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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James Chae 2023. 5. 21. 02:10

2023. 5. 21. 가해_승천대축일_부활7주일

다니 7:9-14 / 시편 93 / 사도 1:1-11 / 루가 24:44-53

 

죽음,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죽음.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누군가에게는 이별로, 누군가에게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처럼 삶을 부정하는 변명으로너무나 각양각색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요즘은 죽음을 마치 게임을리셋하는 듯한 뉘앙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2 ,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역사의 예수 따랐던 제자들은 과연 스승의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했을까요?

 

톨스토이의 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법조인이반 일리치 아직 청청한 나이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언급하거나 이에 대해 슬퍼하기보다 이반 일리치의 부재로 생기게 자신들의 자리와 이해득실에 혈안이 됐습니다. 사람의 부재가 사회적 지위의 공백 정도로 인식되는 것에 씁쓸함을 금할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잡히셨을 베드로만 대제사장의 뜰까지 따라갔을 모두 두려움에 도망을 쳤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 만이 십자가 밑에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있을 때까지 로마와 유대인들을 피해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로마나 유대인들에게 들키면 반역자의 제자들로 자신들도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분의 부활을 목격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하느님의 현현 사건. 부활하신 예수를 봤다는 제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며 제자 그룹의 혼돈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주님의 현현을 목격했음에도 그들은 방향을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들이 갈릴레아로 돌아갔다고 기록했고, 루가복음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렀다고 기록해서 전승자료의 상이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을 기점으로 일대 변화를 맞은 것은 분명한 같습니다. 성령의 임재 앞에 그들은 이상 슬픔과 혼돈 속에 머물러 있을 없었고, 그들은 싫으나 좋으나예수의 죽음 대해 정리할 필요를 절감했을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더듬었고, 주님께서 살아계실 하셨던 말씀들 죽음과 부활에 대한 언급들을 회상했을 겁니다. 또한 2이사야서인 이사야 52장과 53장에서의의 죽음에 대해서도 살펴봤을 것입니다. 그러한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그들은 죽음에 대해 자신들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반 일리치의 친구들처럼 자신들의 안위보다 그분의 죽음을 하느님의 영광과 연결 짓는 집중했습니다. 

 

유대교에서의 죽음은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기에 장례식은 그들에게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후에 죽은 사람들이스올(Sheol)’ 머문다는 정도로 생각했을 , 죽은 자의 영생에 대한 개념도 약했습니다. 그러니 유대교식으로도 예수의 죽음을 이해할 없었고, 심지어 예수는 반란자로 로마의십자가 받고 죽었으니 사실 장례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아리 마테아 요셉 예수의 장례를 치른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죽음과 부활에 덧붙여 승천에까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의미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승천은 부활의 연장이었습니다. 그가 부활하셨다면 그분의 실존이 지상에서 이상 계속될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제 하느님의 영광을 덧입으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예수의 퇴장 있고, 후에 성령께서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과 성령강림사건을 이어주는 승천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습니다. 승천은 부활한예수의 퇴장 공인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실존인 성령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예수의케노시스κενοσις, 자기 비움 이제 하느님의 영광에 자리를 내어줍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2:36

 

말씀은역사의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메시아적 통치자로 승귀(昇貴, Exaltation) 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시편 2 7절의 예언 성취를 말합니다.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시편 2:7

 

이를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로마 1:4)

 

이는 예수의 정체성의 일대 반전을 말해줍니다. ‘승귀’. ‘오를 ’, ‘귀할 ’. 다시 귀한 자리로 오르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높임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고양, 승진 의미가 있는 Exaltation입니다. 말은성육신자기 비하’, 하느님이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으로 오심을 인정할 이해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하느님의 구원 사역에 순종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본래 신성으로 회복되심을 뜻하는 말이승귀입니다. ‘자기 비하 있은 후에승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승천은승귀 관점에서 이해될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승천이 신학적 진술을 벗어나는 순간 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구름 산신령이 하늘로 오르는 것으로 이해될 위험이 큽니다. 많은 성화들이 이러한 이미지로 그려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승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오히려 만들어 버렸습니다. 물론 루가복음서 저자는 승천의 이미지를 다니엘서 7장의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라는 구절과엘리야의 승천 이야기”(2 열왕 2:1-11)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추측할 있습니다. 그래서 승천 이야기를 듣던 루가의 공동체는 이를 전혀 불편함 없이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전설의 고향 나오는 산신령의 이미지가 자꾸 덧씌워져 승천 이야기에 대한 왠지 모를 거부감 마저 생깁니다. 한번 인이 박힌 이미지는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오디세이아 읽으며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루가복음의 승천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역사가 사실의 진술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근대의 역사 서술의 방법 때문임을 안다면, 고대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의미의 진실을 말하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승천이야기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자기 비하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그분이 덧입는승귀 나아갔는지를 설명하는 서사입니다. 이로써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의 사역은 이로써 완성이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사역은 그의 영인 성령이 뒤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시대에서성령의 시대 서사적 시간의 전환을 알리는 사건이 바로 이러한승천이야기 담기 의미입니다.

 

자기 비하승귀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루가 14:11

 

예수께서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대로 본인이 본을 보이셨습니다. 선재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신 자체가 바로자기 비하입니다. 그렇게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33년의 삶을 인간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인간의 실존을 경험하셨습니다. 이는 성부께 대한 아들의 순종이었으며자기 비하였습니다. 그런 그의 순종으로 그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는 겸손을 보이셨으며, 이때 시편 2 7절의 예언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를 근거로 어떤 학자들은 세례 시에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됐다는양자설 주장했지만, 기독교는 이를  성자의성육신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자기 비하 통해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빛을 밝힌 것입니다. 성육신의 절정은 분명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 사형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은 자신의 승리를 자축했지만, 이는 하느님의 역사의 반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결국자기 비하에서승귀 돌파됨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낮춘 예수를 하느님께서 이제 영화롭게 하셨고, 그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승천은 부활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의 본래 신성과 영광의 회복이라고 정의할 있습니다. 

 

그러므로자기 비하자기 비움 먼저입니다. 그다음이 부활과 승천입니다. 이는 부활을 기념하는 교회의 믿음과 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로써 그분은내려오셨다가 다시 오신 곳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세상에서의자기 비하 33년이었고, 이제 성령께서 다른 방식으로 믿는 자들을 인도하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승천이 없으면, 그분의 신성으로 다시 돌아감이 없으면 성령의 오심 또한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1세기 기독교 문헌에서하느님의 권능또는하느님의 속성으로 이해됐습니다. 아직 인격체로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속성을 드러내는 역할로 이해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성자가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성자의 퇴장으로 성령의 임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비하- 승귀 - 그리고 성령의 현현.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하나의 줄에 꿰인 구슬과 같이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천 없는 성령강림은 불가능합니다. 부활 없는 승천은 불가능합니다. 자기 비하 없는 부활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론의 중요한 신학적 진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천대축일을 기념하며 그분의 승귀를 축하하고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퇴장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요엘 선지자에게 예언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고별사에서 약속하셨던파라클레토스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뻐하며 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할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간절함이 이를 통해 준비되는 것입니다. 오늘 루가는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날마다 기도했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기다리는 교회의 자세인 것입니다. 기도 없이, 기다림 없이, 간절함 없이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간절히 자신을 찾는 자에게 자기를 현시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특수 계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령의보편 계시 차원에서 머무를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님께서도 직접 보여주신자기 비하, 자기 비움 먼저입니다. 안에 모든 것이 가득 있다면, 안에 나의 편견과 아집이 가득 있다면, 성령께서 내주 하실 공간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자기 비움없는성령 임재 불가능합니다. ‘자기 비움 고통이 있은 후에 고통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 있고, 능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러날 것입니다. 내부출혈로 응급실을 찾은 응급 환자는 반드시 내부에 고인 썩은 피를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피로 수혈을 받아야 있습니다. 썩은 피가 밖으로 분출되지 않으면 반드시 쇼크로 사망합니다. 영적인 것도 그러합니다. 우리 안에 썩은 것은 반드시 밖으로 배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자기 비움입니다. 이것이자기 비하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욕심, 나의 선입견, 나의 아집 등의 오래된 썩은 피를 뽑아내고, 우리 안에 성령의 새로운 피로 수혈을 받아야만 우리의 영이 다시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응급실로 실려간 응급환자처럼 영적인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계략은 너무나 교묘하여 우리의 영을 속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현대 교회를 이러한 위험을 더욱 느낍니다. 성령 충만이 마치 세상의 물질적 축복과 동일시되는 교회의 가르침을 때도 이러한 위험을 더욱 느낍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 하고,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천대축일을 통해 성자 예수의승귀 축하하며, 우리 자신을 그분의 영광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과 간절함으로 성령강림을 기다립니다. 낮아진 우리를 높이실 분은 오직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낮아짐이 그분이 오시는 통로가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기다림에 주님께서 은총을 더하여 주시기를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승천대축일 2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나이다. 간절히 비오니,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는 우리가 비록 육신은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다니 7:9-14

9    내가 바라보니
.     옥좌가 놓이고 태곳적부터 계신 위에 앉으셨는데,
.     옷은 눈같이 희고
.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10   앞으로는 불길이 강물처럼 흘러 나왔다.
.     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     억조 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
.     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11 뿔이 계속하여 외쳐대는 건방진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보고 있자니, 짐승은 나의 눈앞에서 처형을 받아 시체가 박살이 나고 타오르는 속에 던져지는 것이었다. 12 다른 짐승들은 권세는 빼앗겼으나 목숨만은 얼마 동안 부지하도록 버려졌다.

13 나는 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성시_시편 93

1    주께서 위엄을
.     옷으로 입으시고 왕위에 오르셨다.
.     주께서 위엄 위에 능력을
.     띠삼아 동이셨다.
    세상을 흔들리지 않게
.     든든히 세우셨으니,
2    당신의 왕좌는 처음부터 요지부동이오며 
.     처음부터 당신은 주님이시옵니다.
3    주여, 물결소리 높습니다!
.     강물소리 술렁댑니다.
.     서로 부딪치며 광란합니다.
4    그러나 높은 계신 주님은 세시니,
.     몸부림치는 바다소리보다 세시고
.     많고 많은 물결소리보다 세십니다.
5    당신의 법은 너무나도 미덥고,
.     당신의 집에는 거룩함이 제격이오니
.     주여, 길이길이 그러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사도 1:1-11

1 책을 데오필로님께 드린다. 나는 먼젓번 책에서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치심을 기록하였다. 2 예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시초에서부터 낱낱이 기록하였다. 3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4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것이다.”

6 사도들은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것이다.” 9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복음서_루가 24:44-53

44 그리고 그들에게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7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48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다. 49 나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51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