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영과 진리로…”

James Chae 2023. 3. 12. 07:42

 

2023. 3.12. 가해_사순3주일

출애 17:1-7 / 시편 96 / 로마 5:1-11 / 요한 4:5-42

 

영과 진리로…”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다시 태어남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담화입니다. 요한복음의 전반부에 배치된 담화는 이적 사화와의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오직 신학적 진술로만 이뤄진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화형식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세련됩니다. 담화 사이에 요한 기자는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 배치함으로써 요한복음의 주제인예수는 위에서 오신 으로 그를 믿는 사람은영원한 생명 얻는다는 명확한 그리스도론을 먼저 선보입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 때문에 우리가 다음 나올 이야기의 주제를 가름할 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위로부터 오신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배받으실 분이라는 . 그분이그리스도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신원이 이렇게 요한복음에서는 철저히 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정체성을 조금씩 드러내는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공관복음서와 다른 요한복음서의 확연한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사순 5주일까지 요한복음서를 계속 읽게 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론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내용들은십자가 향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소경을 고치신 이야기, 나자로를 살리신 이야기 성서정과는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위시해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오늘 읽은사마리아 여인 이야기 예수의 신원을 매우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밝혀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과 그의 동족들의 입을 통해 점증적으로 밝혀지는 치밀한 구성입니다. 처음에 그녀는 예수를유다인으로 불렀습니다. 그다음에는주님이라 불렀고, 다음은야곱보다 위대하신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힌 주님을예언자 불렀습니다. 대화의 마지막에 여인은 결국 예수가그리스도라는 깨달음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에게 전도를 그녀의 동족들은 예수를세상의 구원자 최종적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예수 신원을 밝히는 구성은 ‘7가지 기적 표징보다 효과적으로 예수의 신원을 드러냅니다. 결국 이를 통해 요한복음 기자는믿음표징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그리스도의 말씀 근거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징이 없는 니고데모와의 담화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담화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위치를 가집니다. 오직 7가지 표징에 근거해서만 예수의 신원을 전개했다면 마치믿음표징 근거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표징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견인하는 역할 이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과 회심은 철저히 그분의말씀 의지합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의 점증적인 인식의 변화는 정확하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성장 과정과도 일치합니다. 사람 예수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우리가 점증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요 우리의 구원자라는 결론에 다다르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담화에서 다뤄진 여러 신학적 담론들 시간 관계상 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대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신원인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라는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것이고, 영과 진리 예배하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요한복음 기자는 예배에 대한 정확한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느님 예배가 정통화되어 있는 유대교와는 반대로 초대 요한복음 공동체는 사마리아인들처럼 예루살렘이 아닌 새로운 예배의 장소와 개념이 절실히 필요했던 같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분열되면서 야훼 신앙의 중심이던 예루살렘이 아닌 북이스라엘이 예배 장소로 선택한 곳이그리짐 Mount Gerizim’(신명 11:29)이었습니다. 그곳은야곱의 우물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사마리아 지방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니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인 사마리아인들이나, 초대 요한 공동체나 이상 예루살렘을 예배의 중심지로 주장할 없는 입장이 동일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이 눈에 보이는 예배 장소에 집착한 것에 반해 요한 공동체는 이상 눈에 보이는장소 아닌 하느님의시간으로 예배의 중심을 바꿔갔습니다. 장소보다 예배에서 중요해진 것이지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예배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드려지는 예배였습니다. 그래서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요한 4:23)라고 요한복음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예루살렘의 성전, 사마리아의그리짐 아닌 영적으로 예배드리는 하느님의 때가 왔으니 바로 예수님과 함께하는지금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예배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때는예루살렘이나그리짐 으로 예배를 위해 순례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예배드리는 자를직접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요한 4:24)이시므로 예배드리는 자는πνεῦμα 진리ἀλήθεια”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이이시라는 말은 그분이 인간적, 세상적 본질과 전혀 다름을 설명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아니라 우리의마음 방점이 찍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밝혀졌듯이 영적으로 반드시다시 태어남 경험해야 합니다. 이는 유대교와 사마리아인들의 예배 전통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획기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예배가 가능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의 이러한 질문에내가 바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신원을 최종적으로 확증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예배할 때는 바로 예수님과 함께하는지금 중요합니다. 이로써 요한복음은 역사적 예수가 바로 우리의 예배 대상인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이나그리짐 으로 순례를 필요가 없이 주님께서 정하신 때에 예수를 예배함으로써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게 것입니다. 그래서 두세 사람이라도 이름으로모인 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론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분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에 감동한 여인은 자신의 동족에게 돌아가와서 보라 전도를 합니다. 그녀는 자신과 대화를 나눴던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동족들도 예수를 만나보고 확신하여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학적 진술들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교리공부 또는 성서 공부 시간에, 또는 설교시간에 들어서 너무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말이 의미하는 바를 사마리아 여인이나, 그녀의 동족들이 감동으로 받아들였던 느낌으로 우리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음을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만큼 우리는영과 진리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그분과 함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우리의 일상을 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예배는 안전합니까? 우리는 정말 하느님의 때에 그분의 뜻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믿으시나요? 아니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왠지 찜찜하고 드리자니 개인적 일이 너무 바쁘고 해서 갈등하지는 않으시나요? 습관적으로 주일에는 당연히 예배에 참석했으니 습관의 관성에 의해서 여기에 나와계신 건가요? 아니면 정말로영과 진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간절함에 자리에 앉아계신가요? 여러분의 예배의 중심은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이십니까? 누구를 위해 시간’, 자리 우리는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이렇게함께’, ‘한자리 모여 예배를 드리지만, 오늘 주님 말씀처럼, 결코 하느님은 예배 장소에 묶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압니다. 주님께서는영과 진리안에서 드리는 예배 안에 거하십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과 관련합니다. 예배 안에서 여러분의 영이, 여러분의 진정한 마음이 오롯이 주님께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간을 찾아다니던 유대인과 사마리안인들의 예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찾으신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말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서도영과 진리 예배드리는 사람을 그분께서 찾으신다는 말입니다. ‘영과 진리 예배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어떤 것일까요? 아닙니다. 신명기 말씀은 이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신명 6:5

 

이것이영과 진리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으로 순례하는 수고와 노력 못지않게 예배를 드리는 자는 이제마음과 정성, 쏟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틸리히는 이를궁극적 관심이라 하여 자신의 신학적 테마로 삼았습니다. 중용(中庸) 23장에 자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其次致曲 曲能有誠 (기차치곡 곡능유성). 그다음은 지극히 작은 것에 이르는 것이니 지극히 작은 것에 정성을 쏟아야 성에 이른다 말입니다. ‘이를 지至, 정성 성誠’, ‘지극한 정성으로만 진정한변變화化 이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정말 여러분은 온전히 하느님만을 생각하시면서 그분께만 마음을 쏟고 예배드리고 계신가요? ‘지극히 작은 것에 다다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지루함과 졸림으로, 예배 후에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못다 일들에 대한 염려 등으로 생각과 마음이 다른 곳에 계신가요? 사실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시면서 이곳에 앉아 계신지 아무도 모르지만 여러분 자신과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공허하다면 아마도 우리의 마음이 허망한 곳에 이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시간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에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때를 함께 이뤄간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의 곳에 모인 것은 장소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보다 우리가 같은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몸이 함께하는 것도 기쁘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기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빵을 나누며 몸을 이룹니다.”라는 성찬례의 고백은 우리 예배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 됨의 선포이고, 이러한 선포대로 점증적으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함께 성장하게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 다른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했지만, 감사성찬례가 진행되는 동안 하느님 안에서 점증적으로 하나 됨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예배가 가진 기능이고 예배의 의향이며, 예배의 신비입니다.  자리에, 시간에 모인 우리는 분명 하느님께서 당신의 때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몸을 부르셨으니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함께 부르신 것은 당연합니다. 몸은 이곳에 있는데 생각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예배에 일단 오셨다면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고 예배의 흐름과 드리는 기도문에 집중하시면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 점증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렀던 것처럼 우리도 예배의 흐름 속에서 그러한 확신으로 나아가길 빕니다. 짧은 시간만큼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게 오직 하느님에게만 집중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집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사마리아인들처럼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라는 고백을 예배 끝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영과 진리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점증적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성장의 축복이 사순절을 통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사순3 (가해)

 

본기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목마른 이들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이제 헛된 갈망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출애 17:1-7

1 이스라엘 백성 회중은 광야를 떠나 야훼의 지시대로 진지를 옮겨 가면서 전진하였다. 르비딤에 이르러 먹을 물이 없는 것을 보고, 2 백성들은 모세에게 먹을 물을 내라고 들이대었다. 모세가어찌하여 나에게 대드느냐? 어찌하여 야훼를 시험하느냐?” 하고 말했지만, 3 백성들은 당장 목이 말라 견딜 없었으므로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작정이냐?” 4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다. “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장 저를 돌로 쳐죽일 것만 같습니다.” 5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 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6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들었다고 해서 고장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했다고 해서 마싸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성시_시편 95

1    어서 주님께
.     기쁜 노래 부르자
.     우리 구원의 바위 앞에서
.     환성을 올리자.
2    감사노래 부르며 앞에 나아가자
.     노랫가락에 맞추어 환성을 올리자.
3    주님은 높으신 하느님 
.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높으신 임금님,
4    깊고 깊은 속도 그분 수중에 
.     높고 높은 산들도 그분의 ,
5    바다도 그의 , 그분이 만드신  
.     굳은 땅도 그분 손이 빚어내신 ,
6    어서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느님,
.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     이끄시는 양떼,
.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라.
8    그때에 너희는 므리바에서,
.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마라.
9    그들은 거기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     나의 속을 떠보고 나를 시험하였다.
10  사십 동안 나는 세대에 싫증이나
.     마침내 말하였다.
.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구나.
.     나의 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구나.”
11  나는 울화가 터져 맹세까지 하였다.
.   “이들은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5:1-11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서_요한 4:5-42

5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동네는 옛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7 마침 때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달라고 청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10 예수께서는 여자에게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11 여자는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12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것이다.” 하셨다. 15 말씀을 듣고 여자는선생님,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16
예수께서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17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19 그랬더니 여자는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그런데 우리 조상은 산에서 하느님께 예배 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산이다.’ 또는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때가 것이다. 22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분을 알고 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터인데 바로 지금이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25
여자가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26 예수께서는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때에 예수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여자에게 무엇을 청하셨는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28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29 “나의 지난 일을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렸다. 30 말을 듣고 그들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모여들었다.
31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선생님, 무엇을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예수께서는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누가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34 그러자 예수께서는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양식이다. 35 너희는아직도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 하지 않느냐? 그러나 말을 들어라.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36 거두는 사람은 이미 삯을 받고 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알곡을 모아들인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게 것이다. 37 과연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속담이 맞다. 38 남들이 수고하여 지은 곡식을 거두라고 나는 너희를 보냈다. 수고는 다른 사람들이 하였지만 수고의 열매는 너희가 거두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9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알아맞히셨다고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40 예수께서는 그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므로 거기에서 이틀 동안 묵으셨는데 41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리고 여자에게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
20: ‘그리짐 의미한다. 하느님은그리짐 에서 축복을, ‘에발 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하셨다 (신명 11:29, 신명 27:12-13, 여호 8:33). 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그리짐 산에 자기 들만의 성전을 세웠는데, 안티오쿠스 왕은 성전을 제우스를 위한 성전으로 오염시켰다(2마카 6:2). 성전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사마리아인들은 계속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