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그리스도의 제자도: 갇힌 몸”

James Chae 2022. 9. 4. 06:38

 

 

2022.9.4. 연중 23주일 _ 여성선교주일 _ 그레고리(로마의 주교, 604)

예레 18:1-11 / 시편 139:1-6, 13-18 / 필레 1:1-21 / 루가 14:25-33

 

그리스도의 제자도: 갇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여러분은 자유합니까? 

아니면 갇힌 몸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뭔가에 집착하고 붙들려 있다면 그것이 갇힌 상태입니다. 일에 붙들려 있습니까? 그러면 일에 갇힌 것입니다. 자녀에게 붙들려 있습니까? 그러면 자녀에게 갇힌 몸입니다. 돈에 집착합니까? 그러면 돈에 갇힌 것입니다. 

 

80,90년대에 서울 지하철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문을 봤습니다. 물론선데이서울같은 주간지나, 스포츠신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예계와 스포츠 소식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일간 신문을 지하철에서 봤지요. 그러고 보니 시대는 그러한 매스 미디어(Mass media)갇힌 사회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에 제가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새삼 놀랐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제가모든이란 말을 쓰는 것은 정말 졸고 계신 분들 빼고 눈을 뜨고 계신 분들은 전부 핸드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도대체 핸드폰을 통해 무엇에 집중을 하는가 살펴봤더니, 대부분, 카톡이나, 게임, 드라마, 웹툰 등을 보고 있었습니다. 간혹 포털 사이트(portal site) 뉴스를 읽는 분들도 있었지만, 아주 소수였습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제겐 얼마나 낯설던지, 마치 제가 외계에서 사람 같은 소외감마저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콘텐츠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자신이 손바닥만 기계 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같았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가장 지근거리에서 2~30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다른 세계의 타자로 머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에게 시선을 수도 없으니 지하철 안에서 눈을 곳이 없어 정말 난감하긴 하더군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머무는 곳이 바로 우리가갇힌 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모든 것을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모든 것에는 다양한 간섭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학력, 출신성분 등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어떤 일을 결정할 그러한 것을 염두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우리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철저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갇힌 입장이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진상 고객들의갑질파문에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은연중에 비공식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성 속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가이라는 사실이 타자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면으로 드러나면 마치 숨겨둔 뭔가를 들킨 것처럼 오히려 적개심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평소에는 불가항력적으로 위치에서 잠잠히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를 터트릴 대상을 쉽게 찾지 못합니다. 우리를 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뉴스를 통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발견하게 되면 구체적인 대상이 생겼기 때문에 쉽게 적개심을 표출할 있습니다. 갑질을 사람이 잘못이지만, 그가 유독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그가 세상의 모든'들을 대신하는 상징체가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분노의 대상이 구체적일 분노를 터뜨릴 있습니다. 반대로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모호할 때는 두려움과 절망을 느낍니다.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개인이고, 구체화되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너무 쉽게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사회 시스템과 사회 조직 속에서 갑질을 당해도 우리는 구체적인 분노의 대상을 찾을 없기 때문에 그냥 순응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참석했던 기장 교단의 어떤 강연회에서 이우송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사랑에 빠지면 을이된다.”라고.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철저히 우리에게이시라고.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그분의 종이라고 고백하니 우리는 우리가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시니 그분이 오히려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번도 그분에게 받은 사랑만큼의 사랑을 드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를 적용하면 정말 하느님은 우리에게 손해를 보시는이십니다. 우리는 수도 없이 그분을 배반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분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다가도 돌이켜 회개하면 그분은 그냥 우리를 용서하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니 그분이 우리의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은망덕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더러 철저히 되라고. 쉽지 않은 요구를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 14:27

 

십자가 무슨 의미입니까? 십자가는 철저히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케노시스κενοσις’ 통해, ‘자기 비움 통해, 철저히 되셨기에 그분의 십자가를 지실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위해 되라고 하시는 겁니까? 바로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 이웃을 위해. 오늘 사도 바울로는 필레몬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갇혀 있는 나 바울로” 필레 1:1

 

갇힌 라는 바울로의 표현은 여기에서 중의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로는가이사리아’, ‘에페소’, ‘로마등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필레몬서를 어디에서 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는 편지를 감옥에갇힌 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는 자신이감옥에 갇힌 이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갇힌 몸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은 필레몬서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말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에게 갇힌 몸이고, ‘오네시모 필레몬에게 갇힌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오네시모 용서해달라고 필레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모두 그리스도에게갇힌 이라는 것을 전제한 것이지요. 결국 필레몬이나 사도 바울로나 모두 주님 앞에서는이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시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앞뒤를 막으시고 당신의 손 내 위에 있습니다.” 시편 139:5

 

오늘 시편 시인은 몸을 속속들이 아시고”, “ 마디마디까지 주님께 숨긴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마치 좁은 독방에 수감되어 감시카메라에 의해 철저히 자신의 사생활을 빼앗긴 죄수처럼, 시인은 철저히 자신이 하느님의임을 고백합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히 무장 해제된 상태를 정확하게 오늘 시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결코 하느님 없이는 없는 존재가 것이지요. 하느님 앞에서 철저히 됐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 14:26

 

 

주님께서는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심지어자기 자신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없다는 뜻이지요. 제자가 된다는 것은 되려는 헛된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 앞에 철저히 되라는 뜻입니다. 어디 하느님뿐이겠습니까? 이웃을 향해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에게 되셨던 것처럼 하느님께는 이제 우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철저히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딸과 저의 관계도 제가입니다. 제가 먼저 보고 싶고, 제가 먼저 연락하고, 제가 먼저 궁금해하고, 제가 먼저 안절부절못하고용돈은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어려운 일은 없는지? 노심초사하는 것은 저입니다. 그래서 저는 딸아이에게 항상입니다. 물론 딸은 그런 제가 자신을 간섭하는 것으로 느끼겠지만, 그것이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 대해 아쉽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철저히 되는 것이고, ‘로서 하느님과 세상을 관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초조해지고, 하느님이 걱정되고, 하느님이 보고 싶고, 하느님께 심려를 끼치지 않게 조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열심을 다하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에 대해서도, 보면 보고 싶어 지고, 만나면 따뜻한 한마디 하고 싶고, 어려운 일은 없는지 걱정되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슬퍼하고…. 이렇게 이웃에 대해 되라고 하십니다. 모두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교회마저, 그리스도인마저 되면 세상에 누가 진정한 되겠습니까?  교회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운명은 아닌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그리스도의 제자도입니다.

 

구원에 대한 부르심과 제자도의 부르심은 분명 구분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아 자신의 제자가 되길 원하시지만, 제자도의 길은 모두에게 주어진 영광은 아닌 듯합니다. 구원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보편적 은총이지만, 제자도는 오직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 영광의 은총입니다. 마태오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마태 22:14

 

 

제자도는 철저히 하느님과 세상을 향해 되는 자들에게 주어진 영광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영광이며, 마지막 주님과 함께 나눌 찬란한 영광입니다. 영광을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사도 바울로는 세상에 대해 일주일 동안 눈이 멀었다가 시력을 다시 회복하면서 세상을 새롭게 있게 것입니다. 회심한 바울로는 하느님 앞에서 열심을 다하는 종교적 리더로서의 아니라, 하느님께 열심을 다하는갇힌 로서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평생을 안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갇힌 였고, 교회에 대해 철저히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도의 원형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갇힌 자들입니까? 

질문이 끊임없이 우리를 반성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도의 길을, 그리스도의 되는 길을 각자의 속에서 실현해 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한 결단을 하는 우리는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 우리의 약한 의지를 강건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세상을 향해,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23 (다해) 1

 

 

본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어 세상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지혜를 주시어 우리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예언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여 주어진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예레 18:1-11

1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2 너는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줄 말이 있다.” 3 말씀대로 옹기장이 집에 내려가 보았더니, 옹기장이는 마침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그런데 옹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다가 제대로 되면 흙으로 다른 그릇을 다시 빚는 것이었다. 5 마침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왔다. 6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 달렸듯이 너희 이스라엘 가문이 손에 달린 모르느냐?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옹기장이만큼 너희를 주무르지 못할 같으냐? 야훼가 하는 말이다. 7 나는 민족 나라를 뽑아 뒤엎어 없애버리기로 결심하였다가도 8 벌하려던 민족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내리려던 재앙을 거둔다. 9 그렇지만 민족 나라를 심고 세우기로 결심했다가도, 10 민족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나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기만 하면, 약속한 복을 집어 치운다. 11 그러니 너는 이제 야훼의 말이라 하고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내릴 재앙을 옹기장이처럼 마련하여 두었다. 너희를 벌할 계획을 이미 꾸며놓았다. 그러니 모두들 악한 길을 버리고 돌아오너라. 너희 행실과 소행을 뜯어고쳐라.’

 

 

 

성시_ 시편 139:1-6, 12-18

1,2 주여,
.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시니
.     내가 앉아도 아시고,
.     있어도 아십니다
.     멀리 있어도,
.     당신은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3    걸어 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4    내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     무슨 소리 할지, 주께서는 아십니다.
5    앞뒤를 막으시고 
.    
당신의 위에 있습니다.
6     지식은 놀라워 미치지 않고 
.      높으심 아득하여 엄두도 아니 납니다.
12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13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주시고  
.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주셨으니
14  내가 있다는 놀라움,
.     하신 일의 놀라움, 모든 신비들,
.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     당신은 몸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
.     깊은 땅속에서 내가 꾸며질  
.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하나도 없었습니다.
16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필레 1:1-21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갇혀 있는 바울로와 교우 디모테오가 친애하는 우리 동료 필레몬과 2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 여러분과 우리 자매 압피아와 우리 전우 아르킵보에게 편지를 씁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4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생각하면서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5 그대가 예수를 굳건히 믿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6 믿음을 통한 우리의 교제가 힘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우리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기를 나는 빕니다. 7 나는 친애하는 그대가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위안을 받았습니다.

8 바울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신이며 그분을 위해서 일하다가 지금 갇혀 있는 몸으로서 그대가 마땅히 해야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9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대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와 나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13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갇혀 있는 터이니 그를 내곁에 두어 그대를 대신해서 시중을 들게 하려고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14 그러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가 선을 행하는 것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15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16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으로 사랑하는 교우로서 그대와 같이 있게 것입니다. 그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교우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보든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견지에서 보든지 그대에게야 그가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되겠습니까?

17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주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책임을 나에게 지우시오. 19 바울로가 그것을 갚겠다.”고 이렇게 친필로 보증하는 바입니다. 그대가 지금만큼 것도 나의 덕인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그대에게서 값을 요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20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형제인 그대에게 신세를 지려고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믿는 교우로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오.

21 나는 그대가 나에게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글을 씁니다. 내가 말하는 이상의 일까지도 그대는 해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복음서_ 루가 14:25-33

25 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없다. 27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제자가 없다.

28 ¶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29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30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명으로 당해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 33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