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깨어 있음”과 “시례야(是禮也)”

James Chae 2023. 12. 3. 06:05

2023. 12.3. 나해_대림 1 주일

이사 63:19-64-8 / 시편 80:1-7, 17-19 / 1고린 1:3-9 / 마르 13:24-37

 

 

깨어 있음시례야(是禮也)”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이제 새로운 전례력 나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동안 마태오복음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묵상했다면 이번 동안 마르코가 전한 복음을 우리는 묵상하게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것입니다. 표현이 직설적이지만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심오하며, 꾸밈이 없지만 진솔한 마르코의 특징들을 우리는 묵상하게 것입니다. 예수의 공생애를 세례로부터 시작해서 빈무덤으로 끝을 맺는 매우 핵심적인 진술로 마르코는 예수의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해의 전례력의 시작을 종말의 장으로 유명한 마르코복음 13장의 결론 부분을 묵상하면서 시작합니다. 마르코의 결론은 매우 간단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는 아무도 없으니 모두 깨어 있어라!”입니다. 메시지를 끝으로 마르코 복음은 예수의 수난사를 이어서 기록함으로 마무리됩니다. 장에서 언급된 모든 예수의 복음이 깨어 있어라!”라는 말로 집약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종말을 기다리는계시 핵심입니다. 그럼 깨어 있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깨어 있다는 동사 “γρηγορέω 그레고레오 깨어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파수꾼이 깨어서 적들로부터 성을 지키듯이, 도둑이 들지 않도록 자기 집을 깨어 지키듯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음을 말합니다. 오늘 마르코복음은 길을 떠나는 주인이 종들에게깨어 있어라라고 명령하고, 말에 순종하여 깨어 있는 성실한 종의 상황을 예로 들어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밤을 3등분 했지만, 로마인들은 밤을 4등분 했습니다. 마르코는 이를 반영하여저녁’, ‘한밤중’, ‘ ’, ‘새벽으로 나누어 기록합니다. 낮의 시간을 생략한 것은 세상의 종말의 때를 밤으로 특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밤은 낮보다깨어 있기 힘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맡겨준 일을 성실히 하는 문지기는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어느 오든 상관없이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매일 밤을 이렇게 뜬눈으로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가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문지기의 실존이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존이라고 마르코복음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

이는 불교에서 마음이 어디에도 붙들림 없고 흔들림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평온한 해탈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부단한 수련과 수행을 합니다.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깨어 있음 통해 다다르는 경지입니다. 마르코가 말하는깨어 있음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깨어 있음 어떻게 육적인 잠만을 의미하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 그리고 번뇌에 휩쓸리면서깨어 있음 불가능합니다. 잠은 밤의 어두움에 침식당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이 완전한 잠에 빠진 상태입니다. 그곳에는 빛의 자리가 없습니다. 불교에서 수련과 수행을 통해 자신을 절제하며깨어 있음 통해 열반에 이른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함으로써 주어지는자기 비움 은총에 의하여깨어 있음 통해 자유 이릅니다.

 

어느 공자께서 주나라 주공을 모시는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시고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귀찮다는 듯이 공자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안다고 소문난 공자가 알고 보니 제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때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례야(是禮也)" "묻는 것이 예니라."라고. 이는 논어 [팔일] 3장에 기록된 것입니다. 뜻은 '()' 하나의 정해진 정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때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즉 자기의 ''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 물어 조화 속에서 깨닫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자신이 '' 가르치면서 자신이 아는 ''만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 완성해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강요하는 순간 ''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형식이 고정되고 정해지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강요될 '' 정신을 잃고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장례를 주도 면밀하게 잘하는 것이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바로 세우는 것은 결국 마음을 바로 세우는 있음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 깨어 있어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의 뜻을 유추합니다. '깨어 있음' 공자가 말한 '' 세워가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깨어 있음'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기다림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안다고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며 타자를 향해 열린 마음입니다. '' 세우기 위해 타자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타자로부터 들을 준비가 됐다는 것입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입니다. 질문은 듣기 위해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 '' 그러하듯이, 자신의 '무지無知' 깨닫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우며 함께 세워가는 과정입니다. 완전함에서 조금은 부족한 상태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 그것이 겸손한 상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겸손의 ''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언제부턴가 자기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할 사람은 독선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독선은 자기확증편향이며 깊은 어둠이고 빠져나올 없는 '개미무덤'입니다. 그것에 빠지면 자신만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몰락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갖추게 되었고 특히 언변과 지식에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1 고린 1:5

 

 

사도 바울로는 고린도전서 초입부에 고린토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그들이언변과 지식 뛰어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도 크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이어지는 많은 장을 할애하여 그들의 음행과 교만 그리고 분열과 다툼에 대해 꾸짖습니다. 고린토 교회는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사분오열로 분열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언변과 지식, 종말에 대한 믿음이, 그들이 풍성하게 받은 은총이 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그들은 고린토 교회를 세운 영적인 아버지인 사도 바울로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언변과 신념보다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어설픈 지식은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어설픈 믿음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 사랑이 없는 믿음이 고린토 교회를 무너지게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깨어 있음' 자기 수양을 통해 자기 자신만 완성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자처럼 타자에게 겸손히 질문하면서 경청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깨어 있음' 나의 각성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웃에 대한 각성 또한 포함되는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관심이 바로 '깨어 있음'입니다. 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밖의 세상을 직시하고 타자와의 관계성을 세워가는 것이 바로 '깨어 있음'입니다.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다른 세계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타자에게 관심을 가지려면 물론 자기 자신이 먼저 깨어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자를 자기 자신에게 맞추기 위해 우리는 확증편향의 기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자신 안에서, 자기의 문제에만 빠져서 허덕이는 사람은 타자에 대한 배려를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타자를 향해 깨어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깨어 있음' 나로부터 시작하여 타자에게로 순차적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소크라테스처럼 먼저 자신에 대한 '무지의 자각'에서 출발하여 타자와 함께하는 지혜에 이르기 위하여 서로 질문하고 도전하는 . 이것이 기독교적인 진리를 출산하는 '산파술'이며,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떠나는 주인의 명령을 들은 문지기는 단순히 그의 명령이 두려워서깨어 있어라라는 주인의 명령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넘어서는 상호 이해와 상호 신뢰의 관계가 아니면 결코 밤을 종은 깨어 있을 없습니다. 종은 주인을 알고 주인은 종을 압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깨어 있는 입니다. 이는 상호 존재의 자각, 사랑이 종과 주인 간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도깨어 있어라라는 명령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명령은 너무 무지막지하게 들립니다. 종말의 때는 아무도 없지만 깨어 있는 자에게 그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 주인이 오든 깨어 있는 종은 당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을 기다리는 것은 마지막에 있을 주인의 칭찬과 위로입니다. 

 

갈수록 밤은 어두워지고, 세상은 여기저기에서 고통과 한숨이 끊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종말의 징조들은 넘쳐나지만 여전히 끝은 언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며 여전히 전쟁 속에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 간의 역사적 앙금에서 시작된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도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월호의 진상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 있고, 이태원 참사의 고통은 아직도 정부의 철저한 외면 속에 1주년이 되었지만 전혀 개선의 여지도 없이 도시를 떠도는 신음소리가 되었습니다. 사조직인하나회 중심으로 일으킨 반란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하나회의 총수였던 사람을 추모하는 행사를 여는 역사적 아이러니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경제 지수는 이미 떨어질 없이 곤두박질치고 서민들의 등골은 쪼그라드는 어디에도 서민을 위한 정책은 전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부조리가 부조리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생존하고 있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처럼 묵묵히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오늘은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새벽이 오기 전의 밤이 무겁고 어두운 법입니다. 그러니 희망으로 세워지는 대림절이 되기 위해 기다림의 믿음으로 오늘을 이겨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때는 전적으로 그분의 몫이고 우리는 깨어 우리의 현재를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대림1 (나해)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주님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게 하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덕으로 새롭게 하시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63:19-64:8

63:19b64:1 ,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
.     산들이 당신 앞에서 것입니다.
12  나뭇가지가 불에 활활 타듯,
.     물이 펄펄 끓듯,
.     당신의 원수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     민족들은 당신 앞에서 것입니다.
23  당신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은
.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입니다.
34  일찍이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
.     일찍이 아무도 보지 못한 ,
.     당신밖에 어느 신이
.     자기를 바라보는 자에게 이런 일들을 하였습니까?
45  정의를 실천하고 당신의 길을 잊지 않는 사람이
.     당신 눈에 띄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당신께서 이렇듯이 화를 내신 것은
.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     처음부터 당신께 반역하였기 때문입니다.
56  우리는 모두 부정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     기껏 잘했다는 것도 개짐처럼 더럽습니다.
.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고
.     우리의 죄가 바람이 되어 우리를 휩쓸어갔습니다.
67  당신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는 자도 없고
.     당신께 의지하려고 마음을 쓰는 자도 없습니다.
.     당신께서 우리를 외면하시므로
.     우리는 각자 자기의 죄에 깔려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78  그래도 야훼여,
.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
.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89  야훼여,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     우리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는 마십시오.
.     굽어살펴 주십시오.
.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백성입니다.

 

작은 아래첨자로 쓰인 구절번호는 라틴어 성서에서 사용합니다.

 

 

성시_시편 80:1-7, 17-19

1    이스라엘의 목자여,
.     요셉 가문을
.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여,
.     귀를 기울이소서.
.     거룹 위에 좌정하신 분이여,
2    에브라임과 베냐민, 므나쎄 가문 앞에,
.     햇빛처럼 나타나소서.
.     힘을 떨치고 오시어,
.     우리를 도와주소서.
3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4    만군의 , 하느님,
.     당신 백성의 기도소리를
.     언제까지 노엽게 들으시렵니까?
5    당신 백성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     싫도록 눈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6    이웃들에게는 시빗거리가 되게 하셨고
.     원수들은 우리를 비웃습니다.
7    만군의 하느님,
.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17  당신 오른편에 계시는 ,
.     몸소 굳건히 세워 주신 그분을 붙들어주소서.
18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리니
.     우리를 살려 주소서.
.     당신의 이름을 불러 예배 하리이다.
19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고린 1:3-9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4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나는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갖추게 되었고 특히 언변과 지식에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6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에 깊은 확신을 가졌으며 7 모든 은총의 선물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받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8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을 맞이할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복음서_마르 13:24-37

24 “ 재난이 지나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고 25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26 그러면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것이다. 27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28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워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된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앞에 다가온 줄을 알아라. 30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2 그러나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33 때가 언제 올는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 34 그것은 마치 길을 떠나는 사람이 종들에게 자기 권한을 주며 각각 일을 맡기고 특히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는 것과 같다. 35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때일지, 혹은 이른 아침일지 없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큰일이다. 37 깨어 있어라. 너희에게 하는 말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글모음 > 설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상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라!”  (0) 2023.12.17
“모든 생명을 위한 토대”  (0) 2023.12.10
“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0) 2023.11.26
부조리  (0) 2023.11.19
“우유부단(優柔不斷)”  (0) 20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