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9. 가해_연중25주_금요일_추석별세기념성찬례_미카엘과 모든 천사들 축일
출애 17:1-7 / 시편 78:1-4, 12-14 / 필립 2:1-13 / 마태 21:23-32
“영원한 현재와 나눔”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우리가 흔히 과거에 대해 기억하는 방식은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현재보다는 과거로 시간의 중심축이 기웁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흔히 과거에 자신이 좋았던 때를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곤 하십니다. 심지어 참혹한 베트남 전쟁의 기억조차도 어떤 어르신에게는 자신의 청춘의 추억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분도 제가 보았습니다. 아마도 현재의 자신과 과거 한창때의 자신을 비교하면서 과거에서 어떤 위로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적 간격의 차가 큼을 느끼며 일종의 향수(nostalgia)에 젖어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재는 늘 과거에 비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기억법도 현재 속 썩이는 자녀들보다 한 때 말잘 듣고 귀엽고 천진했던 자녀들의 어렸을 때의 모습을 종종 떠올립니다. 과거의 상황이 현재보다 더 나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러한 과거에 대한 향수는 더 짙어지는 법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과거를 기억하는 법은 추억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와는 다릅니다. 과거는 늘 현재로 소급되어 현재에 머물고 미래는 현재로 침투하여 과거와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말도 있고, “영원한 현재”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에서 과거는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는 더 이상 미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산 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산 자”이고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과거이든 미래이든 시간이 늘 현재로 소급되어 현재를 중심으로 구심점을 형성할 때 현재에서 우리는 영원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거의 재해석’입니다. 이스라엘은 과거 출애굽의 기억에 붙들려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출애굽을 재해석하는 기억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보다 그 율법을 해석한 랍비들의 해설서들이 각 시대별로 더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거가 미래와 함께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출애굽 사건이 “영원한 현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영원한 현재”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원한 현재”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까요?
추석 명절의 성서정과는 그 예를 하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정과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언급들이 있습니다. 즉 추수감사의 성격이 짙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나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축복에 대한 감사와 나눔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누구는 추석을 풍성한 가운데 맞이하고, 누구는 추석을 그렇지 않은 가운데 맞이합니다. 그래서 가족끼리 모여도 묘한 불균형으로 긴장감이 돕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영원한 현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상들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오늘로 소환하여 나누는 마당에 가족 간에 긴장감은 말이 안 됩니다. 서로의 기억을 하나로 공유하면서 가족이란 한 몸을 만들 수 있는 힘은 과거로부터 나오지만,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은 현재의 가족 간의 나눔을 통해서입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기억하는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등의 기억들을 자손들과 나눌 때 그 가족 공동체는 과거를 ‘영원한 현재’ 가운데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우리 가족들과 ‘영원한 현재’ 속에 머무시게 됩니다.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족을 가족 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동합니다. 그 순간이 현재에 영원성이 부여되는 순간입니다. 이와 더불어 가족 간에 한 해의 축복을 나누는 것 또한 기억 못지않게 현재를 더욱 복되게 합니다. 많이 거둔 자는 자랑하지 말고 그 축복을 감사함으로 가족 간에 서로 나눠야 합니다. 그것이 가족이 하나 되는 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조상들이 우리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뜻일 것입니다. 가족의 하나 됨 말입니다.
그러나 명절에 가장 뜻깊은 나눔은 기억의 나눔과 가족 간의 나눔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현재인 오늘 돌보는 것입니다. ‘나눔’은 ‘영원한 현재’를 채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명절마다 늘 이 명절의 풍성함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 가족, 우리 교회를 넘어 우리 주변을 또한 돌아보는 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넉넉한 가운데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나누면 됩니다. 직접 찾아가 인사를 전할 수 없더라도, 전화나 문자로 마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관계가 있다면 명절을 통해 소통의 기회를 만드는 것도 나눔의 한 방식일 겁니다. 성서는 이 추석 명절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만나’를 거둘 때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모두에게 부족함이 없는 명절이 되길 권면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울 일이 많을수록 명절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진정으로 풍성한 명절을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현재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섬김과 나눔은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아름답고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가득한 명절 되시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이름으로… 아멘
전례 독서_추석 명절
본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계절을 따라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시기 감사하나이다. 구하오니, 기쁜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기억하는 조상들의 영혼에 안식을 주시고, 때에 따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언제나 그 은혜를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요엘 2:21-24, 26
21 흙아, 두려워 마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야훼께서 큰일을 이루셨다.
22 짐승들아, 두려워 마라.
⋅ 들판의 목장은 푸르렀고
⋅ 나무들엔 열매가 열렸다.
⋅ 무화과나무와 포도덩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 야훼 너희 하느님께 감사하여
⋅ 기뻐 뛰어라.
⋅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 겨울비도 내려주시고
⋅ 봄비도 전처럼 내려주시리니,
24 타작 마당에는 곡식이 그득그득 쌓이고
⋅ 독마다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
26 이제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으며
⋅ 너희 하느님 야훼를 찬양하리라.
⋅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준
⋅ 이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 내 백성은 언제까지나 당당하리라.
성시_시편 104:13-15
13 높은 궁궐에서 산 위에 물을 쏟으시니 ◯
⋅ 온 땅이 손수 내신 열매로 한껏 배부릅니다.
14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
⋅ 사람은 농사지어 땅에서 채소를 얻게 하시고
15 또한 곡식을 양식으로 주시며 ◯
⋅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주셨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요한 3:17-18
17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18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복음서_마태 25:34-40
34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37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 언제 주님께서 병 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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