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유배된 지혜”

James Chae 2023. 7. 9. 05:44

2023. 7.9. 가해_연중14주일

창세 24:34-38, 42-49, 58-67 / 시편 45:10-17 / 로마 7:15-25 / 마태 11:16-19, 25-30

 

유배된 지혜*”

 

  • 유배된 지혜라는 말은 우리 안에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유배되었다는 뜻입니다. 창세 때부터 하느님이 만물에게 부여한 지혜는 결코 사라질 없습니다. 단지 우리 자유의지가 우리의 죄성이 이를 우리 안에서 유배시켰다는 의미입니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그들은 세례자 요한의 엄격함도 그리스도의 자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오늘 읽은 복음서의 앞부분에는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러한 정황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자신이 일을 소개하며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낸 것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자신의 제자들이 이제 예수를 따르기를 바라며 보냈을 겁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분명히 양가적인 마음속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든지 아니면 그를 거부하든지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지혜 자체이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를 만나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율법의 완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강조하고 실천했지만 세례자 요한처럼 율법대로 철저히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부 키릴루스는 유대인들이 세례자 요한의 엄격함 조차, 율법의 완벽한 준수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마태 11:18-19)

 

 

율법의 철저한 준수자이며 예언의 끝인 세례자 요한을 유대인들은 오히려미친놈이라 불렀습니다. 요한과 반대로 율법 조문에 얽매이지 않으셨던 역사의 예수의 자유함을 보고는먹보술주정뱅이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논리도 지혜도 근거도 없는 비난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그들이 칭송하는잠언 지혜조차도유배시켜버린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리스도도 받아들일 없을 정도로 그들은 율법에도 은총에도 제외된 사람들이 것입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수레처럼 공허한 소리만 울리며 갈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니 사는지, 죽는지, 사랑해야 하는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이상 사람들은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율법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있었지만 정작 율법이 말하는 지혜는 잃어버린 것입니다. ‘ 있는데 들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께서 하신 비유는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

 

 

지혜가 유배를 당했기에 우리 안에는 지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아무도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지혜는 잔소리로 전락했고, 어른들은 지혜의 소리보다 자신의 이득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니 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세대갈등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손자와 손녀들을 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른마다 다릅니다. 자기의 자식들의 안위는 걱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식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면서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말에는 자식들은 잘하고 있는데 남의 자식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유배된 지혜 이렇게 사람들을 옹졸하게 만듭니다.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은자기 자신자신의 소유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모든 성취는 오직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고,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쉽게 믿습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과 나무들도 벌이나 나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아무도 혼자서 성공할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룰 있는 일도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니 우리는 지혜를 유배시킨 것이 맞습니다. 우리 안에 어디에도 지혜를 발견할 없게 됐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사람들이나 모두가들을 없는 것은 분명한 같습니다.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가 가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라면, 왜 요한을 못마땅하게 여겼느냐? 너희가 부를 좋아한다면, 왜 사람의 아들을 싫어했느냐?” [히에로니무스의 마태오복음 주해]

 

 

지혜가 없으니 우리는 말씀처럼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 바쁜 일이 있으면 우리는 갈등합니다. 교회에 가야 할까? 아니면 일을 해야 할까? 물론 전혀 고민도 하고 교회로 오시는 분도 있고, 반대로 당연히 교회보다 일을 쫓아가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전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지혜 순간 유배된 것이지요. 우리는 잠시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택의 순간 지혜를 유배시켜 우리의 습관과 관성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최소한의 갈등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지혜의 불꽃 조금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에 갈지 아니면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순간 지혜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최소한 지혜가 작동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을 하게 되고 다양한 경우의 수와 인식의 흐름을 감지하게 됩니다. 속에서 지혜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지혜에 아주 중요하게 작동을 합니다. 그리고 지혜는 자신의 선택에 어떤 책임이라도 진다는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지혜가 작동하는 하는 프로세스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프로세스는 여러분의 다양한 속에서 작동될 있습니다. 고민이나 염려는 지혜가 아닙니다. 번뇌와 번민도 지혜가 아닙니다. 지혜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작동합니다. 때론 마음이나 감정의 동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혜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자신이 손해 보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손해와 손실대신 양심의 자유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익에 집착하면 지혜를 구하기보다 오히려 계산기만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잃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립니다. 유배된 지혜는 양심조차도 우리 안에서 유배시켜 우리를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자신의 부조리를 전부 드러내는데도 우리는 부조리를 정확하게 보지 못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오히려 우리 인간이 부조리한 인간이 되자는알베르 카뮈같은 사람에게 열광을 합니다. 양심이 유배되고 지혜가 유배되었으니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 앞에 있는 부조리를 스스로 감당해 내라는 것입니다. 멋진 같지만, 외로운 말이기도 합니다. 시시포스Σίσυφος(Sisyphos) 돌을 언덕 위로 굴리는 일을 매일 반복하듯이 우리의 삶이 매일 그러한 반복된 일상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시시포스의 외로움처럼 우리 현대인은 그래서 외롭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매일 굴려야 하는 돌을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굴린다면 어떨까요? 그런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요? 여기에서 사도 바울로는 위대한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로마 7: 21-25)

 

 

모든 인간은죄의 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우린 시시포스처럼 매일 버거운 돌을 언덕 위로 무의미하게 굴려야 하는 저주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저주를 깨달은 사도 바울로는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우리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희망으로 자기 안에 모셔들인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율법이나 인간의 공로보다은총과 믿음 집착한 이유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이 처한 실존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게 것입니다. 지혜입니다. 들을 귀가 열린 것입니다. 유배된 지혜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길이 열린 것입니다. 자유입니다. 모든 속박에서의 자유. 유배된 양심이 우리 안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감사입니다. 우리를 이러한 부조리한 실존에서 살아갈 있는 희망을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이렇게함께견뎌내고 있는 것이고, 오늘 이렇게 하느님께함께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이렇게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이 주는 위안과 힘을 안다는 .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혜로운 아브라함의 종은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리브가 만났습니다. 그가 지혜로웠기에 그의 지혜는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있을 정도로 헌신되고 자비로운 사람인리브가 만나게 것입니다. 사람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는 우물물 바가지면 되지만, 낙타에게 물을 주는 일은 보통 남성들도 힘든 일입니다. 낙타는 번에 113리터 정도의 물을 15 안에 마신다고 합니다. 20리터 버킷으로도 마리당 6 버킷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성서는낙타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는 1톤이 넘는 물을 우물에서 길어야만 했을 겁니다. 성서에 기록은 없지만 그녀는 완전히 탈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뜨거운 대낮에 말입니다. 리브가를 수고스럽게 했지만 아브라함의 종은 번의 지혜로 그녀의 사람됨을 알게 됐습니다. 약속의 자녀의 며느리로 충분한 자격을 것이지요. 이와 같이 지혜는 우리에게 산적한 많은 문제들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합니다. 지혜는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합니다. 그러한 지혜를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은총으로 주십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기쁜 피리소리를 들으면 함께 기뻐하고, 곡을 하면 함께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니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고 공감도 못했습니다. 지혜가 없으니 세상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어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살아갈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지켜 주시는 성령께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지혜 가운데 여러분이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기도로 올려드리시며, 지혜롭게 문제들을 해결해 가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직시하며 회피하지 마시고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모든 축복은, 여러분이 지혜를 유배시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은총으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겁니다.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 연중14 (가해)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나이다. 비오니,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24:34-38, 42-49, 58-67

34 그는 입을 열어 말하였다.
주인은 아브라함이라고 합니다. 35 주인은 야훼께 복을 많이 받아 굉장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양떼와 소떼, 금과 ,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야훼께 많이 받았습니다. 36 안주인 사라는 늘그막에 주인에게 아들을 낳아드렸는데 주인은 그의 재산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37 그런데 주인은 저에게 맹세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는 며느릿감을 고르지 않겠다. 38 그러니 너는 아버지의 가문, 일가를 찾아가서 며느릿감을 골라 오너라.’ 42 저는 오늘 샘터에 이르러 기도했습니다. ‘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 제가 띠고 사명을 뜻대로 이루어주시려거든 이렇게 해주십시오. 43 지금 제가 샘터에 있는데, 혼기가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오면, 항아리에서 물을 모금 마시게 해달라고 말을 걸어보겠습 니다. 44 만일 저에게 물을 마시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다고 나서는 여자가 있으면, 여자가 바로 주인의 며느릿감으로 야훼께서 정해 주신 여자인 알겠습니다.’ 45 제가 이렇게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와 물을 길으러 샘터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리브가에게 모금만 달라고 했습니다. 46 그랬더니 리브가는 어깨에서 얼른 항아리를 내려놓으며 마시라고 하면서 나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을 마셨습니다. 리브가는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주었습니다. 47 저는 리브가에게 따님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브두엘의 딸이요 나홀과 밀가의 손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코에 코걸이를 걸어주고 팔목에 팔찌를 끼워주고 나서 48 야훼께 엎드려 경배하고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분은 저를 이렇게 바로 인도해 주시어 주인님의 조카딸을 주인댁 아드님의 아내감으로 찾아내게 하셨습니다. 49 그러니 이제 주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시려거든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길을 찾겠습니다.”
… 58 그들은 리브가를 불러서 어른과 같이 마음이 있느냐?” 하고 물어보았다.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 가겠습니다.” 59 그러자 그들은 누이 동생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그의 일행에 딸려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   “누이야, 너는 억조 창생의 어머니가 되어라.
.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부수고
.     성을 빼앗아라.”
61 리브가는 몸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사람을 따라 나섰다. 이리하여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62 이사악은 라하이 로이라는 샘이 있는 사막 지방에 와서 살고 있었다. 곳은 네겝 땅이었다. 63 저녁 때가 되어 이사악은 들에 바람쐬러 나왔다가 고개를 들어 낙타떼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64 리브가도 고개를 들어 이사악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들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오시는 저분은 누구입니까?” 종이 대답하였다. “ 주인입니다.” 리브가는 종의 말을 듣고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66 아브라함의 종은 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이사악에게 보고하였다. 67 이사악은 리브가를 천막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다. 이사악은 아내를 사랑하며 어머니 잃은 슬픔을 달랬다.

 

 

 

 

성시_시편 45:10-17

10   딸아, 들어라.
.     잘보고 귀를 기울여라.
.     겨레와 아비의 집은 잊어 버려라.
11  너의 낭군, 너의 임금이
.     너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리라.
.     그는 너의 주님이시니
.     앞에 꿇어 절하여라.
12  띠로의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오고 
.     부호들은 너의 총애를 얻으려 몰려 들리라.
13,14호화스런 칠보로 단장한 공주여,
.     화사한 걸쳐 입고
.     들러리 처녀들 거느리고 앞으로 오너라.
15  모두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     이끄는 그대로 왕궁으로 들어오너라.
16  자손들 많이 낳아 조상의 뒤를 이으리니,
.     그들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리라.
17  나는 당신 이름을
.     세세대대에 찬양하리이다.
.     백성이 당신 은덕
.     길이길이 찬미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7:15-25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18 속에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19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20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선을 행하려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23 속에는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법은 나를 사로잡아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것입니까? 25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복음서_마태 11:16-19, 25-30

16 세대를 무엇에 비길 있으랴? 17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18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보아라,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있다.
25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없고 아들과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

'글모음 > 설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의 양자”  (0) 2023.07.23
“가해자 vs. 피해자”  (0) 2023.07.15
“변신 또는 변화”  (0) 2023.07.02
“그리스도인의 존재감”  (0) 2023.06.24
희망의 상실 시대  (0)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