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

James Chae 2022. 8. 21. 06:12

 

2022.8.21. 연중21주일

예레 1:4-10 / 시편 71:1-6 / 히브 12:18-29 / 루가 13:10-17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복음서 말씀은 루가복음에만 나오는루가의 특수자료입니다. ‘안식일 논쟁 루가복음 6장에서 한번 나오고, 여기에서 번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치유이적사화논쟁사화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를 보입니다. 보통치유이적사화 1) 상황묘사 2) 치유기적발현 3) 치유실증 4) 주변 사람들의 반응 순으로 서술되는데, 마지막주변 사람들의 반응 오늘 말씀에서는사람들의 경탄 아니라회당장의 반론으로 대체함으로써 자연스럽게논쟁사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은 병의 원인을귀신이나악령 탓으로 여겼는데, 이러한 관점이 오늘 루가의 기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등이 굽은 여인은병마에 사로잡혔다라고 기록되었으며, 예수님도 여인을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루가의 관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루가는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는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는 이라는 예수의 정체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아폴루오ἀπολύω  자유를 얻었다또는해방됐다 뜻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장애와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둘러싼 모든 편견과 육체적 고통으로부터해방되었음을 뜻합니다. “해방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오늘 회당장이안식일에는 안됩니다라고 말한 것은 율법을 결의론적으로 해석한 말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규정을 문자적으로 확대 해석한 결과이지요(출애 20:9-10, 신명 5:13). 그러나 주님께서는열여덟 동안사탄에게 사로잡혔던 여인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여인이 먼저 청하기도 전에 주님께서 그녀를 먼저 보셨습니다. 말이열여덟 이지 등이 굽은 채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일 겁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율법의 근간입니다. 인간을 위해 율법도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열여덟 동안사탄에게 사로잡혔으니그녀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루가는 여기에서 독특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주님께서 여인을아브라함의 ”(θυγατέρα Ἀβραὰμ)이라 불렀다고 기록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를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의역했지만, 원어는아브라함의 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약성서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옵니다. 아마도 루가의 표현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여인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루가의 관심이 반영된 말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천시받던 여인은아브라함의 계보속에 놓이게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됩니다.”

“~ 됩니다.”라는 말처럼 인간의 영혼을 근간에서부터뒤흔들어 놓는말이 있을까요? 

너무나 단호한 회당장의 외침에는 자비와 긍휼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말은 사람을 심령 깊은 곳까지흔들어 놓아듣는 사람의 영혼을 뒤틀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 됩니다라는 아집 가득 외침은 듣는 사람을 기죽게 만들고, 영혼을 위축하게 만들며, 발화자와 청자 간에 모종의 위계를 만들고, 관계에서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그것은 정의를 위한 외침도, 사랑의 충고도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를흔들어 놓아기죽이게 하고, 상대를 짓눌러 자신의 통제 하에 놓아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얄팍한 속셈에서 나온 외침입니다. 그러한 외침이 정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우리 일상의 비극입니다. 사람들에게 마구 그러한 말을 쏘아대다 보면 본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심령 깊은 곳까지 마치 지진이 일어난 존재의 지반이흔들림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 타인에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뱉을 있을까요? 그것은 선지자들의 외침도 아니기 때문에 정의의 이름을 빙자한선지자 흉내내기밖에 아닙니다. 정의에 대한 외침은 반드시 듣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정의를전유(專有, appropriation)’ 해야 하고, 정의는 사랑을전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말하는 하느님 말씀의진실(ἀλήθεια)’입니다. 말씀의 진실은 정의와 사랑을 날개로 삼아 균형 있게 날아오릅니다. 그래서 시편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시편 85:10

 

 

사랑과 정의의 외침은 결과적으로 다툼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오늘 회당장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자신의 생각에 옳은 대로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작동되는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생각이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결의론적 확신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말하는 자로 하여금 모종의 우월감과유사 전능감 갖게 만듭니다. 오늘 회당장은 율법이라는 이스라엘의 보편성에서 자기 말의 권위를 찾았지만, 권위를 허락한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됩니다.” 

그러나 실상 여인이 안식일을 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대로 허리를 외에는 아무것도 것이 없습니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안식일에도 사람이 앉았다 일어설 있고, 걷기도 하고, 허리를 굽혔다 펴기도 하는 기본적인 동작은 있는 법입니다. 그녀는 단지 열여덟 동안 굽어 있었던 자신의 허리를 예수님의 말에순종하여 것뿐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먼저 치료를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를 긍휼히 여겨 먼저 말을 것은 주님이십니다. 여인은안식일 규정 전혀 어긴 것이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안식일에는 됩니다.”라고 외친 것은 그녀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비난이었습니다. 그들은안식일 준수 규정으로 예수의 권위를뒤흔들어 권위에 흠집을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근간에는 그들의 교만과 질투가 자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것에흔들리시는분이 아니십니다. 결과적으로안식일은 됩니다라는 그들의 외침은 그들이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도리어 등이 굽은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여인은 육신의 등이 굽었지만, 그들은 영혼의 등이 굽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과 시기로 인해 눈이 멀어 자신들의 등이 굽은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똑바로 섰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의 눈에는 그들이 위선으로 등이 굽은 자들입니다. 등이 굽어서 그들은 하늘의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이웃을 사랑의 눈으로 제대로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등이 굽어 자신의 발아래 땅만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뿐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갇혀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는 됩니다라고 외치며 상대방을흔들어 놓기만합니다.

 

안식일에는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며 상대를 흔들어 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도 이러한 말씀을 드리면서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자에게 엄격할 때가 많은 저의 모습을회당장 모습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쉽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타자에게는 바늘구멍만큼의 빈틈도 허용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 말입니다. 부지런하고 자기 자신의 일에 빈틈이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경향이 강한 듯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있으니 남도 쉽게 있다고 속단하여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합니다. 어쩌면 남을 윽박지르면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밖으로 향하고 있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대상화될 우리는 그것들을 타자화 시켜버리기 십상입니다. 모든 것이 타자화되어 버리면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밖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목격하고는 실제로 두려움에 떨었다고 오늘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그는 아직 약속의 땅에 굳건히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느님은 아직초월적 타자일뿐입니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영광의 그림자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 있는 우리가 있는 곳이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순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광의 장소로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하늘의 도성입니다. 그곳은 우리 밖에 보이는 세상과 우리 내면이 결코 분리될 없는 공간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우리가 있는 공간의 전부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 앞에 나아오는 것을 훈련하고 경험합니다. 우리 예배의입당과 파송 이러한하느님의 도성을 향한 순례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에입당하고, 하느님을 예배하며 찬양을  드린 세상을 향해 다시파송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일 드리는 예배의 영적 기능입니다. 우리의 예배 시간은 장차 우리가 경험하게 하느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미리 가시적으로 오감을 사용하여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 자신을뒤흔드는하느님의 음성에 기울이게 됩니다. “ 라는 말은 마지막 때를 뜻하지만, 우리는 예배마다 그러한 흔들림을, 그러한 떨림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만약 우리 안에서흔들려 떨어져나가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흔들려서 떨어져나가는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들이니 그러한 것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피조물들을 흔들어서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히브 12:27

 

 

따라서흔들리지 않는 우리에게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담대하게 우리 자신을흔들림 없이지킬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 자신을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에게 무엇인지 각자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건과 경외敬畏’.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신 안에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렇게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경건 다른 사람들과 수평적 관계성을, ‘경외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성을 각각 상징합니다. 진정한경건 타인에 대한 사랑에 의해 추동됩니다. 진정한경건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자세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에 대한경외감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분과 우리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분을 경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양심은 종종 두려움에 휩싸일 개연성이 큽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의 영혼은 반석 위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하느님의 도성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뒤흔드는 외부의 모든 공격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이러한경건과 경외에서 비롯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마태 10:28, 루가 12:5). 외에 세상을 이길 것이 안에는 없는 같습니다. 지식, , 경력 세상에서 쌓은 것들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하더라도, 오늘 회당장의 비난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세상의 공격과 비난 속에서 저를 지키고 지탱해주는 것은하느님 앞에서 개인으로서의경건두려움뿐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이러한경건경외 부여잡으려 매일 노력합니다. 여러분도 각자 자신 안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진지하게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소중하게 붙들고 가꿔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흔들어 놓아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무엇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러한 것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붙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21 (다해) 1

 

본기도

심판의 하느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나이다. 비오니, 교회가 주님을 더욱 경외하며,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예레 1:4-10

4 내가 받은 야훼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5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    
나는 너를 만방에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6 “!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7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8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    
내가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9 그러시고 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10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성시_ 시편 71:1-6

1    주여, 당신께 피신합니다.

.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2    당신의 정의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주소서.

.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구해주소서.

3    의지할 바위 되시고 목숨 구원하는 성채 되소서.

.     나의 바위, 나의 성채는 당신이십니다.

4    나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주시고

.     흉악하고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하소서.

5    주여, 바라느니 당신뿐이요

.     어려서부터 믿느니, 주님 당신입니다.

6    모태에서부터 나는 당신께 의지하였고,

.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당신은 나의 힘이었으니

.     언제나 당신을 찬양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히브 12:18-29

18 여러분이 있는 곳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갔던 시나이 산은 아닙니다. 산은 손으로 만져볼 있고 불이 타오르고 검은 구름과 암흑에 싸인 폭풍이 일고 19 나팔 소리가 울리고 굉장한 음성이 들려오는 산이었습니다.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이상 말씀하지 마시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20 비록 짐승이라도 산에 닿기만 하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출애 19:12-13하신 하느님의 명령이 견딜 없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21 사실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까지도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떨린다. 신명 9:19하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25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이를 거역한 자들도 형벌을 면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분을 우리가 뿌리친다면 형벌을 어떻게 면할 있겠습니까? 26 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나는 한번 음성으로 세상을 뒤흔들겠다. 이번에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뒤흔들겠다. 하깨 2:6하고 다짐하셨습니다. 27 라는 말은 피조물들을 흔들어서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28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차지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그리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29 사실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신명 31:6).

 

 

 

복음서_ 루가 13:10-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11 마침 거기에 열여덟 동안이나 병마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12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 여인아,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하시고 13 여자에게 손을 얹어주셨다. 그러자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모였던 사람들에게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됩니다.하고 말하였다. 15 주께서 말을 들으시고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16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다. 17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나 군중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