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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얼굴: 공간의 위계(位階)”- 청주산남교회 전례공간 워크샵 설교

James Chae 2022. 8. 28. 06:11

 

2022.8.22. 연중22주일 _히포의 어거스틴(주교, 430) / 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전례공간 워크샵

예레 2:4-13 / 시편 81:1, 10-16 / 히브 13:1-8, 15-16 / 루가 14:1, 7-14

 

공간의 얼굴: 공간의 위계(位階)”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제주교회 사제관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옆집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방문을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가끔 신발장 위나 성당 안내 테이블 위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바람에 종종 소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좁은 그곳에 어떻게 올라가 앉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럴 때는 아마도 경쟁자가 나타났거나 경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그런 같습니다. 자신에게 안전한 , 자신에게 유리한 곳을 선점하고 싶은 심리에서 그런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셀 푸코도 타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유리한 공간과 자리는 모종의 권력과 관계한다고 했으니 인간과 고양이는 포유류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공간 자체에는 어떤 위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간 속에 인간이 만든 자리와 장소에는 위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위계가 있듯이 사람들이 공간 속에 점유하는 자리도, 장소도 위계가 있습니다. 비싼 부동산과 그렇지 않은 땅이 있고, 윗자리와 아랫자리가 있습니다. 공간 자체에는 어떠한 위계도 없고,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 라는 논란도 있지만, 우리는 공간, 장소, 자리 등을 보통공간이란 말로 폭넓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종종 잊고 지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설교에서 이러한 공간에 대한 세부적인 분류보다 에둘러공간이란 말을 사용할 것입니다. 제가 사용하는공간이란 중에 위계와 관련되는 말은 그것이장소자리 말하는 것임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심방을 하거나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저를 환대하는 교우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많은 것을 그들에 대해 제게 말해줍니다. 주거 공간에도 위계가 있고, 또한얼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얼굴을 보듯이, 공간에 들어갈 가장 처음 눈에 띄는 공간이 바로 집의얼굴이고,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됩니다. 공간에 비해 창고 같은 곳은 공간의 위계상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외됩니다.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한 곳에 놓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중요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자신을 무언 중에 드러내고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거실 공간의 얼굴에 무엇이 있는지가 바로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해줄 때가 많습니다.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에서도 공간의 얼굴이 되는 벽면에 제일 대표가 되는 작품을 설치합니다. 회사 빌딩의 로비는 기업이 어떤 기업이고 기업의 오너가 어떤 사람인지를 무언중에 드러냅니다. 우리 성공회 성당 공간에서는 물론 제단 공간이 가장 중요한 공간의 얼굴입니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거실의 얼굴에 커다란  TV 음향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편에는 아마 소파가 놓였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커다란 책장을 거실 공간의 얼굴에 설치하시는 분들도 종종 봅니다. 아무튼 거실의 얼굴에 무엇이 놓여 있든 공간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진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에서도식사 자리에서의 공간의 위계 문제를 주님께서 다루고 계십니다. 보통 의전서열에 따라 어떤 행사의 자리가 배치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행사가 치러지는 공간에서 공간의 얼굴이 되는 자리에 가장 중요한 사람의 자리를 배치합니다. 그리고 서열이 낮은 사람은 공간의 얼굴에서 멀어진 곳에 앉게 됩니다. 오늘 유대인들의 식사 자리도 그러한 위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위계는 정확하게 인간의 위계와 등가적입니다. 

높은 사람은 윗자리에, 낮은 사람은 아랫 자리에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통상적인 사회적 위계와 공간의 위계를 전복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가서 앉지 마라.” 루가 14:8

 

 

주님께서도 공간의 위계가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낮은 자리를 스스로 선택해서 가서 앉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서로가윗자리라는공간의 얼굴 앉으려 하면 당연히 다툼과 신경전이 있을 것이고, 혹시나 자신의 서열보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높은 서열의 사람이 나타나면무안하게도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오히려스스로 먼저 자신의 서열보다 낮은 자리를 택해 앉으라고 충고하십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는 것도 격에 맞지 않으니 혹시 식전장이 그것을 발견하고 그를 자신에게 맞는 서열의 자리로 옮기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럴 사람이 사람들 앞에영예롭게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권위는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간에 대해 정의한 위르겐 몰트만의 말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창조된 세계는 신적인 존재의 ‘절대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결의를 통하여 그를 위해 ‘비워진 하느님의 공간’ 속에 존재한다. 세계는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지 않고 하느님의 세계-현존의 ‘비워진 공간’ 속에 존재한다. ” -위르겐 몰트만

 

 

사실 몰트만이 제시하는 공간에 대한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는하느님께서 편재하시는 공간의 비워진 신적 공간입니다. 공간에서는 오직 하느님 만이 공간의 중심이시고, 모든 위치와 장소의 기준이 되시며, 그분께서 공간을 비워주시는 만큼 우리의 세계가 그분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은 뉴튼이 생각한절대공간 유사하면서도 조금은 다릅니다. 뉴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임의의 시간에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있다면 이로부터 그 물체의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이건어떠한 경우에도 운동을 판단할 만한 기준계 frame of reference” 공간 안에 있다는 뉴튼의 확신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세계의기준계 하느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시간과 공간의절대 기준 되시지만, 공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의해 오히려상대적으로우리에게 설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뉴튼이나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절대적인 하느님 안에서 상대적 신적 시간과 상대적 신적 공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이 물리적 공간이기 앞서 영적인 것과 관련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철저히 하느님과 개인의 관계성 속에서,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의 관계성 속에서 결정됩니다. 우리의 공간은 성스러움과 하느님의 현존에 의해 시시각각 다르게 우리와 관계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간이 다른 공간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있고, 우리는 그렇게 교회 공간에 세속적인 것과 다른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편재하신절대 신적 공간속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공간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성육신 하신 주님께서 세상에서 공유하신 시간과 공간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공간보다는자리와 장소 연연합니다. 공간 속에장소와 자리 위치하는 순간 그것은 소유와 위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공평한 공간을 서로 나누기 보다, 자신에게 나은 장소와 자리를 공간 속에 만들기 위해 그토록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죽이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장소와 자리는 우리의 생활공간이고, 생존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공간에 비해 인간의 문명이 점유한 장소와 자리는 무척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공간을 정복하여 자신들의 자리와 장소를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미지의 공간을 개척하려 합니다. 이제 제한된 지구라는 공간을 넘어 인간은 끊임없이 우주라는 공간에 자신들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유리한 자리와 장소의 선점은 인간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위계는 이렇게자리와 장소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인간이 통상적으로 규정한자리 대한 위계를 뒤집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에 따라무안하게도주제넘은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오히려자발적으로 겸손한 자리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나은, 좋은장소와 자리 차지하고자 하는 타툼에서 해방되는 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루가 14:11

 

 

우리는 스스로 윗자리와 아랫자리를 각각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부여되는 권위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장소와 자리의 위계도 사회가 규정한 대로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위계는 권력이지만, 또한 사회적 합의와 약속이기도 것입니다. 그러한 위계보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자신을 먼저 낮추신케노시스처럼 우리도 스스를비워’, 자신을낮추는 사람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산남교회가 이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전례 공간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런 말씀을 나누게 것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장소와 자리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관계하는 성스러운 공간을 다루는 문제는 일반적인 생활공간을 설계하는 것과 달라 조금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서로 개인의 취향이나 기준들을 주장하면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가 생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편재하신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공간에 성스러운 예배 장소를 만들 있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전승된 교회 공간의 지혜들을 돌아봐야 하고, 공간에 대한 전문적인 신학적, 미학적 경험들을 살펴야 하며, 공간에서 거하게 교회 공동체의 선교적 비전과 공동체의 취향 그리고 개인들의 의견들을 나눠야 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장소와 자리를 만드는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소와 자리를 만드는 일에는 인간적인위계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간을 성스러운 장소로 꾸미는 어떤 절대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전문적인 전례 공간에 대한 지식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역사와 전통 속에서 검증된 공간에 자리를 만드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공간이더라도 장소와 자리에서 생활하고 거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이 오롯이 녹아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체의 공간, 예배를 위한 장소를 조성하는 일에는 먼저 높은 자리를 양보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자신의 취향과 의견을 겸손히 내려놓는 자기 비움이 요구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의견도 존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례를 위한 장소를 구성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정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놓인 상황과 공동체의 미적 취향, 그리고 공동체의 선교적 비전과 공동체의 생활 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의에 의해 결정하면 됩니다. 각자의 공간에 대한 생각을 양보하다 보면 가장 좋은장소 대한 개념이 하나씩 생겨날 것입니다. 공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장소와 자리는 우리가 창조합니다. 모쪼록 산남교회에 가장 어울리는아름답고 성스러운 전례를 위한 공간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연중22 (다해) 1

 

본기도

하느님, 주님은 죄인까지도 사랑으로 부르시어 계약을 맺으시나이다. 비오니, 땅의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믿음의 가족이 되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예레 2:4-13

4 야곱 가문, 이스라엘 가문 갈래는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가 말한다.
.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     너희 조상은 나를 멀리하였더냐?
.     너희 조상은 허수아비를 따르다가
.     허수아비가 되지 않았더냐?
6   이집트에서 우리를 데려내오신 야훼,
.     메마른 모래땅, 가물어 풀도 나지 않는 ,
.     사람의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는 ,
.     사막에서 이끌어주시던 야훼께서 어디 가셨을까?’ 하며
.     나를 찾는 자도 없었다.
7    나는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이끌어들여
.     좋은 과일을 먹게 했는데
.     너희는 들어와서 나의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     땅은 나의 것인데 너희가 더럽게 만들었다.
8    사제라는 것들은야훼께서 어디에 계시냐?’ 찾지도 않았다.
.     전문가라는 것들은 나의 뜻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     백성의 목자라는 것들은 나를 거역하기만 하였다.
.     예언자라는 것들은 바알의 말이나 전하며
.     아무 데에도 쓸모없는 것들만 따라다녔다.
9    그러므로 나는 다시 너희와 따지리라.
.     이는 말이니, 어김이 없다.
.     너희 후손과도 따질 것이다.
10  지중해의 섬나라들에 건너가 보아라.
.     케달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아라.
.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있는가를.
11  어떤 민족이 섬겨오던 신을 바꾸어
.     신도 아닌 것을 섬기는 일이 있더냐?
.     그런데 백성은 영광스럽게 모실 나를 버리고
.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을 잡았다.
12  하늘도 놀랄 일이다.
.     기가 막혀 몸서리칠 일이다.
.     이는 말이니, 들어라.
13  나의 백성은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

 

 

 

성시_ 시편 81:1, 10-16

1    우리의 힘이신 하느님께 즐거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     야곱의 하느님께 환성을 올리어라.
10너희 하느님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야훼 하느님이다.
.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11그러나 백성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고
.     이스라엘은 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였다.
12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마음을 굳은 대로 버려 두어
.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였다.“
13 백성들아, 제발 말을 들어다오.
.     이스라엘아, 나의 뜻을 따라 걸어다오.
14  그리하면 당장 너희 원수들을 쳐부수리라.
.     당장 너희 압제자들에게 손을 대리라.
15  주님의 원수들이 너희 앞에서 아첨하게 것이니
.     그들의 운명은 돌이킬 없으리라.
16  그러나 백성은 기름진 밀가루로 먹이고
.     바위에서 따낸 꿀로 배불리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히브 13:1-8, 15-16

1 형제들을 꾸준히 사랑하십시오. 2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3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도 같은 학대를 받고 있는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4 누구든지 결혼을 존중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5 돈을 위해서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주님께서는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겠고 버리지도 않겠다. 신명 31: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    
주께서 편을 들어 도와주시니
.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    
누가 감히 나에게 손을 대랴!”
.    
시편 118:6
7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16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복음서_ 루가 14:1, 7-14

1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지도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7 그리고 예수께서는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 하나를 들어 말씀하셨다. 

 

8 누가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 가서 앉지 마라. 혹시 너보다 높은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사람을 초대한 주인이 와서 너에게이분에게 자리 내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무안하게도 끝자리로 내려 앉아야 것이다. 10 너는 초대를 받거든 오히려 끝자리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여보게, 윗자리로 올라 앉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든 손님들의 눈에 너는 영예롭게 보일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준 것을 도로 받게 것이다. 13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14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