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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전”_2024.5.5. 나해_부활6주일_설교문

James Chae 2024. 5. 5. 07:39

2024.5.5. 나해_부활6주일

사도 10:44-48 / 시편 98 / 1요한 5:1-6 / 요한 15:9-17

 

 

사랑과 안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내가 비록 그때의 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관찰하고 있는 저 어린아이들이 내 죄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했던 자신의 유년기 시절의 죄악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깨달은 사실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순결하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어린아이들의 존재와 본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연약함때문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인간 본연의 질투심과 이기심을 적나라게 지닌 죄에 대하여 연약한 존재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결과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의 죄성을 대면하게 됩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고프거나 몸이 불편하면 상대에게 대한 배려 없이 울음으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고려를 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를 돌보는 보모나 어머니는 불평 없이 자신의 아이의 요구를 알아채고 욕구를 채워줍니다. 그래서 아이와 돌보는 사람 사이에 전적인 대비가 발생합니다. 완전한 이기심과 완전한 이타심의 대비말입니다. 아이는 요구하고 돌보는 사람은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보모나 어머니가 그렇게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의무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아이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있겠습니까? 그렇게 아이는 철저한 이기심과 연약함 속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면 아이의 이러한 이기심이 인간이 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는 걸까요? 아이 지녔던 이기심은 과연 성장하면서 어디로 걸까요? 만약 유아적 이기심이 사라진다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이타적인 인간으로 진보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년기의 이기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새로운 인격으로 잠시 가려진다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자기(self) 인격(ego)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융은 다양한 인격이 인간에게 존재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유아기 때의 인격과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의 인격이 모두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라는자기 그대로이지만 인격은 변화를 겪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유년기 때의 여러분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아이를 정말 자기 자신으로 인식할 있을까요? 아이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해서 사랑할 있을까요? 물론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우리에게 있으니 얼굴 정도는 인지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년기의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아이를 마주하는 같은 느낌을 받게 것입니다. 시간의 많은 결들과 다양한 환경 요인들에 의해 유년기의 아이와 현재의 자신 간에는 너무나 많은 이질감이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 자기 안에 있는 인격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점증적으로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단지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보통 하나의 자기에 하나의 인격이 작동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인격 장애를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자기에 다양한 인격들이 동시에 작동하게 되면 인간은 다중인격장애를 겪게 됩니다. 이것은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안에는 성장과정에서 생긴 다양한 인격들이 점층적으로 나무의 나이테처럼 형성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의 이기적인 인격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가 상황과 환경 요인에 따라 수시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여 현재의 자기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말할 없이 유치한 유년기의 이기심을 종종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격에 대한 의식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과거의 인격들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통해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난 우리는 이러한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사랑의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별사화에서 주님도 없이 험한 세상에서 홀로 남겨질 제자들에 대한 배려를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미리 주님의 부재에 대비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죽음을 죽으실 것을 아셨기에 제자들이 세상에서 당할 불이익도 미리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더욱 단단한 음식을 먹을 있는 영적인 인격으로 성장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서로 빼앗고 남을 누르며 관계를 분열시키지만, 제자들만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세상을 이길 있는 힘은 이기심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제자들이 앞으로 행하게 모든 일들, 복음 전파, 병고침, 기적 행함 등의 일들이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모두 세속적인 부정한 행위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위험도 감지하셨습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복음,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기도,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선행이나 헌신이 모두 무의미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단순히 스승을 따르던 제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순히 주인을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주님을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우정의 관계 속에 놓으심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맺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관계성의 이름이친구입니다. 주님과 제자들 간의 관계는 구약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이제 우정의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요한 15:9

 

 

주님께서는너희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예수 안에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랑의 전권을 하느님께 받으셨음을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밀한 것처럼 말입니다. 친밀성은 바로사랑의 실천 통해 형성되는 친밀성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친구 간의 사랑으로 표현하십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바로 의리에 기반한 우정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끈끈한 우정의 관계를 유지했는지 우리는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 이전에 그들은서로 누가 높으냐 서로 다퉜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유년기적 연약함을 지닌 제자들을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강건하게 세우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험난한 세상을 향해 그들이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인격체로 성장하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죽음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끈끈한 유대감 없이 제자들이 절대로 유대교와 로마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그러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이겨냅니다.(1 요한 4:18) 두려움에는 심판이 있지만, 기쁨에는 하느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 제자들과 제자들의 관계 속에서 서로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것이 물결치는 풍랑 속에서 그들을 지키는 안식처가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과 사람 간에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과연 어떨까요? 만약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다면 어린아이는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할 있겠습니까? 돌봄이 없는 성장이 가능하겠습니까? 저희 성당에나나라는 고양이는 새끼를 낳으며 일정기간 동안은 새끼들을 애지중지 돌보다가 성장하면 서로 남남이 되는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없지 않습니까?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의 인격 속에 갇혀 완전히 자기 위주의 관계성을 주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의 상태에 놓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질서와 문명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은 아직도 인간 안에는 인간을 서로 지켜주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반증입니다. 사랑은 상호 동등한 사랑이 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사랑에는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사랑의 정도가 서로 달라 반드시 사람이 희생해야 때가 많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사랑은 없다.”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랑이 없는 보여도 세상이 지금 존재하는 것은 현재에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이 지탱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세상은 결코 안전할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아무나 믿을 없는 세상. 문자 하나에도 의심을 먼저 해야 하는 세상. 길거리에서도, 집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세상. 위험은 우리 도처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도 누군가는 타락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타자를 돌보고 있을 겁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누구는 어린 영혼들조차 총으로 죽이지만, 누구는 아이를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사랑에 서툴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이 아직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의인 명이 없어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우리의 세상은 아직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에 빚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빚을 지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합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안전을 사랑 속에서 확보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친구, 사랑이 있는 가정, 사랑이 있는 직장, 사랑이 있는 교회는 모두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제주우정교회가 그러한안전한 교회 되기를 빕니다. 아픈 사람들이 와서 치료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와서 위로받으며, 좌절하고 지친 사람들이 힘을 얻을 있는 그러한 교회.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우정의 교회로 세워주신 이유일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모든 관계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부활6 (나해)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택하시어 벗이라 불러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썩지 않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10:44-48

4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이 모든 청중에게 내려오셨다. 45 신자가 유다인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왔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그것은 이방인들도 기이한 언어로 말하며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47 사람들도 우리처럼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어떻게 막을 있겠습니까?” 하며 4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일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기들과 함께 며칠 머물러달라고 간청하였다.

 

 

 

성시_시편 98

1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     놀라운 기적들을 이루셨다.
.     그의 오른손과 거룩하신 팔로 승리하셨다.
2    주께서 거두신 승리를 알려 주시고
.     당신의 정의를 만백성 앞에 드러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다던
.     사랑과 진실을 잊지 않으셨으므로
.     끝까지 모든 사람이
.     우리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다.
4     세상아,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     기뻐하며 목청껏 노래하여라.
5    거문고를 뜯으며 주님께 노래 불러라.
.     수금과 많은 악기 타며 찬양하여라.
6    우리의 임금님, 주님 앞에서
.     은나팔 뿔나팔 불어대며 환호하여라.
7    바다도 속에 가득한 것들도,
.     땅도 위에 사는 것들도,감사성
.     모두 환성을 올려라.
8    물결은 손뼉을 치고 산들은
.     같이 환성을 올려라,
.     그가 세상을 다스리러 오시니,
.     앞에서 환성을 올려라.
9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요한 5:1-6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녀를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있습니다. 3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4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6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입니다.

 

 

 

복음서_요한 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것이다.”

11 내가 말을 것은 기쁨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사랑은 없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17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