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신학이야기

[독서]발터 아이히로트 '구약성서신학II' 제15장 우주론과 창조 p.p.104~129 요약

James Chae 2012. 12. 11. 21:04

*발터 아이히로트, 구약성서신학 II, 박문재 譯,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2, 일산  p.p.104~129 [요약/작성자:채야고보]


15장 우주론과 창조


1.이스라엘의 우주론

하늘

 

 

 

 

 

 

 

-고대인들의 사고에서 하늘은 보통 기체나 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땅보다 훨씬 더 안정성이 있는, 극히 큰 덩어리로 된 구조물로 인식되었다. 그런 까닭에 하늘은 창조 때에 물의 혼돈으로부터 최초로 출현한 것으로서 라키아 (rākia’),직역하면 단단하게 찍어낸 것으로 묘사된다. 하늘은 기둥들에 떠받쳐져서(26:9,11) 주조된 거울처럼 단단하게 땅을 에워싸고 있다.(37:18)

-하늘의 창들과 문들은(38:22)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고 오직 비를 내릴 때에만 열렸다.(왕하7:2, 19, 78:23)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이 하나이상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 하늘의 하늘(왕상 8:27; 10:14; 9:6), 가장 높은 하늘을 세메 핫샤마임(하늘들의 하늘,148:4)

-바빌로니아인들은 하늘이 일곱층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신들의 아버지 아누(Anu)의 보좌가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천상이 하나님에게 종속된 것으로 층을 가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반면 바빌로니아인들은 각 층마다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 땅은 낮은 물, 얌밈(yammim)또는 트홈(tehōm)에 터를 잡고 있고 하늘같이 깊이 박혀 있는 기둥들이 이를 지탱한다고 생각했다.(땅의 기초- 8:25,29; 기둥들-9:6) 이를 산들의 뿌리라고 여겼다.( 46:3, 2:6) 그리고 하나님이 이를 붙들고 계신다(75:4; 46:3)

-바빌로니아인들은 땅이 줄과 말뚝들에 의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욥기 26:7 한 곳에 나온다. 빈 곳에 메달아 놓으셨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윗 땅과 물의 신 에아(Ea)의 나라인 가운데 땅 및 죽은 자들의 처소인 아랫땅을 구별하였다. 이스라엘은 윗 땅과 아랫땅만을 믿었다. 이는 인간이 죽은 후에 내려가는 지하 세계로서 셔올이라 부른다. 이 스올은 물 밑( 26:5),하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11:8)으로 묘사된다.

 

2. 이스라엘 창조 신앙의 독특성

 

-지상의 질서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앗시리아의 사상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미담 전승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성경의 창조기사들이 바빌로니아,페니키아,이집트 등과 상호연관성이 존재하지만 출발점부터가 천지창조에 대한 이교적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1) 영적이고 인격적인 의지의 자유로운 제정 행위로서의 창조

(a)계약 개념의 영향

 

 

 

 

 

 

(b)신의 계보의 배제

 

 

 

 

 

 

 

 

 

(c) 주로서의 창조주: 말씀을 통한 창조

 

 

 

(d) 창조와 역사의 내적 통일성

 

 

 

 

 

(e)무로부터의 창조(creato ex nihilo)

 

 

 

 

 

 

 

 

 

 

 

 

 

 

 

(f)종말론적 창조주 하나님

-창조를 통해 신이 세계 과정의 흐름 속으로 이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신은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한 채 세계 과정과 맞서 있다.

-모든 피조물들이 야훼의 무한한 권세아래 있다는 개념은 한 분 계약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집중을 의미하며 다신교에서 가능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 즉 세계 자체의 통일성에 관한 사상을 만들어 낸다.

-창조주의 의지에 인격적이고 영적인 활동이라는 특성과 도덕적 목적이라는 특성이 부여된다.

 

-동방의 우주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신들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구약에는 배제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신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무의미 했으며 야훼가 존재하지 않았던 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은 그 신들이 신격화된 자연력들을 표상하며, 또 그 신들이 문화적 도덕적 삶의 가치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구약은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무조건적인 의존성을 천명함으로 이와 다른 점을 보여준다.

-물질과 신을 대등한 관계로 보는 고대 근동의 신화들의 문제점은 1)세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신과 또 다른 원리를 설정하는 이원론 2)신과 세상을 동일시 하는 범신론이다.

-구약의 창조는 스스로의 규준을 지닌 의지의 자유로운 제정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어떠한 물리적 관계와 일치를 설정하지 않았다. 말씀에 의한 창조로 피조물의 탄생은 전적으로 초월적인 창조적 의지의 기적이 된다. 이 의지는 피조물 속에 종속되지 않으며 피조물로 하여금 전적 타자로 인식하게 한다. 결국 말씀을 통한 약속과 축복을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다.

 

-야휘스트와 제사장 계열의 기자들은 창조를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활동에 의해 결정되는 역사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로서의 창조는 역사의 영역에 속한다는 그들의 확신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창조와 역사성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창조주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창조주는 자율적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자족적인 규준이라는 의미에서 우주의 원천이다.

 

-무로부터의 창조 : 구약에는 없는 이 개념은 헬레니즘적 영향인가?(마카베오2 7:28)

-천지창조의 내용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전능을 드러내는 것

-이 권능과 동등하거나 비견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가 전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다. 이는 모든 창조된 생물에 반대되는 무()의 개념을 가진다.

-12절의 구절에서 바빌로니아의 원시의 혼돈의 이름인 티아맛(Tiamat)과 같은 계열의 단어인 트홈 (tehōm)이라는 시원(始原) 혼돈을 창조의 범위에 포함시킨 것은 특이하다. 혼돈 이상 하나님에게 반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행위 이전의 어떤 무정형성과 무생명성을 나타내는 심상의 역할을 한다.

-말씀 창조의 유일한 매개물로 언급된 것은 창조주의 특유한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신의 권능 있는 말씀의 직접적인 효력들 속에 멸절과 창조를 포함시켰다.(33:6,9) 여기서 무로부터의 창조를 (고대의 주술 사상들에서 발전했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은 자기 자신 속에 인력(引力)의 중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그 중심으로 한다. 세상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공간과 시간조차도 창조 때에 만들어졌고 창세 이전에는 시간도 인식될 수 없었다.

 

-제사장적 사상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화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창조 개념을 사용한 반면, 선지자적 사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심판자와 구속자 사이의 통일성은 새 창조에 대한 선포를 통해 발견된다. 이러한 선포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재 질서와의 연속성은 야훼의 우주적 목적들에 대한 절대적인 종속이라는 점에서 유지된다. 종말론적인 창조주 하나님은 첫번째 창조의 적이 아니라 완성자이다.

 

2) 자신의 지으신 것들 속에서의 스스로에 대한 창조주의 증언

(a)창조의 본래적인 완전성

 

 

 

 

 

 

 

 

 

(b)우주의 구조에서의 목적론

 

 

 

 

 

 

 

 

 

 

 

 

 

 

(c)우주의 통일성

-이스라엘의 창조 신앙은 피조물들의 본래적인 완전성에 대한 강한 확신과 결부되어 있다. 이는 창223절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서 아무런 손색없이 탄생되었다는 낙관적 세계관이 창세기에 담겨있다. 제사장 계열인 창1장의 토브 므옷 토브(좋다 아주 좋다)라는 표현 속에서 이러한 낙관성이 표현된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의도에 부합되게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의 신앙에 따르면 물질과 형식은 하나님의 창조 권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 둘은 선함에 틀림없다. ,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다. 여기서 우주 안에 어떠한 이질적인 요소도 배재 된다.이 결과 이스라엘은 자신의 창조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주에 대한 강력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창조의 대규모 목적론: 우주의 구조에서 이 목적성은 먼저 인간에 이르도록 짜여진 체계의 견지에서 창세기에 서술되고 있다. 야휘스트의 창조 기사는 동물들이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을 분명히 하고 인간의 역할은 낙원을 돌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기자의 실제적인 관심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오직 종의 관계로서만 인간 앞에서 설 수 있다제사장 문서인 창세기 1장에서도 이와 같은 우주 구조의 목적의식적인 배열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의 개념을 향하여 움직여가는 강력한 목적론적인 세계 운동에 종속된다. 또한 제2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운명조차도 하나님의 체계적인 행위에 기인한다고 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개념들을 보여준다.(45:18f. ; 45:7,12 ; 50:2f ) 창조에서 야훼가 품은 생각은 자신의 목적의식적인 통치를 통하여 가져올 인류의 구원이다. 이러한 창조에 대한 목적론적인 인식은 늘 창조주는 늘 피조물 위에 높여져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그러므로 우주는 창조주의 불가해한 자유를 조건으로 해서만 모든 피조물을 향한 보편적인 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주의 통일성에 대한 인식: 2장에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창1장에서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다. 이러한 창조 사상이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합리적인 조화론을 제시함으로써, 완전히 설명될 수 없고 언제나 모호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자연질서가 신앙의 삶에 참을 수 없는 짐이 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러한 통일적인 실체로서의 우주에 대한 표현은 시편 104편에 잘 나타나 있다.

 

 

3)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와의 비교

신의 싸움

 

 

 

 

 

 

 

 

 

 

 

기타 공통점

 

 

 

 

 

 

 

 

 

 

 

결정적인 차이점

-에누마 엘리쉬와 같은 고대 근동의 창조서사시의 중요한 특징은 신들의 싸움이다. 구약에도 이러한 영향들이 존재하는데 야훼와 라합(Rahab) 또는 리비아단(Leviathan)이라 불리는 바다와 혼돈의 괴물과의 싸움에 관한 진술 등이 그것이다. (51:9 ; 89:10 참조) 그러나 이러한 영향이 이스라엘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보지 않는다. 시편 74편과 89편에서 서술된 것 처럼, 구약에서의 바빌로니아 신화의 잔재들은 야훼의 권능을 가장 현란한 색채로 묘사하기 위하여 별개의 시적 장식물로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시적 장식물로서의 신화의 도용은 구약 곳곳에서 발견된다.( 51:9f ; 7:12; 9:13 ) 일찍이 야휘스트는 자신의 창조 기사에서 그 신화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신앙의 본질을 더욱 더 알게 되면 될수록 세계의 기원에 관한 신화가 들어설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외형적인 형식 면에서]

-물로부터 땅의 출현, 하늘과 땅의 영역으로부터 분할, 빛의 중요성, 신의 본성을 따라 인간을 지은 것 등 외적인 세부적인 사항들은 두 전승 모두에 공통적이다.

[창조에 대한 사고의 관점에서]

-우주 속에서 생명을 향한 맹목적인 충동이나 혼돈의 변덕과 반대되는 우월한 지성의 사역을 인식

-세계의 출현과 유지에서 작용하는 하늘의 권능들의 권세를 인식

-인간의 삶에 목적과 방향을 재시

-지상의 질서는 천상의 질서의 모형이라는 깊은 종교적 확신. 그러므로 인간의 운명을 신적인 권능들과 연계시키며 인간에게 끊임없이 천상의 권세에 의거하여 자신의 삶을 수행하고 이해하도록 가르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신관에 연유하며, 그 신관은 그 자연관을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계약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였고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영적인 인격체로 체험될 수 있었던 반면에, 바빌로니아의 하나님 개념은 자연주의에 빠져 있었다.

-고대 근동의 사고 양식은 동일한 사건들의 영속적인 순환에 의해 지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한, 시간 속에서의 반복되지 않는 목적의식적인 고정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사상은 불가능했다.

-이스라엘은 자연에 대한 모든 신화적, 범신론적,이신론(理神論)적 개념들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에 대한(vis-à-vis)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아주 강력하게 규정함과 동시에 세상과 하나님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련성을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