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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정의와 심판”_2024.5.19.성령강림대축일

James Chae 2024. 5. 19. 05:59

2024.5.19. 나해_성령강림대축일

사도 2:1-21 / 시편 104:24-34, 35 / 로마 8:22-27 / 요한 15:26-27, 16:4-15

 

 

죄와 정의와 심판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 당신은 우리 개개인을 돌보아 주실 때 마치 한 사람뿐인 양 돌봐 주시고 또한 모든 사람을 돌보실 때도 꼭 한 사람을 돌보시듯 하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돌보실 있느냐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도하는데 과연 기도를 들어주시겠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우리와 같은 자연의 지배를 받는 물리적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인간과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인간중심적이며 겸손을 가장한 불신앙의 표현이라 있습니다. 이는 결국 믿음이 없음을 뜻합니다. 기도의 능력도, 하느님도 믿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기도를 해도 오히려 하느님의 부재와 영적인 공허만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인간과 도저히 함께할 없었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아닌 인간 개인 안에 머무신다는 엄청난 약속, 임마누엘의 약속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선포됐습니다. 이를 루가는 사도행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사도 2:17-18

 

 

임마누엘은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으시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관계하신다고 요엘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점을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개인을 대하실 때나 많은 사람을 대하실 때도 사람을 대하시는 대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 나만 사랑하시겠어?라는 말과 나보다 불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까?라는 말은 요엘 선지자의 말에 의해 무의미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람처럼 대하시고, 사람을 모든 사람 대하듯이 하십니다. 그것은 양적인, 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질적 가치입니다. 하나가 전체를, 전체를 하나가 대변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와 일대일로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개인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성하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도 관계를 맺으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께 기도할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지상의 79 사람들 중에 나를 특별히 선택하셨고, 넓은 우주 속에서 정말 하나를 위해 오셨고, 하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 개인과 존재로 관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개인에게 머무는 하느님의 인격이십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모든 사람 안에 예수의 영이 머물게 되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 우리와 그분 간에 맺어진 새로운 인격의 관계성입니다. 그분께서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예수의 영은 역사의 예수에 한정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으로 오셨고 다시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그분의 정의가 드러났습니다. 인간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으로 세상의 정의를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예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고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정의는 예수를 죄인으로 취급했고, 십자가에 죽였지만, 그분은 부활하시어 하느님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그를 의롭다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정의로는 예수는 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정의로는 그분은 세상의 왕이십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정의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리석은 자로 판명 수도 있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예수의 의로우심으로 인해 의인으로 판명이 납니다. 세상의 정의와 하느님의 정의의 차이는 하늘이 땅에서 것처럼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신 것은 현재의 심판뿐만 아니라 종말의 심판까지도 아우릅니다. 첫째는 율법이나 법을 어긴 사람들이 죄인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죄인으로 판명 났습니다. 번째는 그를 죽인 세상이, 그를 죄인 취급한 세상의 정의가 옳지 않음이 판명됐습니다. 세상의 정의가 하느님의 정의에 의해 완전히 전복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일이 바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번째인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 드러났는데,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미 세상이 심판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오심은 세상의 기존 가치들을 완전히 전복시켰습니다. 죄는 이상 율법이나 법률, 도덕과 윤리, 관습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음에 대한 죄로 치환됩니다. 정의는 세상의 정의로 단죄되고 버림받은 예수를 세상의 왕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전권적 은총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미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죄에 대한 기소가 내려졌습니다. 모든 믿지 않는 자가 죄인이 됐습니다. 도끼가 이미 모든 사람들의 발등 위에 놓인 것입니다. 기소는 이미 내려졌지만 판결은 종말의 때까지 아직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을 성령께서는 우리가 각자의 자유의지를 어느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지를 우리에게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선택은 모두 우리 개인의 몫입니다. 출발점은 모두 같지만 종착점에서 각각 확연한 차이가 드러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오신 이유는 단순히 세상에서 자신과 가족이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님이 판명됩니다. 현대인들이 찾는 마음의 평화와 육신의 건강, 물질적 축복은 복음서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관통하여 마지막 심판의 때를 바라보게 합니다. 물질적 축복과 성공을 기원하는 성령대망회와 같은 집회가 완전히 성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예수의 영으로서 우리 안에 죄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세와 내세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성령을보혜사또는변호사라고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도우시어 마지막 하느님의 심판을 감당할 있게 변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앞에 당당하게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마치 자연 종교의 신들처럼 취급을 하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령론자들이 범하는 신성모독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을 사유화하고 자연신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망령된 신앙은 성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자본주의와 성공주의로 변질시키는 여러 행태들은 다른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사라지고 맘몬의 지배가 강화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요한묵시록의 라오디게이아 교회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며, 열정도 잃고, 사는 데에 버거워 허덕이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세상의 권세에 결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이 주는 죄와 정의와 심판 속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무기력함 속에서 여전히 그것에서 벗어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고, 세상 무엇보다 그분을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 간절히 열정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자신만을 위해 각개전투, 각자도생을 하듯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의 능력이 점점 무기력으로, 절망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함께라는 말은 사라지고, 자리는 나만이란 말로 대체했습니다. “ 두세 사람이라도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 주님의 말은 점점 교인들 사이에서 힘을 잃어 갑니다. 우리는 이제 일주일에 한번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것도 버거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의 지하교회 신자들이 알면 도저히 이해할 없는 일이 우리 가운데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자들이 주님의 승천 후에 9 동안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성령께서 모두에게 임하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은 개인의 영이면서 또한 공동체의 영이십니다. 우리는 혼자만 구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구원받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시작인 성령강림대축일에 우리 안에 어떤 성령의 은사가 각자에게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와 이사야가 말한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를 합쳐서 14 종의 은사카드를 책갈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광고시간에 사람씩 제단 앞으로 나와 은사 카드를 하나씩 뽑아 가시면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우리의 가시적 신앙 표현의 하나입니다. 각자가 뽑은 책갈피 카드의 은사를 이미 여러분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은사를 앞으로 구하시게 수도 있습니다. 은사는 그대로 gift입니다. 모든 사람이 타고날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달란트와 다르게 은사는 믿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일을 위해,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선물은 받는 사람이 감사로 받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은사의 귀중함을 모르면 은사는 소멸되기도 합니다. 성령께서는 너무나 점잖으셔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자유의지와 성령의 은사가 상호 결합될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신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가 소멸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오직 우리 자유의지에 의해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먼저 작동되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도 없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올바로 하느님의 뜻을 향할 (ad te) 성령께서는 사람 안에 성령의 은사로 함께하십니다(in te). 물론 은사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결국 풍성하게 열릴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갈라 5:22~25

 

성령의 열매들은 아름답습니다. 반면 육신의 열매는 얼마나 처참합니까?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 (갈라 5:20~21)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모두 우리 안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심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에 합당한 책임감 또한 함께 받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과 함께하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에게 일의 짐을 지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는 은총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을 가볍다.” 마태 11:28~30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성령강림대축일 (나해)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의 빛과 생명이 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 마음을 성령의 한없는 은혜로 채우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을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2:1-21

1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곳에 모여 있었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러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사람 위에 내렸다. 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경건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6 소리가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7 그들은 놀라고 한편 신기하게 여기며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셈인가? 9 가운데는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에서 사람들도 있고 10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키레네에 가까운 리비야의 여러 지방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로마에서 나그네로 11 유다인들과 유다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고 그레데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있다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하였다. 12 이렇게 모두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도대체 어찌 영문인가?” 하며 웅성거렸는데 13 중에는 사람들이 술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다 동포와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생각해 보십시오. 15 지금 시각이 아침 아홉 시인데 어떻게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것입니다. 요엘 3:1-5

17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마지막 날에
.     나는 모든 사람에게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19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표징을 보이며
.     땅에서 기적을 행하리니
.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고
.     해는 빛을 잃어 어두워지고
.     달은 피와 같이 붉어져
.     마침내 크고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오리라.
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시_시편 104:24-34, 35

24  주여,
.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으나,
.     어느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
25   크고 넓은 바다,
.     거기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가 수없이 우글거리고,
26  배들이 이리 오고 저리 가고
.     손수 빚으신 레비아단은 당신의 장난감입니다.
27  때를 따라 주시는 먹이를 기다리며
.     모든 것들은 당신을 쳐다보다가
28  먹이를 주시면 그것을 받아먹으니,
.     손만 벌리시면 그들은 배부릅니다.
29  그러다가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     어쩔 줄을 모르고
.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지만,
30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     누리의 모습은 새로 워집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소서.
.     손수 만드신 , 주님의 기쁨이 되소서.
32  굽어만 보셔도 땅은 떨고
.     다치기만 하셔도 산들은 연기를 뽑는구나.
33  나는 한평생 주님을 노래하리라.
.     숨을 거둘 때까지 악기를 잡고,
.     나의 하느님을 노래하리라.
34  나의 노래가 주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그러면 나는 주님 품안에서 즐겁기만 하련만.
35  악인들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려라.
.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8:22-27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3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26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27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복음서_요한 15:26-27, 16:4-15

15:26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증인이 것이다.”

16:4 “지금까지 내가 말을 너희에게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5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6 오히려 내가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 7 그러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8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 주실 것이다. 9 그분은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고 지적하실 것이며 10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고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를 나타내시는 것이라고 가르치실 것이고 11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써 정말 심판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12 아직도 나는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말을 알아들을 없을 것이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14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