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6.가해_부활2주일
사도 2:14상, 22-32 / 시편 16 / 1베드 1:3-9 / 요한 20:19-31
“부활 그리고 믿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πίστις,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0:30-31
요한복음 기자는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한 핵심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 믿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또 그가 우리에게 생명 주심을 믿는 것. 믿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아직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히브 11:1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증해주고 볼 수 없는 생명을 우리에게 확증해 줍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있지도 않은 사실을 사실로 인지하는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와 다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고, 생명은 그냥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하면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분명히 우리 안의 것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과 관계합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한 신뢰입니다. 믿음은 느낌이나 신념과도 다릅니다. 그것은 고통이나 자기 비움의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함께 설명한 이유는 세 가지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믿음 없는 소망은 무의미합니다. 소망 없는 믿음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세 가지는 정확하게 하느님과 우리 간의 관계성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없이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이러한 믿음은 모두 하느님과 일차적으로 관련되고, 또 율법과도 관련됩니다. 신약에서 이 ‘믿음, πίστις 피스티스’는 ‘신뢰’, ‘믿음’, ‘순종’, ‘성실함’ 등과 관련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나 사도 바울로 모두 이 믿음을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즉,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이성적, 의지적 동의를 넘어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성자 하느님께서 성부께 보인 믿음은 바로 순종 그 자체였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었고 자신을 비워(케노시스)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어떠한 조건이나 강제성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었습니다. 믿음은 철저히 ‘자발성’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강제도 믿음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순종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기쁨’이 없고, 다툼이나 불만이 생긴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자발적인 순종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순종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기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셨던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고별사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이것이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활’에 대한 소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 후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믿음에는 ‘기쁨’이 있고, 또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겸손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간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겸손과 순종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기도는 순종의 시작이고, 우리의 겸손을 드러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합리화’도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자신의 것을 비워 하느님의 것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나약하고 비굴한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기뻐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할 수 없으면 희망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바로 ‘믿음’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 믿음은 그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로의 말은 믿음이 철저히 성령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늘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에 성령의 권능이 더해지면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자발성과 만나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성령의 역사보다 약간 앞섭니다. 자유 의지의 발현 없이 성령께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곳 예배에 오신 분들은 자신의 의지를 이미 발현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의 물질적 축복과 현세적 복락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파라클레토스’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영’을 충만하게 주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은 부활의 그날까지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온전한 관계성이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근심하고 괴로우나 예수의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여러분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1 베드 1:6
베드로의 첫째 편지 1장 6절 말씀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황금도 담금질을 통해 순도를 높여가듯이 금보다 귀한 여러분도 믿음의 단련을 통해 더욱 순결한 믿음으로 거듭나고 있으므로 기뻐하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련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이겨내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련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내하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련의 실존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순결하게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기뻐했던 제자들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부활절기가 여러분에게 기쁨으로 가득 찬 믿음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만큼 우리의 기쁨 또한 더욱 커질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부활2주 (가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이를 복되다고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의심을 버리고 믿음과 사랑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2:14상, 22-32
14 그 때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23 그런데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25 그분에 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 내 혀는 즐거워 노래하며
.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27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28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 시편 16:8-11
29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선조이신 다윗에 관해서 분명히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땅에 남아 있습니다. 30 다윗은 예언자로서 하느님께서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주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알고 있었습니다(시편 132:11(시편 89:3-4; 2사무 7:12-13 참조)). 31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내다보며,
.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 그의 몸을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 시편 16:10(사도 2:25-28 참조)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성시_시편 16
1 하느님, 나를 지켜주소서. ◯
. 이 몸은 당신께로 피합니다.
2 주님께 아뢰옵니다. ◯
.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
3 이 땅에 있는 거룩하다는 신들 ◯
.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4 거짓 신을 따르는 자들은 ◯
. 실컷 고생이나 시키소서.
¶ 나는 그 우상들에게 피를 쏟아 받치거나, ◯
.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5 주여! 당신은 내가 받을 분깃이며 축복이시니 ◯
. 나의 미래는 당신이 책임지십니다.
6 당신께서 나에게 떼어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이니 ◯
. 나의 마음이 흡족합니다.
7 좋은 생각 주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
. 밤에도 좋은 생각 반짝입니다.
8 주여, 언제나 내 앞에 모시오니 ◯
. 내 옆에 당신 계시면 흔들릴 것 없습니다.
9 그러므로 이 마음 이 넋이 기쁘고 즐거워 ◯
. 내 육신마저 걱정없이 사오리다.
10 어찌 이 목숨을 지하에 버려두시며 ◯
. 당신만 사모하는 이 몸 썩게 버려두시리이까?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몸소 가리켜 주시니
. 당신을 모시는 흡족한 기꺼움이, ◯
.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베드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4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분깃을 하늘에 마련해 두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힘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여주십니다. 6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7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넘쳐 있습니다. 9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_요한 20:19-31
19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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