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영원한 순간"

James Chae 2022. 8. 7. 05:13

 

2022.8.7. 주님의 변모 축일/연중19주일

다니 7:9-10, 13-14 / 시편 97 / 2베드 1:16-19 / 루가 9:28-36

 

영원한 순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공관복음서는 모두주님의 변모 사건 번째 수난 예고 이야기다음에 배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와 루가 모두 마르코복음을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편집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베드로의 번째 그리스도 고백 나오고, 그다음에 번째 수난 예고 나옵니다. 그다음이 오늘 이야기인  주님의 변모 사건입니다. 이런 편집 관점에서 우리가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 왕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닌, 구약이 예언한 대로,  고난을 당하시고’,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 ‘다시 부활하신다’”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정체와 그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공관복음서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주님의 변모 사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확증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변모 사건 보이지 않는 초월이 인간 실존과 조우하는순간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의 진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성육신의 신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실존으로 조금 가까이 나아갈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예수 공생애에서 예수를 통해하느님의 영광 드러난 사건은 크게 번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예수 탄생과 관련된공현절(주현절)’이고, 다른 하나는주님의 세례때입니다. 이를 우리는에피파니(epiphany)’라 부릅니다. 보이지 않는, 감춰졌던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영광이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발현된순간 말합니다. 초월이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주님의 변모 이야기 이러한공현, 에피파니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있습니다. 이를 키르케고르는절대 역설이라 불렀습니다. 초월과 현상의 세계의 불가능한 조우가 성육신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역설이라 부른 것입니다. 물론 영광은 수난 후에 부활을 통해 실현된영광입니다. 오늘 말씀은역사적 예수 제자들이 그러한 영광을 타보르산에서 미리 경험한순간 대한 기록입니다. 초월이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에 발현된 찰나의순간말입니다. 순간 우리가 믿음으로서만 그것에 역사적 진실성이 부여될 있습니다. 변모 사건은순간이지만, 그것에 담긴 의미는영원성입니다. 이를 우리는영원한 순간이라 말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발현된변모 관련된 단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오는 충실하게 마르코복음의 기록을 따랐습니다. 그들은메타모르포우μεταμορφόω’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예수의 변모 사건을 본질적 변화로 이해했습니다. 종말에 드러날 초현세적인 현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신적 수동태 사용하여 하느님의 강권적인 의지로 예수가 변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부 하느님의 전적인 개입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란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같은 마르코복음을 참조했으면서도 루가는 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는메타모르포우동사 대신에헤테로스ἕτερος’라는 형용사를서술적 용법으로 사용하여 실체적, 본질적 변화보다는 어떤속성의 변화 이를 봤습니다. 루가는 예수의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난 하느님의 현현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영원성육체라는 유한성 안으로기도하는 중에발현된 것입니다. 증거로 얼굴 모습이 달라지셨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 예수의 얼굴이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became different 또는 was alterd 또는 became alterd) 

 

이렇게 루가는 예수의 변모 사건이 기도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기도를 하시려고산에 제자들과 함께 오르셨다고 했고, 그가 기도하는 중에얼굴이 변화됐다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의 상황도 복음서들은 다르게 기록합니다. 마르코와 마태오는제자들이 보는 앞에서변모되었다고 기록한 반면, 루가는 제자들이 기도 중에졸다가 (갑자기) 깨어나서’ “주님의 영광δόξα” 봤다고 기록합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졸고 있는 제자들의 이미지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또한주님의 영광 봤다는 표현도 루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정리해보면 예수께서 기도 중에 얼굴 모습이 달라지셨고, 옷이 하얗게 빛났으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제자들은 잠에서 순간 그러한 하느님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이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서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기록한 것은, 이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을 사건의 전조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졸고 있다는 설정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때와 맥을 같이 합니다. 성육신하신 주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깨어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곤함에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에 게으른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설정은 분명 기도를 강조한 루가복음다운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루가는 끊임없이 루가복음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졸고 있는 교회,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이 죽은 교회, 온갖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교회를 이렇게 제자들의 졸음과 무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진지함과 사랑에 비해 주님의 기대에 미치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루가의 편집 의도를 발견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주님의 변모 사건과 겟세마네의 마지막 기도 이야기 데에 결정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의 순간에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 많은 세상에서깨어 기도하라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라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루가 9:41)

 

 

주님께서는 분명영광 자신의죽음 연관 지어 변모사건을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의 경륜을 말씀하셨지만, 깊은 경륜을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은 그들이 변모 사건 이후에 맞닥뜨린귀신 들린 아이 구하지 못하는 데서 증명이 됩니다. 제자들은 악한 영을 쫓아낼 능력이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음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데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원인이 있습니다. 제자들이나 우리나 시간의 간격을 넘어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그들이나 세상 풍파에 지쳐깨어 기도하기 의지가 박약합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사안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발언만 합니다. 위기는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심각성에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두 사람이 떠나려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루가 9: 33)

 

 

자다가 깨어서 상황 파악이 베드로의 엉뚱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의 발언은 당시의 유대인으로서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율법 상징하는모세 예언을 상징하는엘리야 실제로 눈으로 목격했으니 그들은 유대교 신앙의 기둥을 직접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다고 섣불리 확신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진리 안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성서의 예언대로 고난 받고 죽었다가 부활하신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고난 받는 그리스도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계신 예수를 순간,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나선 보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의 소망이 현실화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무지의 순간. 그들의 무지가 돌파된 것은 초월의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무지의 순간,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구름은 구약성서에서부터 하느님의 현현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현현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목소리 들렸습니다. “이는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순간에 들렸던 음성과 같은 음성이 순간 들렸습니다. 그들의 무지가 초월에 의해 깨지는 순간, 벌거벗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했던 아담과 하와처럼 그들은 두려움에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욕심과 허영심이 사라진 곳에는 그러한 허무와 두려움만 남는 법입니다. 그래서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자기들이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루가는 기록한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 신앙, 삶의 경험들이영광의 구름 덮이는 순간 완전한무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껍데기 모두 벗겨진 순간입니다. 이것이에피파니’, 초월의 현현 앞에 인간의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그들의 앎은초월의 구름속에서 철저히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하느님 앞에 없이 작은, 영원 앞에서 없이 유한한 인간의 한계는 그렇게영광의 순간 드러난 것입니다. 현현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영광은 우리 안에서 영원성을 얻습니다.

 

주님의 변모 사건은 이렇게 초월과 내재의 극명한 대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영광 인간의 덧없는유한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그러한 순간, 깨달음의 순간은 우리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성육신 신비를 붙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초월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성육신하신 예수님 이상의 계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성육신하심으로, 그분의 고난과 소외로, 그분의 죽음으로, 그분의 부활로우리는 하느님의 경륜대로 인간 실존에 깊숙이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순간을 볼뿐입니다. 만약 성육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덧없는 육신과 선하게 창조된 세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점이 영지주의자들이 잘못 나아간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병이 나거나 아플 때에 우리가 육신을 가진 존재임을 더욱 깨닫습니다. 육신은 우리의 실존에서 아픔을 느끼게 하고, 유한성을 실감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그러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천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존재임도 사실입니다. 주님의 변모 사건은 우리의 유한성이, 우리의 연약한 육신이 주님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덧입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교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라는 위대한 현현은 우리에게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는 삶의 신비를 흘끗 보여 준다.”

 

 

흘끗 보여 준다.”

초월의 신비는 우리 가운데찰나 시간만큼만 허용됩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순간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깨어 기도하는 순간에 오직 초월의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주님의 변모가 모두신적 수동태 형식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랄지라도 얻을 없는 것은 초월의 개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의지에 달린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루가는 그러한영원한 순간 기도와 깊이 연관됐다는 점을 오늘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기도는 은총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루가의 생각입니다. 최소한 기도할 없다면, 기도하는 게으르다면,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머무십시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근처에서 졸던 제자들은 영원한 순간 덩달아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구는 기도를 하고, 누구는 기도를 하지 않지만, 동일한 은총 가운데 놓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누군가는 사명을 가지고 끊임없이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시는 분들과 기도를 하시지 않는 분들이 동일한 은총 가운데 놓이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이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게으르신 분들은 우리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는 분들은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방법이고, 사랑을 나누는 일임을 기억하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안에서 은총을 많이 받은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 하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만나가 광야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등하게 내렸던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평등합니다. 그러한 은총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항상 함께하시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8.6. 주의 변모

 

본기도

영광의 하느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변화를 나타내 보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들이 세상의 근심과 불안에서 벗어나,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다니 7:9-10, 13-14

9    내가 바라보니
.     옥좌가 놓이고 태곳적부터 계신 이가 위에 앉으셨는데,
.     옷은 눈같이 희고
.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10   앞으로는 불길이 강물처럼 흘러 나왔다.
.     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     억조 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
.     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    

13 나는 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성시_ 시편 97

1    주께서 왕위에 오르셨다.
.      땅은 춤을 추어라.
.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2    안개와 구름에 둘러싸이고
.     정의와 공평이 옥좌의 바탕이요.
3    불길이 그를 앞서 가며
.     에워 원수들을 살라 버린다.
4    번개가 한번 번쩍 세상을 비추니
.      땅이 이를 보고 부들부들 떤다.
5    산들도 앞에서, 땅의 주님 앞에서
.     초처럼 녹아내린다.
6    하늘이 의로우심을 선포하고
.     만백성은 영광을 뵈옵는다.
7    잡신들을 섬기는 자들아,
.     허수아비를 자랑하는 자들아,
.     창피를 당하여라.
.     모든 신들아 앞에 엎드려라.
8    주여, 당신의 재판은 공정하시오니
.     시온이 이를 듣고 즐거워하며
.     유다의 딸들도 기뻐하옵니다.
9    주여, 당신은 세상에 으뜸이시오니
.      많은 신들 훨씬 위에 계시옵니다.
10  악을 미워하는 자를 주께서 사랑하시고,
.     당신을 믿는 자의 목숨을 지켜 주시어
.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
11  바르게 살면 앞이 환히 트이고
.     마음이 정직하면 즐거움이 돌아온다.
12  올바르게 사는 자들,
.     주님의 품에서 즐거워하여라.
.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2베드 1:16-19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려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강림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신화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우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17 그분은 분명히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영광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분을 가리켜이는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17:5하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18 우리는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으므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19 이것으로 예언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복음서_ 루가 9:28-36

28 말씀을 하신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30 그러자 난데없이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 거기 함께 있는 사람을 보았다. 33 사람이 떠나려 베드로가 나서서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말이었다. 3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뒤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버렸다. 35 구름 속에서이는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시편 2:7; 이사 42:1; 신명 18:15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6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자기들이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