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신임의 척도”

James Chae 2023. 8. 27. 06:15

2023. 8.27. 가해_연중21주일

출애 1:8-2:10 / 시편 124 / 로마 12:1-8 / 마태 16:13-20

 

 

신임의 척도

 

 

채창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사도 바울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오늘 읽은 12장부터 15장까지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의 1/4 분량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이루기; 사랑은 율법의 완성; 약자들에 대한 배려; 권위에 대해서; 서로 용납하고 품어주기 . 은총으로 말미암아 세례 받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믿음에는 그에 합당한 겸손한 인격이 짝을 이루게 마련입니다. 믿음은 감정이나 느낌, 또는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실제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 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로마 12:1

 

이를 위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공동번역은여러분 자신을이라 번역했지만, 이는여러분의 “σῶμα 소마 말합니다. 다른 곳에서는지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말의 육체와는 다른 인간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자아 생각하면 무난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라는 인식이 바로자아입니다. 우리는자기(self)’ 아닌자아(ego)’ 자기 자신을 인식합니다.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의 영역에서 작동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하는생각하는 바로 우리의자아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생각하는 그대로 하느님께거룩한 제물 바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믿음의 분량보다 부풀려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손이 눈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발이 손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할당하신신임의 척도 따라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이를 어긴 예를 우리는 고린토 교회에서 발견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따라 자신을 과대평가한 사람들이 고린토 교회를 분열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해야 말도 때와 장소에 맞게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일도 순리에 따라 지혜롭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지체들이 각자의척도(μέτρον)’ 넘어 자신의 주장들을 하는 순간, 그리스도의 몸은 병이 들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제자들도 각자의 생각, 각자가 들은 말들을 예수님께 늘어놓았습니다. 인자가 누구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누구는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누구는엘리야라고 하고, 누구는예레미야라고 하고, 누구는선지자라고 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처지에서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중 베드로의 말이 가장 예수에게 합당했던 같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지게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이 자신이 아닌 하늘로부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도 바울로도 강조했던 부분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베드로의 배반 또한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지만, 그것을 지켜낼 정도의 믿음은 없었던 거지요. 그의믿음의 척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완전히 성숙한 믿음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의믿음의 척도 달라진 것이지요. 

 

(“Θεὸς ἐμέρισεν μέτρον πίστεως.”) 우리 편에서는믿음의 척도(μέτρον)’라고 부르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는신임의 척도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신임하시는 척도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 다릅니다. 베드로에 대한 신임과 야고보에 대한 신임이 다릅니다. 요한에 대한 신임과 토마에 대한 신임이 각각 다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의 척도에 따라 주님께서 사람을 신임하시는 척도가 다릅니다. 스파이더맨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피터가 영웅으로서의 책임을 자각하며 말이 있습니다.  “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그렇습니다. 은사에는 그만큼의 책임 또한 따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신임하시는 척도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이를그리스도의 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누구는 눈이고, 누구는 손이며, 누구는 발입니다. 그래야 온전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눈이 좋다고 눈이 없고, 손이 좋다고 손이 수도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눈이 , 손이 , 발이 개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신임해 주시는 척도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의 정도가 다르듯이신임의 척도또한 다릅니다. 신임이 크면 클수록 책임과 의무도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의 신임은 은사로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사만큼 행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사모하되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의지의 정도를 누구보다 알고 계십니다. 감당할 없는 것을 짊어지고 고생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령의 은사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따릅니다. 그러니 은사를 받은 사람은 봉사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는 법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가장 신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신임을 가장 크게 받은 것처럼. 모세가 하느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를 이집트 왕궁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게 하신 것도 하느님이십니다. 공주의 양아들로 성장한 그는 이집트의 모든 지식과 언어를 습득하고 강대국의 엘리트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서 유목민의 또한 경험해야 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광야에서 쓸쓸하게 양을 치던 80 노인이 목동 모세. 그는 절망의 끝에서 드디어 하느님의 신임의 훈련이 끝이 나고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그는 80세에 처음으로 야훼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있는 것은 그의 80 인생이 바로 신임을 받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의 순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바로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신임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신임하시는 만큼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렸습니다. 하느님의신임의 척도 그의믿음의 척도 정확하게 일치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 넘어지거나, 다툼이나, 불만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라는 이상을 바랄 , 원하는 이상을 원할 , 우리의 분수를 넘어서 갖고 싶은 이상을 원할 , 우리는 먼저 자기 안에서 분열을 겪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기대를 투영하여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분열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로마 12:3

 

믿음의 정도(μέτρον)” 신임의 척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신임하시는 정도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지는믿음의 척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부르심을 받은 정도에 따라 살아가길 부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결혼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참을 없으면 결혼하라고 또한 조언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무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각자의 분수와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줄 있게 됩니다. 자신의 분에 넘치는 선함도 모두 무의미합니다. 전도서는 다음과 같은 지혜를 말해줍니다.

 

“나는 덧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만사를 다 겪어보았다. 착한 사람은 착하게 살다가 망하는데 나쁜 사람은 못되게 살면서도 고이 늙어가더구나. 그러니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지나치게 지혜롭게 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망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고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마라. 어리석게 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때도 되기 전에 죽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한쪽을 붙잡았다고 다른 쪽을 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야 치우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전도 7:15~18

 

세상만사를 겪어보았다 전도서의 기자가 내린 삶의 결론은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 감각을 가지고 살라 것입니다. 공자의 손자자사 말한중용 맥을 같이하는 지혜입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이 오든, 행운이 오든 발짝 떨어져서 이를 조망하고 초연하게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중심을 지킬 있는 사람입니다. 전도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의 근본인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지혜가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사화복이 모두 그분으로부터 비롯됨을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분이 주신 것들을 살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진짜 주인이 있음을 알라는 것이지요. 

 

생각하는 삶의 주인이 되면, 니체가 말한 대로, 인간이 주체적이고 초인적이 되는 같지만, 결국 20세기를 지나면서 우리는생각하는 무너지고 인간성이 오히려 말살되는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이성,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과학문명과 자본주의가 결코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20세기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전쟁의 공포와 인격말살의 위협이 늘어남을 경험했습니다. 20세기 세기 동안 과학의 힘으로 전쟁을 통해 죽은 사람은 고대의 침략전쟁의 사망자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이 원대한 우주에 미아처럼 버려진생각하는 소외와 고독 그리고 실업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여전히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바랬던 자유는 결국 소수의 기득권과 자본가의 자유가 오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성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성과 믿음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공회의비아 메디아 정신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수를 알고,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갖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좌와 우를 모두 포용하려는 자세.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고, 또한잠정적(暫定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우리 존재 자체에 집중할 있게 됩니다.

 

신임의 척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신뢰하시는 만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믿음의 척도만큼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느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할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사랑할 있는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감당할 없는 일을 부여잡고 전전긍긍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감당할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없는 일은 여전히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있는 ,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신임의 척도 반하는 행동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신임하시는 만큼 여러분에게 이에 합당한 믿음을 또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받은 은사대로 행동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여러분이 있는 만큼만입니다. 그러할 여러분에게 자유와 기쁨이 함께 합니다. 이상은 욕심이고, 욕심은 오히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를 신임하셔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부어주시어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삶의 무게에서 조금은 가볍고 기쁘게 살아갈 있도록 은총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1 (가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우리 믿음의 반석으로 삼으셨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빛을 비추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보게 하시고, 거룩한 교회에서 쓰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출애 1:8-2:10

8 그런데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왕이 새로 이집트의 왕이 되어 9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일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 무섭게 불어나니 큰일이다. 10 그들이 불어나지 못하게 기회를 보아 손을 써야겠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 11 그리하여 그들은 공사 감독들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도성 비돔과 라므세스를 세웠다. 12 그러나 이렇게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불어났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13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그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과 밭일 온갖 고된 일을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15 한편 이집트 왕은 히브리 산파 사람은 시브라였고 사람은 부아였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6히브리 여인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에, 사타구니를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버리고 딸이거든 살려두어라.” 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이집트 왕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사내아이들을 살려주었다. 18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사내아이들을 살려두다니,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였느냐?” 하고 꾸짖었다. 19 산파들이 파라오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 전에 아기를 낳아버립니다.” 20 하느님께서 산파들을 돌보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날로 무섭게 불어났다. 21 산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후손을 일으켜주셨다. 22 마침내 파라오는 백성에게 명을 내렸다. “히브리인들이 계집아이를 낳으면 살려두되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

2:1 레위 가문에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같은 레위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2 아내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너무나도 잘생겨서 동안을 숨겨서 길렀다. 3 그러다가 숨겨둘 없게 되자 왕골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속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형편을 살피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나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공주가 갈대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하나를 보내어 건져다가 6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아기는 틀림없이 히브리인의 아기다.” 하고 중얼거렸다. 7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아기에게 젖을 빨리게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유모를 하나 데려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그래, 어서 다녀오너라.” 하고 대답하자 소녀는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삯을 터이니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여 길러다오.” 그리하여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여 키웠다. 10 아기가 자란 뒤에 어머니는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아이를 자기의 아들로 삼고, 물에서 건져냈다고 하여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시_시편 124

1    이스라엘이 하는 ,
.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2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3    그들은 달려들어 살기등등하게
.     채로 우리를 집어 삼켰으리라.
4    거센 물살에 우리는 휩쓸리고,
.     마침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5    거품 뿜는 물결에
.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6    주님을 찬미하여라.
.     우리를 원수들에게 먹히지 않게 하셨다.
7     잡는 그물에서 참새를 구하듯이
.     우리의 목숨을 건져 내셨다.
.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살아났다.
8    주님의 이름밖에는 우리의 구원이 없으리.
.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12:1-8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3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사람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4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릅니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수효는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라면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써야 하고 7 그것이 봉사하는 일이라면 봉사하는 써야 하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가르치는 써야 하고 8 격려하는 일이라면 격려하는 써야 합니다. 희사하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을 다해서 해야 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복음서_마태 16:13-20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4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