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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것들”_2025.1.19. 다해_연중2주일_설교문

James Chae 2025. 1. 19. 06:42

 

2025.1.19. 다해_연중2주일

이사 62:1-5 / 시편 36:5-10 / 1고린 12:1-11 / 요한 2:1-11

 

영적인 것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고린토전서에서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공동번역이 번역한 부분은 직역하면영적인 것들이란 말입니다. 헬라어 형용사 “πνευματικός 프뉴마티코스 사용했습니다. 프뉴마티코스 신약에서 영에 속하거나 성령의 영향을 받는 것을 묘사하는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종종 물질적 또는 자연적(사르키코스) 것과 대조되며, 생명과 존재의 신성함이나 초자연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프뉴마티코스"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없지만, 개념은 히브리어의 "" 또는 "호흡" 의미하는루아흐 רוּחַ (ruach)”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도 (프뉴마) 개념은 흔히 생명력이나 호흡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개념은 초기 기독교 사상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유대교와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영역을 하나님과 그분의 활동 영역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프뉴마티코스(pneumatikos)"라는 용어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하는 중심이 되었으며, 이는 세속적 삶이나 육신적 삶과 구별되는 의미였습니다. 공동번역성서는영적인 것들 풀어서성령의 은사 의역했습니다. 성령의 현존이 표면적으로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이 은사를 통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가 은사를 표현하는 단어인 “χάρισμα 카리스마(1고린 12:4, 9, 28:31)”라는 말을 따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에서는 직역해서영적인 것들이라 번역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해 보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넓은 개념의영적인 것들 대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 구절인 2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이교도였을 때에는 헛된 우상에게 매여서 우상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1고린 12:2

 

사도 바울로가 말하고자 하는영적인 것들 분명히 고린토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육신적, 물질적 삶의 형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방인 의식에 참여할 체험했던 영적인 무질서의 체험과 성령의 체험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바울로는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는 영적인 체험이 수반됩니다. 샤머니즘도, 애니미즘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모두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고린토교인들은 이방인 예식의 영적 체험과 성령의 체험을 혼동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헬라어에는 “εἴδωλα τὰ ἄφωνα 에이돌라 아포나라고 해서말없는 우상들이라 기록했지만, 공동번역은 의역해서헛된 우상이라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박국 2 18절에 언급된 말입니다.

 

“그런 우상을 새겨 무슨 덕이라도 볼 성싶으냐? 말 못하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무슨 이익이라도 볼 성싶으냐? 하바 2:18

 

못하는 우상들은 사람들에게 혼돈을 주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당시 고린토교회 교인들은 예배 때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 머리를 해쳐 풀어서 예배의 진행을 방해할 정도로 신탁을 말하곤 했던 같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종종 있었던 같습니다. 그것은 이방 종교 의식에서나 가능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고린도전서 11장에 여자들에게 머리를 천으로 가리라는 충고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고린도전서 14 34~35절에서는 여자들에게 교회에서는 잠잠하라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종 사람들이 오해해서 사도 바울로가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 예배는 분명 이방인 제사나 의식과 다른, 무질서와 엑스터시를 경험하는 것과 다른 성령 안에서의 질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혼돈과 무질서를 뜻하는아카타스타시아 ἀκαταστασία” 아니라 질서를 뜻하는카타스타시아 καταστασία” 생긴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질서가 아니고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1고린 14:33

 

 

저는 어느 갑작스럽게 어떤 청년에게 상담 전화를 받았습니다. 번째 통화에서 그는 성공회 신학교에 관심이 있다고 상담을 받았습니다. 충청도 지역에 사는 저와는 일면식도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저에게 전화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번째 상담 후에 오랫동안 그를 잊고 있었는데 작년 말인가 갑자기 전화해서 제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신대원에 진학하기보다 내림굿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무당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영적 체험을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와 연관시키려 했던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신통한 무당에게 내림굿을 받게 것이지요. 그가 제게 물어왔던 것은 자신이 받은 신이 성령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라서 그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어떤 영적 체험을 했는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 하느님의 성령은 분명하게 예수의 영이기 때문에 그렇게 샤머니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그분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 또한 선물로 받게 됩니다. 샤머니즘적 영을 받아도 신명이 난다고 하는데 하느님의 성령 체험은 어떠하겠습니까? 청년은 아직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샤머니즘과 그리스도교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샤머니즘처럼 그것으로 돈벌이하지 않습니다. 은사로 받은 성령으로 점을 치고 사람들의 운명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성령의 은사가 절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하느님의 은사는 매우 개별적이지만, 또한 공동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과 거저 나누는 법입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1고린 12:7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는데, 그것은 공동의 선을 이루는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돈벌이 수단이 절대로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랑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영이시며, 예수의 영이시고 그리고 교회의 영이십니다.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섬기는 은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하느님으로부터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탈이 많은 것은 성령을 사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성령은 믿음의 많고 적음을 증명하기 위한 표징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주신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는 일을 하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성령에 대한 영분별을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성령의 현존을 기대할 없습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분열을 일으키면서 자신이 정의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하느님의 영이 아닙니다. 현재 탄핵정국에서 많은 유사 그리스도교 목사님들의 발언을 들으면 우리는 분명하게 이런 영분별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의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샤머니즘화 유사 그리스도교일 뿐입니다. 그들의 말에 절대 현혹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현존할 우리 안에 가지 증거가 나타납니다. 번째는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가 말한 “numinose 누미노제 경험이고 번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 고양되는 경험입니다. 이에 대해 성공회 평신도였던 C.S. 루이스가 그의 고통의 문제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누미노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영적, 초월적 체험을 뜻합니다. 두려움과 유사한 경외의 체험이지요. 이는 단순한 종교 현상을 넘어 성령의 임재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누미노제의 체험은 우리의 의식을, 우리의 이성을, 우리의 영을, 우리의 삶을 위로 고양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속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생, 공동체에 대한 도덕성으로 구체화하여 표현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과 다른 영을 받은 사람을 구분할 있습니다. 거듭나기 이전 삶의 방식, 물질적이고, 소비적이며,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죄의 삶에서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규모 있고 절제된 삶으로 고양됨.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속에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두움과 무질서, 미움과 다툼이 아니라 의와 희락과 평강이 우리 실존의 내용으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고양된 우리의 영과 육과 우리의 실존은 하느님과 공동체적으로 운명지어집니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바와같이,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친교로서의 하느님”, “관계성으로서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친교 속에서 상호 사랑의 관계성을 본질로 가지고 계시듯이, 나의 자아와 다른 사람의 자아가 대면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미 삼위일체 안에는 사랑이 속성으로 선재해 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는 반드시 사랑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영원한데, 그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관계성의 본질인 사랑은 삼위일체의 중요한 속성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공동체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그리움도 설렘도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가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강정처럼 공허와 허무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끝은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영적인 것들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속에 발현되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가시적이며 우리가 서로의 관계에서 실제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힘의 근원은 물론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도, 그분의 삶을 닮아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러한영적인 것들 우리 속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숙한 인격으로 발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할 우리는 이상 험악한 마지막의 때에 거짓 영에 현혹됨 없이 우리의 실존을 마지막까지 경주할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국민의 90% 모두 옳다고 쪽으로 몰려가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사랑과 정의의 능력으로 악한 영을 분별하여 일희일비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견지해야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탄핵의 정국에서 거짓과 불의, 억지와 똥고집, 교만과 욕설과 혐오와 미움이 판치는 상황에서 이상 거짓 뉴스와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태초에 혼돈 속에서 수면 위를 운행하셨던 하느님의 성령이 무질서와 혼돈으로 뒤범벅된 대한민국 위에 운행하셔서 헌법이 정한바 정의의 기준대로 모든 사태가 정리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남들이 하자는 대로 부화뇌동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일상을 굳건히 지키며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 (다해)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풍성히 주시어 생명으로 가득 기쁜 생활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62:1-5

.     시온을 생각할 ,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     예루살렘을 생각할 ,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     어찌 잠잠할 있으랴?
2    마침내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이름,
.     사람들이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3    너는 야훼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4    다시는 너를버림받은 여자 하지 아니하고
.     너의 땅을소박데기 하지 아니하리라.
.     이제는 너를사랑하는 나의 이라,
.     너의 땅을 아내 부르리라.
.     야훼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5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성시_시편 36:5-10

5    주여, 당신의 사랑 하늘에 닿았고
.     당신의 미쁘심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6    당신의 정의는 우람한 산줄기 같고
.     당신의 공평하심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7    주님은 짐승도 사람처럼 구해 주시니
.     당신의 값진 사랑 어찌 형언하리이까?
8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몸을 숨기는 ,
.     당신의 기름기로 배불리 먹이시고
9    시냇가 단물을 마시게 하시니
.     생명의 , 정녕 당신께 있고
.     우리 앞길은 당신의 빛을 받아 환합니다.
10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 주시고
.     마음 바른 자에게 억울한 당하지 않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고린 12:1-11

1 형제 여러분, 이제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는데 여러분이 알아야 것이 있습니다. 2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이교도였을 때에는 헛된 우상에게 매여서 우상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3 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없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없습니다.

4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주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 받았으며 9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고치는 능력 선물로 받았습니다. 10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 어떤 사람은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받았습니다. 11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

 

 

 

복음서_요한 2:1-11

1 이런 일이 있은 사흘째 되던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계셨다. 3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4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A]하고 말씀하셨다. 5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6 유다인들에게는 정결 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7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8 예수께서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9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하인들은 술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10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11 이렇게 예수께서는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A]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