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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깊은 곳에서”부터 “저 하늘”로…_2024.5.12. 나해_승천대축일주일

James Chae 2024. 5. 12. 05:50

 

2024.5.12. 나해_승천대축일주일

사도 1:1-11 / 시편 47 / 에페 1:15-23 / 루가 24:44-53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과연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레논의 노랫말처럼 위에 천국도 없고 아래 지옥도 없는 것일까요?  그렇게 없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종교도 없고, 나라도 없으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상상. 그런 상상은 얼마나 쉽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돌이켜보면 절대로 레논이 상상한 나라는 정말 “Imagine”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래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이상향을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고 즐길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상상과 바람을 배반합니다. 도망치는 여덟 살의 어린 팔레스타인 소년의 뒤통수에 조준 사격을 이스라엘 군인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던가요? 그는 순간 어쩌면 야훼의 이름으로 이교도의 씨를 처단한다는 정당성으로 무장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민족의 복수만을 생각한 나머지 타민족에 배타적인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종교적 가르침이 인간 본성 속에 하느님이 심어두신 자비와 양심의 법을 넘어선다면 정말 하느님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교 시스템 속에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폭력의 노예가 되는 순간 창조의 선한 목적이 모두 왜곡되고 굴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는 같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런 모순이 과연 하느님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우리 인간의 잘못일까요? 우리 인간은 너무 쉽게 자신들의 잘못을 하느님께 전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신들의 행위로 치환되는 순간 인간은 마치 자신들이 현실 속에서 저지르는 모든 악행들을 신들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듯한 착각에 빠지는 같습니다. 이것이 신화의 힘이고 신화가 지닌 악영향입니다. 신들도 저렇게 죄악을 저지르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떻겠어? 인간이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신의 죄악으로 전가를 시키든, 아니면 자신들의 폭력성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미화를 시키든, 인간은 스스로의 잘못조차도 신의 , 또는 신의 잘못, 또는 신의 무능으로 너무도 포장을 합니다. 신이 인간의 이러한 행태를 일일이 간섭하셨다면 우리 인류는 현재 전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상상을 종종 해봅니다. 시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어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시니 참되신 주의 사랑 그지없으십니다.” 시편 86:15

 

 

하느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정면으로 자신의 죄와 자신의 치부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땅에 전쟁과 기근이 넘쳐나는 것이 과연 신의 잘못 때문일까요? 정말 레논이 상상했던 것처럼 종교와 국가가 없으면 세상에는 자유가 도래할 있을까요? 레논이 상상한 세계는 종교와 국가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분명 그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직면한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죄에 대해 취약한 지를 깨달은 사람은 결코 모든 자유의 억압을 시스템이나 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정말 자유한 같지만, 우리는 어떠한 결정도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내리기 힘든 존재들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없습니다. 자신의 가족, 친구, 직장, 경제적 상황, 자신의 능력 고려해야 사항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없는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 대해 자발적인 마음으로 임하느냐 아니면 불편한 마음으로 임하느냐 일뿐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보기보다 땅을 보기를 좋아합니다. 땅은 우리의 발을 딛는 공간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열린 공간이지만, 땅은 닫힌 공간입니다. 우리는 속이 어둠이라 상상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성층권 밖도 어둡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어둠이지만, 우리 인간은 하늘 저너머에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통해 무한을 상상합니다. 무한에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땅은 닫힌 공간, 하데스의 공간, 스올의 공간입니다. 거기에는 무한성보다 유한성이 지배합니다. 지진이나 화산이 폭발하면 땅은 인간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땅은 우리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땅에서 우리의 상상은 현실의 어두운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입니다. 하늘은 공기로 가득하지만, 땅은 흙과 돌들로 가득합니다. 그곳에는 바람이 통할 공간이 없습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모두 밀도가 높은 물질로 가득하지만, 하늘은 바람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없지만 자유롭게 불어댑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을 들이켜고 바람을 몸으로 느낍니다. 하늘은 우리를 위로 향하게 하지만, 땅은 우리를 어둠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래서 하데스와 혼인한 페르세포네는 위로 올라오길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몸은 하데스와 같은 어두운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은 세상에서 철저히 땅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육신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땅에서 나와 하늘로 고양되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에페 1:2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두운 땅에서 다시 살려내셨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것은 땅이 지닌 순환적이고 유한적인 것으로부터 살려내셨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런 후에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늘나라 레논이 없다고 상상한 “Heaven” 아닙니까? 레논은 Heaven 공간적 의미로 사용했지만, 오늘 읽은 에페소서는하늘나라 그렇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ἐπουράνιος 에프라니오스하느님이나 천상적 존재의 현존 상징합니다. 하느님 현존의 하늘은 세상 권세가 거하는하늘보다 상위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가치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에페소서는 하늘을 여러 단계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현존의 공간이 질적 가치에 따라 차등되어 표현됩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 권세들의 가치보다 높으신 가치를 지니신 전능하신 분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예수께서 어떤 전권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으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에페 1:21

 

 

세상이 로마의 사형수로 처단했던 예수가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계심을 에페소서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분이교회와 만물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신격화입니까? 아니면 교회의 확신에 믿음의 고백입니까? 에페소서는 예수께서 만물의 지배자이심을 설명하기 위해 하늘에 영적인 등급을 매긴 것입니다. 세상 권세는 그분의 발아래 있고 심지어 영적인 권세들이 현존하는 하늘 공간 보다 예수께서 고양된하늘 공간 상층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에페소서가 쓰인 시기를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으면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70 이후부터 90 사이에 에페소서가 써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울로를 추종하던 제자들이나 공동체가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치는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으로 추측됩니다. 당시에 초대 교회는 유대 사회와 로마에서 매우 미미한 존재였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유대교와 결별되어 독립되기 시작한 신흥 교파였고, 로마와 유대교로부터 박해와 위협에 직면해 있었던 초기 교회였습니다. 아마도 소수였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칫 패배주의나, 자기 연민적인 상태에 놓일 위험이 다분했을 것으로 상상이 됩니다. 로마의 주류 문화로부터의 소외와 단절, 유대교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받았던 당시의 교회가 사실 그런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권능을 가진 교회라는 설정은 가히 파격적인 교회론이 아닐 없습니다. 그들은 땅과 세상 권력과 권세에 눌려 있던 자신들을 돌아봤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시선을 땅이 아니라 하늘로 고양시키려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그들의 신앙이 하늘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하늘로 고양된 그리스도 바라볼 있게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시어 세상 권세와 영들이 지배하는 하늘 위의 하늘에 거하시고 하느님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 왕으로 승좌 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그들의 믿음은 허세입니까? 아니면 패배주의를 극복한 믿음의 고백입니까? 이러한 에페소서의 고백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있는 자료를 우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땅에서 하늘로, 패배주의 또는 냉소주의에서 승리주의(Triumphantalism), 폐쇄성에서 개방성으로 교회의 실존의 방향이 새롭게 설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6주일 목요일, 주님께서 부활하신 40일째 되는 날을 승천대축일로 교회가 기념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이상 교회를 세상에서 열등한 존재로, 자기 비하에 빠진 존재로 자각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고양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뿐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존감과 자신감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자각하는 데서 고양된 그리스도론은 우리를 하늘로 시각을 돌리게 만듭니다. 이것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방향성, “ad te (당신을 향하여)”입니다.  물론 이러한 자신감이 오히려 우리를 유대인과 같은선민사상이나, 사이비 집단처럼망상적 이기주의속에 함몰시킬 위험성도 분명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자신감이 그분께로 고양될수록 우리는 현대 교회가 지닌 병패인성공주의 함몰될 위험 또한 있습니다. 그러나 승천은 우리가 하느님께로 향하는(ad te) 방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은 하늘로 고양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 속에(in te) 놓임을 뜻합니다. 그분의 현존이 단순히 공간과 시간 속에 한정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방향성을 잃지 않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속에서 살리셔서 하늘로 고양시킨 하느님의 능력이 어떠한 지를 깨닫는 . 그러한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다는 . 그것이 우리의 자신감의 근원이 되길 원합니다. 자신감으로 우리 자신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호연지기와 더불어 이웃과 함께 우리의 자신감을 나눌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좌절과 실패,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를 하늘로 고양시키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들에게도 용기를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1세기 에페소 교회가 당면했던 문제였고, 오늘 우리들이, 우리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가져야 하는 책임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주눅 들도록, 세상을 향해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개독교라는 비판을 듣도록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하늘로 고양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승천의 자신감에 걸맞은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나이다. 간절히 비오니,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는 우리가 비록 육신은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1:1-11

1 책을 데오필로님께 드린다. 나는 먼젓번 책에서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치심을 기록하였다. 2 예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시초에서부터 낱낱이 기록하였다. 3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4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것이다.”

6 사도들은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것이다.” 9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성시_시편 47

1    너희 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     기쁜 소리 드높여
.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2    주님은 지존하시고 지엄하시다.
.      누리의 크신 임금이시다.
3    우리 앞에 만민을 무릎 꿇리시고
.      민족을 우리 발아래 두셨다.
4    당신의 사랑, 야곱의 자랑거리,
.      땅을 우리에게 손수 골라 주셨다.
5    환호 소리 높은 중에
.     하느님 옥좌에 오르신다.
.     나팔 소리 나는 중에 주님 올라가신다.
6    찬미하여라 하느님을,
.     거룩한 시로 찬미하여라.
.     찬양하여라 우리 왕을,
.     거룩한 시로 찬양하여라.
7    하느님은 땅의 임금이시니,
.     멋진 가락에 맞추어 찬양하여라.
8    하느님은 만방의 ,
.     거룩한 옥좌에 앉으셨다.
9    세상의 통치자들을 손에 잡고 계신
.     끝없이 높으신 우리 하느님,
.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나라의 영수들이
.      백성과 더불어 모여 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1:15-23

15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시편 110:1)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시편 8:6).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루가 24:44-53

44 그리고 그들에게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7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48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다. 49 나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51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