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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단

James Chae 2021. 7. 3. 08:36

 

 

2021. 7.4. 나해_맥추감사주일_연중14주일

신명 8:1-4 / 시편 119:33-48 / 히브 11:32-40 / 마태 6:25-34

 

 

선택과 결단

 

채야고보 신부 / 제주 한일우정 교회, Artist

 

추수감사절과 맥추감사주일은 우리 전례력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출애굽기 23 16절에그리고 너희가 밭에 씨를 뿌려서 지은 곡식의 맏물을 바치는 맥추절을 지켜라.”라는 말씀에서추수절맥추절 오역을 하는 바람에 이를 구약과 연관시켰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이 미국 청교도들의 농경문화에서 나온 것처럼, 맥추감사주일은 우리 농경문화에 기반을 것이라 있습니다. 6 중순경에 보리를 추수했기 때문에 7 번째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게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는 비록 농경 사회는 아니지만, 해의 중간에서 뒤를 돌아보고 감사와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있습니다. 연초에 각오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살피고 추수감사절까지 해의 풍성한 마무리를 위해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라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해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있습니다. 각자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마태오복음의 유명한산상설교 부분입니다. 마태오는 모티브로 예수님의 전승을 담았습니다. 루가가평지 선호한 것과는 대비됩니다. 예수께서  ‘에서 설교를 하셨고, ‘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에서 제자들 앞에서 변모하셨으며, 갈릴래아에 있는에서 제자들에게지상명령 내리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러한 산에 대한 모티브는 구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연상시키며, 이는 모세보다 위대하신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내는 마태오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오복음을 읽을 이러한 산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으면 한결 내용을 이해할 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 6:24)

 

오늘 읽은 본문 바로 전에하느님과 재물 대비시켜 주인을 섬길 없다고 운을 후에, 오늘 본문은대비논법 사용하여 우리가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지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승자료는예수 어록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입에서 실제로 발설됐을 가능성이 문장들입니다. 약간의 편집적 가미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견고한 주제성과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재물을 섬기는 것은 결국 세상의 주인인 맘몬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보다는하느님의 나라 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돌아가 마태오복음 5장을 보겠습니다. 마태오는 산상설교 초반에 진복을 기록하면서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같은 전승을 참고했던 루가는 그냥가난한 사람이라고만 기록했습니다. 아마도 루가의 기록이 예수의 최초 발언에  가까울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마음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πνεῦμα퓨뉴마, 대한 의역입니다. 그래서 원어에 가깝게 이를 읽으면복되도다. 영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마음 의미와 느낌상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오가 가난을 가난으로 얘기했는지는 다음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다만 말씀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점만 강조하고 넘어갑니다. ‘가난자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입니다. 마태오가 말하려는영의 가난 결국겸손한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같습니다. 마태오나 루가가가난 행복하다고 기록한 것은 전적으로 미래에 성취될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 때문입니다. 땅에서는 우리가 인간의 가난한 실존 때문에 고생을 하지만,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우리는 모든 보상을 받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 자체가 행복한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가난의 고통에 빠져 있는 앞에서 우리는 결코가난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없습니다물론 극도의 금욕생활을 하는 사막의 은수자들은 아마 예외일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마태오의 관점에서가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영이 가난한 사람’, 겸손하고 깨끗한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길 원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사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입니다. 가난은 우리를 옥죄어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듭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매월 다가오는 카드 결제일이 염려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제일이 다가오면 소화도 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며, 부부간에는 다툼도 늘어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이나 현대의 사람들이나 삶의 형태는 달라도 인간 실존은 똑같은 경제적, 재정적 고통의 연속입니다. 가난은 우리를 한순간에 넘어뜨리는 걸림돌과 같이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가난이나 경제적 문제에 억눌리지 말고 어떻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크리스천은 주인을 섬길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를 섬기면, 반드시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물질이 없어 염려하는 마음은 결국 우리를 하느님보다 우상에 사로잡히게 유혹합니다.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염려는 물질적 문제보다 크신 하느님을 없게 만듭니다. 말씀은 단순히 재물에 대한 탐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냐 아니면 맘몬이냐?라는 우리 자신의 주인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하신 대상은 제자들이었지만, 결국 이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마태 5: 1)

 

물론 곁에 있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지만 다른 대중들도 들었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은 가정이 있는 가장이었거나 또는 부모를 모셔야 하는 아들들이었을 겁니다. 예수를 따라다녀도 가족들 걱정이 앞섰을 겁니다. 자신들이 벌지 않으면 가족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에양가성의 마음 생겼습니다. 하느님이냐 아니면 맘몬이냐? 오늘 말씀은 이점을 분명히 합니다. 돈에 대한 염려는 결국 맘몬을 우리 마음에 소환합니다.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그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그것을 선택하여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재물의 선과 악이 구분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양가성의 감정 발생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합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은 우리를 성장으로 이끌거나 또는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선택에는 우리의 책임이 따르지만, 자비하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옳은 선택을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책임과 성령의 은총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고, 담대하게 선택을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그릇된 선택, 잘못된 주인을 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요한의 첫째 편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요한 4:18)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 만이 우리를 선택의 두려움에서 건져낼 있습니다. 해의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반성해봅니다. 우리가 했던 많은 선택들을 다시 점검하고 선택으로 말미암아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감사할 조건들이 넘쳐 난다면 우리는 일에 더욱 정진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에 대해 여전히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해의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기에 우리는 바른 방향성을 설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오늘에 있습니다. 담대하게 염려의 두려움을 끊어버리시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반응하는 그러한 선택의 기회를 우리가 잡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당당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든든한 후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해의 우리 농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해는 풍성한 해가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단과 선택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맥추감사주일연중14주일_전례독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느님, 계절에 따라 우리에게 땅의 소출을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우리의 삶이 어려울 때에는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게 하시고, 풍요로울 때에는 힘겨웠던 시절을 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신명 8:1-4

너희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계명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행복하게 살며 번성할 것이고 야훼께서 너희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4 지난 사십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떨어진 일이 없었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다.

 

 

시편 119:33-48

33  주여,

.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치소서.
.     그대로 지켜 상급을 받으려 하옵니다.

34  당신 법을 깨우쳐주시고

.      따라 살게 하소서.
.     마음을 쏟아 지키리이다.

35  나의 기쁨은 당신의 계명에 있사오니
.      길을 따라 곧장 살게 하소서.

36   마음을 잇속에 기울이지 않고
.     당신의 언약으로 기울게 하소서.

37  헛된 것에서 나의 눈을 돌리시고
.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 얻게 하소서.

38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     당신의 종에게 지켜주소서.

39  당신의 결정은 은혜로우시니,
.      몸서리치는 모욕에서 건져주소서.

40  당신의 계명을 나는 갈망하였으니,
.     정의를 세우시어 몸을 살려주소서.

41  주여, 당신 사랑을 나에게 베푸시고
     약속하신 당신의 구원을 내려주소서.

42  당신 말씀 굳이 믿고
     나를 모욕하는 자들에게 응수하리이다.

43  당신의 결정에 희망을 두오니
     진리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44  당신의 법을 언제나 길이길이
     끝까지 지키리이다.

45  당신의 계명을 애써 지켰으니
      딛는 발걸음 자유롭게 하소서.

46  임금들 앞에서 당신의 언약을 선포할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리이다.

47  당신의 계명은 나의 기쁨
     그것을 나는 사랑하옵니다.

48  당신 계명 내가 사랑하기에 쌍수 들어 반기고
     당신 뜻을 언제나 나는 묵상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히브 11:32-40

32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옙타,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고 약속해 주신 것을 받았고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피하였고 약했지만 강해졌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돌아오는 식구들을 만난 여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나은 생명을 누리려고 석방도 거부하고 고문을 달게 받았습니다. 36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얻어맞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돌에 맞아 죽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돌아다녔으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겪기도 했습니다. 38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만한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로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사람들은 모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제쳐놓고는 결코 완성에 이르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 6:25-34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시간인들 늘일 있겠느냐? 28 너희는 어찌하여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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