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James Chae 2021. 12. 11. 17:16

2021.12. 12. 다해_ 대림 3 주일

스바 3:14-20 / 이사 12:2-6 / 필립 4:4-7 / 루가 3:7-1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오늘 읽은 요한복음 3 7-9절의 말씀은예수 어록 출처로 합니다. 마태오도 같은 자료를 공유했고, 이는 마르코 복음에는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마태오가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을대상으로 선포한 것에 반해 루가는 이를 군중에게 설교한 것으로 설정합니다. 어떤 것이 원본에 가까운지는 쉽게 추측하기 곤란합니다. 요한의 설교의 핵심은 심판의 때가 가까우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이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라고 의역한 부분은 원래 원어에 가깝게 직역하면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입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공동번역의 해석이 구체적이고 명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매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대신행실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은 이렇게 군중(ὄχλος)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유대인들은 마치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을 했지만 세례자 요한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 만들실 있다고 선포합니다.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 없습니다. 이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서 생각해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너희의 믿음에 합당한 행실을 보여라라고 지금 소리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도 세례자 요한 앞에 섰던 유대인들처럼 당황하지 않을까요? 마틴 루터가 외친 “Sola Fide(오직 믿음으로 _ 갈라 3:11, 3:24, 로마 3:30, 5:1)”라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오늘 세례자 요한의 외침과 서로 상충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도 민중에게 가장 신뢰받는 선지자인 세례자 요한의 신탁이 아닙니까? 그러니 부류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 질문을 통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루가는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고해성사 하는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죄를 고백하고 사함의 기도 후에 신부가보속 선포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계층의 질문은루가의 특수자료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루가만의 기록입니다. 그는 예수 어록 자료에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담긴 자료를 덧붙인 것입니다. 계층은 번째가 군중이고, 번째는 세리, 그리고 마지막은 군인입니다.

 

군중에게 요구한 것은 매우 평범한 일상에서의 실천입니다. 속옷 벌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자와 나누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마디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도 가진 것을 이웃끼리 서로 나누며 도와가며 살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신이 여유가 생기면 남도 도우며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쌀독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는 같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것도 정말 힘든 인생입니다. 그러니 남을 챙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TV 뉴스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부자들을 보며 나도 돈만 있으면 저렇게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정말 남을 도울 있을 정도의 여유 있는 부의 기준이란 것이 있을까요? 우리의 가난과 부는 모두 상대적이란 생각은 드시나요? 우리가 보기에 부자로 보이는 사람도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을 보면 한없이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기준이 매우 상대적이고 결의론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의 부가 늘어나도 우리는 남을 도울 정도의 부의 여유를 가지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이웃과 가장 작은 부분부터 나눠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색할 때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나누기 싫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인간의 내면의 양심에 불이 댕겨지면 인간은 상상할 없을 정도의 나눔도 실천 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평생 폐지를 주우며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학생들의 장학금을 기증했다는 어떤 분의 따뜻한 뉴스를 종종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부터 나누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것도 나눌 있는 법입니다. 

 

이제 세리를 살펴볼까요? 관청에서 관세 징수권을 위임받아 세금을 거두는세리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로마나 헤로데에게 봉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민족의 등골을 빼먹는 사람들인 것이죠. 그들은 정해진 세수를 받는 대신 자신들의 몫을 더하여 징수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가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말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곱절은 갚아주겠습니다.” (루가 19:8 b) 

 

말인즉, 당시의 세리들은 보통 부과된 세금보다 곱절 넘는 세금을 징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정직한 세리였던 같습니다. 남을 속인 적이 있다면 곱절 갚겠다는 말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적이 없었으니 당당하게 주님께 그렇게 말할 있었겠지요. 그러나 당시의 대부분의 세리들은 사캐오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폭리로 사람들은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 조상들로부터 전해오던 땅도 빼앗겨 가난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니 정해진 것보다 많이 받지 말라는 요한의 메시지는 군중에게는 희망의 소리였지만, 세리들에게는 철퇴를 맞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군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군인들은 로마군은 아니고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의 군인들입니다. 그들의 편제는 로마의 군대식을 따랐지만, 복장과 무기 많은 부분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런 군인들은 대게 유대 민족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 아니라 군주인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로 그들은 백성보다는 헤로데 왕가를 지키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아마도 여러 면에서 로마 군인들보다 박봉이었던 그들은 봉급만으로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같습니다. 이런 행위는 헤롯 왕실의 묵인하에 자행됐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군인들을 향해 사람들을협박하고속이는 그들의 죄로 오늘 언급된 것입니다. 당신 민중들은 식민지 군대인 로마와 헤로데의 군대 양진영으로부터 동시에 고통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안위는 뒷전이었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처참한 민중들을 위해 당시의 대표적인 착취의 주체들을 언급하며 회개를 촉구한 것은 루가만의 독특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있습니다. 여기 언급된 계층인 세리와 군인들은 민중과 직접 대면하는 공권력이었습니다. 착취와 폭력의 주체였습니다.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 실제로 그런 회개를 했는지는 자료가 없습니다. 아마도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루가복음의 이런 구절을 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통쾌한 대리만족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세리와 군인들 회개를 촉구하는 방점이 있다기보다 그들에게 착취당하는소외된 자들, 가난한 자들 위로하는 강조점이 있습니다. 목적은 매우 당위론적인 메시지이지만,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위로가 먼저이고 다른 것은 종말의 시대에회개 합당한 행실을 또한 강조하며 실천을 독려하고자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방향 전환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로 여겨진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이유였습니다. 결과 헤로데는 결국 세례자 요한의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 다음에 루가가 세례자 요한을 옥에 가두는 사건을 이어서 기록한 이유입니다. 헤로데의 군인들에게 회개를 강요했으니, 그것은 헤로데에게는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요한은 심판의 때에 자신보다강하신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개인의 죄를 태우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처벌받을 자를 태우는꺼지지 않는 됩니다. ‘성령과 이란 이미지는예수 어록 기초로 합니다.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죄에 대한 죽음의 강한 이미지라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표현들을 하나의 유비로 받아들이는 같습니다. 그러니 루가복음이 사용되고 선포되던 공동체가 느꼈을 두려움은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회개’, ‘심판’, ‘등과 같은 이미지는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자극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요한이 부르짖은회개의 선포 과거에나 지금이나 삶의 자리는 달라져도 여전히 유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언급된 부류의 사람들은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 시대도 대표합니다. 이웃과 나누기 싫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며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경향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시대 사람들은 최소한 이러한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것인지 고민하며 발화자에게 질문이라도 던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케리그마를 들을 무엇을 우리가 할지 질문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위로를 원하는 같습니다. 사실 최근의 설문 조사도 이를 말해줍니다. 대부분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하느님이나 복음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마음의 위로와 두려움, 염려, 걱정 때문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처럼 단순히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기 위한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것은 부수적인 은총으로 따르는 것이지만, 기독교는구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구원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담보하는회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메타노이아는 단순한 마음의 회심이나 참회의 차원을 넘습니다. 그것은돌아섬, 돌아감입니다. 잠시 멈춰 서서, 반성하며 행동을 바꾸고, 다시 돌아가기.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바꿔 우리의 뿌리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메타노이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에 등장한 사람들은 마치보속 받듯이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지 세례자 요한에게 질문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가 대림절에 무엇을 해야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갈 있는지 하느님께 질문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루가 3:10)

 

이것이 대림절기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를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은총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함께하시어 우리를 온전하고 흠없는 사람들로 하느님 앞에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전례독서: 대림 3 (다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죄악으로 인해 선이 가려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자를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모든 불의와 부정을 성령의 불길로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스바 3:14-20

14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     이스라엘아, 큰소리로 외쳐라.
.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15  야훼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     너를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셨다.
.     이스라엘의 임금, 야훼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16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이렇게 일러주어라.
.   시온아, 두려워 마라.
.     기운을 내어라.
17  너를 구해 내신 용사 하느님 야훼께서
.      안에 계신다.
.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     명절이라도 기쁘게
.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18나는 너에게 내리던 재앙을 거두어들여
.     다시는 수모를 받지 않게 하리라.
19   때가 되면,
.     너를 억누르던 자를 없애버리고
.     절름발이는 고쳐주며
.      잃은 자들을 찾아내어
.     고국으로 데려오리라.
.      때가 되면, 세상에서
.      백성은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20   때가 되면,
.     내가 너희를 데려오리라.
.     너희를 이리로 모아들이리라.
.     내가 너희의 면전에서 너희에게 광복을 안겨줄 ,
.     너희는 세계 만방에서
.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첫째 송가 (이사 12:2-6)

2    진정 나를 구원하실
.     분은 하느님이시니
.     내가 그를 의지하고
.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주님은 나의 , 나의 노래이시며,
.     나의 구원이십니다.”
3    그러므로 너희는 기뻐하며
.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4     너희는 이렇게
.     감사의 노래를 부르리라.
.     야훼께 감사하여라.
.     그의 이름을 외쳐 불러라.
    그가 하신 큰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      높으신 이름을 잊지 않게 하여라.
5    그가 큰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며
.      모든 일을 세상에 알려라.
6    수도 시온아 기뻐 외쳐라.
.     너희가 기릴 분은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필립 4:4-7

4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루가 3:7-18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8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그리고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 하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마라. 사실 하느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혀 속에 던져질 것이다.”
10 군중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1 요한은 속옷 벌을 가진 사람은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요한은 정한 대로만 받고 이상은 받아내지 마라.” 하였다. 14 군인들도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다. 

15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러나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머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17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18 밖에도 요한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