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영적 체험”

James Chae 2023. 7. 30. 06:43

2023. 7.30. 가해_연중17주일

창세 29:15-28 / 시편 105:1-11, 45 / 로마 8:26-39 / 마태 13:31-33, 44-52

 

영적 체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나는 이 책을 통해 딱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큰 슬픔이나 상처, 분노와 두려움도 그것을 큰 기쁨과 치유, 자비와 자유로 바꿀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경의 [결국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중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라는 책의 서문 중에 나오는 글을 읽어드렸습니다. 미국 진보신학으로 유명한 유니온 신학교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신학과 종신 교수가 ()현경이 책에서 신학자이면서도 아티스트 같은 감수성으로 그녀가 직접 체험한신의 현현체험을 학문적이지 않게 신명 나게 메시지로 담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그녀의 영적 순례의 진지함과 책의 제목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표현대로영혼의 연금술사처럼 여성의 분노와 억울함, 슬픔 등을아름다운 목걸이처럼 역어내어 기쁨과 치유와 자유의 메시지를 펼치는 그녀의 필치의 대범함에 놀라기도 합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여러 논란의 결들이 있고, 보수교단에서는 이단이라 비판을 하지만, 사람의 전인격에서 솟구치는 선지자적 외침을 그냥 무시할 없는 진솔한 고백의 책입니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라는 제목처럼 그녀의 메시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침식된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던지는 선지자적 외침으로 우리 인간 안에 깊이 침몰된 아름다움의 가치를 한껏 수면 위로 부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맹자와 유사한 성선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 그녀는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될 우리 자신과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아름답게 변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 안에 눈뜨지 못한 존재의 아름다움들이 가부장주의와 차별, 혐오, 편견, 미움 등으로 더럽혀졌을 , 우리는 실존 속에서 길을 잃고 인간성의 상실과 인격의 파탄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정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있을까요? 우리는 정말 혐오과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할 있을까요? 사건과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느끼는 세상의부조리 대한 절망감 속에서 과연 우리는 인간에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발견할 있는까요? 우리를 아프게 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을,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모든 부조리한 세상을 우리는 정말 가슴을 열어 품고 사랑할 있을까요? 현경은 그녀가 체험한 영적 체험의 실재를그녀라는 말로 표현하여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 체험과 뉘앙스의 차이를 두지만, 그녀의 체험은 분명 그녀의 모든 삶을 전적으로 바꿔놓은 종교적 체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 안에 있는 영적 실재인그녀 만나고 13년의 침묵의 시간을 지난 후에 방금 제가 언급한 책을 히말라야에서 썼습니다. 그녀의 체험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적인 분별이란 잣대로 판단하기 전에, 그녀의 체험으로 말미암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은 분명 성령의 영성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말할 있습니다. 지점은 사도 바울로의 체험과도 일치합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사도 바울로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영적 체험을 많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삼층천을 경험한 체험도라는 3인칭으로 표현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영적 체험을지혜의 풀어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방금 읽은 2 독서의 말씀은 단순한 성령에 대한 메타포가 아닙니다. 그는 성령께서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신다고 표현합니다. 아직 인격체로 성령을 인식하지 않은 그에게 이러한 표현은 요한복음 기자가 말한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보혜사, 협조자 가까운 표현이 아닐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데깊이 탄식하며라고 표현하여 우리의 감성적인 부분과 연결점을 찾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영적 체험을 가지신 분들은 아마도 말씀을 이해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말이 매우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훈련과 기도와 말씀 훈련에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지혜를 얻을, 이러한 체험을 가질 기회는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도 바울로의 진술을 이해하기 어렵게 느낍니다. 머리로 그의 진술은 이해는 되지만, 가슴에서 동의를 못하든지, 아니면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영적인 것을 말하는데, 우리는 이를 육적이고 감상적인 것으로 이해하려 하니 더욱 공허해지는 것입니다. 현경은 자신의 경험을 장장 권의 책으로 자서전 형식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에 비해 사도 바울로의 체험은 너무나 간결하고 짧고, 지혜의 깊이가 깊어 자칫 일견에 행간을 놓치기 쉽습니다. 로마서에 담긴 행간에는 로마교회 공동체에 대한 그의 애정과 정성,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이 겹겹이 촘촘하게 쌓여 있습니다. 그러한 행간에 대한 묵상을 건너뛰고 로마서를 문자 그대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그것의 깊은 의미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결코 실증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합니다. 이해될 있는 것이 아니라 허리 중심인하단전에서 올라오는 확신의 경험입니다. 그것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삶과 표정, 행동, 인격, 그리고 말투 등을 통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불처럼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강한 영적인 체험을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가서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3 여의 시간은 사도 바울로의 체험에 대한 영적 검증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현경 또한그녀 만난 영적 체험 이후에 그녀가 체험한그녀 세상에 소개하기까지 13년의 시간을 침묵으로 검증해야 했습니다. 영적인 열매는 결국 사람의 전인격을 통해 증명되는 법입니다. 그러한 체험이 개인의 차원에서 보편적이고 윤리적 가치를 획득하기까지 반드시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야 하는 법입니다.  무당이 사람을 잡는 법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영적 체험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있기 때문입니다. ‘ 무당 작두 위에서 자신의 발만 베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작두로 다른 사람의 목을 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는 은혜롭지만 또한 잔인함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처럼 험난하기도 하지만, 때론 타보르 (Mt. Tabor)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영광처럼 찬란한 은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영적 체험을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고 담아내려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 13:44

 

오늘 마태오복음은 여러 비유들을 비슷한 주제끼리 모아 편집한 구문으로 이뤄졌습니다. 각각은 분명 예수께서 다른 상황에서 발설하셨을 말씀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마태오는 이를하늘나라라는 주제 하에 모아 편집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감지할 있는 것은 영적인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야만 겨우 얻을 있는 값진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것은 그것을 체험한 사람의 것이기에 남에게 절대로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발견한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체험이 완전히 사람 안에 몸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것에 대한 피상적인 헌신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헌신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로는성령의 생각이란 말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은 지혜의 말로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자신감 있는 외침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이나 칼입니까? 

 

법정 용어를 사용하여 사도 바울로는 우리에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승률 높은 자신감 넘치는 변호사처럼 사도 바울로의 결기를 읽을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우리는 핍박을 받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환란을 당하겠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는 결기와 담대함,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이 느껴집니다. 바람이 아무리 강하게 흔들어 대도 갈대는 옆으로 누울 결코 뿌리는 뽑히지 않는 법입니다. 뿌리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로는 오늘 우리를 붙들고 있는 뿌리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결코 떼어놓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뿌리를 하느님의 성령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그분의 사랑 가운데 확실히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을 느끼고,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두드리는 성령의 음성에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 안에, 여러분이 그분 안에 상호 거주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너무 사랑해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들뜬 마음에 년이라는 세월도 며칠밖에 되듯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나머지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첫째 부인인 레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자신의 소중한 아내인 라헬을 얻기 위해 장장 14년의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야곱이 잘했다 못했다를 우리가 여기에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야곱의 헌신을 보면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는 모든 것을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의 그러한 본능을, 이제 성령을 의지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모든 것을 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한 것은 그만큼의 노력을 투자해야 얻을 있는 법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예화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는 그러한 우리의 헌신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헌신의 동기가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헌신을 하느님께 드렸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동기가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고린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강요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συνέχω 수네코 사방에서 욱여싸며 압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앞과 , 옆과 , 아래를 모두 에워싸고 강박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39 말씀처럼 우리는 실존에서 하느님을 피해서 숨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강박증처럼 느껴지는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에 완전히 전도된 사람에게는 평안과 위로로 느껴지지만, 아직 하느님의 사랑에 어정쩡하게 반응하는 사람에게는 공황장애를 느낄 정도로 막히는 말이 아닐 없습니다. 마치 감시카메라와 도청기를 통해 감시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 완전히 전도되면 자유가 보장된 사랑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율법에 매달렸던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전도되어 율법을 쓰레기처럼 버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버린 것이지요. 이도저도 아닌 상태는 그리스도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만 가져다줍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믿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자유로울지 모르겠습니다. 믿음과 신앙이 부담이 된다는 것은 아직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감화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단순히 영적 위안 만을 찾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평안과 해탈을 찾는 명상적 종교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전투적으로 헌신하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도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을 있었을까요? 어중간한 믿음은 오히려 그리스도인을 더욱 좌절케 하여 자신의 정체성도, 인격도 파괴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합니다. 어중간한 믿음이 가진 치명적인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양가적인 마음에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편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경도되고 나면 우리에게 선택의 폭이 훨씬 좁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회가 없어짐이 아니라 비움과 버림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득 참을 경험하는 길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συνέχω수네코라는 말에는조정하다, 통제하다 뜻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때부터 성령께서 하느님의 사랑에 따라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인격 안에 거하시니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으로호연지기 가질 있습니다. 크게, 세상을 품고 사랑할 있는 마음. 나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없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품을 있는 넓은 마음. 그래서 ()현경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러한 인간의 잠재력을 [결국에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 꿈꾸는 것이 결국은 창조주의 뜻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희망과 가능성의 인격으로 거듭납니다. 그러할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없는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없다는 생각, 내게 그럴 능력은 없다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믿고, 하느님의 성령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란 보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17 (가해) 1

 

본기도

지혜의 샘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꼐서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성령의 분별력을 주시어 하느님 나라의 소망을 간직하게 하시고, 은총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있는 믿음을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29:15-28

15 하루는 라반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가 골육이라고 해서 일을 거저 해서야 되겠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16 그런데 라반에게는 딸이 있었다. 큰딸은 레아요, 작은딸은 라헬이었다. 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라헬은 몸매도 아름답고 용모도 예뻐서 18 야곱은 라헬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는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작은 따님 라헬을 달라고 청하였다. 19 라반은다른 사람에게 주느니보다 너에게 주는 편이 낫겠다.” 하면서 같이 살자고 하였다. 20 그로부터 야곱은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일을 했다. 년이라는 세월도 며칠밖에 되듯 지나갔다. 그만큼 그는 라헬을 좋아했던 것이다. 21 마침내 야곱은 라반에게 기한이 찼으니 라헬을 아내로 맞아 같이 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22 그래서 라반은 고장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23 밤이 되어 라반은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야곱은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24 라반은 레아에게 자기의 계집종 질바를 몸종으로 주어 거느리게 하였다. 25 아침이 되어 야곱이 눈을 떠보니 어이없게도 그것은 레아였다. 야곱은 라반에게 항의하였다. “삼촌이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는 라헬에게 장가들려고 삼촌 일을 해드린 것이 아닙니까? 저를 속이시는 것입니까?” 26 라반은우리 고장에서는 작은딸을 큰딸보다 먼저 시집 보내는 법이 없네.” 하며 부탁하였다. 27초례 기간 주일만 채우면 작은딸도 주지. 대신 동안 일을 해주어야 하네.” 28 야곱은 말대로 주일을 채웠다. 그제야 라반은 야곱에게 라헬을 아내로 주었다.

 

 

 

 

성시_시편 105:1-11, 45

1    주님께 감사하며
.     이름 높이 불러라.
.     장하신 일들을
.     만방에 알려라.
2    그분께 노래 불러라,
.     수금 타며 노래 불러 드려라.
.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하여라.
3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여라.
.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아라, 그의 힘을 빌어라.
.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마라.
5    얼마나 묘한 일들 하셨는지 생각하여라.
.     그의 기적들,
.     입으로 내리신 판단을 명심하여라.
6    그의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     그가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7    그분이 바로 우리 하느님,
.     세상을 바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8    계약을 맺으시며 만대에 내리신 말씀
.     영원히 잊지 아니하신다.
9     계약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며
.     이사악에게 하신 맹세이셨다.
10  야곱에게 지키라고 세워주신 법령이며
.     이스라엘에게 지켜주실 영원한 언약이시니,
11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노니
.     이는 너희가 대대로 물려줄 유산이다.” 하신 것이다.
45 이것은 이스라엘이 주신 법규를 따르고
.     가르쳐주신 법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다.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8:26-39

26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27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 아십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30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31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주시지 않겠습니까? 33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이나 칼입니까? 36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시편 44:22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없습니다.

 

 

 

 

복음서_마태 13:31-33, 44-52

31 예수께서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뿌렸다. 32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가지에 깃들일 만큼 나무가 된다.”
33 예수께서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속에 집어넣었더니 온통 부풀어올랐다. 하늘 나라는 이런 누룩에 비길 있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있다.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팔아 밭을 산다.”
45 하늘 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있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팔아 그것을 산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쳐서 온갖 것을 끌어올리는 것에 비길 있다. 48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 49 세상 끝날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천사들이 나타나 선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51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지금 말을 알아 듣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하고 대답하였다.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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