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James Chae 2023. 11. 26. 06:02

 

2023. 11.26. 가해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에제 34:11-16, 20-24 / 시편 95:1-7 / 에제 1:15-23 / 마태 25:31-46

 

 

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어떤 개신교 교인이 제게 던진 질문입니다. 제가 성공회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질문은 분명 자신은 구원을 받았는데 당신은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그의 눈에는 제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인자함도 없는 독선으로만 제게 비쳤습니다.

 

구원,σωτηρία” 노예로부터의 해방이나 어떤 위급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소테리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느님의 구원 사역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그리스도론적인 용어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구원 오직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정리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로마 5:12

 

그러나 구원이란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원을 받을 상태가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 실존의 상태가 반드시 위기 가운에 놓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로는아담 그리스도론 주장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물이 사람 아담을 통해 상태에 놓여 죽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 이러한 위기에 사람들이 놓였으니 모든 세상을 위한 구원이 필요해집니다. 구원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논리적으로 성립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아담으로 인한 죽음의 상태에서 그리스도 사람을 통한 구원의 상태로 이끄신다는 . 그리고 이것을 믿으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며 로마서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것이, 사도 바울로는 구원을 믿음의 일시적인 현상이나 느낌과 감정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 13:11-12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해 로마서 5장에서 강조했던 사도 바울로는 13장에서는 믿음보다 행실에 중점을 빛의 갑옷 말합니다. 이는 논리적인 모순이 아니라 그가 말한 대로우리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라는 말에서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는 순간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점증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믿는 순간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날마다어둠의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 입으며 신앙의 길을 걸어갈 가능한 것입니다. 

 

실존주의철학으로 하이데거와 쌍벽을 이루는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기독교를계시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세상의 종말과 신성한 구원을 전제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 준비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 한마디로 야스퍼스는 예수의 가르침을 종말에 대한 계시와 구원에 대한 계시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은 세상의 끝으로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종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로 대치되는 종말을 말합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야스퍼스는 봤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말은 개인의 종말도 있고 세상의 종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말은 우리가 살아가며 보고 느끼는현실계 이상 지속될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죽음도 하나의 종말로 봅니다. 죽은 사람은 이상 현실계와 어떠한 연관성도 가질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이별의 관점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샤머니즘과 같은 토속신앙에서는 끊임없이 현세와 내세의 연결을 시도하지만 그것이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상호교환적인 실제 얻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전례력의 마지막인 오늘을 우리는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지킵니다. 그리고 오늘 메시지는 종말에 대한, 최후 심판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에 대한 것들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론의 최종 정리와도 같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제 새로운 세계에 왕으로 승좌 하심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심판의 메시지는 구원의 메시지와 비등하게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이제 심판자의 자리에, 왕좌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그가 하시는 번째 일은 심판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 잡게 할 것이다. 마태 25:32-33

 

 

다니엘이 예언했던인자 우리 그리스도이십니다. 앞에서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모든 민족들이라고 마태오복음은 말합니다. 여기에는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불교인이나 죄인이나 의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태오복음서는 독특한 구원관을 제시합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마태오 특수 자료입니다. 이는 마태오복음의 신학을 보여줍니다. 자비행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믿음도 신앙도 아닌 자비의 실천이 오늘 말씀에서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가장 작은 사람들이란 다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하나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 중에하나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란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여 추상성을 띄지만, “불쌍한 사람들 중의 하나 개인을 지칭함으로 매우 대상이 구체적이 됩니다. 마태오는 말을 중의적으로 사용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중의 하나 고난 받을 예수 자신을 뜻하면서 동시에 고통받는 개인을 뜻합니다. 그래서불쌍한 사람들 중의 하나 섬기는 것이 예수를 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비를 베푼 사람은 자신이 선한 일을 줄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에서 제외된왼편에 있는 사람들 자신들이 당연히 구원받을 줄로 생각하고 인자에게 따집니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마태 25:44) 이런 말을 유추해 보면 이들은 분명 종교행위를 열심히 했고, 예배에도 참석하고, 신심을 다해 하느님을 섬겼다는 것을 있습니다. 아마도 율법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염두에 발언일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신앙행위보다자비행 강조하셨다고 마태오는 기록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와도 일치하는 발언이 아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치료하고 위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구원받은 개인들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호세아서를 인용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마태 9:13, 12:7 / 호세 6:6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 평소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 일상이 되어 전혀 자신들이 자비를 베풀고 있는 줄도 알지 못할 정도로 자비행이 체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태오 복음서가 제시하는 구원의 조건은 우리의 눈높이 보다 높음을 있습니다. 이러한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구원받을 사람들이 것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심판의 날까지 종교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자비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구분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딜레마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로와 마태오의 가르침을 우리는 입체적이며 종합적으로 상관관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 자신들의 자비행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때의 구원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믿음은 은총으로 귀결되며 모든 자비행도 은총으로 귀결됨을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구원의 위에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웃에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종말이 때까지 아무도 정확히 없다는 점입니다. 종말이 두려운 것은, 심판이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무지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까지 아무도 구원을 장담할 없습니다. 이것이 마태오복음이 말하는 종말의 실존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고린 13:12

 

현실계가 완전히 종말을 고하는 순간, 우리는, 이거구나라고 모든 것을 아는 순간이 온다고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개인의 종말이든 세상의 종말이든 구분이 없습니다. 그때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노아의 때에 물이 발밑까지 들이칠 때까지 아무도 노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것을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모든 것이 심판의 불을 통과하지만믿음과 소망과 사랑 끝까지 남습니다. 그러나사람의 아들이 때에 과연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있겠느냐?”(루가 18:8) 루가가 전한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우리는 믿음을 지킬 있을까요? 정말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비행을 실천하며 견뎌낼  있을까요? 우리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을 견뎌낼 있을까요? 우리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계의 종말을 기쁨으로 감당해 있을까요?

 

입으로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 보상받고 칭찬받기 위해 가식으로 했던 모든 행위들이 현실계의 종말 앞에 산산이 부서지는 때가 반드시 것이라 오늘 말씀은 말합니다. 카를 야스퍼스는 과학의 합리적 사유와 사변적 신학이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모르는 것을 무리하게 이해하려 하고, 신비를 무리하게 설명하려 우리의 이성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노스의 미궁에 갇힌 것처럼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처럼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든지, 아니면 테세우스처럼 아리아드네가 아마 실타래 이용하여 나오든지 중의 하나입니다. 이는 초월과 계시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미궁을 빠져나오려면 막힌 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아니면실타래처럼 이어진 계시의 이끌림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인생의 미궁을 헤쳐 나올 유일한 길임은 분명한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전례력의 마지막을 이러한 종말에 대한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오늘. 우리는 오른편에 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잡아야 것입니다. 

 

흘러간 물은 다시는 물레방아를 돌릴 없다.”

처음 제주에 왔을 이우송 신부님을 통해 들은 말입니다. 자신이 게을러지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우칠 상기하는 말이 됐습니다. 같은 물이지만 흘러간 물은 이상 기회를 잡을 없습니다. 지금 있을 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습니다. 이것이 계시를 오늘에 살아내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말만 바라보고 현재를 무시하며 내세의 위로만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시간에 침투하는 종말을 순간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이, 오늘이 종말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없음 또한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과 그분의 은사를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은총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면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실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종말을 지금 매순간 살아내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으로 말미암아가장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세워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에페소서가 말하는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에페 1:19)라는 말이 새로운 절기력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실현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 연중34 (가해)

 

본기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만왕의 왕이 되셨나이다. 비오니, 세상에 자유를 주시어 주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통치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에제 34:11-16, 20-24

11 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 12 양떼가 마구 흩어지는 ,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나는 양떼를 돌보리라먹구름이 덮여 어두울지라도 사방 흩어진 곳에서 찾아오리라. 13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고 나라 나라에서 모아들여 본고장으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산으로 이끌며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람 사는 어디에서나 기를 것이다. 14 좋은 목장을 찾아다니며 기르리라.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이 목장이 되면 그들이 좋은 목장에서 쉬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산에서 기름진 풀을 뜯기도 하리라. 15 내가 몸소 양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 몸소 양떼를 쉬게 하리라. 야훼가 하는 말이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입은 것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나도록 먹여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주겠다[A].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

… 20 그래서 야훼가 말한다. 이제 몸소 살진 양과 여윈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리라. 21 너희들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쳐내고, 뿔로 받아 우리 바깥으로 쫓아 흩어버리기까지 하였다. 22 그러나 나는 양떼를 구해 주어 다시는 노략질당하지 않게 하리라. 내가 양과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리라.

23 내가 목자를 세워주겠다. 그는 나의 다윗이다. 그가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 24 야훼가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다윗이 그들의 영도자가 되리라. 야훼가 말하였다.

[A] 히브리어 본문: “멸망시키리라.”

 

 

성시_시편 95:1-7

1    어서 주님께
.     기쁜 노래 부르자
.     우리 구원의 바위 앞에서
.     환성을 올리자.
2    감사노래 부르며 앞에 나아가자
.     노랫가락에 맞추어 환성을 올리자.
3    주님은 높으신 하느님,
.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높으신 임금님,
4    깊고 깊은 속도 그분 수중에,
.     높고 높은 산들도 그분의 ,
5    바다도 그의 , 그분이 만드신 ,
.     굳은 땅도 그분 손이 빚어내신 ,
6    어서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느님,
.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     이끄시는 양떼,
.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1:15-23

15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A]하느님께서는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B]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A] 시편 110:1
[B] 시편 8:6

 

 

 

복음서_마태 25:31-46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32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것이다. 34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너희는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37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은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1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속에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언제 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러면 임금은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