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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남에 대해”

James Chae 2023. 3. 5. 07:48

2023. 3.5. 가해_사순2주일

창세 12:1-4 / 시편 121 / 로마 4:1-5, 13-17 / 요한 3:1-17

 

다시 태어남에 대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사람은 하느님께 참여할 때 비로소 참으로 사람이 된다.” 알프레드 델프

 

유대계 독일출신의 예수회 사제 알프레드 델프(Alfred Delp, 1907~1945) 나치에 대항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지를 깊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권력도, 세상의 어떠한 안락도 인간의 존엄을 짓밟으며 정당화될 수는 없음을 그는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면 인간은 한갓 동물과 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본성에 내재된 모든 것이 야만적입니다. 파시즘은 이러한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할 있는지 우리는 2 세계 대전 이후 끊임없이 현재에도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 개인에게 주어진 본연의 존엄이 짓밟히는 속에서 우리 교회만큼은 가장안전한 교회로서세상의피난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진 홍수와 태풍 속에서도 삼나무로 사람이 직접 만든 방주가 노아를 지켜냈는데 하물며 2 년을 이어온 우리 교회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는 원래 엇박자가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땅의 것을 말하는 , 다른 사람은 하늘의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유한한 것을 말하는데, 다른 사람은 영원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인간의 의를 말하는데, 다른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합니다. 사람의 의와 하느님의 의가 충돌합니다. 그러니 대화는 시작부터 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사람의 대화만으로는 니고데모가 예수의 가르침에 승복했는지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와의 대화 끝에 자신의 동족에게 복음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니고데모에 대해서는 성서는 침묵합니다. 다만 나중에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두둔하는 발언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에서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요?”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습니다(요한 7:45~52). 천주교 전승에는 그가 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요한복음은 매우 신학적으로 체계화된 편집구성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장에서 12장에는 7가지의 표징이야기를 배치하여예수의 신원 밝히는 주력합니다. 사이사이에 표징이 없는 대화로만 이루어진 예수의 신원 이야기가 배치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와 더불어 오늘 읽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도 예수의 신원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학적 담화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오늘 담화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핵심적인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유명한 요한복음 3 16절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여주셨다. 요한 3:16

 

짧은 말씀은 예전에 대학선교회 CCC에서 만든사영리전도지의 핵심 구절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신학의 중심인하강 그리스도론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원을 하느님으로부터파견된 으로 보고 있습니다. , 그는 하늘의 것을 가지고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내려오셨으니 그분이 다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 당시의 지식인이고 엘리트였던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예수가 말하는 개념이 얼마나 세상 지식과 괴리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이의 차이의 거리만큼이 하느님과 인간의 다름의 거리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땅에서 것처럼 둘의 간격을 이어줄 것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일을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중계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오늘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참으로 사람이 된다 알프레드 델프의 말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참으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어야만 존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인간은 존엄해지며 인간이 됩니다. 공동복음성서가하느님의 ,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디카이오수네 테오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의역한 것은 이런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해석입니다. 단지라고 말하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맹자도 인간은인仁 통해 타자와의義 함께 이뤄간다고 말했듯이 관계성과 연관된 말입니다. 나와 타인, 나와 하느님, 나와 사회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만드는 것이하느님의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행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품삯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적인은총 의지 합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지요. 다른 종교는 그러한 이르기 위해 나름대로의 수행과 헌신을 요구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오직은총 의지합니다. 그리고 은총에감사해서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이 수행하고, 타자와 함께 이루길 촉구합니다. 강요가 아니라 권면입니다. 선택은 그러한 권면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21 28절에서 32절에 보면 아들의 비유 이야기 나옵니다. 형은 처음에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처음에 아버지의 명령에 예하고 순종했다가 결과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몫대로 선택을 했고, 그들의 선택에 대한 심판은 오직 하느님의 것으로 남습니다. 선한 아버지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실뿐 우리의 선택에 관여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선택할 있는 권리 인간의 존엄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는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존엄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사는 오직 순종할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강요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서로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올바른 관계입니다. 바탕은 바로사랑입니다. 그래서 성서는하느님은 사랑이시다.’(1 요한 4:8)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에는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가 먼저 죽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로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사람 아담의 범죄함이 우리 모두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순종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새로 태어나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오늘 요한복음에서 언급한물과 성령으로라는 말은 초대 교회 요한 공동체의 세례식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이지만, ‘세례식 단순한 종교적 형식을 넘는 의미가 있음을 오늘 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얻은 것이지만, 이제 물과 성령으로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데 이번에는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남

1990 여름 강원도 정선의 동강. 비와 바람, 천둥과 번개가 치던 밤에 일련의 젊은 학생들이다시 태어남 대해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빗물이 머리끝에서 속옷까지 모두 적시는 대도 시간이 넘게 빗속을 떠나는 청년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80년대, 정체성의 혼돈과 사회적 불의에 분노했던 청년들은 정의의 실종에 절망했습니다. 사회를 변혁할 없음에 절망한 나머지 결국 사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새로운 삶을 원했습니다. 그때 우리를 휘어잡았던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남’. 젊은 학생들이 최루탄과 경찰의 곤봉에 길거리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쓰러지고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정의를 보길 원했습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모두가 몰살당할 같았던 절박함이 우리의 기도를 간절하게 했던 같습니다. 그때가 정확히 1990 7 13 금오일 10시쯤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사람이 바로 저였고, 저는 그날 폭풍우 치는 밤에회심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시 태어남 대해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느낄 있습니다. 누구는 착각이네, 누구는 정신이 나갔네 라며 그때 저를 비난했던 많은 말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다시 태어남의 감동과 흥분이 무려 3개월간 지속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지하철을 오가며 감동을 외치며 전도했던 자신의 모습이 새삼 떠오릅니다. 여러분이 비난하는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기에 있는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여름밤의 강렬한 회심의 체험은 평생 저를 붙드는 삶의 동기였습니다. 그때 저의 회심은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구분이 됐습니다.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없는 새로운 순례의 길에 오른 것이지요. 

 

다시 태어남 대해 묵상하면서 이를 신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주석서를 보고 신학책을 보고 이것저것 찾고 고민을 해봐도 합당한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태어남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빛을 보고 회심했던 사도 바울로나, 마니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아이들이 노래한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소리에 로마서 13장을들고 읽고회심했던 어거스틴에게도 있었던즉각적인 회심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를하느님의 현존 체험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강렬한 회심 체험은 회심 전과 후가 분명하게 나뉘기 때문에 확실히 구분이 가능합니다. 회심 이후에는 절대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다시 태어남 경험한 사람은 이전의 자기와 완전히 단절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다시 태어남 대한 종교적 형식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강렬하고 즉각적인 체험을 형식화한 것이 바로세례식입니다. 주님께서도 요한의 세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세례식 통해다시 태어남 재현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물속에서 죽어 물로 깨끗해졌다는 의미이고, 성령으로는 이제 새로운 생명을 얻었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세례시에는 물과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즉각적이 강렬한 회심의 체험이 때로는 세례시에 따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흔한 현상은 아닙니다. 세례가 이러한 것을 표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태어남 간절함이 세례를 더욱 뜻깊은 것으로 만듭니다. ‘다시 태어남 대한 열정.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의 삶을 리셋하는 것은 자살을 의미하지만, ‘다시 태어남 새로운 생명과 관계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 고린 5:17 개역한글

 

다시 태어남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핍박했던 사도 바울로가 완전히 다시 태어남은 오직 그의 삶으로만 증명될 뿐입니다. 어거스틴의 삶도 그러한 것을 입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다시 태어남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험한 세상 속에서 아직도 거룩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회심이 가지는 강렬한 영향은 역사의 물줄기도 바꿉니다. 사도 바울로의다시 태어남으로 복음은 모는 민족에게 전파될 있었고, 어거스틴의다시 태어남으로 중세 기독교는 그의 기초 위에 있었습니다. 만약 니고데모가 예수의 말대로다시 태어남 경험했다면 유대교는 오늘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 가운데는 세례와 견진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에게나 우리 모두에게다시 태어남' 의미는 특히 사순절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곧바로 광야 40일의 시험을 받으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다시 태어남이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실제로 금식하며 광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사순절이란 절기 동안 이를 깊이 묵상하고 우리 삶의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40일은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데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작은 잘못된 습관부터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켜 가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매년 반복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있습니다. 모쪼록 사순절 기간 동안 여러분이 하느님과 약속한 것이 무엇이든 결단하고 실천하여 귀한 은총을 깨닫는 사순절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사순2 (가해)

 

 

본기도

자애로우신 하느님, 지극한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하느님의 진실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12:1-4

1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것이다. 3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덕을 입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성시_시편 121

1     쳐다본다.
.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2    하늘과 땅을 만드신 ,
.     주님에게서 나의 구원은 오는구나.
3     발이 헛디딜까 , 너를 지키시며
.     졸지 아니하시리라.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
.     졸지 않고 잠들지도 아니하신다.
5    주님은 너의 그늘, 너를 지키시는 ,
.     주께서 오른편에 서계신다.
6    낮의 해가 너를 해치지 않고
.     밤의 달이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7    주께서 너를 모든 재앙에서 지켜 주시고
.     목숨을 지키시리라.
8    떠날 때에도 돌아 때에도
.     너를 항상 지켜 주시리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4:1-5, 13-17

1 우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3 성서에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 창세 15:6” 하지 않았습니까? 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있는 분이십니다. …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에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14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상속자가 있다면 믿음은 무의미하게 되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에게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성서에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창세 17:5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복음서_요한 3:1-17

1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사람이었는데 2 어느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 그러자 예수께서는정말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또는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4 니고데모는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5 “정말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7 새로 나야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8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9 니고데모는 다시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0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 11 정말 들어두어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너희는 내가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