

술람미의 아가씨야,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눈부신 너의 모습을 우리가 좀 볼 수 있게,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술람미의 아가씨야.”   -아가서 613(표준새번역) 

 

 

안셀름 키이퍼(Anselm Kiefer)마가레테(Margarethe)”라는 작품은 우리에게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과 유대민족 간의 참혹한 역사를 표현해준다. 그는 독일인으로 서구 미술에서 1970년대부터 두드러진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실재로 신표현주의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신표현주의라고 칭하는 것에 주저하지만, 키이퍼의 작품이 이전의 표현주의 미술과 다른 것은 그림이 단순히 인간의 느낌과 감정을 매개하는 역할을 벗어나 그림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미지는 과거의 역사와 오늘을 연결하여 우리를 구체적인 역사의 체험으로 이끈다.

 

 

안셀름 키이퍼(Anselm Kiefer). 마가레테(Margarethe). 1981. 캔버스에 유채, 짚, 380x280cm. 사치(Saatchi) 콜렉션, 런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린 이 작품은 유대인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유대인대학살)의 비극을 담은 파울 첼란(Paul Celan)죽음의 푸가(Death Fugue)”와 성경의 아가서에 기초하고 있다. 그대 금발의 마가레테여, 그대 잿빛 머리 술람미여”(파울 첼란). 여기서 마가레테는 독일 민족을 상징하고, “술람미(Sulamith)”는 유대 민족을 각각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마가레테의 금발의 머리카락은 노란색 짚으로 표현되었고, 술람미는 화면 위에 뿌려진 잿빛의 재로 표현되었다. 이는 아가서에서 묘사된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라는 것을 연상시킨다. 또한 홀로코스트에 의해 죽어간 유대인들의 불타버린 주검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한다. 금발과 잿빛 머리의 대비는 작품 자체로 역사적 진실을 함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로 융합되었던 사회가 역사적 비극과 정치적 광기에 의해 일순간에 와해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인간의 슬픔을, 그리고 두 민족의 영화와 비극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사랑의 감성을 표현한 것이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나치의 광기에도 굴복하지 않는 저항의 감성, 독가스에 의해서도 결코 질식되지 않는 생명의 감성이 그대로 촛불처럼 타오른다. 그것은 죽음 속에서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의 힘이며, 그 사랑의 기원은 영원의 영역에 닿아있다. 아가서가 오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가서에 넘쳐나는 절절한 사랑의 감성은 역사의 폭풍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인 것이다. 잿빛 바탕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촛불은 유대교의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메노라(menorah)의 촛대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와 종교, 현실과 신화가 뒤섞이며 한 화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 느낌은 엄숙하다 못해 숭고한 느낌마저 느끼게 한다. 마치 홀로코스트에 의해 무참히 사라져간 많은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처럼 말이다.

 

독일인이면서도 독일 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했던 키이퍼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제2차 대전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 보다 더 가치 있는 기록을 이미지를 통해 보게 된다.  객관적인 역사의 체험 없이는 한 민족의 미래는 없다. 부끄러운 과거이든 영화로운 과거이든 한 민족의 기억은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이 기록될 때 그것은 그 민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미술이 심미적 기능에 더해 이러한 역사적 체험을 미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은 이미지 표현의 중요한 요소이다. 유대민족과 유사한 아픈 과거를 지닌 우리에게도 이러한 작품은 이미지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반성을 제시해 준다. 역사는 더함도 생략함도 없이 그대로 빛 가운데로 드러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