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하느님의 것: 하느님의 이미지”

James Chae 2023. 10. 22. 06:11

 

2023. 10. 22. 가해_연중29주일

출애 33:12-23 / 시편 99 / 1데살 1:1-20 / 마태 22:15-22

 

 

하느님의 : 하느님의 이미지

우리 몸에 각인된 그리스도의 스티그마타 στίγματα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길 싫어하고, 자신의 상처, 부끄러움,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내면 깊숙이 숨겨두고 싶어 합니다. 특히 자신이 피해를 있는 일이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은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하고 자신은 베일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발화자를 방패 삼아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지요. 이런 경향은 손해를 보지 않고 체면도 유지하면서 남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잘못된 처세술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바리사이파 사람들이란 표현은 아마도율사들 말하는 같습니다. 그들도 이러한 간교한 방법을 썼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예수께 가서 물어봐도 일을 자신들의어린 제자들과 헤로데 당원들을대신 보냅니다. 자신들은 체면을 유지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이토록 우회적인 방법으로 비겁하게 예수께 질문한세금 문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이 오히려 로마에 저항했다는 오해를 있어서 두려웠던 것이지요. 당시에 사람들은 십일조, 성전세, 토지세, 통행세, 인두세 무척 많은 세금으로 고통받았고, 불만이 매우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납세의 당위성에 대한 질문은 질문 자체로도 문제가 소지가 있었습니다. 헤로데 당원들은 당시 헤로데 안티파스를 따르던 로마 사람들이었으므로, 바리사이파 율사들은 예수의 흠을 잡으려고 친로마세력을 이용한 샘입니다. 예수께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길 거부하는 말을 하면 즉시 로마에 고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의도는 교묘하게 숨기면서 예수에게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그들의 수사법은 매우 교묘합니다. 먼저 예수를 의로운 분으로 치켜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질문을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못하도록 못을 박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교묘한 칭찬에 흔들릴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예수께서 어떤 대답을 하든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하면 예수를 따르던 민중의 저항과 열혈당원의 공격을 받을 있었습니다. 반대로 세금 납부하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저항한다는 혐의로 체포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데 당원들을 보낸 것이지요. 그들은 어떤 대답이든 예수가 피해 없었을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역으로 질문을 하시면서 대화의 중심축을이미지 논쟁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는 그들의 질문을 교묘하게 회피하며 오히려 역공을 하신 것입니다. 동전을 달라고 하시며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 말고는 모든 곳에서 로마의 화폐가 일상적으로 통용됐습니다. 로마의 화폐가 통용되는 곳이 로마 황제의 통치력이 미치는 곳이었습니다. 이는 황제의 통치가 미치는 공간적 한계를 말합니다. 황제의 이미지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등가물인 것입니다. 그러나하느님의 ’, 황제의 형상대신하느님의 이미지 새겨진 동전은 바로인간입니다. (마태오복음 미완성 작품) 황제의 통치는 황제의 동전이 유통되는 지역에 제한되었지만, 하느님의 통치는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모든 인간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의 통치영역을 넘어서는 범세계적인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직답을 피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로마 황제의 통치도 하느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동전에 새겨진 형상이 아니라 그분의 이미지가 새겨진 모든 인간을 통해서입니다. 정말 예수님은 달변가가 아닐 없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여기에서 우리는하느님의 무엇인지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교부들이 말한 대로하느님의 하느님의 형상이 새겨진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지은 창조주를 자기 안에서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이 이미지화된 우상을 통해 자신의 기원을 찾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와 환경에 따라 많은 우상들이 존재하게 것입니다. 신인식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와 비례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욕망이 이미지로 형상화되면 보이지 않는 것조차 실제화됩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인간은 보고, 듣고, 만질 있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모세도 하느님께서 말씀하신젖과 꿀이 흐르는 으로 올라가기 전에 다음과 같이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파송을 받아 저와 같이 갈 분이 누구신지 아직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출애 33:12 b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야훼의 형상을 만들어달라고 아론에게 간청했습니다. 광야에서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느님이 누구인지 도저히 형상화되지 않으니 두려웠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인식할 있고 보고 만질 있는 것에 자신들의 두려움을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를황금송아지 형상화하며 이것이 야훼라고 외치며 축제를 벌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모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하느님과 함께 광야에서 그의 권능과 기적을 경험한 모세조차도, 아직 야훼 하느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내면에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에게도 전능하시고 초월적이며 비가시적인 야훼의 실제가 여전히 와닿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는 야훼를 세상의 것으로 형상화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내면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싶었던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식할 없는 것은 믿지 못하던가 아니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인식할 없고 인식할 없으면 인지가 불가능합니다. 모세조차 하느님을 인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으로서 처음 전능하신 야훼를 마주하는 영광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분의 영광의 한가운데 있었을 뿐입니다. 모세가 것은 야훼의 영광의뒷모습뿐이었습니다. ‘뒷모습 영광의 잔광일 뿐입니다. 그것은 연못에 비친 달빛을 거나 마찬가지지요. 

 

하느님의 카이사르의 대비되는 말로써 분명이미지 연관됩니다. ‘카이사르의 동전에 새겨진 이미지이지만하느님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새겨진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형상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하느님의 이미지를 우리 몸에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하느님의 이미지가 우리 안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매우 모호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 고린 4:4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이미지를그리스도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이미지를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이미지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머리이십니다. 이는 사도 바울로가 예수를 하느님과 동등한 분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창세전부터 선재해 계심을 전제한 발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의 이미지대로 지음 받았다 해서 하느님과 동일 본질을 가졌다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간은 그분의 영광의 그림자만 지닐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2 고린 3:17

 

 

결국 사도 바울로의 말은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옮겨가고 변화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이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구체화된 것입니다. 말은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의 일치를 통한, 우리의 인격이 그분의 인격을 닮아가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우리 안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영광의 은총은 오직 개인적만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영광의뒷모습 것으로 만족했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영광은 우리에게변화 추동하는 힘입니다.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라는 말은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덧입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초월적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매우 인간적인 실존 방식으로 인간과 소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그리스도 안에있고, 그리스도처럼그분을 닮아 있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체화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내면에 투영되는 이기적인 이미지가 하느님의 이미지와 결합된다면 그것은 다른 자기중심적인 우상을 섬기는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로는 자기 안에 예수를 하느님의 이미지로 품고 있었던 사람이고, 그는 그분과의 일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겼던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매일의 속에서 어떤 하느님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요? 하느님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우리를 공허함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아무 생각 없음이나, 기대나 준비 없음은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의 무지로 가리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너무 막연하면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던 다른 이미지들로 내면이 혼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구체화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기도나 묵상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너무 신비주의적입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갈라 6:17

 

 

예수의 낙인 “τὰ στίγματα τοῦ Ἰησοῦ” 지울 없는 낙인과 같은 상처를 말합니다. 이러한 상처를 사도 바울로가 하느님의 이미지로 자신의 몸에 지녔다고 말합니다. 상처는 복음을 위한 그의 모든 노력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미지는 우리의 실존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봉사와 헌신을 통해 우리 몸에 각인되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러한스티그마타στίγματα, 상처 몸에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 때문에 아파해본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몸에 지닌 사람들입니다. 물론 인간 실존의 어려움 때문에도 우리는 상처받고 고통을 받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고통과 상처는 그런 것과 비교할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 단독자 깊은 고독 속에서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생겨나는 상처입니다. 하느님 밖에는 아무도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 만이 그것을 기억하십니다. 눈물과 아픔이 하나하나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우리 안에 낙인이나 문신처럼 새겨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미지인스티그마타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골로 3: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미지 그의 스티그마타를 몸에 지닌 사람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창조의 실존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세례 우리가 한번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지속성 가지고 계속 매일의 속에서 쇄신되며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성장은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우리 안에스티그마타 각인되는 것에 비례합니다. 그래야 인간은묵은 인간 버리고, “ 인간으로 그리스도와 합일에 이를 있습니다. 이를 우리가 교회 공동체와 함께 이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그리스도의 스티그마타 지니고, 그분의 영광의 빛이 우리의 모든 어둠과 아픔을 기쁨으로 상쇄시키는 그날까지, 이러한 신앙의 여정을 각오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9 (가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굳센 믿음으로 인내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출애 33:12-23

12 모세가 야훼께 아뢰었다. “이제 당신께서는 저에게 백성을 이끌고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파송을 받아 저와 같이 분이 누구신지 아직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너는 잊을 없는 이름, 너는 눈에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13 제가 정녕 당신의 눈에 드셨다면, 저의 길을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앎으로써 항상 당신 눈에 들게 해주십시오. 민족이 당신의 백성인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를 데리고 가서 너를 편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야훼께 다짐하였다. “만일 당신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도 여기를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하십시오. 16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저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어떻게 있겠습니까? 함께 가셔야만, 세상의 모든 백성보다 저와 당신의 백성을 우대하신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17 야훼께서 모세의 말을 받아주셨다. “너야말로 과연 마음에 드는 자요, 잊을 없는 이름이다. 지금 네가 청한 것을 들어주리라.”
18 모세가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자 19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 모든 선한 모습을 앞으로 지나가게 하며, 야훼라는 이름을 너에게 선포하리라.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 20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21 야훼께서 이르셨다. “여기 옆에 있는 바위 위에 있어라. 22 존엄한 모습이 지나갈 , 너를 바위굴에 집어넣고 내가 지나가기까지 너를 손바닥으로 가리리라. 23 내가 손바닥을 떼면, 얼굴은 보지 못하겠지만 뒷모습만은 있으리라.”

 

 

 

 

성시_시편 99

1    주께서 왕위에 오르시니,
.     민족이 떠는구나.
.     거룹들 위에 올라앉으시니,
.     땅이 흔들리는구나.
2    주님은 시온에서 위대하시고
.     만백성 위에 우뚝 솟으신 ,
3    만백성이
.     그의 높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리니,
.     그분은 거룩하시다.
4    능력의 왕이여,
.     당신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     공의와 법을 세우시어
.     야곱의 가문에 바른 기틀을 잡으셨습니다.
5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     그분의 발판 아래 엎드려라.
.     그분은 거룩하시다.
6    모세와 아론이 그분의 사제들,
.     사무엘이 그의 이름 부르는 사람이니
.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으면,
.     그분은 응답하신다.
7    구름기둥 안에서 그들과 말씀하시매
.     일러 주신 계명과 법을 그들은 모두 지켰다.
8    , 우리 하느님,
.     그들에게 대답해주셨습니다.
.     당신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벌하시면서도
.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9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     거룩한 아래 엎드려라.
.     우리 하느님은 거룩하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데살 1:1-10

1 바울로와 실바노와 디모테오는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살로니카 교회 여러분에게 편지를 씁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2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3 여러분의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을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 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택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이 그저 말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 성령 굳은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6 여러분은 많은 환난 중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본받았습니다. 7 그래서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신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방에 널리 퍼져 나갔으니 이야기는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에게 갔을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는 오히려 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1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날을 여러분이 고대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들이 널리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장차 닥쳐올 하느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실 분입니다.

 

 

 

 

복음서_마태 22:15-22

15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궁리한 끝에 16 자기네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 사람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하신 분으로서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을 압니다. 17 그래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아시고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의 속을 떠보느냐? 19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데나리온 닢을 가져오자 20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21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하고 말씀하셨다. 22 그들은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글모음 > 설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을 넘어 부활의 기쁨으로…”  (0) 2023.11.02
“우리는 이 가을에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요?”  (0) 2023.10.29
"어떻게...?"  (0) 2023.10.15
“삶의 우선 순위”  (0) 2023.10.07
“겸손의 찬가”  (0) 202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