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나해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_연중34주일
사무하 23:1-7 / 시편 132:1-12(13-18) / 묵시 1:4하-8 / 요한 18:33-37
“아무튼 네가 왕이냐?”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아무튼 네가 왕이냐?” οὐκοῦν βασιλεύς εἰ σύ;
이 말은 당신이 지금까지 주장한 대로 당신이 바로 그 왕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대로 예수가 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을 회피합니다. 대신 예수의 말에서 혐의점을 찾으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기소한 내용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건 로마 황제에 대한 반란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예수께서는 오히려 빌라도가 자신을 왕이라고 언급했다고 맞받아치십니다. 빌라도 입장에서는 누가 처음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겁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종종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빠”라고 종종 부르셨습니다. 이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매우 간접적으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암시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주장했다 하여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건 유대법에 신성모독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법에 따라 그를 죽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도 그들은 예수를 로마의 법정에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유대법에 따라 돌팔매질로 죽일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스테반 부제는 그렇게 돌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선조들이 많은 선지자를 그렇게 대했던 사실을 그들은 알았기에 그러한 방법으로 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의 민심을 누그러트리지 못할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회적으로 예수를 죽이기를 원했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추종하던 민중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길 원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그를 보면 어리석은 민중이 깨달음을 얻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소 내용을 뒷받침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빌라도도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예수의 말에서 협의점을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빌라도가 예수를 왕이라고 칭했다고 말하니 겁 많은 빌라도 입장에서는 정말 식겁했을 겁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요한 18:36
예수께서 언급하신 “왕국”이란 헬라어 “βασιλεία바실레이아”는 “왕국”이란 의미와 “왕권”이란 의미가 동시에 있습니다. 하나는 장소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통치권을 뜻합니다. 장소적 의미라면 이 세상과 분리된 왕국을 의미하고, “왕권”을 의미한다면 이 세상을 포함한 하느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학자들의 의견도 나뉘는데 우리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여기에 포함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이 세상”은 가시적인 세상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은 초월적 세상에 대비되는 현세적 세상을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적 방법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고 억압하여 생기는 권위이지만 하느님의 왕국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의 기소 내용에 예수께서 정면으로 반박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했으므로 로마의 반란죄에 해당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방법이고 하느님의 왕국은 하느님만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높은 자가 오히려 남을 섬기고 희생해야 하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요한 18:37
이는 예수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왕이 아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왕정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자기 고백적 답변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이 세상적 방법으로 세상을 전복하러 오신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라는 말씀은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파송됐음을 뜻합니다. 보내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파견을 받은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수를 파송한 이유는 바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그 진리는 하느님의 구원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전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이로써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에 관해 증언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의 핵심 구절인 3장 16절과도 일치하는 주장입니다. 지금 이 증언을 듣는 빌라도도 이 증언을 귀담아들으라고 말하십니다. 만약 빌라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로마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이러한 예수의 진리의 메시지에 빌라도는 오히려 “진리가 무엇이요”라고 반문을 하며 예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를 앞에 두고 빌라도는 진리를 저버린 것입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 빌라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니 정말 진리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빌라도에게 여느 재판들처럼 예수를 재판하는 것도 그의 일상의 일부분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예수 말고도 많은 죄인들을 다루는 재판을 열었을 것이고 오늘 재판도 그의 업무 중 하나였을 겁니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는 어쩌면 이러한 일에 더 진지하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이유로 법정에 다녀오신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법정 분위기와 다르게 법정이 매우 분주하고 혼잡하며 사무적이고 형식적이라고 말합니다. 선고도 너무 간단하고 판사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자신의 케이스는 수많은 케이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엄중한 형사재판의 경우는 다르겠지요. 우리의 복음서는 예수에게 초점이 맞춰져 기록됐으므로 예수 중심으로 기록됐지만,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예수의 케이스는 그냥 그의 일상의 많은 재판들 중 하나일 뿐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일상의 평범성이 때론 우리로 하여금 빌라도처럼 진리를 가볍게 여기게 할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은 보여줍니다. 진리를 앞에 두고도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 빌라도. 진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자신의 판단을 유보했던 빌라도. 어쩌면 이러한 빌라도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고 일상에 함몰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일상성이 깨지는 일이나 사건이 터져야만 그제사 우리는 바쁜 우리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는 일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병, 사고, 사건, 재난 등…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당황, 회피, 책임전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빨리 다시 일상성을 회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속에서도 우리는 진리를 놓치고 문제 해결에만 또 전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리는 매 순간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을 너무 쉽게 간과합니다. 그러니 고삐 풀린 말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판단하고 생활합니다. 진리의 고삐를 하느님께서 잡아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언제든 길을 잃을 수 있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진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평범성이 오히려 진리를 삼켜버린 것입니다. 아니 진리가 너무나 평범해서 그 가치를 모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앞에 두고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던 빌라도처럼 나중에 후회할 일들을 너무나 자주 하며 살아갑니다. 아마도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아차”하며 깨닫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빌라도처럼 늦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재갈과 고삐를 채는 것은 말에게 고통일지는 모르겠지만, 재갈과 고삐가 없으면 말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게 됩니다. 진리는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불편하고 귀찮을 때가 많지만, 사실 그 진리가 없으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읽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고삐를 쥐고 계신 분이 진정 우리의 왕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집을 부리면 부릴수록 하느님께서는 그 고삐를 더 타이트하게 잡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그분이 사랑하시기에 때론 채찍질도 마다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왕을 태운 말의 운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진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온 인류가 그토록 찾고 싶고, 알고 싶었던 그 진리가 우리의 왕이심을 빌라도의 법정을 통해 깨닫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사람답게 살아갈 힘을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얻습니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영원함을 이 시간 선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 연중34주 (나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은 우리 주님이시며 왕이신 그리싀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시나이다. 구하오니, 죄로 인하여 갈라진 이 세상을 주님의 온유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무하 23:1-7
1 이것은 다윗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 야곱의 하느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요,
. 이스라엘의 수호자가 귀여워하시는 자,
. 이새의 아들 다윗의 말이다.
. 가장 높으신 분이 세우신 영웅의 말이다.
2 야훼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시어 말씀하셨다.
. 당신의 말씀을 내 혀에 담아주셨다.
3 야곱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 이스라엘의 바위 되시는 이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는 자,
.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왕노릇 할 자,
4 그는 아침에 터져 오는 햇빛,
. 구름이 걷힌 아침의 해 같아,
. 이슬을 머금은 푸성귀가 땅에서
. 이 빛을 받아 자란다.”
5 야훼께서 나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고,
. 조목조목 잘 지켜주셨는데
. 하느님께서 붙드시는 나의 왕실이 어찌 흔들리랴?
. 하느님께서 나를 좋아하시어 번번이 구해 주셨는데,
. 나의 왕실이 어찌 번성하지 않으랴?
6 그러나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자들은
. 마치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
. 사람들이 집었다가도 곧 내버린다.
7 쇠꼬챙이나 창대를 가지지 않고는
. 건드리지 못할 것들,
. 불에 살라 태워버릴 수밖에.
성시_시편 132:1-12(13-18)
1 주여,
. 다윗을 생각해주소서. ◯
.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소서,
2 주님께 맹세하며,
. 야곱의 전능하신 분께 선서하며 ◯
.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 “주님 계실 장막을 마련하기까지 ◯
. 야곱의 전능하신 분이 계실 곳을 찾을 때까지,
4 나는 내 집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
. 잠자리에 들어 편히 쉴 수도 없습니다.
5 눈붙이고 잠들지 못하겠습니다. ◯
. 눈시울에 선잠조차 붙일 수가 없습니다.”
6 계약궤가 있다는 말을 에브라다에서 듣고 ◯
. 야알 들에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7 그분 계시는 곳으로 들어가자. ◯
.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자.
8 주여, 당신 쉬실 곳으로 가십시오. ◯
. 당신의 힘 깃들인 계약궤와 함께 가십시오.
9 당신의 사제들은 정의의 옷 펄럭이고 ◯
. 당신을 믿는 이들 입에서는
. 기쁨의 환성 터지게 하소서.
10 당신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맹세 ◯
. 몸소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물리치지 마소서.
11 주께서 다윗에게 하신 맹세, ◯
. 어길 수 없는 진실한 맹세이십니다.
¶ “네 몸에서 난 후손을 ◯
. 너에게 준 왕좌에 앉히리라.
12 네 후손이 나와의 계약을 지키고
. 내가 가르쳐 준 법대로 살면 ◯
. 대대로 네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리라.”
[13 주, 시온을 택하시어 ◯
. 여기에 계시기로 정하시며 이르기를,
14“이 곳은 영원히 나의 안식처, ◯
. 여기가 좋으니 나 여기 살리라.
15 시온에서 먹을 복을 듬뿍 내리고 ◯
. 그 가난한 자들을 배불리 먹게 하리라.
16 그 사제들은 구원의 옷을 입고 ◯
. 신자들은 즐거운 환성을 올리리라.
17 여기에서 다윗이 뿔이 돋아나게 하고 ◯
. 내가 세운 왕의 등잔에 불을 켜 주리라.
18 그의 머리에는 빛나는 면류관을 씌워 주고 ◯
. 그의 원수들에게는 누더기를 입혀주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묵시 1:4하-8
4 …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과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신께서, 5 그리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땅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6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 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7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다니 7:13
.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 가슴을 칠 것입니다. 즈가 12:10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_요한 18:33-37
…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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