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빈자의 영성, 빈자의 복음”_2024.12.22. 다해_대림4주일

James Chae 2024. 12. 22. 05:05

 

2024.12.22. 다해_대림4주일

미가 5:1-4 / 루가 1:46-55(성모송가) / 히브 10:5-10 / 루가 1:39-45(46-55)

 

빈자의 영성, 빈자의 복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우리가 부른 성시 성모 마리아 송가는 마치 오페라의 장엄한 아리아를 연상시킵니다. 장면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노년에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이 무대 가운데 있고 문이 열리며 사촌 동생인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샬롬이라는 마리아의 인사말에 엘리사벳은 자신의 속에서 세례자 요한이 뛰노는 것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리아를 향하여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노래에는 자신의주님 잉태한 마리아에 대한 위로와 칭송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비천한 여인이 가장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육신 하신 하느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순종한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이내 엘리사벳은 침묵하고 다음은 놀람과 두려움과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마리아가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시작되는 송가는 성서에 기록된 송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서 세상의 모든 신분과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감사과 찬양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 마리아 송가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어떠한 것인지를 루가 사가의 관점에서 묵상해 보길 원합니다.

 

성모 마리아 송가는 저녁기도에서 주로 불리는 노래입니다. 이에 대한 출처를 우리는 정확하게 수가 없습니다. 루가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고, 루가 공동체의 노래라는 설도 있으며,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불려 오던 송가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주 보수적인 해석은 문자 그대로 엘리사벳을 방문했던 마리아가 실제로 성령의 감동으로 노래했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유다인 그리스도 교회,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전승되어 초기 그리스도 교회 예배 사용되던 송가를 루가가 채집하여 수정 편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가는 특히 루가 공동체에서 자주 불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떤 출처를 믿든 노래가 가진 주제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은 세상의 가치관과 신분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  하느님의 권능으로 흩어지고 내쳐지며, 대신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자들”, “죄인들 대신 택함을 받고 높임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한부요한 사람들 빈곤해지고, “배고픈 사람들 이제 배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세상의 가치와 평가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전도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세상 권력과 세상적 가치는 하느님 앞에서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이는 루가 공동체의 삶의 자리가 가난한 공동체, 빈자의 교회였음을 반증합니다. 루가복음이 다른 복음서 보다 가난한 사람들, 여자와 고아들, 그리고 소외 계층에 관심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루가복음에는 화려한동방박사들의 방문 아니라 밤을 지새워 일을 해야 했던 가장 낮은 부류의 가난한목동들 예수 탄생의 목격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는 부자나 지배 계층은 모두 나쁘고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선하다는 뜻으로 오해되어서는 됩니다. 부자나 엘리트 계층에도 하느님을 섬기는 선한 사람들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악한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루가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화려한 궁궐이나 엘리트 계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낮고 낮은 사람들을 통해 시작됨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전복되고, 모든 불평등의 신분 체계는 뒤엎어졌으며,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은 복음이 예수를 통해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난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실상도 여기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 바울로가 세운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지원금을 받아야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전도 여행 동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6 1절과 여러 바울로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교회보다 비록 가난하고 못난 신자들의 교회였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진지함과 독실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러한 빈자들의 마음과 소망이 오늘 마리아 송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이후로 제대로 국가를 가져보지 못했던 민족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버려졌던 땅에는 앗시리아의 이주민과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뒤섞이며 이스라엘의 정통성마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혼인하여 태어난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사마리아인이라 하여 유대인들에게는 차별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세기에 시리아 제국에 반발하여 유다 마카베오 가문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잠시 동안 하스몬 왕조가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간도 79년이란 짧은 기간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이스라엘은 영원히 역사 속에서 국가의 지위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국가를 갖지 못한 민족은 있는 자들의 수탈과 폭력의 대상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사회 안전망은 완전히 무너지고, 그들을 지켜줄 사회적 시스템조차 전무했습니다. 1948 이스라엘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세우기까지 이스라엘은 2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지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의 사회 구조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양분되게 했습니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란 신분과 지위의 분리는 하나의 이스라엘이 되기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배계층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아부하며 기생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피지배계층은 수탈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민들에게 부과됐던 세금은 수입의 70% 달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는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 속에서 이러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망은 자연스럽게 메시아 대망 사상으로 승화되었고, 이런 마음은 고스란히빈자의 노래성모 마리아 송가 담겨 있습니다.

 

빈자의 노래에는빈자의 영성 담겨 있습니다. 빈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나힘(עֲנִיִּים)입니다. 이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한 사람들이란 뜻도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아나힘들을 핍박하고 배신했지만,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느님은 결코 그들을 무시하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실제 삶의 고통과 어려움, 역경을 이겨내는 새로운 실존의 형태를빈자의 영성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과 가족이라는 사회 관계망이 전혀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할 개인은 절대적인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들이 비록 고통과 핍박을 받으나 마지막에는남은 자들로서 자신들의 신원이 회복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으리라는 소망이 자연스럽게 영성 안에서 싹이 텄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혹자는 그러한 영성을 하찮고 나약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고통과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희망이 아니면 과연 어떤 희망이 있을까 싶습니다. 복권 장으로 일주일을 희망으로 버텨내는 현대인들보다 어쩌면 유대인들의 이러한 빈자의 영성은 살아남기 위해 존재의 근원을 붙드는 삶의 처절한 투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루가 1:48

 

 

예루살렘 교회의 빈자의 노래에 루가 사가는 방금 읽은 부분을 덧붙임으로  빈자의 노래성모 마리아의 노래 승화시켰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께서 오신 것이 높은 곳에 평화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빛과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루가 사가의 그리스도론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루가 사가가 보기에는 역사의 예수는 특별히 루가 공동체처럼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루가복음은 서론 부분인 1장에서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을 통해 이러한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 송가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 주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전하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있습니다. 그분은비천한 자들”, “배고픈 자들”, 그리고 세상에서 어떠한 희망도 꿈꿀 없어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의탁한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유와 출신으로 신분을 나누는 일반적인 세상의 가치관을 전복시키시고, 엘리트 계층의 모습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의존적이며 가장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루가 사가가 보기에 복음은 바로 이러한 빈자들을 위한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해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본격적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대림절을 마무리하며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주님의 온전히 우리가 준비를 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루가 사가가 생각했던 빈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우리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앞에 말씀드린 대로아나힘 물질적으로  신분적으로 가난하다는 뜻보다는 세상에서 자신의 희망을 오직 하느님께 내어 맡긴 사람들이란 뜻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것입니다. 루가복음은 바로 그러한 아나힘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세상에서 의지할 없어 고독과 쓸쓸함 속에 버려진 많은 사람들이 오직 하느님으로만 희망을 얻어 살아갈 힘을 얻는 그러한 빈자를 위한 복음입니다. 

 

빈자의 영성을 노래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상에서 오직 하느님께만 희망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자신들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희망을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께만 우리의 전인격과 삶을 의탁한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아나힘, 빈자라고 부를 자격이 있습니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만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을 있다는 신앙의 역설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우리는 소유보다는 존재에 우리 신앙과 삶의 무게를 두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있을 겁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성탄절이 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마리아처럼 우리를 겸손히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겸손으로 자신을 비워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우리도 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 자신을 먼저 품고 그리고 우리 이웃도 품는 그러한 성탄절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대림4 (다해)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성자께서는 땅에 오시어 은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나이다. 비오니,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복된 날을 맞이할 기쁨으로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미가 5:1-4

12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 너에게서 난다.
.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23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이사 7:14
.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리라.
.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34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     
야훼의 힘을 입고
.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     
목자 노릇을 하리니,
.     
그의 힘이 끝까지 미쳐
45a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라틴어 성서는 4:14에서 5장이 시작됩니다. 작은 번호는 라틴어 성서 기준입니다.

 

 

 

성시_루가 1:46 – 55 (성모송가)

1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며,
.      마음이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기뻐합니다.
2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     이제부터 백성이
.     나를 복되다 것입니다.
3    전능하신 분께서
.     내게 일을 행하셨으니
.     주님의 이름 거룩하십니다.
4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     대대로 구원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5    주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6    권세있는 자들을
.      자리에서 내치시고,
.     보잘 없는 이들을
.     높이셨습니다.
7    굶주린 사람을
.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     부요한 사람을
.      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8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     주님의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     약속하신 대로,
.     아브라함과 후손들에게
.     영원토록 자비를 베푸십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10:5-10

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저를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    ‘하느님,
.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     시편 40:6-8

8 그리스도께서 처음에는당신은 희생제물과 봉헌물과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바쳐지는 것인데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9 다음에는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것을 폐기하셨습니다.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몸을 바치셨고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서_루가 1:39-45(46-55)

39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동네를 찾아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42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A] 43 주님의 어머니[B]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귀를 울렸을 때에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46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   “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    
마음 설렙니다.
4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C]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    
주님은 거룩하신 ,
50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D]
51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고
.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53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54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    
당신의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    
자비를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A] 성모송으로 알려진 기도문은 루가 1:28, 42 인용하고 있습니다.
.   “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    
주께서 함께 하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하느님의 모친되신 마리아여,
.    
이제와 임종시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
성공회 기도서
[B] “
주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테오토코스 참조하십시오.
[C]
칠십인역 사무상 1:11
[D]
시편 103:1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