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큰소리와 눈물로”

James Chae 2024. 3. 17. 07:00

2024.3.17. 나해_사순5주일

예레 31:31-34 / 시편 51:1-12 또는 시편 119:9-16 / 히브 5:5-10 / 요한 12:20-33

 

 

큰소리와 눈물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은 히브리서를 중심을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서는 오랫동안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로의 서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서방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서방교회가 합의에 이른 것은 397 3 카르타고 공의회에서였습니다. 이때부터 교회의 정경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히브리서는 매우 늦은 시기에 정경이 책입니다. 물론 종교개혁 시기에 마르틴 루터는 히브리서의 정경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논란이 많은 책입니다. 현재에는 바울로의 서간이라는 데는 학자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내용은 범주에서 사도 바울로의 신학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히브리서의 내용은 뜻이 심오할뿐더러, 세련되고 정교한 표현에 그리스적인 수사학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문체와 탄탄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편지와 다른 가장 특징은 예수에 대해대사제 그리스도론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히브리서만의 독특한 그리스도론입니다.  저자는 분명 구약성서에 깊은 조예가 있는 그리스계 유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추측됩니다. 구약성서를 우의적이고 예형적으로 주석하고 있고, 상반된 개념을 대조시키는 수사법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와 미래, 그림자와 실체, 지상과 천상 . 어떤 학자는 히브리서를헬레니즘의 옷을 입은 유다이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히브리서에는 헬레니즘 사상과 유다이즘의 사상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형식은 편지의 형식을 띠나강론집 가깝다 있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은 특정 공동체가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 그리스도인들로 보면 무난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뜨거운 신앙을 가졌다가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서 점점 신앙의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권태기에 빠진 그리스도인을 염두에 것입니다. 결국 그때의삶의 자리 우리 현대 교회들이 처한삶의 자리 신앙에 있어서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의 권태기 아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흔하게 경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히브 5:7-8

 

문장에서 있는 특징은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그분께서 육신의 한계 속에서큰소리와 눈물 기도하셨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인간 육체의 한계성과 인간 실존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셨다는 뜻입니다. 성육신하신 하느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이단들의 주장처럼 반신반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분의 마음을, 복종하는 마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합니다. 간절한 기도, 치성致誠을 다한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치성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렇게 인간됨을,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직접 경험하심으로완전한 복종 배우셨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이는 케노시스κένωσις, 자기 비움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런 분이시니 그분은 다른 인간들, 하느님께 복종하는 다른 인간들을 구원시킬 권한을 가지신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인간들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바로 제사장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이러한 대사제의 역할을 감당할 권한을 하느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얻어진 권한입니까? 바로 성육신 하심으로, 철저히 인간처럼 낮아지심으로, 완전한 복종으로 부여된 권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제 영원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한평생 살다 사라져 가는 필멸의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킬 영원한 대사제을 우리는 은총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그러한 대사제의 삶을 본받고 의지하며 하느님께 철저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대사제 그리스도론 핵심입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며, 성실하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대사제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는 공생애 동안 인간이 겪는 모든 실존적 아픔과 고통, 그들의 희로애락을 모두 직접 경험하시고 이해하신 분이시라고 히브리서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떠한 처지에 놓였든지 모든 믿는 자들에게영원한 구원의 근원 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비하신 대사제을 믿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뜨거운 신앙을 가졌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둘씩 교회에 흥미를 잃고, 하느님조차도 멀리하게 되는 데는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모든 개인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모든 개인들의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 힘든 상황도 어떤 사람에게는 거뜬히 극복할 있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이 아닌 우리의 영이 무기력해지거나, 다른 것들로 인해 압박을 받을 우리는 평소보다 더욱더 연약해지고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이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사순절의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장 도전은 아마도 신앙의 권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고, 말씀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상태. 예배도 싫증 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가식적으로 느껴지며, 찬양은 위장된 믿음의 표현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상태. 진짜 문제는 우리가 신앙의 권태에 빠졌는데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에 대한 대화도 어떠한 처방도 효력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봉착하면 감정적 느낌이나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곤 합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러한 상태에 대해 출애굽기 33 5 말씀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전하여라. ‘너희 고집이 센 백성아,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같이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멸종시킬 것이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모든 패물을 몸에서 떼어버려라. 그러면 내가 무엇이든지 알아서 해주리라.’” 출애 33:5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씻을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아주 삭막한 곳이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화려하게 자신들의 몸을 아름다운 목걸이와 팔찌, 반지, 장식품 등으로 치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런 것들을 몸에 지니며 모종의 위안을 삼은 듯싶습니다. 이집트에 대한 향수와 남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과시욕으로 자신들을 치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영적인 초라함을 직접 대면하기 싫어서 자신을 가식으로 치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은 죽어가는데 몸을 치장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었을 까요? 그런 화려함이 시내산에서 야훼를 예배하는 동안에 필요했을까요? 허무감과 공허함 그리고 신앙의 위기감과 실존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들을 세속적 화려함으로 인도한 같습니다. 스스로의 무능과 비천함을 깨닫는 영의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세상적 화려함과 안락으로 관심을 틀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세속적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죽어가는 감성을 다시 살리려 했고, 자기만족적인 것으로 그들의 느낌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극은 점점 자극을 갈망하게 되고,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르는 법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화사한 옷과 장식으로는 그들의 영의 무기력함을 깨울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외적인 것으로 아무리 신앙을 덧입혀도 한번 굳어버린 믿음은 결코 다시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높여서 남에게 대접받고 싶어서 화려하게 치장을 해도 그들의 영혼은 채워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길 바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든 패물을 몸에서 떼어버려라.” 몸을 치장하던 모든 가식들이 사라지고 자신의 영혼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대면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몸을 치장한 들뜬 분위기에서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착각했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이 벌거벗겨진 상태에서는 자기의 초라한 영혼만을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 이르면 인간은자기의 비참만을 알게 되고, 그것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이런 사람은 남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조차 없는 상태가 됩니다. 남을 판단할 힘도 남과 비교할 힘도 없어집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비참함만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혼이 정화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째 과정입니다. ‘감성의 정화 통해 생명의 영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신앙의 권태기 빠진 사람의 다른 특징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시키는 것입니다. 자신이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의 투사입니다. 자기 안에 불편한 것이 남을 통해서 보이면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험담과 불평이 입을 더럽힙니다. 자기반성보다는 자기 방어적이 되어 세상을 향해 자신의 감정을 마구 투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세상이 자기 말고는 모두 잘못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면 반대로 세상이 모두 자기를 반대한다고 생각하여 공항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도가 되면 신앙의 권태기를 넘어 완전한 신앙의 침체기에 들어선 것이지요. 세상의 모든 일이 초보의 단계가 있고 시간과 기술의 숙련에 의해 점점 중급, 고급으로 성장해 가듯이 우리의 영도 그러한 성장 과정을 겪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도 다음과 같이 신앙의 권태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말할 수가 없어서 육적인 사람, 곧 교인으로서는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고 젖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아직도 그것을 소화할 힘이 없습니다.” 1 고린 3: 1-2

 

분명히 젖먹이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소화시킬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젖을 먹어야 성장합니다. 그러나 성장할 때가 되어 젖을 떼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젖먹이 신앙에 머문 사람에게는 반드시 신앙의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기간이 길어지면 완전한 침체기에 접어듭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영이 아사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을 모두 직접 경험하셨던 주님께서도 그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큰소리와 눈물 기도하셨을까요? 대사제이신 분이 오직 자기를 위해서만 믿음의 한계 상황에서 그렇게 기도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처한 실존의 아픔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그렇게큰소리와 눈물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대사제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갇혀 있는 우리의 영은 언제든지 감정과 이성에 의해서 유린될 있는 상태에 놓일 있습니다. 때론 감정적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이성적 판단의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치중립적인 영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영은 기도와 말씀으로 성장하고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약화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유지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적 권태기는 점점 길어지기만 합니다. 신앙의 능력은 찾아볼 없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영을 광야에서 유기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를 위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큰소리와 눈물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기도가 아직 유효하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희망을 여기에서 갖게 됩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신 영원한 대사제로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질고를 대신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사순절, 우리의 순례가 중반을 넘어서 이제 십자가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십자가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를 우리가 제대로 직면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복종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께 복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대사제이신 예수님께 복종함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위해큰소리와 눈물 기도하신 그분의 은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길이 힘들지만, 이미 주님께서 모두 경험하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가신 길입니다. 그러니 자비로운 대사제이신 그분을 의지하여 순례의 길을 마무리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러한 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 안에 소중한 영들을 깨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제대로 바라볼 있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사순5 (나해)

 

본기도

우리의 구원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바쳐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나이다. 비오니, 연약한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시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바쳐진 씨앗으로 살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31:31-34

31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 32 계약은 백성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이집트에서 데려내오던 때에 맺은 것과는 같지 않다. 나는 그들을 것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귀담아들어라. 33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마음에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다. 34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성시_시편 51:1-12

1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어지신 분이여, 죄를 없애주소서.
2    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3     내가 알고 있으며
.     잘못 항상 앞에 아른거립니다.
4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지은 ,
.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몸입니다.
  벌을 내리신들 말이 있으리이까?
.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습니다.
5     몸은 중에 태어났고,
.     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6    당신은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7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희게 되리이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소서.
.     꺾여진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9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     모든 허물을 없애주소서.
10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주시고
.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주소서.
11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옵소서.
12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     변치 않는 마음, 안에 굳혀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5:5-10

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자리는,
.   “
너는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   
시편2:7
하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6 성서의 다른 곳을 보면,
.   “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이다.”
.   
시편 110:4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8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대사제로 임명받으셨습니다.

 

 

 

복음서_요한 12:20-33

20 명절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왔던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 사람도 몇이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에서 필립보에게 가서선생님, 예수를 뵙게 하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을 하고 사람이 함께 예수께 가서 말을 전하였다. 23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정말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27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것이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때에 하늘에서내가 이미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29 거기에 서서 소리를 들은 군중 가운데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사가 예수께 말하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온 음성이다. 31 지금은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32 내가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