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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탄생, 두 번째 실존”_ 2025.1.12. 다해_주님의 세례 축일(연중1주일)

James Chae 2025. 1. 12. 06:29

2025.1.12. 다해_주님의 세례 축일(연중1주일)

이사 43:1-7 / 시편 29 / 사도 8:14 / 루가 3:15-17, 21-22

 

번째 탄생, 번째 실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가 3:22b

 

 

우리는 성탄절과 공현절을 통해 성육신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찬양하고 묵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번째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성탄 절기가 끝나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번째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번째 탄생은 번째 탄생처럼 천사나, 동방박사나, 목동들이나, 시므온과 안나,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의 도움이 필요 없는 탄생이었습니다. 번째 탄생에는 오로지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고, 성부와 성령이 그분을 증명하십니다.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했던 존재는 천사였지만, 이제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하느님께서 그분 아들의 탄생에 직접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물론 그분의 현존은 목소리뿐이었고, 그분의 영은 마치 비둘기 형상처럼 예수님의 위에 머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로써 탄생 때부터 그분의 내면에 함께하셨던 성령으로부터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분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셨지만 그분이 세례를 받은 것은 세례를 통해 모든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갈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탄생하셨다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은 실존이 전개될 것을 시사합니다. 이전의 실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실존 말입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의 탄생이 우리의 번째 실존이라면 세례를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는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번째 실존입니다.

 

육으로 것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성을 본질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소멸하는 것은 영원성이 부재하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번째 실존의 한계이고 전도서가 말한 바대로 인간 삶의 덧없음입니다. 물은 우리를 씻어 깨끗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물은 정화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은 이러한 유한한 존재가 실재와 관계하는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부정한 것을 씻는다고 많은 종교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물의 영적인 정화 능력입니다. 그러나 물은 혼돈과 관계하여 모든 것을 죽이기도 합니다. 폭풍 치는 바다를 보신 분은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제자들도 갈릴래아 호수에서 폭풍을 만났을 죽음의 공포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물은 모든 생명체를 삼켜버리는 음부의 역할도 합니다. 물은 죽음과 혼돈, 카오스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익사한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도 세례에는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를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지만, 침례를 물속에 완전히 잠기면 정말 죽음의 순간처럼 갑갑한 공포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물속에서 숨이 단절된 순간은 잠시 우리의 호흡이 멈춘 것이고 그것은 유사 죽음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우리가 완전히 죄에 대해, 습성에 대해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실존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시에 성령의 세례도 함께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 임하시는 성령에 대해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과의 친교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신성에 참여하게 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줍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풍요롭게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하느님의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 우리의 인격에 긍정의 활력이 넘치고 자신감과 존재감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신명 난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기쁨이 함께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임했으니신명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성에 참여한다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와 희락과 평강 속에서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더욱 그분의 거룩함으로 고양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성이 성령으로 인해 신성을 닮아 가는 . 이것이 우리의인격적 성화이고 우리의인격적 신화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사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위로부터 오셔서 다시 위로 가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각은 세상에서 비록 우리가 소유에는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존재가 그분 인격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실존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신분은 날마다 새롭게 조금씩 위로 고양되어 갑니다. 

 

주님께서는 굳이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번째 다시 태어남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바랍니다. 성탄 절기가 크리스마스로 시작해서주님의 세례 축일 끝이 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성령이 매우 제한적으로 임했지만, 예수님의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루가는 루가복음을 기록하며 열일곱 번이나 하느님의 능력인 성령에 관하여 기록했고, 사도행전에서는 무려 쉰일곱 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됐던 성령의 역사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성령의 신명 나는 역사가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한 것입니다. 요엘서 2 28절의 예언처럼 주님의 때에 성령이 만민에게 내리신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한 세례자 요한, 엘리사벳, 즈가리야, 시므온, 안나,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이들 모두 한결같이성령의 신명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성령은 하느님의 영일뿐더러, 이제 부활하신 예수의 영으로, 그리고 교회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카 전서 5 19~20절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을 멸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에페소서 4 30절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하게 만든다는 헬라어는 “λυπέω 루페오인데, 이는 몹시 슬프고 근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마음이나 감정적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 또한 수반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통과 슬픔은 우리의 때문에, 우리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근심하게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간이 아니시지만, 초대 교회는 이렇게 성령을 매우 인격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홀로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고통과 같은 것일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자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삼가 진지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4주간의 대림절과 2주가 넘는 성탄 절기를 지나며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성육신 교리에 대해 계속 반복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공동체적이면서도 매우 인격적이며 개별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교회에는 알곡도 있고 가라지도 있는 법입니다. 성탄 절기 동안 아기 예수를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 안에 잉태한 사람은 성령을 통해 아기 예수와 함께 성장해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성장도 발육이 저조하면 도태되듯이, 영적인 발육이 없는 사람도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성장하면서 위로 고양되든지 아니면 점점 뒤로 도태되든지 중의 하나뿐입니다. 지난 해와 해가 신앙적으로 같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도태입니다. 가만히 있는 신앙은 결국 자신도 모르게 도태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신앙은 끊임없이 위로 우리 인격을 추동하여 고양하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열정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서 속에서 성령을 만난 모든 사람을 통해, 그리고 우리 주변에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목격되는 바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 아니라 루가는 그분께서 기도하고 계실 홀연히 하늘이 열렸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기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가는 성령과 기도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기도 없이 하늘은 열리지 않고 성령도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오직 기도하는 ,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만 임하신다는 사실. 2025년을 열며 이제 우리 위의 하늘도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삶에서 무엇이 빠져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2025년을 함께 준비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의 하늘을 열어젖혀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성령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하셨던 말씀을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루가 12:4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주님의 세례 / 연중1 (다해)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예수께서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을 보내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세례의 언약을 굳게 지키며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또는

 

사랑의 하느님, 의로우신 성자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어 우리 죄인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43:1-7

.     그러나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사람이다.
2    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     네가 속을 걸어가더라도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3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     이스라엘의 거룩한 , 내가 너를 구원하는 자다.
.     이집트를 주고 너를 되찾았고
.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주고 너를 찾아왔다.
4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5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     내가 뜨는 곳에서 너의 종족을 데려오고,
.     지는 곳에서도 너를 모아오리라.
6    내가 북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    ‘그들을 어서 내놓아라.’
.     남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    ‘그들을 잡아두지 마라.’
.     아무리 데서라도 나의 아들들을 데려오너라.
.     끝에서라도 나의 딸들을 데려오너라.
7    그들은 백성이라고 불리는 것들,
.     나의 영광을 빛내려고 창조한 백성,
.     손으로 빚어 만든 나의 백성이다.

 

 

 

성시_시편 29

1    하느님을 모시는 자들아, 주님께 돌려 드려라.
.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 드려라.
2     이름이 지니는 영광
.     주님께 돌려 드려라.
.     거룩한 두르신 주님께 머리를 조아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     영광의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
4    주께서 바닷물 위에 나타나신다.
.     목소리는 힘차시고
.     목소리는 장엄하시다.
5    주님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6    레바논산이 송아지처럼 뛰고
.     시룐산이 들송아지처럼 뛰게 하신다.
7,8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튕기고,
.     광야가 흔들거린다.
.     앞에서 카데스 광야가 흔들린다.
9    주님의 목소리에, 상수리나무들이 뒤틀리고
.     숲들은 벌거숭이가 된다.
¶    모두 주님의 성전에 모여
.     한결같이 영광을 기린다.
10  주께서 거센 물결 위에 옥좌를 잡으시고
.     영원히 왕위를 차지하셨다.
11  주님의 백성들아, 그에게서 힘을 얻고
.     복을 받아 평화를 누리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사도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냈다. 15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로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16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17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

 

 

 

복음서_루가 3:15-17, 21-22

15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러나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머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17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
21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있을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홀연히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 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는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시편 2:7; 창세 22:2; 이사 42:1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