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8. 나해_부활5주일
사도 8:26-40 / 시편 22:25-31 / 1요한 4:7-21 / 요한 15:1-8
“상호 붙듦”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당신은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나 밖에 나와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중략… 당신이 나와 함께 계셨건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에서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에고 에이미 헤 암펠스 헤 알레티네”
그리고 우리는 그 참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성에 대한 비유이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가시적 표징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 표상화하여 예수님도 우리도 서로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요한 15:4
이 말씀은 “너희는 내 안에 머물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물겠다”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상호 붙듦’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사용한 헬라어 μένω 메노는 remain, abide, stay, wait 등의 뜻입니다. 공동번역은 이를 “붙들다”는 표현으로 의역을 했습니다. ‘머문다’는 의미보다 ‘상호 붙듦’이란 의역이 제게는 더 적극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주님께 단단히 붙들려 있든, 아니며 우리가 그분을 단단히 붙들든 가지는 원 나무에 잘 부착되어 있어야 잎이 나고 열매도 맺습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자연적인 진리입니다. 특히 접붙임을 받은 가지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실제로 접붙임 한 가지는 현대 농법에서는 비닐랩으로 단단히 친친 감아 고정시킵니다. 그래야 접붙임한 가지가 원 나무에 단단히 부착되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던 원가지를 잘라내고 접붙임 받은 가지이니 더욱 단단히 부착해야 합니다. 보통 접붙임 한 가지가 더욱 열매가 튼실하고 맛도 좋은 법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농장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겠으니 너희도 떠나지 말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라고 하시고, 그러면 “나도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떠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똑같은 매너로 떠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κἀγώ 카고”는 “나 또한”이란 뜻입니다. 머묾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과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상호 대등하게 작용됩니다. 둘 관계는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느슨해지면 주님도 우리에게 느슨해지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열정적이지 않으면 주님도 우리에게 열정적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주님께 열심을 내지 않으면서도 주님께 은총을 받으려 합니다. 이것은 방금 말씀드린 “나 또한”이란 말을 완전히 오해한 것입니다. 자신은 정작 사랑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만 사랑을 강요하면 관계가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베풀고 평등한 조건의 상호 사랑을 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이렇게 “상호 관계성”이며 “상호 붙듦”, “상호 머묾”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점에서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어 봤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얼마나 연약하고 육정과 이기심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이성과 의지조차도 죄에 오염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4세기에 활동했던 이단 펠라기우스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주장했지만,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을 그리고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알았습니다. 그 또한 하느님을 믿기 전에 육적인 타락을 경험했고, 마니교에 심취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하느님을 믿게 되고서도 그는 끊임없이 출세욕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의 긴장감 속에서 갈등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매워가며 완전한 접붙임의 단계에 이르는 여정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신앙의 여정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자신 안에 있을 때 자신은 자신 밖에서 하느님을 찾았고, 주님께서 늘 동행했지만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 헤매었다고 말입니다. 가지와 포도나무가 서로 엇박자를 내며 상호 붙들림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제 자신과 더불어 싸우고 있었고 나 자신에 의하여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다름 아닌 내 의지를 상대로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그 싸움의 원인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있는 죄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에서
그래서 그는 사도 바울로가 깨달은 똑같은 지점에 서게 됩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 7:18
사도 바울로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나 이러한 “자기 고발”을 통해 자기의 영혼의 병을 치유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믿음이 충만했던 이들의 사정이 이 정도라면 하물며 우리의 믿음은 과연 안전합니까? 우리는 자기라는 패러다임에 갇혀서 늘 제자리만 걷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영적인 순례를 포기하고 일상 속에 함몰되어 마치 ‘자연신’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안위와 이 세상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늘 하느님을 짝사랑하시도록 우리는 늘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를 당신을 향해(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에서
인간이 창조된 것은 바로 하느님을 향해 살도록 창조되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앞서 나아가셨던 하느님은 우리의 실존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 앞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그러한 방향성을 올바로 할 때 길을 잃지 않고 광야를 무사히 건널 수 있습니다. 한눈팔거나 주저앉아 있으면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는 순간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고 분리되고 맙니다. 이것이 영적인 실존인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와인잔처럼 깨지기 쉬운 영혼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늘 안정성이 위협을 받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해 살며 성장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잎이 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보다는 원 나무가 먼저입니다. 가지는 원 나무에서 양분을 받아 자신 안에 품고 있던 자신의 형상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한 성장은 “하느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결코 멈춰서는 안 됩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요한 15:2
“잘 가꾸신다”는 표현은 헬라어 “καθαίρω 카타이로”는 “깨끗하게 하다”, “정화하다”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말과 연결됩니다. 즉 제자들은 이미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정화되었다는 말로 더 이상 손질할 필요가 없는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내서 버려지지만, 열매를 맺는 가지는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더욱 깨끗하게 정화시켜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출발점은 모두에게 똑같지만, 믿음이 장성하여 아름다운 열매로 맺는 일은 모든 사람의 헌신도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데도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은 이점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과 삶이 하느님 지향적으로 자라나고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환경이나 남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열매가 없으면 하느님의 돌보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르 4:25
깨끗하게 정화된 가지는 더욱더 풍성한 은총을 약속받았습니다. 있는 것에 더해서 더욱 차고 넘치도록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안주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를 바꿔가야 합니다. 은총과 축복을 갈망한다면 먼저 그에 합당한 열정과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행복을 원한다면, 먼저 행복에 걸맞은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십시오. 존경받고 싶다면, 먼저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인정받고 싶다면, 먼저 인정받을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는 게 재미가 없고 흥미롭지 않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이 재미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뭔가를 받고 싶다면, 먼저 뭔가를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한 노력 없이 타자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명예와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면 뒷짐 지고 코 푸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다, 사랑이 없다, 친절하지 않다, 쌀쌀하다 말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먼저 그러한 비판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원래 포도나무에 접붙임 받아 더욱 열매를 맺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게 성장해 갈 것입니다. 내 안에, 나의 몸에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 있다면, 나의 표정, 말씨, 행위, 눈빛, 자세 등이 하나라도 조금은 더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부터, 우리부터 변화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도 침묵하십니다.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거룩한 변화가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이루어져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귀한 열매를 맺는 칭찬받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5주 (나해)
본기도
주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이 변화 많은 세상에서 주님을 떠나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도 8:26-40
26 그 때 주의 천사가 필립보에게 나타나서 “여기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남쪽 길로 가라.” 하고 일러주었다. (그 길은 인적이 없는 길이다.) 27 필립보는 그 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러 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이사야의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 때에 성령이 필립보에게 “가서 저 마차에 바싹 다가서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30 필립보가 달려갔을 때 그는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 내시는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며 필립보더러 올라와 곁에 앉으라고 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서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굴욕만 당하였다.
. 지상에서 그의 생애가 끝났으니
.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 이사 53:7-8
34 내시는 필립보에게 “한 가지 묻겠는데 이 말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혹은 딴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35 필립보는 이 성서 말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말씀을 풀어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같이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자,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37(어떤 사본에) 빌립보가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하고 말하자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8 내시는 마차를 세우게 하고 필립보와 함께 물로 내려가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의 성령이 필립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기쁨에 넘쳐 제 갈 길을 갔다. 40 그 뒤 필립보는 아스돗에 나타나 여러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리아에 이르렀다.
성시_시편 22:25-31
25 큰 회중 가운데
. 주님을 찬송함도,
. 주께서 허락하심이니, ◯
. 주님을 경외하는 무리 앞에서
. 나의 서원 지키리라.
26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 주님을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
. 그들의 마음 길이 번영하리라.
27 온 세상이 주님을 생각하여 돌아오고 ◯
.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
. 모든 왕권이 있으리라.
29 땅 속의 잠든 이들도 주 앞에 엎드리고 ◯
. 먼지 속에 내려 간 자들도
. 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30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 오고 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
.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31 주께서 건져주신 이 모든 일들을 ◯
. 오고 오는 세대에 길이 전해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요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10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15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1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복음서_요한 15:1-8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3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4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나를 떠난 사람은 잘려 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7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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