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성령의 사유화, 은총의 사유화”

James Chae 2023. 5. 13. 22:26

2023. 5. 14. 가해_부활6주일

사도 17:22-31 / 시편 66:8-20 / 1베드 3:13-22 / 요한 14:15-21

 

성령의 사유화, 은총의 사유화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요즘 핫한 인공지능 챗봇 Chet GPT에게 성령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겸손하면서도 일반적인 답변을 해오더군요. 

 

“AI 언어 모델로서 종교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견이 없지만, 일반적인 반응으로 성령은 신자의 마음과 생각에 들어가 그들을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신성한 존재(Divine Entity)라고 믿어집니다. 이것이 달성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며 개인의 신념과 종교적 전통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가지 더해서 토론도 가능했습니다. 질문을 달리해서 물어보면 다른 관점으로 대답도 해주더군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AI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보 검색의 시대에서 AI 지적인 토론도 가능한 시대가 것이 저로서는 너무 놀랐습니다.

 

아무튼 AI 인지한 대로 보이지 않는성령 종교적 실존 안에서만 이해될 있는 영역인 것은 분명합니다. 심리학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성령 단순히자기 암시또는 반복된 세뇌에 의한자기 최면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신앙의 실존안에서 이는 다르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치부하는 한계와 위험에 대해 사람들은 인식을 전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에 대해 말할 때는무의식자기 암시그리고실재 날카로운 경계 위에 서야 하는 것만은 분명한 같습니다. 잘못하면 발을 베일수도 있고 한쪽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도 성령운동 탈도 많고 오해도 많았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는 성령을,  AI 말한 대로, 그것을 어떤영적인 실재 설명할 생기는 문제입니다. 성령에 대한 오해 하나는 어떤 신령한 실재가 인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식입니다. 이에 의하면 성령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물질처럼 우리 안에 들락날락한다는 의미로 오해될 여지가 있습니다. 마치 영화적 기법에서 연기처럼 혼이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성서가 말하는 성령의 실존일까요? 

 

오늘 요한복음은성령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 하여 마치인격체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인간에게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가셔야만파라클레토스 예수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온다고 말합니다. ‘파라클레토스 예수의 실존을 대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은 다음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그가 하느님에 대해 많이 계시하실 이고, 하나는 인간을 진리로 인도하실 입니다. 가지의 역사가 성령을 통해 드러나는데 여기에 인간의 내적 각성과 신비체험 등이 수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지의 역사 이외의 것은 성령의 역사에서 배제됩니다. 예언의 은사, 병고침의 은사, 그리고 모든 은사들이 가지 성령의 역사를 드러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요한복음은 완전한 삼위일체론이 형성되기 이전의 문서로서 파라클레토스를 철저히로고스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로고스처럼 성령 또한계시의 진리를 현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성령을 로고스의 선재와 세상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함으로써 창세기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이러한 성령께서 하느님의 계시를지금 여기인간 실존 안에 드러낼 결국 인간 구원의 역사는 현재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약속은 미래에 있지 않고 성령에 의해 우리의 현재에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요한복음 16 7절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16:7

 

 

아마도 이는 요한이 성령강림사건을 전제로 기록한 것일 겁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은 하느님의 생명과 영광이 예수와 성령에게 똑같이 투영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둘이 함께 있으면 인간과의상호 거주 불가능합니다. 분은 가시고 대신 다른 분이 오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상호 거주하느님의 편재(遍在, omnipresence)”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우리는 성령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있습니다. AI 생각한 대로 인간 안에 들락날락하는거룩한 실재 이해한다면성령 매우 개인적이고 물질적이며 사유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아이온 Aion’처럼 신적 실재로부터 유출된 물질로 이해될 성령이 물질화, 개인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장소와 시간에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모르듯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어느 것에도 귀속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요한 3:8) 그분은 피조물 속에 계시지만 피조물 속에 구속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령 체험이 개인에 의해사유화되고, ‘개인화 생기는 위험은 끔찍합니다. 많은 이단들과 사이비 종교가 유사 성령 행위를 통해 이득을 얻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이러한 이유입니다. 성령은 어느 누구에게도 사유화될 없습니다. 성령은 모든 피조물 속에, 모든 세계 속에, 그리고 모든 사람 속에편재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면 속에서 하느님을 깨달을 있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이성도 하느님을 인지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로마 1:20

 

 

그래서 우리는 많은 철학과 지식, 종교들 속에서도 성령의 지혜를 깨달을 있는 보편의 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 성공회는 종교와종교 간의 대화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보편 계시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으로 주어졌습니다. 반면에특별 계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에게 내려지는특별 은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은모두 위함이지, 개인만을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은총과 신앙적 체험을 사유화하는 순간 우리는 은사주의나 영지주의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체험을 사람들이 마치 하느님이 자기 만을 특별히 사랑하고 자기를 특별한 목적에 위해 세웠다는 망상을 쉽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특별 은총 잘못 오해하면성령의 사유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소위 성령 충만하다는 사람들이 남에 대한 배려 없이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때론 자신이 받은 계시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내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자신의 신앙 색깔을 성령으로 가장해서 성령의 사랑의 역사를 스스로 거부하는 모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특별 계시’, ‘특별 은총 모두 사랑에 기반하여 공동체를 세우고 섬기기 위한 은총입니다. 성령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의 영입니다. 그래서 희생이나 섬김 없이 성령의 계시를 주장하는 사람은 영지주의자요, 은총을사유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일반 계시 은총이 모든 피조물에게 편재해 있다면, 하느님의특별 은총, ‘특별 계시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모두 그리고 함께구원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다툼과 분열이 있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도 없습니다. 상호 인정, 상호 섬김, 상호 배려가 없으면 성령의 역사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로마 8:23

 

 

이와 같이 우리도, 피조물도 모두 함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신음은 실존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간절한 절규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고, 우리를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수필집에서 읽은 내용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의 죽음을 경험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4 동안 웃음을 잃었는데, 어느 마침내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게 어느 정신과 의사는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천사가 되어 항상 자기 곁에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자기 최면자기 암시 유분수지 정도면 망상에 가까운 아닐까요?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어머니의 기쁨과 행복을 지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치료에 그녀는 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래서 신화나 동화 같은 상상력을 지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슬픔에 빠진 어머니를 살게 것은 어떤 사실 또는 진실이 아니라상상력적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강한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내면은 와인잔처럼 약합니다. 너무 쉽게 깨지고 상처받기 쉬운 우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하고, 너무 쉽게 강한 것에 의존하는 믿음을 가집니다. 이런 약한 인간이 진화 경쟁 속에서 생존할 있었던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게 별을 보고 상상을 있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했고, 상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을 이겨냈습니다. 인간은 별을 보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상상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상상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상상력을 넘어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생존을 위한 상상이었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했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어떻게 눈에 보이는 세계와 관계하는 지를 면밀히 상상력을 통해 확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신화는 인간 실존 역사의 기록인 것입니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자신의 상상을 믿었습니다. 상상력이 어머니를 살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어머니의 슬픔 앞에서 상상력을 어리석다고 판단해서는 됩니다. 아무도 그녀의 슬픔을 대신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지점은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상상력이 겹치는 어느 지점일 겁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현실성이나 상상력의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방지하는비아 메디아 Via Media’ 필요합니다. ‘비아 메디아 양극단을 배제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며 중심에서신앙의 항상성 유지하기 위한 성공회의 영성입니다. 그래서비아 메디아 모든 보이지 않는 것과 모든 보이는 것이 균형을 맞추도록 우리의 이성과 신앙을 균등하게 관리하게 합니다. 

 

우리의 파라클레토스는 모든 존재 안에 편재하시며,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견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이성적으로 추상적이며 감성적으로 모두 포용할 있습니다. 성령의 체험이 개인의 사유화로 치우치지 않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면 우리는 모두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입니다. 성령에 대해 거부하는 사람도, 성령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성령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우리는 모두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구원받는 사람들이므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의 믿음을 세워줍니다. 나의 부족한 믿음이 곁에 있는 다른 교인들에 의해 하느님께로 견인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으면 서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사랑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의 빚을 질뿐더러, 신앙의 또한 서로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칩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통해, 우리 모두의 믿음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상상력을 통해 풍성한 신앙의 지평을 넓혀주시길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승천대축일과 성령강림대축일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이러한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부활6 (가해)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크신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17:22-31

22 바울로는 아레오파고 법정에 서서 이렇게 연설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 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23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예배해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24 그분은 세상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하느님에게는 사람 손으로 채워드려야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하느님께서는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위에서 살게 하시고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27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있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28 ‘
우리는 그분 안에서
.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     
욥기 12:10(시편 104; 다니 5:23 참조)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어떤 시인은우리도 그의 자녀다.1요한 3:1-2 참조하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29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느님을,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을 가지고 만들어낸 우상처럼 여겨서는 됩니다. 30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무지했던 때에는 눈을 감아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회개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31 과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분을 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고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증거를 보이셨습니다.시편 9:8, 96:13, 98:9

 

 

 

 

성시_시편 66:8-20

8    민족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9    실족하여 죽을세라, 염려해 주시며
.     우리의 목숨을 되살려주셨다.
10  하느님, 주께서는 은을 풀무 불에 시금하듯이
.     우리를 시련하셨다.
11  우리를 그물에 몰아 넣으셨으며
.     무거운 짐을 등에 지우셨습니다.
12  남에게 머리를 짓밟히게 하셨으며,
.     불과 속을 지나가게 하셨지만
.     마침내는 돌리게 건져주셨습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번제를 드리러 당신 집에 왔습니다.
.     서원한 바치러 왔습니다.
14  괴로울 입으로 맹세한 ,
.     입술로 아뢰었던 것을 바치러 왔습니다.
15  수양을 살라 향내 피우며,
.     푸짐한 번제물을 드리고
.     염소와 소를 함께 드리옵니다.
16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아,
.     와서 들어라.
.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 주리라.
17   입은 그분께 부르짖었으며,
.     입술은 그분을 찬양하였다.
18   만일 나쁜 뜻을 품었더라면
.     주께서는 아니 들어주셨으리라.
19  그러나 하느님은 들어주시고
.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20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으니
.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베드 3:13-22

13 여러분이 선한 일에 열성을 낸다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다 해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협박하더라도 무서워하거나 흔들리지 마십시오. 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답변을 때에는 부드러운 태도로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사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헐뜯던 자들이 바로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것입니다. 17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낫겠습니까? 18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 19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20 그들은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하느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방주에 들어가 물에 빠지지 않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21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천사들과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당신에게 복종시키셨습니다.

 

 

 

 

복음서_요한 14:15-21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게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지나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터이니 너희는 나를 보게 것이다. 20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것이다. 21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