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 나해_토_모든 별세자의 날/ 제주우정교회 설립 22주년
지혜 3:1-9 / 시편 23 / 로마 5:5-11 / 요한 5:19-25
“그리스도의 용사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22년 전 당시 신부이셨던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님께서 가정 교회로 시작한 제주교회가 이제 스물두 살이란 어엿한 청년이 됐습니다. 당시에 제주기독선교회관을 빌려서 설립예배를 드렸고 “제주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3번에 걸친 예배처소의 이사 후에 이렇게 영구터전을 잡은 지 이제 2년이 넘었습니다. 작년 9월 19일에 축성식도 가졌습니다. 제주우정교회 설립 21년 만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고 또한 많은 분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대부분의 이전 신자들은 “휴면” 상태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이름도 한일성공회의 우정과 화해를 상징하며 “제주우정교회”가 됐습니다.
2002년 11월 4일에 설립됐으니 “모든 별세자의 날”보다 이틀이 지난 후입니다. 아마도 제주 4.3을 염두에 두고 “모든 성인의 날”이 아니라, “모든 별세자의 날”을 주보성인으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로 세워진 제주우정교회. 저도 3년 전에 부임할 당시에 왜 “모든 성인의 날”이 아니라 “모든 별세자의 날”일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성인의 날”은 뭔지 모르게 부활의 희망과 기쁨이 느껴졌지만, “모든 별세자의 날”은 왠지 어둠과 우울한 느낌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형동 성당에 조그만 기도실을 마련하고, 기도를 시작하면서 저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됐습니다. 4.3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가면 갈수록 저의 처음의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갔습니다. 제주 4.3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이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선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대한성공회 유일의 “모든 별세자의 교회”가 된 이유입니다. 누군가는 하느님을 모르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듣고 심정아 작가는 “천 개의 못자국”이란 작품을 우리 교회를 위해 제작하여 봉헌해 주셨습니다. 부활과 고난을 함께 표현한 이 작품은 천 개의 못자국을 통해 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짧은 기간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처받은 영혼들, 억울한 죽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이제 “한일 우정의 집”이라는 기도하는 집까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곳을 기도하는 곳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영성을 회복하는 곳으로 만들 가는 것은 저와 우리 교우들의 사명이 됐습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이 산하에 스며있는 슬픔과 아픔을 품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 우리의 힘이 닿는 데까지 그러한 사명을 잘 완수해 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비록 적은 교인들과 아직 훈련받고 준비된 교인들이 적은 상태이지만, 주님께서 주신 몫만큼 우리가 게으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성실히 잘 감당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2025-2026 전례력을 통해 하느님께서 세워주실, 또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귀한 일꾼들이 세워질 것 또한 믿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5명의 교회위원들이 세워진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저와 교회위원회는 한 마음으로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해 갈 것입니다. 성당과 피정의 집이란 기도의 자리가 갖춰졌으므로 이제 앞으로 2년 동안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의 중재자가 되고, 하느님의 제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미래를 견인할 귀한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건의 훈련을 통해 이러한 자리에 설 사람들을 찾고 기도할 것입니다.
“야훼여, 당신의 용사들을 보내주소서!” 요엘 4:11 b
2025-2026년을 놓고 기도하며 선교의 비전을 이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세우는 일이, 또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주교회”에서 “제주우정교회”로 성장한 우리 교회는 “우정”이란 말에 걸맞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붙여진 “우정”이란 말은 하느님께서 제자들과의 관계성을 새롭게 정의해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 성공회의 화해와 우정의 관계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제주선교의 사명을 되새기게 하는 말입니다. 제주도민들은 복음 전도의 대상들이 아니라 우리와 우정을 나눌 친구들입니다. 친구를 위해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우정입니다. 우정은 상호 평등과 상호 존중,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 말입니다. 친구 사이에 갑과 을이 생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우정이 아닙니다. 요엘이 외친 야훼의 용사는 무기를 들고 적들을 쳐부수는 자들이 아니라 우정과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는 용사들입니다. 이러한 용사들은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중재가가 되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주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것처럼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은총이지만 경건은 신앙인이 마땅히 하느님 앞에 가져야 할 자세이며 도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세워가야 할 경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피정을 통한 기도 훈련과 말씀 훈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상기도, 향심기도, 묵주기도, 화살기도, 예수기도 등 다양한 기도의 훈련을 그리스도의 용사들은 받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앞으로 하나씩 함께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에 훈련도 없이, 기도와 말씀의 무기도 없이 용사들을 내보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또 훈련된 사람들을 우리에게 동역자로 보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별세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별세자들 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 있으나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눈에 보인 것을 위해 기도하든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기도하든지 그리스도의 용사들은 반드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풍파 속에서 우리는 좀처럼 견뎌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의가 어둠에 가려진 이 종말의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그리스도의 용사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그리스도의 용사답게 당당하게 일어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좀 더 넓은 마음 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모든 어둠들과 아픔들에 짓눌려 움츠려드는 우리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것을 돌파하는 부활의 능력으로 당당한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부르심의 은총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11.2. 모든 별세자의 날
본기도
영원하신 주 하느님, 모든 생명을 지으시고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나이다. 모든 별세한 이를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에게 영원한 빛과 평화를 주시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상통하며 마침내 영광 속에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지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이 받는 고통은 후에 받을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 그들이 당신 뜻에 맞는 사람들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6 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 그들을 번제물로 받아들이셨다.
7 하느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 그들은 빛을 내고
. 짚단이 탈 때 튀기는 불꽃처럼 퍼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 주님이 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다.
9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안에서 살 것이다.
.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뽑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성시_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
.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놀게 하시고 ◯
.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
.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
.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
.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
.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5:5-11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서_요한 5:19-25
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 일도 보여주실 것이다.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22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24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25 정말 잘 들어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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