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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계보-설명절별세기념성찬례

James Chae 2022. 2. 1. 11:40

 

2022.2.1. 다해. . 설날별세기념성찬례

민수 6:22-37 / 시편 89:1-2, 11-16 / 야고 4:13-17 / 마태 6:19-21, 25-34

 

 

믿음의 계보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은  오늘의 본기도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가지 주제입니다. 다시 한번 본기도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의 영혼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주님의 자녀 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1. 대대로 (믿음의 계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출애 3:6)

아브라함이 야훼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후 계약은장자권 함께 자손 대대로 이어졌습니다. 계약의 상징인장자권 믿음의 계보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따라서약속에 의한 상속자들”(갈라 3:29 비교)입니다.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음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누구는 늦은 나이에 홀로 하느님을 영접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늦게 자나 일찍 자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은총에는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공덕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전적인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수되거나 자손에게 대물림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으로라는 믿음의 외침은대대로가정 속에서 영향을 끼치며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먼저 믿은 자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구원받지만, 먼저 믿은 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 또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믿은 자에게 주어진 의무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다운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저 믿은 자들이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서 믿지 않는 가족들이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정 내에서 먼저 믿은 자들의 말과 행동이대대로다른 가족 구성원과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가족 공동체의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영광 또한 그에게 동시에 주어집니다. 사람의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구원을 받을 기회가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가족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함께 많은 어려움도 동반되겠지만, 믿음의 시작은 분명 의미 있는믿음의 계보 만드는 거룩한 첫걸음이 것입니다. 

 

 

2. 기억하고, 기념하기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외친 이러한믿음의 계보기억과 기념, 아남네시스 통해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믿음의 계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교회와 연결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우리가 소속돼있고 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그러나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우리를 포함하여, 과거와 미래가 영원한 현재가 되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자들의 하느님 우리의 왕이신 교회입니다. 거룩한 공의회’, ‘성공회’, ‘가톨릭입니다. 이러한보이지 않는 교회 자들이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 가운데현재 그들을 소환해 냅니다. 또한 지금 자들은 이미 믿음 안에서 죽은 이들의 기도를 통해 다가올 미래로 소환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지막 때에 반드시 그들을 하느님 안에서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과거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보여주신 모든 일들과 가르침들,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과 사도들의 믿음과 용기를기억하고, 기념합니다.’ 나보다 먼저 믿음의 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비록 믿음이 없으셨지만 나보다 먼저 가신 가족들과 조상들 또한 우리는 기억 속으로 소환해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기억 단순히 개인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보이지 않는 교회 흘러들어 소통을 합니다. 많은 개인들의 기억들이 현재로 소환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교회와 눈에 보이는 교회 간에 상통이 이루어짐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예배이고, 우리가 설날과 추석 명절에 조상들과 먼저 가신 가족들을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자와 죽은 자는 이렇게 우리가기억하고 기념하는행위를 통해 기도 속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3. 영원한 안식 (영원한 현재성)

영원히 사는 . 죽지 않고 오래 사는 . 아마도 불로불사의 꿈은 인류의 가장 꿈이자 이룰 없는 염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은 자가 영원히 것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피라미드속에 오직죽은 자들을 위한 세계 만들었습니다. 불로불사의 꿈을 진시황제 또한 실제 사람의 모습을 본뜬 병사들을테라코타 만들어 자신의 무덤 근처에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유전자 기술로 끊임없는 인간 복제로 이러한 꿈을 이어 가고자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한계를 인식한 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한계의 극복을 종교 속에서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이러한영생 약속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원한 또는영원한 죽음 모든 종교가 가르친 오랜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종교의 기원이 인간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종교학자들의 주장도 결코 무시할 없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도 이러한 영원성을 담보한 종교입니다. 그것의 뿌리는 오래된 아브라함의 야훼 신앙에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사악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마태 22:32, 마르 12:26)

 

말씀은 출애굽기 3 6절에서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처음 만났을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하신 말씀인데,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 이를 인용하여 부활을 설명한 구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과거에 죽은 자들도 현재로 소환해내시는 부활의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는 과거, 미래, 현재가 지금 여기 소환됩니다. 부활은 영원한 현재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도 분명 우리가 쉬고 있는 바로지금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의영생보다도영원한 현재 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2 고린 6:2)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영생을 바라보고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지금 여기에서 영생의 축복을선용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믿는 자들에게 마지막 날에 당연히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운명처럼 정해진 어떤 것입니다. 그때에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분명 나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그러한 미래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한 것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처럼, 이미 영생을 얻은 자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제자도를 현재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 ‘영생 지닌 가르침과 축복을 현재의 속에서선용하여 살아내기’.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 (복된 가정)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믿음의 계보 이어가고, 그렇게 이어지는 믿음을 현재로 소환하여기억하고 기념하며’, 오늘을영원한 현재 살아가는 가정은 분명복된 가정 아닐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고,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가정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보장하신 유일한 사회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창세 2:24) 

 

물론 현대에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모 가정, 홀로 가정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가정이든가정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성공회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합니다. 가정의 주인이 오직 분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어떠한 가정이든 하나 됨을 굳건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가족 구성원 간에 하나 되기. 이런 차원에서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말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읽어드리는 것으로 설교를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여러분 가정의 축복을 힘써 지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에페 4:2-6)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다해) 설날별세기념성찬례

 

 

본기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해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의 영혼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 주시고, 주님의 자녀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성시_ 시편 89:1-2, 11-16

1    주여,
.     내가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이다.
.     당신의 미쁘심을 대대로 전하리이다.
2    당신께서 다짐하신 사랑,
.      미쁘심은 하늘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11  하늘이 당신 것이오니, 땅도 당신의
.     땅과 안에 담긴 모두 당신께서 만드신 것이며,
12  북녘과, 남녘을 만드신 이도 당신이오니
.     다볼산도 헤르몬산도
.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옵니다.
13   모든 전공이 당신의 것이니
.     억세신 당신 손이여, 탁월하신 오른손이여.
14  정의와 공정이 당신의 옥좌를 받들고,
.     사랑과 진실이 당신의 거동을 인도하옵니다.
15  복되어라, 주님께 만세 부르는 백성
.     그들이 걷는 길을
.     당신의 환한 얼굴이 비춰 주시니
16  날마다 이름 높이 기리고
.     당신의 정의로 사기도 드높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야고 4:13-17

13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14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그러므로 당신들은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입니다. 16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복음서_ 마태 6:19-21, 25-34

19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시간인들 늘일 있겠느냐? 28 너희는 어찌하여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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