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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선택" (사랑의 이중 계명 2)

James Chae 2022. 7. 23. 10:29

 

2022.7.17. 연중 16주일

아모 8:1-12 / 시편 52 / 골로 1:15-28 / 루가 10:38-42

 

궁극적 선택” (사랑의 이중 계명 2)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는 율법도 모릅니다. 율법이 진리를 선포할진대, ‘진리’를 모르는 자가 어떻게 율법을 알겠습니까?” (성 암브로시오)

 

지난주 설교에서 우리는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이중 계명 번째 부분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루가는사랑의 이중 계명 대한 설명으로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 각각 덧붙였습니다. 이를 통해사랑의 이중 계명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인은 언니 마르타와 동생 마리아입니다. 사람의 성격은 짧은 문장 속에서도 확연히 다름을 있습니다. ‘마르타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의 여느 여인들처럼 손님 대접하고 집안일에 정성을 쏟는 매우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여인인 같습니다. 시대의 여인상이 그녀에게서 느껴집니다. 집에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집안의 주인으로써 책임감 있게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방문한 손님들이거룩하신 그의 제자들이니 그녀의 극진한 정성은 더했을 겁니다. 더욱이 오늘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를 초대한 것도 마르타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그녀는 그날 저녁식사의 호스트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본인이 호스트이지만 동생이 자신을 돕지 않고 예수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으니 속이 상했던 같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니 더욱 동생의 그런 태도가 야속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마치 남의 일처럼 자신을 돕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답답한 마음에 직접 마리아에게 말하는 대신 오히려 주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마르타의 입장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발치에 앉았다는 것은 마리아가 주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스승의 발치에 앉는 자는 스승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언니 마르타가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을 마리아에게 직접 하지 않고 마리아의 스승인예수에게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마리아는 스승이신 주님의 권위 아래 놓인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유대교에서 제자가 되는 것은 오직 남자에게만 허용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자인 마리아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과히 파격적인 일입니다. 그녀는 이미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기에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주님의 발치에서 꼼짝을 합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주님께서는 오히려 칭찬까지 해주십니다. 그녀의 행동으로 우리가 있는 사실은 마리아는 이미 예수의 제자로서 당시 여자들에게 적용되던 가부장적 관습과 관례, 편견을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제자가 것입니다. 그동안 그녀를 둘러싼 모든 관계성들이 새로운 변화를 맞습니다. 언니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관계들이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것이 되고, 새로운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그녀는 가부장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님만 주님으로 모시기로 결심을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정말 독특한 여인이 아닐 없습니다. 이는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예수의 수제자들과도 비견됩니다. 시대에서 여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없는제자도 길에 들어선 것이지요. 그녀의 행동은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손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 하느님을 예배할 , 하느님을 찬양할 ,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하라는 말씀을 그녀는 정확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이웃에 대한 사랑과는 결이 다른사랑의 이중 계명 첫째 계명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섬길 다른 어떤 제약도 개념치 않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만 힘을 다해 집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마르타의 불평에 답변하셨습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루가 10:42)

 

 

주님께서는 결코 마르타를 책망하신 아닙니다. 손님을 접대하고 섬기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임을 주님께서도 아셨습니다. 교부 시리아의 에프렘은 이러한 마르타가 마리아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성육신하신 주님의 허기를 채우고, 그분의 필요를 제공하는 집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르타가 선택한 것은 일상적인 것이고, 누구든 마음만 먹고, 부지런하면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러한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가고 마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일은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일들입니다. 영원을 담보할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가지뿐이라고. 이것이 바로 틸리히가 말한절대 존재 향한궁극적 관심입니다. 인간이 기울일 있는 모든 관심과 집중 중에 가장궁극적 말입니다. 마리아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 안의궁극적 관심 오직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에게 차선을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는 순간, 예수의 제자가 되는 순간, 결단의 순간, 그녀의 모든 내적인 필요의궁극적우선순위는 오직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통념과 관습, 일반적인 여성의 사회적, 가정적 역할 등은 이상 마리아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 그것이 그녀의 몫이라고 주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가지 그녀는 주님께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를 영원으로 이끄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분주한 섬김의 마르타.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경청한 마리아.

우리는 둘을 비교하며 누가 옳은 가를 말하면 됩니다. 둘의 행동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진리의 변별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먼저인가라는진리의 위계문제입니다.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것을 선택할 때는 오직 가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궁극적 관심 기울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육신의 필요와 충족은 그다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마리아의궁극적 선택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유를 교부 요한 카시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르타의 몫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육신을 시중드는 일은 섬김 받는 사람이 그곳에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리아의 열성은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 1,8)

 

마르타가 성실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최선을 다하는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남을 섬겼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하느님의 삶을 살아내는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부분에서 우리는 ‘Sola Fide’, ‘Sola Gratia’ 작동되는 지점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선한 사마리아인처럼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들 이웃이 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부들이 일관되게 해석한 바대로선한 사마리아인 예수님의 유비라면, 결국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또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값없이 은총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죄에 빠져 강도 만난 사람들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지 않으셨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 강도 만난 사람이선한 사마리아인 만나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전권에 달린 은총입니다. 그리고 전권을 성부께서는 성자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처럼 구원의 조건으로 오해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시편 32:1-2 인용하여 로마서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주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주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로마 4:7-8)

 

사도 바울로는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당연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은총으로 값없이 얻은 구원에 대한 행복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고, 구원의 조건이 우리로 말미암지 않음을 분명히 것입니다. 그러므로선한 사마리아인 행함은 주님의 법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주님 앞에서 행함을 자랑해서는 되겠습니다. 이로써 루가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우린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의이웃 되어야 한다고, 그것이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도리이며 정체성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궁극적 관심 우리의 지고한 마음이라는 것도 아울러 알려줍니다. 첫째 계명은 우리에게 하느님 이외에 것에 대한 어떤 관심보다도 하느님께 우리의궁극적 관심 쏟으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계명도 중요하지만, 첫째 계명이 우선입니다. 물론 첫째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은 둘째 계명도 순종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루가의 편집 의도에서 읽히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은 믿음과 행함, 궁극적 관심과 헌신적 사랑에 기초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주님을 섬기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도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에 달려있지만, 우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들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으니 도우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도울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 14:7)

 

그렇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항상 아무 때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믿음을 가질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은총으로 불러주실 때가 바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신 것이라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없습니다.”(1 고린 12:3)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선을 베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것은 오직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루가 10:42)

 

주님의 칭찬에 마리아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오늘 우리도 마리아처럼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생각을 온전하게 주님께 드리는궁극적 선택 하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가장 소중하신 분으로 주님만을 모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발치에서 한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았던 마리아처럼, 험한 세상 풍파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길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와 같은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시간 함께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16 (다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나이다. 비오니, 일상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항상 만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아모 8:1-12

1 다시 야훼께서 보여주신 것은 익은 과일  바구니였다(히브리어에서 “익은 과일이라는 말과이라는 말은 비슷하게 들림). 2 야훼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 익은 과일 바구니가 보입니다.” 하고 내가 아뢰자,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 백성 이스라엘도 모양이니, 이젠 대로 되었다. 용서해 수도 없구나. 3 날이 오면, 궁궐에서 노래하는 여자들도 울부짖으리라.
.     -
야훼의 말씀이시다.
.    
데마다 버려진 시체투성이가 되리라.”
4    
말을 들어라.
.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    
흙에 묻혀 사는 천더기의 숨통을 끊는 자들아,
5    
겨우 한다는 소리가
.   “
곡식을 팔아야 하겠는데
.    
초하루 축제는 언제 지나지?
.    
밀을 팔아야 하겠는데
.    
안식일은 언제 지나지?
.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    
가짜 저울로 속이며
6    
등겨까지 팔아먹어야지.
.    
힘없는 , 빚돈에 종으로 삼고
.    
미투리 켤레 값에 가난한 ,
.    
종으로 부려먹어야지.”
.    
하는 자들아.
7    
야훼께서는 야곱이 자랑으로 여기는
.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다.
.   “
나는 백성이 일을
.    
결코 잊지 않으리라.
8    
그리하여 땅은 뒤틀리고
.    
거기 사는 사람은 모두 찌들리라.
.    
이집트의 나일 강처럼
.    
부풀어올랐다가 잦아들리라.
9    
날이 와서
.    
대낮에 해가 꺼지고
.    
백주에 땅이 캄캄해지거든,
.    
모두 내가 일인 알아라.
.     -
야훼의 말씀이시다.
10  
순례절에도 통곡 소리 터지고
.    
흥겨운 노랫소리 그치며
.    
상여 소리 구슬피 퍼지리라.
.    
모두들 굵은 베를 허리에 걸치고
.    
머리를 밀며 외아들이라도 잃은 통곡하리라.
.    
마지막 날은 이런 비극으로 끝나리라.
11  
내가 땅에 기근을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     -
야훼의 말씀이시다.
.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    
야훼의 말씀을 들을 없어 굶주린 것이다.
12  
바다에서 바다로 헤매고
.    
북녘에서 동녘으로 돌아다니며
.    
야훼의 말씀을 찾아도 들을 없는 세상이다.

 

 

 

성시_ 시편 52

1    하느님의 사랑 영원하신데 악명 높은 영웅이여!
.     어찌 악한 일을 자랑하느냐?
2    너는 자나깨나 해악을 꾸미고
.     혀는 날카로운 면도날, 속임수의 명수로구나.
3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즐기고
.     바른 소리보다 거짓말을 좋아하니
4    남을 해치는 소리라면
.     모두 좋아하는 사기꾼이로구나.
5    하느님께서 너를 박살내어 영영 없애 버리시리라.
.     장막에서 너를 끌어내어,
.     인간 세상에서 뿌리째 뽑아버리시리라.
6    의인들이 꼴을 보고는 숙연해지고
.     그를 보고 비웃으며 말하리라.
7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고 많은 재산만 믿고
.     악행으로 세도를 부리더니, 꼴을 보아라.”
8    나는 주님의 집에 푸르른 올리브 나무같이
.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믿고 살리라.
9    주님이 해주신 고마워 항상 찬미하리이다.
.     주님을 믿는 사람들 앞에서, 어지신 이름을 기리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골로 1:15-28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18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20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21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서 하느님께 적의를 품고 사악한 행동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몸을 희생시키시어 여러분과 화해하시고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없고 탓할 없는 사람으로서 당신 앞에 서게 하여주셨습니다. 23 물론 여러분은 튼튼한 믿음의 기초 위에 굳건히 서서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인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신앙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바울로는 소식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24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심오한 진리는 과거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신 심오한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신 것입니다. 심오한 진리는 이방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과 영광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입니다. 28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경고하며 가르칩니다.

 

 

 

복음서_ 루가 10:38-42

38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39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주님,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42 실상 필요한 것은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