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4. 5.가해_부활대축일
예레 31:1-6 / 시편 118:1-2, 14-24 / 사도 10:34-43 / 요한 20:1-18
“두 번의 돌아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한복음은 “빈 무덤 이야기”와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현현 체험을 한 데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기록했습니다. 물론 빈 무덤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에 기초합니다. 복음서는 모두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현현 체험을 기록했는데, 그 디테일에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마태오는 처음에 천사가 여인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께서 등장하셨고, 여인들이 그 발 앞에 경배했다고 합니다. 루가는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하여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는 밝히지 않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매우 소상하게 전합니다.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사실에 낙담하여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순간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그녀의 뒤편에서 나타나신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마리아는 “왜 울고 있느냐?”라는 천사의 말에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뒤를 돌아봤을 때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는대도 전혀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슬픔에 잠겼을 때 주님께서 두 번째 부르십니다. 이번에는 평소 그녀를 부르시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리아야”. 이에 그녀는 두 번째로 예수를 향하여 뒤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 그녀가 부르던 대로 주님을 “라뽀니”라고 불렀고,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요한 기자는 돌아섰다는 행위의 헬라어 동사 “스트레포, στρέφω”를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이 짧은 만남에서 마리아가 두 번씩이나 뒤돌아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스트레포는 신약성서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동사입니다. 이는 항상 “뭔가를 뒤로 돌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정신적으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영적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신약성경에서 21번 사용된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개인과 국가에 요구하시는 결정적인 전환, 즉 하나님께로 돌아섬 또는 하나님의 심판을 향한 삶의 대전환을 강조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요한이 이 단어를 두 번 사용한 것은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부활에 관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처음에 돌아섰을 때는 전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봤는데 첫 번째는 못 알아보고, 두 번째 돌아섰을 때는 알아봤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이 있다면 두 번째는 주님께서 평소에 그녀를 부르시던 대로 “마리아야!”라고 불러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예수를 인지하자마자, 평소대로 “라뽀니, 즉 선생님”이라고 고백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그녀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돌아서는 행위와 믿음의 고백이 있는 순간 그녀는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첫 번째 돌아섬과 두 번째 돌아섬을 구분한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스트레포라는 동사는 부활의 계시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부활에 관한 증언이 있을 때 많은 사람의 반응은 아마도 첫 번째 마리아의 반응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데도, 토마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그분을 보고 그 손과 옆구리를 직접 만져봐야 믿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첫 번째 반응은 부활 소식을 처음 접하는 모든 사람의 일반적 반응과 일치합니다. 이는 초대 교회나 현대의 교회나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부활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고, 현재에도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논쟁하지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부활을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에서는 전태일 열사가 바로 부활 예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해석은 부활에 관한 의미론적 해석으로 가치가 있지만, 그러한 부활 이해는 부활의 의미를 오히려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활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이성과 이해를 넘어서는 하느님 구원 사건의 절정입니다. 유대인에게 구약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의 결정적 사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그들은 출애굽 사건을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 하느님 구원 사건의 결정적 사건이 됩니다. 출애굽 사건은 분명 부활 사건의 전조입니다. 이는 완전히 죽음의 속박을 끊은 사건이고, 빛과 어둠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생명과 죽음이 결코 함께할 수 없음을 대한 확증한 것입니다. 이로써 구약부터 이어온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부활로써 완성이 됩니다.
이러한 부활 사건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부른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요한복음 13장 1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분의 부활을 믿고 그분 앞에 나온 사람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직접 죽으심으로 이러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사랑의 지고함이 부활의 핵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실 이유도, 또 부활하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사랑만이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듯이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귀중한 것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의 순종과 헌신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나니 갑자기 얼마 전에 읽었던 피천득 시인이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시가 생각이 납니다.
변화에 변심 않고
사랑만은 견디느니
폭풍이 몰아쳐도
사랑만은 견디느니
입술빛 퇴색해도
사랑만은 견디느니
이 생각 틀렸다면
사랑하지 않으리
[세익스피어 소테트 116번] 중에서 / 피천득 역 (시집 착하게 살아온 나날들)
사랑을 끝까지 믿었던 시인의 사랑에 관한 확신이 넘치는 시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에 관한 확신 없이는 부활을 설명할 수도 또 이해하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부활 신앙을 추동하는 힘입니다. 사랑 없이는 부활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부활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분명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고 또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몸만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돌아섬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돌아섬”의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이유 없이 죽으신 것도, 이유 없이 부활하신 것도 아닙니다.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든 의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의심에서 돌아서서 사랑의 마음으로 부활을 맞이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도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이웃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교우들과 우리 이웃을 위해 주님께서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배를 드리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 없이는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제대로 부를 수 없습니다. 한 번 돌아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알아볼 수 없는 우리의 선입견, 우리의 편견, 우리의 경험을 버리는 두 번째 돌아섬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초대의 음성에 다시 두 번째 돌아설 때 우리는 제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로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번 부활절에 주님을 향해 두 번 돌아서길 바랍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아집과 편견에서 돌아서고, 두 번째는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하며 돌아서길 바랍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강림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아멘하고 돌아설 수 있는 용기. 주님의 성령께서 분명 그러한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모두에게 부활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부활대축일 (가해) 2
본기도
다음 세 기도 중 하나를 드립니다.
- 영광의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어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생의 문을 열어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우리도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 영광의 하느님,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생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 영광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어 놀라운 권능을 교회에 전해 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교회가 죄와 죽음에 매인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선포하고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31:1-6
1 “내가 분명히 말한다. 그 때가 되어야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2 나 야훼가 선언한다.
. 칼부림에서 빠져 나온 백성이
. 사막에서 나의 은혜를 입었다.
. 안식처를 찾아나선 이스라엘에게
3 나 야훼는 멀리서 나타나주었다.
. 나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여
. 너에게 변함없는 자비를 베풀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 내가 너를 다시 세워주리라.
. 너는 다시 일어서서
. 몸치장을 하고 소구를 치며
. 흥겹게 춤추며 나오게 되리라.
5 사마리아 이 산 저 산에
. 다시 포도를 심고
. 심은 사람이 그 포도를 따먹게 되리라.
6 ‘시온으로 올라가 우리 하느님 야훼를 뵙자!’고
. 보초들의 외치는 소리가 에브라임 산에서 터져 나올 날이 왔다.”
성시_시편 118:1-2, 14-24
1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는 어지시다. ◯
.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 이스라엘 문중아, 노래 불러라. ◯
.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4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
. 나의 구원이시다.
15 의로운 사람들의 집집에서 ◯
. 터져 나오는 저 승리의 함성
16 주님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
. 주님의 오른손이 힘을 떨치셨다.
17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
. 주께서 하신 일을 널리 선포하리라.
18 주께서는 나를 벌하시고 또 벌하셨지만 ◯
. 그러나 죽게 버려두지는 아니하셨다.
19 정의의 문을 열어라. ◯
. 내가 들어가 주님께 감사기도 드리리라.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
.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21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으니 ◯
.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22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
. 주께서 하신 일이다.
24 이 날은 주께서 내신 날, ◯
. 다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사도 10:34-43
34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35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37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38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자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43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복음서_요한 20:1-18
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3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0 두 제자는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11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14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 줄은 미처 몰랐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셔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 내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뽀니!” 하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하고 일러주셨다. 18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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