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8. 가해_성령강림대축일
사도 2:1-21 / 시편 104:24-34, 35하 / 1고린 12:4-13 / 요한 20:19-23
“성령을 받아라: 새로운 변화의 시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을 가집니다. 때론 내가 아닌 정말 다른 나로 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변화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변화에도 그동안 쌓아온 삶의 모든 성과들과 관계들이 흔들리고 마니깐요. 그래도 우리는 다양한 현실 도피적이며 타협적인 대안을 찾고 삶의 고통과 한계를 넘어설 기재들을 찾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중 종교적 기재가 가장 강력한 도피와 타협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약속이나, 개인의 변화의 수단, 또는 축복의 사유화가 그 좋은 예입니다. 특히 기독교 역사에서 성령만큼 변화에 대한 오해와 갈등의 원인이 된 요소도 없을 겁니다. 영적 체험이 공동체와 사랑에 기반을 하지 않고, 개인화, 사유화될 때 늘 성령의 변화의 역사는 왜곡되곤 했습니다. 심지어 방언을 가르치는 교회도 있다 하니 그 심각성이 큽니다. 또 성령 충만을 마치 배터리 충전과 유사한 개념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임재가 단순히 개인의 변화나 축복의 수단이 될 때, 또 현실 도피적인 대안이 될 때, 아니면 개인의 영적인 만족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 이는 성령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뼈들에게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에제 37:5
에제키엘서에서 하느님이 뼈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것처럼,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이 숨은 ‘루아흐 רוּחַ’, 즉 ‘퓨뉴마 πνεῦμα’입니다. ‘바람’이고 ‘숨’이며 ‘생명’을 상징합니다. 야훼의 숨이 뼈들을 살리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숨’을 통해 생명의 희망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위임 명령’과 ‘권능’을 동시에 주십니다. 그 사명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파송하신 것처럼,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하느님의 사역에 동참케 하신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그를 파송한 자와 같다”는 요한복음의 일관된 주제가 반영됩니다. 하느님께 파송을 받은 성자가 성육신으로 이 지상에서의 사역을 다하셨고, 그 사역을 이제 제자들이 이어가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권능이요, 의로움인 ‘죄 사함의 권세’를 부여합니다. 제자들이 용서하면 누구의 죄도 용서받는다는 권능을 약속하십니다. 이로써 부활로 말미암은 ‘샬롬שָׁלוֹם’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짧은 복음서 문장에서 “샬롬, 즉 너희에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반복됩니다. 이는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의 최종 사역이 사람들에게 ‘샬롬’을 전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그 ‘샬롬’은 일상적인 인사이지만, 예수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에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신 ‘샬롬’은 이제 전혀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샬롬’은 부활절의 가장 중요한 인사가 됐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성찬례에서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라고 서로 인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인사에 근거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하시고 파송하시면서 제자들만 홀로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라는 말이 ‘위임 명령’과 ‘죄 사함의 선포’ 가운데 놓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가능한 일임을 암시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만 세상에 파송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성령’도 파송하셨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공생애에서 모든 사역의 권능이었던 성령께서 이제 제자들의 사역을 도우실 겁니다. 바빌론 유수에서 해방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에제키엘이 성령을 통해 예언한 것처럼,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모든 죄에서 해방시킬 것을 성령을 통해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을 통해 원래의 신성과 영광을 회복하셨으니,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창조’, ‘새로운 변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에 인간이 편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2 고린 5:17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새로운 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새 사람”, “새 창조”, “새 변화”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과 동행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실존입니다. 이전 것은 사라졌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죄에 눌려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 죄에서 해방되어 오히려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제자들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하느님의 영인 “프뉴마 하기온 Πνεῦμα Ἅγιον”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파라클레토스’라는 ‘협조자’로 성령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께서 ‘숨’을 내쉰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앞에서 ‘프뉴마’ 즉 ‘숨’으로 성령을 표기했으니 뒤에서 이를 거룩함을 덧붙여 “프뉴마 하기온”이라 한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것은 ‘숨’이 생명에 대한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요한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성령이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창조’, 그리고 ‘새로운 변화’와 관계됨을 강조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한 사람은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새로운 변화’입니다. 세례 시에 물속에서 죽어 물 밖으로 나오며 새 생명을 얻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세례’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뜻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스스로 변화시키거나 변신하기가 어렵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남’에 대해 이해를 못 해서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야 하느냐고 예수께 물었습니다.(요한 3:4) 그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힘으로 변화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도, 성 어거스틴도 회심 전과 회심 후의 삶이, 정체성이, 인격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의 인격을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인격은 예수의 인격으로 변화됩니다. 비록 처음에는 그 인격의 흔적이 희미하지만, 끊임없는 기도와 헌신에 의해 그 인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한번뿐인 인생에서 다시 새 출발할 기회를 성령을 통해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삶의 도약이고, 또 누구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령의 변화의 능력은 가공할 만큼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로렌스 형제’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수사 니콜라 에르망은 이러한 하느님의 임재에 대해 끊임없는 수련을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성령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임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임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꾸준히 연습하려면, 먼저 우리는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케노시스’, 즉 ‘자기 비움’의 영이고. 낮아짐의 하느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우리 영혼의 눈이 늘 하느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폴 틸리히는 이를 ‘궁극적 관심’이라 표현한 바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해서’(신명 6:5)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영혼의 눈’을 그분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도 거듭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다”란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입니다. 그래서 ‘로렌스 형제’는 우리가 마음을 잘 다스려 ‘하느님께 집중’할 것을 연습하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우리보다 한 발 앞서시지 않으십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가 준비될 때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가능합니다.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때’입니다. 그것은 ‘크로노스 Κρόνος ’가 아니라 하느님의 ‘카이로스 Καιρός’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연습은 기도를 통해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짤막한 기도부터 시작해서 마음이 지향하는 바 조금씩 기도가 구체화되고, 또 정해진 때에 드리는 기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혼자 하기 힘들면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함께 기도하면 더욱 수월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공동체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임재를 위해 함께 기도할 때,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마태 18:20), 주님께서 함께하신 다고 성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함께 기도하고, 또 여름수련회를 통해 특별히 ‘함께 기도할 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7월 15일에서 16일까지 1박 2일로 예정된 우리의 여름 수련회는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꼭 시간을 미리 비워두시고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상과 떨어져서 조용한 곳에서 피정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큰 은총이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수련회 이전과 이후로 여러분의 삶에 영적인 변화가 있을 줄 믿고 기도합니다.
오늘 성령의 오심을 축하하며 이 예배 중에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뜻을 성령께서 이 시간 만져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령강림대축일 (가해)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도 그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구원과 사랑을 이웃에게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2:1-21
1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5 ¶ 그 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6 그 소리가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7 그들은 놀라고 또 한편 신기하게 여기며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셈인가? 9 이 가운데는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10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또 키레네에 가까운 리비야의 여러 지방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로마에서 나그네로 온 11 유다인들과 유다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고 그레데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하였다. 12 이렇게 모두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며 웅성거렸는데 13 그 중에는 “저 사람들이 술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14 ¶ 그 때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다 동포와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15 지금 시각이 아침 아홉 시인데 어떻게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요엘 3:1-5
17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마지막 날에
. 나는 모든 사람에게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19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표징을 보이며
. 땅에서 기적을 행하리니
.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고
. 해는 빛을 잃어 어두워지고
. 달은 피와 같이 붉어져
. 마침내 크고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오리라.
21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시_시편 104:24-34, 35하
24 주여,
.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으나,
. 어느 것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
.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 ◯
. 거기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가 수없이 우글거리고,
26 배들이 이리 오고 저리 가고 ◯
. 손수 빚으신 레비아단은 당신의 장난감입니다.
27 때를 따라 주시는 먹이를 기다리며 ◯
.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을 쳐다보다가
28 먹이를 주시면 그것을 받아먹으니, ◯
. 손만 벌리시면 그들은 배부릅니다.
29 그러다가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 어쩔 줄을 모르고 ◯
.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지만,
30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
. 온 누리의 모습은 새로 워집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소서. ◯
. 손수 만드신 것, 주님의 기쁨이 되소서.
32 굽어만 보셔도 땅은 떨고 ◯
. 다치기만 하셔도 산들은 연기를 뽑는구나.
33 나는 한평생 주님을 노래하리라. ◯
. 숨을 거둘 때까지 악기를 잡고,
. 나의 하느님을 노래하리라.
34 나의 노래가 주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 그러면 나는 주님 품안에서 즐겁기만 하련만.
35 악인들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려라. ◯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 고린 12:4-13
4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주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9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0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11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 12 ¶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13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복음서_요한 20:19-23
19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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