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_2024. 8. 25. 나해_연중21주일

James Chae 2024. 8. 25. 06:53

 

2024. 8. 25. 나해_연중21주일

 

열왕상 8:(1,6,10-11)22-30, 41-43 / 시편 84 / 에페 6:10-20 / 요한 6:56-69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불안, 영적인 전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걱정으로 불안에 빠져들곤 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사건 사고가 많을 때는 더욱 불안을 느낍니다. 아침에 웃으며 외출했던 가족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사건 사고들이 넘쳐납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부천의 화재도 그러했습니다. 면접 때문에 잠시 머문 호텔에서 가정의 딸은 영원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없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우리의 어떠한 경험으로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사건 사고 후에 후속 기사로 올라오는 죽은 자녀들과 부모가 나눈 마지막 문자나 통화의 내용들은 절박했던 순간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문자나 통화의 일상성이 저렇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수도 있다는 생각. 불안은 이렇게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스며있습니다.

 

불안은 여러 원인에서 생겨납니다. 원인을 특정할 없기에 우리는 불안한 감정을 느낍니다. 예측 가능하고 준비된 위험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측 가능한 것에는 불안보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따릅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법입니다. 어렸을 받은 작은 트라우마는 성인이 후에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반복해서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불안의 원인이 죄로 인한 죄책감 때문이라면 그것은 윤리학과 신학의 영역에서 다룹니다. 그러나 대부분 불안은 심리학의 영역 안에서 다룹니다. 그래서 불안은 정신증의 일종입니다. 불안이 점점 내면에서 실체화가 되면 공황증이 발생합니다. 공황장애는 대인기피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대한 기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결과 불안은 결국 자기를 스스로 사회로부터, 관계로부터, 존재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불안이자기 소외 연결되면 결국 인간은자기 상실 이르게 되어절망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절망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죽음에 이르는 입니다. 작은 불안이 조금씩 증폭되어 인간 소외의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완전한 자기를 상실한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불안은 자기 소외와 절망이란 차원에서 매우 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이 어떻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암적인 존재가 되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같습니다. 불안은 정확하게 믿음의 반대 방향으로 작동됩니다. 믿음에는 분명히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이 전제되지만, 인간의 불안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절대시 하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일소시킵니다. 키르케고르가 이러한 불안을자기 상실”, “자기 소외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불안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개인, 단독자 서지 못하게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도, 하느님 은총에 대한 확신도 모두 일소시키기 때문입니다. 불안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조차 옅어지는 듯합니다. 자기를 상실한 인간은 불안을 붙들며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자아와 분리시킵니다. 생각하는 자아가 분리되니 정신분열의 시작이 당연합니다. 불안은 이렇게 자기 소외 속에서 자기를 철저히 상실한 존재 가운데서 주체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인간 주체의 상실.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병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에페소서는 영적인 병과의 싸음에서 승리하기 위해하느님의 무기 무장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는 이러한 영적인 전투를 표상화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로마군인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에페 6:13

 

 

완전무장 이유를 에페소서는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싸움이피와 과의 싸움이 아니라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싸움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소외시키는 불안과의 싸움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피와 지닌 인간, 연약한 인간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말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믿음으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해 아직도 우리가 다퉈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완성은 종말론적입니다. 그때까지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우리가 싸워야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마와 그에 종속된 권세들이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불안과 염려, 근심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삶의 실존의 고통에 짓눌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활기를 잃을 위험에 날마다 처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지만, 여전히 우리의 세상은 악의 세력이 창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무책임하게 홀로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권세들에게 굴복하지 않도록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무기 또한 주셨습니다.

 

에페소서는 고대 근동 사람들이 생각했던 표상을 차용하여 이러한 악의 세력들이하늘이라는 공간을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존재들이고 하느님께 대적하는 존재들로서 인간을 중에 빠트리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권세의 노예살이를 하던 인간을 해방시키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에페소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해방된 그리스도인은 다시 공중의 권세들에게 종속되는 종의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여악한 영들 대항하여 싸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내면에서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야 것입니다. 불안과 염려, 근심을 가지고는 도저히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에페소서가 언급한 완전 무장의 무기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중요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구원의 투구성령의 입니다. “구원의 투구 이사야서 59 17절을 모티브로 것입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머리에 투구에서 구원이 빛난다.”라고. 이와 같이구원의 투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굳센 희망을 뜻합니다. 해방은 믿는 순간 은총으로 주어졌지만 완전한 구원은 종말론적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인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은이미 그러나 아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온갖 거짓된 참소와 불안, 염려, 근심을 이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번민과 번뇌에 휩싸여 방황하는 인간 정신을 희망으로 붙들어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았는 대도 여전히 불안과 염려, 근심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구원의 투구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은 이미 우리 생각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불안이란 것은 마치 신발 안에 들어와 있는 성가신 조그만 모래 알갱이처럼,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점점 우리 발이 곪아터지듯이, 그것은 점증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점령하고 종국에는 우리 존재를 완전히 장악해 버립니다. 그래서 모든 부정적인 화살을 막아낼 구원의 투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희망은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희망은 모든 절망적 상황 속에서 희망고문이 아니라 믿음의 실재를 견인합니다. 긍정의 힘이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사람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혹시 절망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이내 다시 일어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이 그를 모든 어둠에서 건져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성령의 입니다. “성령의 이사야서 49 2, 호세아서 6 5절을 모티브로 합니다. 호세아는 하느님을 잊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죽인다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희망을 가질 있는 결정적인 무기는성령의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칼이나 총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무엇으로 적을 죽일 있을까요? 죽인다는 표상이 폭력적이지만, 이것은 실제적인 영적 싸움에 대한 표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표상을 구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광야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러셨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 없이 사탄을 이길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응답을 말씀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또는 신비 체험으로 찾는 사람도 있는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방대한 양의 성서의 내용들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의 보고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하실 말씀을 모두 성서에 담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지 않는데 하느님의 응답을 어떻게 기대할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성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모든 답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응답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성서는 활자에 의해 텍스트로 기록됐지만 내용과 의미는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날카로운 칼입니다. 이는 우리의 불안과 공포를 쪼개고 악한 세력의 흉계를 가르는 강력한 힘입니다. 성령의 칼이 아니면 우리는 악한 세력을 대적할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규칙적인 말씀 읽는 습관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휘감는 불안을 끊어버릴 있는 것도 오직 말씀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부여잡지 않으면 우리는 쓸데없는 현상이나 신비체험을 쫓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지주의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말씀의 에서 말씀은 물론복음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해방의 복음. 그래서 우리는 성서를 읽더라도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 구약을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구약성서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복음서들은 이러한 토대 위에 써졌고 구약의 예언성취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우리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와 구분되게 합니다.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은 구약의 야훼를 악하고 불완전한 신이라고 말했지만,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한 예언의 성취로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지만 우리는 예수를 구약이 예언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강연에서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에게 어느 신학생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사제가 되려고 하는 후보생들에게 조언 말씀을 해달라고. 그는 자신이 사제가 되고 나니 이제 정말로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사제가 되기 전에는 진리에 대한 궁금증에 목이 말라 철학도 공부하고 신학도 공부했는데 이제 사제가 되고 나니 또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아직도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믿음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신학도, 우리의 전통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평신도 때는 교역자들이 믿음을 강조하면 귓등으로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소리를 가장 지겨워했던 제가 이렇게 사제가 되고 나니 저도 결국 믿음 말고는 여러분에게 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하느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끔 꿈속에서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허둥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어쩌면 저의 불안증은 그러한 믿음의 강박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우리 모든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리고 믿음 위에서 에페소서가 충고하는 대로,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하느님의 힘으로 충만하게 줍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관할 사제인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저도 자리에 자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갉아먹는 불안을 버리고죽음에 이르는 걸리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함으로써 험악한 시대를 승리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1 (나해) 1

 

본기도

살아계신 하느님, 주님은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리시고 거룩하게 하시나이다. 비오니, 교회를 위해 드리는 신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각자의 소명에 따라 진실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열왕상 8:[1, 6, 10-11], 22-30, 41-43

[그리고 나서 솔로몬은 야훼의 계약궤를 시온의 다윗 성에서 모셔 오려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이스라엘 백성 가문의 대표들인 지파의 어른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다. … 6 그리고 나서 사제들이 야훼의 계약궤를 성전의 밀실, 지성소 거룹의 날개 아래 마련된 자리에 안치해 놓았다. …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구름이 야훼의 전에 있었다. 11 사제들은 구름이 너무 짙었으므로 서서 일을 수가 없었다. 야훼의 영광이 야훼의 전에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

22 그리고 나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회중이 보는 가운데 야훼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팔을 들어올리고 23 기도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어디에도 당신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종들에게 신실하시며 맺은 계약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24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지켜주셨습니다. 친히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주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내리신 약속, ‘네가 앞에서 것처럼 자손들도 길을 벗어나지 않고 앞에서 살아가기만 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후손이 끊기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지켜주십시오. 26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여,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주십시오. 27 그러나 하느님, 하느님께서 땅에 사람과 같이 자리잡으시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하늘, 꼭대기 하늘도 주를 모시지 못할 터인데 소인이 지은 전이야말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28 그러나 나의 하느님 야훼여, 소인의 기도와 간청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오늘 당신 앞에서 울부짖으며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29 당신께서 이름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밤낮으로 전을 보살펴 주십시오. 소인이 곳을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를 부디 들어주십시오. 30 소인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곳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할 부디 들어주십시오. 당신께서 계시는 , 하늘에서 들어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 41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그가 당신의 명성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거든, 42 당신께서 손을 펼치사 위력을 드러내시어 널리 알려진 당신의 명성을 듣고 와서 당신께서 사시는 전을 바라보며 기도드리거든 43 당신께서는 자리잡으신 , 하늘에서 들으시고 외국인의 청을 들어 그대로 이루어주십시오. 그리하시면 지상의 모든 백성들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당신을 경외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소인이 지은 전이 당신의 성전임을 알게 것입니다

 

 

 

성시_시편 84

1    만군의 주여,
.     계시는 얼마나 좋으신가!
.      영혼이
.     주님의 성전 안이 그리워 애타다가 지치옵니다.
2    나의 마음, 나의 몸이 살아 계신 하느님께
.      노래 부르옵니다.
3    나의 , 나의 하느님, 만군의 주여,
.     당신의 제단 곁에는 참새도 깃들이고
.     제비도 새끼 보금자리 얻었습니다.
4    당신 집에 사는 사람 복되오니
.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옵니다.
5    주님께 힘을 얻어
.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
6    메마른 골짜기를 지나갈 적에
.     거기에서 샘이 터지고,
.     이른 비가 복을 내려 주리라.
7    그들은 오르고 올라 시온 산에서
.     마침내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
8    , 만군의 하느님, 기도를 들어 주소서.
.     야곱의 하느님, 귀를 기울이 소서.
9    우리의 방패이신 하느님이여,
.     손수 축복하신 우리 임금을 굽어보소서.
10  주님의 안이면 다른 곳의 날보다
.      나은 하루이오니
.     악인의 편한 집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     하느님 문지기로 있으리이다.
11   하느님은 성채이며 방패이시니
.     우리에게 은총과 영광을 내려 주시고
    흠없이 사는 사람에게
.     아낌없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12   하느님, 만군의 주여,
.     당신께 의지하는 사람은 복되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6:10-20

10 내가 끝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할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11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12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때에 그들을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있을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 허리를 동이고 정의 가슴에 무장을 하고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 갖추어 신고 16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 잡고 있어야 합니다.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있을 것입니다. 17 구원의 투구 받아 쓰고 성령의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19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마땅히 해야 말을 하고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때에 담대하게 말할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20 나는 지금 갇혀 있기는 하지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사람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해야 말은 대담하게 말할 있게 되기를 빕니다.

 

 

 

복음서_요한 6:56-69

“ … 56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안에서 살고 나도 안에서 산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것이다. 58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것이다.” 59 이것은 예수께서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하신 말씀이다.

60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말씀을 듣고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있겠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못마땅해 하는 것을 알아채시고 말이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며 자기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예수께서는 이어서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66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시고,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69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