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 다해_대림3주일
스바 3:14-20 / 이사야 첫째 송가(이사 12:2-6) / 필립 4:4-7 / 루가 3:7-18
“주님의 길”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선포된 복음서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설교 중 일부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읽었던 1절에서 7절의 말씀을 먼저 알지 않으면 오늘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루가복음 사가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을 마치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하듯이 기록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1절과 2절에서 요한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을 나열합니다.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티베리우스 로마 황제, 본티오 빌라도 유다 총독,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그 동생인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의 영주 필립보, 아빌레네의 영주 리사니아스, 대제사장 안나스와 카야파 등등….. 이들은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황제와 왕과 총독과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권력과 부의 정점에 있었던 자들이지요. 루가가 그들의 이름을 상세히 나열하고 이에 대비해서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활동을 소개한 것은 이런 대비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들은 왕궁의 사람들이었지만 세례자 요한은 광야의 사람이었습니다. 광야는 권력과 부와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곳이지요. 루가 사가는 하느님의 역사적 개입이 당대의 유력한 권력층과 엘리트층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를 통해 시작됐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지만 하느님은 완전히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키신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하느님의 계획은 위가 아니라 바로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그곳이 바로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광야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데서 정점을 이룹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교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최고의 회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등장은 바로 하느님의 진노가 임박했음을 말합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다”라는 표현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회개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미루면 단숨에 나무밑동이 잘려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급박한 회개의 상황을 강조한 것입니다. 회개를 위해서는 더 이상 망설이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했던 롯처럼 말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곧 주님의 오심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주님을 모실 준비는 우리의 행실과 마음과 습관을 고치고 방자한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야 함을 뜻합니다. 비워지지 않은 영혼은 결코 자신을 비워 육신을 입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맞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 마음이나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우리의 행실과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완전히 비우고 온전한 새로운 “현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다음에만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와 똑같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세례 후보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행실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받기 이전의 습성이나 습관, 나쁜 행실을 완전히 고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세례는 보류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러한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세례가 마치 입교식처럼 하나의 형식으로 생각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가 바로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교리공부처럼 각인이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따르는 덕목은 바로 자선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는 말합니다. 이전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거듭납니다. 남을 배려하게 되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에 함께 동참합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가 3:5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이뤄지는 새로운 창조 질서의 회복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선한 뜻에 따라 이 세계가 다시 정화되고 새롭게 회복됨을 뜻합니다. 그래서 너와 나가 우리가 되고, 높은 자와 낮은 자가 평등해지며, 많이 가진 자도 적게 가진 자도 모두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평등이 아니라 하느님의 평등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세상은 모두가 평평합니다. 높은 곳도 낮은 곳도 없이 모두 평평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시각입니다. 인간의 시각은 중요한 것은 앞에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시선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불평등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이 하느님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발견하게 된 “불평등의 소실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선으로는 세상은 모두 평평합니다. 인간 만이 높고 낮음을 따집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인간의 소유로는 살아갈 수 없는 가장 쓸모없는 광야라는 장소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오직 삶과 죽음이란 경계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왕도 평민도 노예도 광야에서는 모두 초라해 보입니다. 광야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허무로 만듭니다. 그 뜨거운 햇볕과 건조한 바람은 모든 생명을, 모든 화려한 것들을 말려버립니다. 광야로 나가봐야만 우리는 우리 인간이 “현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 실존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장소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이고 우리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가졌어도 광야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입니다. 많은 소유가 광야에서의 생존을 오히려 불가능하게 합니다. 광야에서는 물과 그늘과 간단한 음식과 몸을 보호할 옷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우리의 모든 불필요한 것을 벗어버리는 곳이고,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곳입니다.
이러한 비움이 곧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두 벌 옷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남과 나누고, 남의 것을 탐하거나 자신의 분수 이상을 원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밟고 오실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 안에 열린 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마음의 길을, 행실의 길을 준비할 때 주님께서 그 길을 통해 우리 안에 은총으로 오십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이 말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이 광야에서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그 길을 예비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허무와 공허에 쉽게 빠지고 맙니다. 신앙의 회의와 불신은 바로 이러한 공허와 허무에서 나옵니다. 이런 공허와 허무에 처한 사람은 외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그러나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자기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회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됩니다. 회개는 단순히 마음이나 생각,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행실을 바꾸고 구체적인 비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움과 착한 행실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요즘 시국이 너무나 혼란스럽고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의 표정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자신들의 의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어린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저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386세대가 만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제 우리의 자녀들이, 귀여운 자녀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망쳐놓은 지점에서 그들은 광야로 스스로 나가서 수천 년 전 이사야의 외침처럼 우리 기성세대를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루가 3:4
자유를 향한, 정의를 향한,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어린 세대의 외침이 곧 이사야와 세례자 요한의 외침입니다. 우리 각자가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또한 행실을 바르게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어린 세대들의 외침에 ‘아멘’하고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는 해이지만, 이 땅은 우리 어린 세대들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우리 자신을 부끄러움에 버려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의 편견들을 비워내고 우리 안에 주님께서 오시도록 우리 마음속에 훤히 뚫린 주님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그 길이 우리 안으로 먼저 뚫리고 또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으로 확장되도록 함께 기도하며 그 길을 만들어 갑시다. 이 대림절이 우리 안에 하느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주님의 대로를 예비라는 기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성숙한 시민이 성숙한 대한민국을 만들며, 행실이 바른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대림3주 (다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죄악으로 인해 선이 가려진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자를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모든 불의와 부정을 성령의 불길로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스바 3:14-20
14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 이스라엘아, 큰소리로 외쳐라.
.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15 야훼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 너를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셨다.
. 이스라엘의 임금, 야훼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16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이렇게 일러주어라.
. “시온아, 두려워 마라.
. 기운을 내어라.
17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 네 안에 계신다.
.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18“나는 너에게 내리던 재앙을 거두어들여
. 다시는 수모를 받지 않게 하리라.
19 그 때가 되면,
. 너를 억누르던 자를 다 없애버리고
. 절름발이는 고쳐주며
. 길 잃은 자들을 찾아내어
. 고국으로 데려오리라.
. 그 때가 되면, 온 세상에서
. 내 백성은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20 그 때가 되면,
. 내가 너희를 데려오리라.
. 너희를 이리로 모아들이리라.
. 내가 너희의 면전에서 너희에게 광복을 안겨줄 때,
. 너희는 세계 만방에서
.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성시_이사야 첫째 송가 (이사 12:2-6)
2 진정 나를 구원하실
. 분은 하느님이시니, ◯
. 내가 그를 의지하고
.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이시며, ◯
. 나의 구원이십니다.”
3 그러므로 너희는 기뻐하며 ◯
.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4 그 날 너희는 이렇게
. 감사의 노래를 부르리라. ◯
. 야훼께 감사하여라.
. 그의 이름을 외쳐 불러라.
¶ 그가 하신 큰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
. 그 높으신 이름을 잊지 않게 하여라.
5 그가 큰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며, ◯
. 그 모든 일을 온 세상에 알려라.
6 수도 시온아 기뻐 외쳐라. ◯
. 너희가 기릴 분은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필립 4:4-7
4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복음서_루가 3:7-18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8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 하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마라. 사실 하느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10 군중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1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요한은 “정한 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마라.” 하였다. 14 군인들도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다.
15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러나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머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17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18 그 밖에도 요한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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