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단 한 번뿐인 삶이라면…”

James Chae 2023. 9. 3. 06:31

2023. 9. 3. 가해_연중22주일

출애 3:1-15 / 시편 105:1-7, 23-27, 45 / 로마 12:9-21 / 마태 16:21-28

 

 

번뿐인 삶이라면…”

 

 

(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나도 한때는 백화나무를 타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절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심려(心慮) 지쳤을
그리고 인생이 없는 속과 너무나 같을 얼굴이
달고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간지러울 하나가
작은 나무 가지에 스쳐 눈물이 흐를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운명이 나를 잘못 이해하고
반만 ()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좋은 세상이 있을 같지 않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작나무>에서

 

피천득의 수필집에 자신이 번역하여 실은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입니다. 시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 짐을 느껴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삶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세상의 삶에 대한 시인의 긍정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이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사랑하기에 좋은 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불의와 혐오로 가득하고,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우울한 소식뿐이며, 사랑은 숨바꼭질처럼 숨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시인이나 저나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은 인간이기에 비슷할 것입니다. 마치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듯이, 나무 가지에 살이 베이고, 눈이 찔려 피눈물이 나고, 넘어져 뒹굴고, 미끄러지고, 두려움 속에서 떠는 것이 마치 인생과 흡사하다고 시인은 표현합니다. 이런 표현은 정말 숲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말할 있는 표현입니다. 저도 숲에서 한번 길을 잃어본 적이 있어서 그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속에서 해는 빨리 어둠 속으로 숨고, 길이 없는 잔가지 나무숲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고통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찾을 같다는 두려움이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곳을 계속 맴돌았던 기억. 시인은 이러한 고통 속에서 다시 삶을 리셋하고픈 마음이 들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이내 세상을 떠날 없음 또한 동시에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랑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고 보다 좋은 세상이 있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이란 명예와 영광 뒤에 프로스트에게는 어두운 가족사의 비극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여동생 마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다 죽었습니다. 자신의 여섯 자녀 명을 잃었고, 우울증을 앓는 부인은 결국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지만, 그는 시를 통해 이러한 고통을 노래하는 대신 오히려 무한한 삶에 대한 긍정을 노래했습니다. 역설입니다. 아픔과 고통이 크면 클수록 역설적으로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로스트의 불운하고 비극적인 가족사와 대비되는 삶에 대한 긍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시인의 가식일까요? 아니면 삶에 초연해진 시인의 깨달음일까요? 아무튼 삶에 대한 그의 긍정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형제 사랑, 상호 존경, 소망에 대한 기쁨, 환란 중의 인내, 지속적인 기도, 서로 돕고 서로 세워주기, 모든 사람과 동거동락하기, 원수 사랑 . 모두가 실제로 실천하기 어려운 리스트를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두 좋은 말들이라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라입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할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물론 사도 바울로가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앞부분인 로마서 12 1~2절에우리의 몸을 하느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하는 말을 전제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느님께 드렸으니, 이제 우리의생각하는 이상 삶의 주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권면은 우리가 행해야 하는 율법의 명령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로가 이미 데살로니카 교회에 편지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철저히 감춰져 있어서 그때를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로의 후기의 편지들은 사도 바울로가 주님의 재림이 자신의 사후에 있을 수도 있음을 그가 인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 현세를 재림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죽음이 생명에게 집어삼켜져 없어지게 되기를갈망했습니다.(2 고린 5:4) 데살로니가 전서에는 이러한 그의 소망들로 넘쳐납니다. 그러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현세의 삶을 역설적으로 긍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사도 바울로는 종말에 있을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머무는 동안 일들이 숨김없이 종말에 하느님 앞에 드러나 그분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고린 5:10) 그러므로 종말의 때가 언제이든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야 했습니다. 종말이 것이라 해서 영지주의자들처럼, 또는 종말론자들처럼 종말만 기대하며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종말이 온다고 호들갑 떨지 말고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각각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자기 손으로 일해서”(1 데살 4:11-12)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묵묵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그분의 아들을 보내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2 고린 5:9

 

사도 바울로는 진심으로 빨리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육체에 머물든 주님 곁에 머물든 중요한 것은그분을 기쁘게 드리는 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육체에 머무는 동안 행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 기쁜 것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셔서 그분의 모든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삶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신적 권위를 포기하고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자기 포기 통해 그렇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시인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은 번뿐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교처럼 세상을 반복해서 산다고 성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세상과의 인연은 번뿐입니다. 그러니 마지막 심판날 진노하시는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을 허투루 없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삶은 정확하게 하느님의자기 비움 상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로마 12:10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로마 12:17-18

 

여러분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여러분이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지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주님의 은총과 평화 인사말로 사용했습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번뿐인 인연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번뿐인 삶이라면 세상이 사랑하기 좋은 살아 만한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사도 바울로는다투어 서로남을 존경하고 세워주는 일에 열심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경쟁하듯 하라는 뜻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세워주다 보면, 결국 남을 세워주는 우리 자신도 함께 존귀해지기 때문입니다. 악은 우리에게 앙갚음과 질투하라고 부추기지만, 선으로 악을 이길 있다고 바울로는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그렇게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시인이 긍정한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잠정적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고린토 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심지어 모든 은사조차도잠정적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후에 남는 것은 오직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믿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희망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현재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무한성의 표징입니다. 중에 사랑이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 영원하신 하느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만난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인간에게 은총으로 주어졌으니 이제 우리 인간 편에서 하느님께로 사랑을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자기 포기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에서 구체화되고 가시화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믿음에 상응하여 로마서 12장부터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권면한 이유입니다. 

 

비록 사라져 가는 세상이지만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세상을 우리도 사랑하고 긍정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이 잠정적임 또한 우리는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긍정하면서도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잠정적이고, 거울을 보듯 희미하지만, 마지막 주님의 재림의 때에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앎의 완성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소망으로 오늘의 시간을 긍정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이러한 거룩한 일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번뿐인 삶을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함께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2 (가해) 1

 

본기도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임을 보여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자신을 제물로 주님께 바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출애 3:1-15

1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호렙으로 갔더니 2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3 모세가 떨기가 어째서 타지 않을까?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 하며 4 그것을 보러 오는 것을 야훼께서 보셨다. 하느님께서 떨기 가운데서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 말씀하십시오.” 5 하느님께서는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어라.하시고는 6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 7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8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9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11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 힘이 되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다음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나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15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성시_시편 105:1-6, 23-27, 45

1    주님께 감사하며 이름 높이 불러라.
.     장하신 일들을 만방에 알려라.
   그분께 노래 불러라, 수금 타며 노래 불러 드려라.
.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여라.
.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아라, 그의 힘을 빌어라.
.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마라.
5    얼마나 묘한 일들 하셨는지 생각하여라.
.     그의 기적들, 입으로 내리신 판단을 명심하여라.
   그의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     그가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23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내려갔고
.     야곱은 함족의 나라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24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어나게 하시어
.     원수들보다도 강하게 만드셨다.
25  원수들은 마음이 달라져, 당신의 백성을 미워하고
.     당신의 종들에게 속임수를 쓰게 되었다.
26  하느님은 당신의 모세와
.     몸소 뽑으신 아론을 보내시어
27  함족의 나라에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표를 보이시고,
.     많은 기적을 행하게 하셨다.
45  이것은 이스라엘이 주신 법규를 따르고
.     가르쳐 주신 법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다.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12:9-21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11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13 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돌봐 주고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주십시오. 15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 16 서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18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원수 갚는 것은 내가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20 그러니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셈이 것입니다.” 21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십시오.

 

 

 

 

복음서_마태 16:21-28

21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주님,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세상을 얻는다 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터인데 때에 그는 각자에게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28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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