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정경화 과정
채 야고보
구약성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일시에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기록된 것이다. 얌니아(Yamnia, A.D.90년경)에서 구약성서의 정경이 확정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론으로서 확실한 정경의 목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구약성서가 어느 한 날에 정경화가 이루어져 유대교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절대적 권위가 인정되는 토라(Torah, 율법) 만큼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다양한 유대공동체에서 제1경전으로 받아 드려졌던 것은 분명하다. 유대교에서는 이 구약성서를 타낙(Tanak)이라 부르는데 이는 토라(Torah, 율법),네비임(Nabi’im, 예언서),케투빔(Chethubim, 성문서) 등 3개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토라는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로 구성된 유대교 제1의 권위를 갖는 경전이며, 네비임은 포로기 전.후기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이름을 빌어 작성된 것으로 유대교 제2경전이다. 그리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케투빔은 성전과 회당에서 즐겨 사용되다가 유대교의 경전으로 확정 된 것은 기원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외경서(Apoknypha)와 위경서(Pseudepigrapha)가 신.구약 중간기에 쓰여졌는데 이는 이 시기의 생활상과 신앙형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외경서에는 토비트서, 유딧서,집회서 등이 있고 위경서에는 에녹서,바룩서,솔로몬시편 등이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독교의 구약성서의 순서가 확정된 것은 B.C. 3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헬라어번역본이 셉투아긴타(Septuaginta:70인 역)를 토대로 후대에 만들어진 불가타역성서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유대교의 타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본다. 오랫동안 구전되어 내려온 토라(율법)의 문서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분명치 않지만 대략 포로기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토라는 J, E, D, P 문서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편집상 각각의 저자와 시기에 따라 분류된 것이다. 민족 신앙관을 담은 J문서(Jahwist)는 B.C. 10세기 중엽에, 윤리적 종교관의 E문서(Elohist)는 B.C. 8세기 중엽에, 신명기법의 D문서(Deuteronomium)는 B.C. 621년 요시아의 종교개혁 때 각각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마지막으로 제사법전인 P문서(Priester Kodex)는 B.C. 50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P문서의 저자가 토라의 최종 편찬자인 것으로 여겨진다.
네비임(예언서)은 B.C.300년 무렵에 편집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구성은 전예언서(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열왕기), 대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에스겔 등) 그리고 소예언서(호세아 外12편)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케투빔(성문서)은 포로기 이후 가장 후대에 쓰여졌으며 문학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특히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를 참회적인 성격으로 새롭게 재편집하여 쓰여졌다. 여기서 왕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을 잘 섬겼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편은 모두 3차에 걸쳐 편집이 되었고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는 셀류시드 왕족의 유대교 핍박 기간인 B.C.165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유대교의 타낙 즉 구약성경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되고 사용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약성경의 정경화에 대한 기록은 팔레스틴 경전과 쿰란 경전,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경전(70인역)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팔레스틴 경전은 몇 가지 전승에 따른다. 첫째가 B.C. 400년 경 에즈라가 집대성 했다는 전승인데 이는 요세푸스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에즈라 이후에도 성경의 다른 부분이 쓰여졌음으로 이는 신빙성이 약하다. 두번째는 대회당의 유대인들이 에즈라의 자극을 받아 정경화 했다는 전승인데 이는 대회당이 언제부터 생겼는지가 신빙성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 마지막이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 설로서 랍비 요하난벤 자카이가 얌니아에서 구약성서의 정경을 확정했다는 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 시대가 접어들 때까지 유대교 경전의 정경화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사해에서 발견된 쿰란 경전은 B.C.1~A.D.1세기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며 에스더서만 제외한 현재의 히브리 정경의 모든 책이 여기에 수록되어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경전은 70인역 헬라성경으로 제2 경전을 비롯하여 외경이 선별적으로 수록되었다. 서두에 기록한 것같이 이 70인역 헬라성경의 정경목록은 로마 가톨릭에서 수용을 했고 개신교는 종교개혁 때 루터에 의해 히브리경전의 동일한 39권만 인정하고 나머지 가톨릭 구약정경의 7권은 외경으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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