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그림이야기

단절과 적막의 이미지_박설매

James Chae 2011. 9. 2. 12:47

 

 

단절斷絶과 적막寂寞의 이미지_박설매
 ‘단절을 통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 
 

채창완
 

 

 
  
▲ 문-벽-1, 162.4×130.3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4.


 

엑카르트가 말한 부정의 영성에서는 ‘침묵, 어둠, 고요, 절망’ 등의 말이 ‘환희, 충만, 기쁨’의 말을 대체한다. 이러한 말들은 신의 ‘전적 부재(Total Absence)’와 관련한다. 그러한 부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고통과 절망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늘 이러한 고통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거나 혹은 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한계를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당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상처의 아픔은 상처받는 자의 마음에 늘 흔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 문-벽-2, 130.3×162.4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4.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상처받으며 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 박설매는 이러한 자신 안에 있는 상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격동기에 태어나 유교적 가정에서 성장한 작가는,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상처’와 ‘잔소리’들로부터 ‘단절’을 원했고, 그에 대한 ‘탈출구’를 그의 작품 속에서 찾는다.

 

이를 위해 그가 조형적이며 상징적으로 작품 속에 도입한 소재가 바로 ‘문’, ‘벽’과 같은 ‘가로막’ 또는 ‘보호막’이다. ‘문’과 ‘벽’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것과의 ‘단절斷絶’이라는 소통 불가능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박설매 작품에서의 ‘문’과 ‘벽’은 ‘보호막’의 성격이 더 강하다.

 

 

 
  
▲ 문-벽-5, 91×116.5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그의 성장기에 들었던 잔소리의 상처로부터, 그리고 유교적 문화의 여성 차별적 요구로부터 그는 자신을 지킬 ‘보호막’이 필요했고 이를 작품 속에서 ‘문’과 ‘적막’이라는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결국 작가는 이러한 ‘보호막’에 자신의 신앙적 고백을 담아 신이라는 존재를 대입시킨다. 그가 원했던 상처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은 오직 신 안에서만 가능했던 것 같다.

 

 

 
  
▲ 문-탈출구-1, 130.3×162.4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4.


 

그의 그림이 ‘적막寂寞’, 즉 조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상처의 소리’, ‘억압의 소리’로부터의 단절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붓자국은 매우 정적이며 구도는 매우 단순한 수직 수평의 구조를 띤다. 이러한 것들에 채도가 낮은 색이 더해지면서 ‘적막의 이미지’를 작가는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해 냈다.

 

그림에 무슨 소리가 있겠는가 마는 소리는 청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로도 가능하다. 청각 장애우에게 누군가의 현란한 몸짓은 늘 춤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소음’으로도 들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 문-탈출구-3, 162.4×130.3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닫혀진 문은 철저히 소리를 차단한다. 그리고 아울러 ‘문’ 저 너머로부터 오는 어떠한 영향도 차단한다. 그의 작품에서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모호하지만, 그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문’의 면이 작가의 공간이라면 그 너머는 작가의 외부 공간일 수 있고, 또 그 반대도 가능하다. 어떠하든 간에 한쪽은 작가이고 다른 한쪽은 외부세계 또는 작가의 과거세계임에 틀림없다.

 

그의 상처는 늘 외부나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외부 또는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문’을 꼭 닫는다. 그 ‘문’은 작가의 신앙대로 자신의 ‘절대자’, 또는 ‘보호자’이다. 작가는 ‘그 속에서만’ 고요와 평안을 체험한다.

 

 

 
  
▲ 문-탈출구-4, 130.3×162.4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4.


 

그러나 작가가 ‘그 속에서만’ 계속 안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논문에서 작가는 “향후, 통로라는 문의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벽에 ‘문’이 필요한 것은 분명 외부와 내부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것이 필요 없다면 문이 아니라 벽 만으로도 단절은 충분하며 더욱 완전하다.

 

‘문’은 ‘닫혀질 가능성’뿐만 아니라 ‘열릴 가능성’도 동시에 갖는다. 그러므로 작가가 문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결국 몰트만이 말한바 ‘가능성’, 즉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이 함의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

 

 

 
  
▲ 문-탈출구-5, 130.3×162.4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결국 작가가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는 ‘단절’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도 열린 ‘가능성’이다. 과거는 ‘치유’로서 그리고 현재와 미래는 ‘희망’으로 열려있다.

 

 

 
  
▲ 문-보호자-1, 162.4×130.3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4.

 

 
 


 

 
  
▲ 문-보호자-2, 162.4×130.3cm,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 문-통로-2,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 문-통로-1, 장지에 콩즙, 먹, 안료, 2005.


 

 

 

[작가소개] 박 설 매 ( PIAO, XUEMEI)
중국 조선족 출신인 작가는 중국 길림성 연변에서 농아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미술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연변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한국으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석사과정을 하던 중 같은 조선족 유학생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된다. 많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며, 또한 작가로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한 작가는 자서전 같은 자신의 신앙 고백을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해 냈다. 이번 작품들은 그의 유학 생활의 소중한 결산이면서 작가의 미래를 전망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작가의 분신들이다. 

 

 

 

 

The Image of Disconnection and Solitude
‘The Possibility of new communication through disconnection’

 

                              Chang-Wan Chae(Vice-Director of Jinheung Arthall)

 

In his apophatic(negative) spirituality, Meister Echart used words like ‘silence, darkness, stillness, and despair’ as substitutes for ‘joy, fullness, delight’. These apophatic expressions are concerned with ‘Total Absence’ of God. In that time of absence anybody cannot help but feel painful and hopeless. We experience this not only in the death of Christ on the cross but also in our very life. It is because anyone cannot help getting hurt or hurting others in the communities we live in, be it family or society. Though the degrees that people can put up with the hurts differ depending on individuals, the pain of the hurts leaves indelible marks in their minds. In this sense, all human beings grow up with getting hurt. The artist, Seol-Mae Park speaks of such hurts. She who grew up in a Confucian family during the turbulent years of ‘the Cultural Revolution’ in China have gotten many big and small hurts from her own society and family. But she wanted ‘disconnection’ from those ‘hurts’ and ‘scolding’, and she found ‘escape exit’ from those in her works.  


 

The material she introduces symbolically into her works like ‘doors’ and ‘walls’ may give someone  negative images of ‘disconnection’, the impossibility to communicate, but in her works they are more akin to ‘protection cover, or shelter’. Finally she puts existence of God into this ‘protection cover’ with her religious confession. Perfect ‘disconnection’ from her own hurts that she wanted may be acquired only in God. And her pictures give us feeling of solitude because she attempts disconnection from ‘sound of hurts’ and ‘sound of suppression’. Her touch of brush is very calm and her composition is very simple with the vertical and horizontal lines. With adding colors of low saturation on these, she expressed ‘the image of solitude’ in the two-dimensional canvas. The image of the closed ‘doors’ completely shuts out sound of our ideas. After all she takes her rest in the ‘doors’ and ‘solitude’.


 

But she will not continually live in peace ‘only in them’. In the paper on her own works she said that she would find new symbolic meaning of a passage about doors. In general ‘doors’ on wall are needed for the communication of the inside and the outside. If it is not necessary, just walls will be enough, or more perfect for disconnection rather than doors. ‘Doors’ have ‘the possibility to be closed’ and ‘the possibility to be opened’ at the same time. Consequently, her using the image of doors means that it implies ‘possibility’, that is to say ‘the possibility open towards the future’ which J. Moltmann spoke of. We call it ‘hope’ in other words. In conclusion ‘disconnection’ that she shows to us means ‘the possibility of new communication’. It is ‘the possibility’ that is not only towards the present but also towards the past and the future. In this regards, it is natural that we should anticipate not only these works but also her next 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