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7.가해_성 금요일(주님의 수난일)
이사 52:13-53:12 / 시편 22 / 히브 10:16-25 또는 4:14-16, 5:7-10 / 수난복음: 요한 18:1-19:42
“절망의 끝에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죽음의 위협을 받는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죽음의 문턱까지, 절망의 나락까지 가 본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어떤지를 잘 알 겁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그런 절망 가운데 부르짖습니다.
나의 하느님, 온종일 불러 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시편 22:2
이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부르짖음입니다. 최소한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왜’라는 질문,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며 하소연할 데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이러한 죽음의 위협에 처한다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그 순간 아마도 처절한 외로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인간은 홀로 죽는다”는 파스칼의 말을 떠오르지 않더라도 결국 죽음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없는 고독한 길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상황은 가장 외롭고 두렵습니다. 삶을 리셋하듯이 죽음이 모든 고통의 끝이라는 보장도 사실 없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는 죽음이 이 세상의 삶과 연관성을 가진다고 은연중에 우리에게 암시를 주지만, 정말 그럴까요? 죽음 이후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死者의 書)’라는 책은 사후 세계로의 여행의 안내서이지만, 비록 그들이 그것을 경험의 산물이라 주장할지라도, 사실 어느 누구도 사후에 대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장담을 한들 아무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반박하기 힘듭니다.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한 우리의 무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철저히 혼자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 앞에 선 개인’으로 홀로 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렵고 떨립니다. 둘 다 외롭고, 둘 다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시편 22:6
이러한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그분이 느끼신 느낌 그대로일 겁니다. 인간이 자신을 “벌레”로 느끼는 순간은 인간의 존엄성이 완전히 무너질 때입니다. 쿠바에 있는 미군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테러범에게 썼던 고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심리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사실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신을 벌레로 느끼게 만드는 고문. 그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이 무너지면서 고문받는 사람은 영혼이 붕괴되어 더 이상 버틸 힘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로들은 이런 고문을 당하면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고 삶의 모든 의욕을 잃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그러한 상태에 놓인듯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의 고통을 가름해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고난이 얼마나 심했던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존재가 벌레같이 느껴질 정도로 처참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 고통은 성육신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느끼셨을 바로 그 고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22편을 주님의 수난일에 매년 읽는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성육신하신,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신 그분의 마음과 심정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 줍니다. 그래서 시편 22편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노래라는 ‘탄원시’를 대표합니다. 억울함을 느낄 순간도 없이 고통은 죽음으로 한 존재를 몰아갑니다. 그 순간 인간은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지며 자신의 존엄성조차 잃어버리고 마치 벌레처럼 자기 비하에 빠집니다. 죽음의 권세는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과연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일까요?
오늘 시편의 절절한 기도가 이 시간 우리의 기도가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만큼은 고독한 길 위에 서 계신 주님 곁에 우리도 함께 섰으면 좋겠습니다. 침묵으로, 두려움으로, 떨림으로… 우리도 그분의 길 위에 선다는 상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잠시 접어두고, 철저히 십자가의 고통과 절망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오~오 때로 그 일이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성공회 성가 182장 중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 현장에 마치 우리가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 밤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배반하고 그분을 아프게 해 드렸는지 깨닫는 밤이 되길 원합니다.
지난 성지주일에 우리는 성지가지를 흔들며 그분을 그리스도로, 왕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중 가운데 섰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 때문에 느껴야 할 공포와 떨림을 그분이 대신 십자가 위에서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이 밤만큼은 피할 수 없는 공포를 우리 또한 마주해야만 합니다. 복과 은총, 은혜, 위로, 격려의 말이 아니라, 아픔, 슬픔, 두려움, 절망, 배신 등으로 우리의 가슴을 찢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주님의 치부는 그분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를 그분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매일 우리는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함으로써 그분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여전히 침묵으로 골고타 언덕에 서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그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깊은 침묵과 고요 가운데 놓이기를 바랍니다. 일 년의 절기 중에 유일하게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를 이 성 금요일에 경험합니다. 하소연할 데 조차 없이 내몰린 상황에 우리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통해 고통을 이기는 길을 그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절망해 본 자만이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고통을 감내하셨다는 사실이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고백이 되길 빕니다. 어둠. 짙은 어둠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 가운데 더욱 부활의 주님을 역설적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우리의 고통이 끝나는 새벽빛을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절망 가운데 가지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성 금요일 / 주님의 수난일 1
본기도
의로우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사람들의 배반으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나이다. 비오니, 크신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받아주시어 십자가의 수난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52:13-53:12
13“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 높이높이 솟아오르리라.
14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15 이제 만방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가리리라.
. 이런 일은 일찍이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 귀로 들어본 사람도 없다.”
53:1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 누가 곧이들으랴?
.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2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4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5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
6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 그에게 지우셨구나.
7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었고
.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 마음 흐뭇해 하리라.
12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
. 이는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었기 때문이다.
.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여
.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성시_시편 22
1 하느님, 나의 하느님,
.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
. 살려 달라 울부짖건만
. 들리지도 않습니까?
2 나의 하느님,
. 온종일 불러 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
.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3 그러나, 당신은 옥좌에 않으신 거룩하신 분, ◯
. 이스라엘이 찬양하는 분이십니다.
4 우리 선조들은 당신을 믿었고 ◯
. 믿었기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5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
.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6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
.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7 사람마다 나를 보고 삐쭉거리고 ◯
.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8 “주님을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
.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 주시겠지.”
9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나게 하시고, ◯
.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주신 분,
10 날 때부터 이 몸은 당신께 맡겨진 몸, ◯
. 당신은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
. 어려움이 닥쳤는데, 도와 줄 자 없습니다.
12 황소들이 떼 지어 에워쌌으며 ◯
. 바산의 들소들이 에워쌌습니다.
13 으르렁대며 찢어발기는 사자들처럼 ◯
.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
14 물이 잦아들듯 맥이 빠지고
. 뼈 마디마디 어그러지고, ◯
. 가슴 속 심장도 촛농처럼 녹았습니다.
15 깨진 옹기조각처럼 목이 타오르고 ◯
.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16 개들이 떼 지어 나를 둘러싸고 ◯
. 악당들이 무리지어 나를 에워쌉니다.
17 손과 발이 마구 찔려 죽음의 먼지 속에 버려진 이 몸은 ◯
. 뼈 마디마디 드러나 셀 수 있는데
18 원수들은 이 몸을 내려다보며,
. 겉옷은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
.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19 주여, 모르는 체 마소서, ◯
.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주소서.
20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
.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 입에서 빼내 주소서.
21 가련한 이 몸 사자 입에서 살려 주시고, ◯
. 들소 뿔에 받히지 않게 보호하소서.
22 당신의 이름을 겨레에게 알리고 ◯
. 예배 모임 한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리니,
23“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찬미하여라. ◯
. 야곱의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돌려라.
¶ 이스라엘 후손들아, ◯
. 주 앞에 모두 다 머리를 조아려라.
24 내가 괴로워 울부짖을 때
. 귀찮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
. 탄원하는 소리 들어 주셨다.“
25 큰 회중 가운데 주님을 찬송함도,
. 주께서 허락하심이니, ◯
. 주님을 경외하는 무리 앞에서 나의 서원 지키리라.
26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 주님을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
. 그들의 마음 길이 번영하리라.
27 온 세상이 주님을 생각하여 돌아오고 ◯
.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
. 모든 왕권이 있으리라.
29 땅 속의 잠든 이들도 주 앞에 엎드리고 ◯
. 먼지 속에 내려 간 자들도
. 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30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 오고 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
.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31 주께서 건져주신 이 모든 일들을 ◯
. 오고 오는 세대에 길이 전해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10:16-25
16“‘그 날 이후,
. 내가 그들과 맺을 계약은 이것이다.
.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 그들의 생각에 새겨줄 것이다.’
.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예레 31:33
17 그리고 나서 “나는 이제 결코 그들의 죄와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예레 31:34” 하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18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이제는 죄 때문에 봉헌물을 바칠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사제가 계십니다. 22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23 또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분은 진실한 분이시니 우리가 고백하는 그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24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25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수난복음_요한 18:1-19:42
1 이 기도를 마치신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동산에 들어가셨다. 2 예수와 제자들이 가끔 거기에 모이곤 했었기 때문에 예수를 잡아줄 유다도 그 곳을 잘 알고 있었다. 3 그래서 유다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낸 경비병들과 함께 한 떼의 군인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무장을 갖추고 등불과 횃불을 들고 있었다. 4 예수께서는 신상에 닥쳐올 일을 모두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5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하자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잡아 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께서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께서 다시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하고 대답하였다. 8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두어라.”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9 예수께서는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10 이 때에 시몬 베드로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11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그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고난의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12 그 때에 군인들과 그 사령관과 유다인의 경비병들이 예수를 붙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사제 가야파의 장인이었다. 14 가야파는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한 사람이 온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 하는 의견을 냈던 자이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잘 아는 사이여서 예수를 따라 대사제의 집 안뜰까지 들어갔으나 16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대사제를 잘 아는 그 제자는 다시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 젊은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를 보더니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가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는 “아니오.” 하고 부인하였다. 18 날이 추워서 하인들과 경비병들은 숯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틈에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9 대사제 안나스는 예수를 심문하며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버젓이 말해 왔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내가 숨어서 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한 말은 그들이 잘 알고 있다.” 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곁에 서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며 예수의 뺨을 때렸다. 23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24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채 대사제 가야파에게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여전히 거기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가 아니오?” 하고 물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26 그 때 대사제의 종으로서 베드로한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 되는 사람이 나서면서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하고 몰아세웠다. 27 베드로가 또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28 사람들이 예수를 가야파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그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그들은 부정을 타서 과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까봐 총독 관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9 결국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너희는 이 사람을 무슨 죄로 고발하느냐?” 하고 물었다. 30 그들은 빌라도에게 “이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여기까지 끌고 왔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31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가 데리고 가서 너희의 법대로 처리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2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실 것인가를 암시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38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유다인들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 39 과월절이 되면 나는 너희의 관례에 따라 죄인 하나를 놓아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 유다인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물었다. 40 그러자 그들은 악을 쓰며 “그자는 안 됩니다. 바라빠를 놓아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바라빠는 강도였다.
19:1 빌라도는 안으로 들어가서 부하들을 시켜 예수를 데려다가 매질하게 하였다. 2 병사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홍색 용포를 입혔다. 3 그리고 예수 앞에 다가서서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면서 그의 뺨을 때렸다. 4 빌라도는 다시 밖으로 나와서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를 너희 앞에 끌어내 오겠다. 내가 그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너희도 이제 보면 알 것이다.” 5 예수께서는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자홍색 용포를 걸치시고 밖으로 나오셨다.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자,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 6 대사제들과 경비병들은 예수를 보자마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데려다가 너희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7 유다인들은 또다시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대로 하면 그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하고 대꾸하였다. 8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어 9 예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온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냐?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을 모르느냐?” 빌라도의 이 말에 11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가 더 크다.”12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줄 기회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만일 그자를 놓아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카이사르의 적이 아닙니까?”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13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 리토스트로토스라 하는 자리에 올라가 자기 재판관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하는데 ‘돌 깔아놓은 자리’라는 뜻이다. 14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을 둘러보며 “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 하고 말하였다. 15 그들은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가 “너희의 왕을 나더러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냐?” 하고 말하자 대사제들은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밖에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17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다.18 여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아 예수를 가운데로 하여 그 양쪽에 하나씩 세워놓았다. 19 빌라도가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 라고 씌어 있었다. 20 그 명패는 히브리 말과 라틴 말과 그리스 말로 적혀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예루살렘에서 가깝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들이 와서 그것을 읽어보았다. 21 유다인들의 대사제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유다인의 왕’ 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다인의 왕’이라고 써붙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으나 22 빌라도는 “한번 썼으면 그만이다.” 하고 거절하였다.23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단 병사들은 예수의 옷가지를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러나 속옷은 위에서 아래까지 혼솔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24 그들은 의논 끝에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든 제비를 뽑아 차지하기로 하자.” 하여 그대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어가지며 내 속옷을 놓고는 제비를 뽑았다. 시편 22:18” 하신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25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26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27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28 예수께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목마르다. 시편 22:15”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성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29 마침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시편 69:21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포도주를 해면에 담뿍 적셔서 히솝 풀대에 꿰어가지고 예수의 입에 대어드렸다.30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31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다. 다음날 대축제일은 마침 안식일과 겹치게 되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시체의 다리를 꺾어 치워달라고 청하였다. 32 그래서 병사들이 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차례로 꺾고 33 예수에게 가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34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35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며,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이렇게 증언하는 것이다. 36 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출애 12:46(민수 9:12; 시편 34:20 참조)” 한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37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즈가 12:10”라는 기록도 있다.38 그 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39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40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42 그 날은 유다인들이 명절을 준비하는 날인데다가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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