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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하게 되었다”

James Chae 2023. 8. 20. 06:13

2023. 8.20. 가해_연중20주일

창세 45:1-15 / 시편 133 / 로마 11:1-2, 29-32 / 마태 15:21-28

 

 

마침내 ~하게 되었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전례 독서는반전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효녀 심청이마침내살아서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선한 양심 때문에 가난에 찌들어 살던 흥부가마침내제비의 도움으로 자신을 박대하던 놀부보다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마치고 집으로 귀환하다 바다에서 난파되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디세우스가마침내’ 20년이 지난 후에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는 반전이야기처럼. 오늘 말씀들은 반전으로 가득 있습니다. “마침내 ~하게 되었다라는 반전 문학적 기법은 주인공이 처음에는 고난과 시련을 당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이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여 이야기에 몰입감을 줍니다. 주인공의 시련이 크면 클수록 마지막 반전에 의한 카타르시스도 비례하여 커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마치면 사람들은 안도를 하게 되고, 자신의 힘든 처지를 애써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어려운 삶을 이겨낼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인생은 고난과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교훈이 고대 반전 문학들의 특징입니다. 

 

1 독서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이마침내살았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가족을 죽음의 위험에서 구원할 자로 나타난 반전입니다. 오늘 읽은 성시는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형제와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닫고 이를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2 독서인 로마서는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됐던 이방인들이 이제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마침내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다는 반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하느님의 자비로 인한 이방인들의 구원으로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구원에서 제외됐지만, ‘마침내하느님의 때에  다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미래의 반전 또한 말합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시로-페니키아 여인 예수님에게 조차 외면을 받았다가 자신의 겸손과 믿음으로마침내치료를 받는다는 반전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반전 이야기는 성서에 차고 넘칩니다. 처음에는 고생을 하지만마침내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반전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먼저 이방인들의 구원의 반전을 이야기한 , 오늘은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의 반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 이야기는 선민사상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라면, 오늘 이스라엘의 구원의 반전 이야기는 이제 은총으로 구원받은 이방인들에 대한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원가지가 잘려나간 자리에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이 원래 자신들의 처지를 잊고 교만해질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잘려나갔던 원가지인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구원받는다는 반전을 사도 바울로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열매가 바로 바울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막내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율법을 맹신했던 그가,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자신을팔삭둥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마침내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도, 이방인이 은총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그렇게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2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순종의 상태에 여전히 놓여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로의 기대와 예언이 빗나간 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로마서의 표현을 보면, 사도 바울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처럼, 자신의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민족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했습니다.(로마 9:2-4) 물론 그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 이렇게 2 년이 흐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은 완고하지만 모든 이방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날에는 그 완고한 마음을 버릴 것이고 따라서 온 이스라엘도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로마 11:25,26

 

사도 바울로는마침내’ “모든 이방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이러한 희망의 날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희망은 자연스럽게 오늘날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교훈을 줍니다. , 원래올리브 나무 은총으로 접붙임을 받은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들 우리이방인들 대한 교훈 말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계속 지체되면서 교회는 점점 세상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 “교회의 잠정성 포기하고 점점 조직화되고 규모도 더욱 커져갔습니다. 교회는 많은 선교적 역할도 수행했고, 인류에게 선한 영향도 끼쳤지만, 반대로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도 끼쳤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옹호 많은 주류 권력들과 결탁하는 폐해를 끼쳐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성장과 자유 경쟁을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교회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믿고 열심히 구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말로 세속주의와 결탁한축복 신학으로 자본주의 성장주의에 불을 지핀 것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보다는 오히려 바라는소원 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욕망과 신념의 분출일 뿐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소원 아니라기도 짝을 이뤄야 합니다. 기도는 인간의 몫이고 응답은 하느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할 것을 올려드리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150편이나 되는 시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린 순간 우리의 기도도, 예배도 결국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올리브 나무의 원가지였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고, 광야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기적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율법을 받았던 것처럼, 산상수훈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율법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난하면서, 우리는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정말 살고 있습니까? 하느님이 직접 주신 십계명을 받고, 명령을 열심히 지키면 구원받는다고 철저히 믿으며,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넘쳤던 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됐습니까? 율법을 추구했던 그들은 오히려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러한 이스라엘과는 다르게 율법이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구원받았다고 믿고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정말 안전합니까? 언제부턴가 우리도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처럼 안일한믿음의 선민사상 빠져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읽은 사도 바울로의 예언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올리브 나무의 원가지도 아끼지 않고 잘라내신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접붙임을 받은 올리브 나무 가지같은 우리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정말로 안전합니까? 이스라엘은 여전히 자신들이 하느님의 선민임을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신념과 종교적 확신 위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에 입각한 선민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이나, 은총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은믿음의 선민사상 가진 우리나 하느님 보시기에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은 우리의 신념이나 믿음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느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는 은총의 약속을 받았고, 그것을 믿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로부터 받은 율법에 의한 약속을 믿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올리브 나무 가지였던 이스라엘을 자르신 분이 접붙임 받은 가지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을까요?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말하고자 하는원가지접붙임 받은 가지 대한 반전의 이야기입니다. 구원이 보증 됐다고 철떡 같이 믿고 있던 이스라엘이 잘려나갔으니 얼마나 충격적인 반전입니까? 그러면 사도 바울로가 말한 대로, 은총으로 접붙인 받은 우리가 마지막에 잘려나가는 반전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반전은 엄청난 공포의 반전이 아닐 없습니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최후의 심판 때의 반전의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마태 26:44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양을 우편에, 염소를 좌편에 갈라 심판하신다고, 마태오복음은 반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서 좌편에 있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자신들이 잘못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주님의 심판이 불행한 반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하다고 칭찬받은 이들은 주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았을 뿐인데 오히려 칭찬을 받습니다. 선한 일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마지막 반전을 몰랐던 것입니다. 알고 있었다면 반전이 아니지요. 주님께서 이런 비유를 것은 마지막 때에는 이러한 반전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통념과 우리의 신념을 넘어서는 반전입니다. 누구나 해피 앤딩의 반전을 기대하지만 결과를 우리는 예측할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합니다. 교만은 멸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통해 배웠습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또한진노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성품을 우리가 알기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조심스럽게 완성해 가야 합니다. 경거망동하여 방향을 모르는 철없는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겸손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갑시다. 율법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믿음의 구원을 말했던 사도 바울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경기장에 달음박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1 고린 9:24

 

사도 바울로는 교만할 대로 교만해진 고린토 교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업신여기고, 자신들의 신념과 지식을 믿고 교만해진 고린토 교회는   분파와 내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설립자였던 사도 바울로를 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자만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를 향해 고린토 후서에서  눈물의 편지 써서 보낸 것입니다. 믿음의 교만에는 치료약도 없습니다. 오직 사도 바울로 같은 눈물과 기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고린토 교인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친절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지금까지 잘하고 계시니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해낼 있을 겁니다. 서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세워주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서로에게 겸손한 사람으로 함께 성장해 갑시다. 이렇게 우리는함께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0 (가해)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은 성령을 보내시어 죄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영광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45:1-15

1 요셉은 시종들 앞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없어모두들 물러나라.” 하고 외쳤다. 이렇게 요셉은 모든 사람을 물리고 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알렸다. 2 그가 우는데 울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이집트의 모든 사람에게 들렸고, 파라오의 집에도 들렸다. 3 요셉은 형제들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형제들은 그의 앞에서 너무나 어리둥절하여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4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자, 그제야 가까이 옆으로 갔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집트로 팔아 넘겼지요. 5 그러나 이제는 나를 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마음으로 괴로워할 것도 얼굴을 붉힐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6 땅에 기근이 이태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밭을 갈아 곡식을 거두려면 다섯 해가 지나야 됩니다. 7 하느님께서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은 형님들의 종족을 위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그러니 나를 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라오의 어른으로, 집안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9 지체말고 어서 아버지께로 올라가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저를 이집트의 주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저에게로 내려오십시오. 10 아버지께서는 여러 아들과 손자들을 거느리시고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고센 땅에 사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있습니다. 11 다섯 기근이 지나가도록 아버지께서 사실 있게 모든 것을 거기에 장만해 놓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거느리시는 식구들과 딸린 목숨이 아쉬운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12 이제 형님들께서는 아우 베냐민과 함께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요셉이라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셨습니다. 13 내가 이집트에서 어떤 영화를 누리고 있는지, 밖에 무엇이든지 대로 아버지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지체말고 어서 가서 아버지를 이리로 모시고 내려오십시오.” 14 그리고 나서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의 목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베냐민도 그의 목에 매달려 울었다. 15 다시 요셉은 형들과 일일이 입을 맞추어 인사하고는 붙잡고 울었다. 그제야 형들은 그와 이야기를 있게 되었다.

 

 

 

 

성시_시편 133

1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
2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3    헤르몬 산에서 시온 줄기를 타고
.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     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린 ,
.     복은 영생이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11:1-2, 29-32

1 나는 묻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다고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29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가시지 않습니다30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를 받게 날이 것입니다. 32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복음서_마태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22 지방에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소리로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으니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24 예수께서는나는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25 그러자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26 예수께서는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27 그러자 여자는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8 그제야 예수께서는여인아! 참으로 믿음이 장하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순간에 여자의 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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