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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람들을 위한 사랑” _2026.4.2. 가해_성목요일

James Chae 2026. 4. 3. 07:36

 

2026.4.2. 가해_성목요일

출애 12:1-4(5-10), 11-14 / 시편 116:1-2, 12-19 / 1고린 11:23-26 / 요한 13:1-17, 31-35

 

 

당신의 사람들을 위한 사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교부들도, 교회 전통도 모두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우리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유다에 대해 편견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편견 속에는나는 가리옷 사람 유다와 다르다라는 일종의 안도감도 있는 듯합니다. 마치 우리는 제자들 편에 있고, 유다는 멸망 받을 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이러한 편견을 버리고, 당시의 장면을 객관적으로 연출하는 영화감독이나 작가처럼 상상한다면, 우리 누구도 유다에 대해 함부로 비판할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실 제자들조차 유다의 배반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성서는 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찬례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성찬례 도중에 세족례가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이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교회의 원초적인 전례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예식 분위기는 초대 교회에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 이야기에서 전례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예수님과 제자들이란 차이뿐입니다.

 

모든 복음서는 예수 사후 기록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배반한 사람에 대해 결과론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다는 그리스도교최대의 죄인이고, “악마의 하수인”, 그리고배신자 낙인찍혔습니다. “이스가리옷이란 뜻은 남부 유대 지방의 이름으로가리옷 사람이란 뜻이지만, “위선자”, “거짓말쟁이”, “암살자등의 뜻으로도 사용됐습니다.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아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예수의 선택을 받은 열두 제자 하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합니다. 예수께서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를 선택하신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교회는 전통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마음에 들어서 선택된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예수 제자단의 돈주머니를 담당하는 총무 역할을 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봐도 그는 분명 성실하고 믿을 있는 사람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공동체의 회계를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성실하고 관계가 깨끗할 같은 사람에게 돈을 맡깁니다. 그는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 흔히 있는,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 중의 하나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리옷 사람 유다가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은 여인을 책망했다는 말은 분명 후대의 삽입된 구절일 가능성이 큽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가 위선적인 사람임을 특히 부각시킵니다. 만약 그가 진짜로 부도덕한 사람이고 위선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는 제자들과 예수를 완전히 속인 것이 됩니다. 하느님의 섭리대로 주님께서 이를 아시면서도 속아 줬다는 전통적 해석은 부분에서 석연찮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불신앙을 가리옷 사람 유다에게 투사하며 모종의 위안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에 관한 대부분의 부정적 기록이 후대에 유다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사후 기록임을 알고 이런 편견을 내려놓고 수난 사화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실했던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겼는지 우리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평범한 우리도 언제나 유다처럼 하느님께등을 돌리는 있음을 암시합니다. 유다는 배신할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으로 그렇게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에 대해 부정적인 복음서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적습니다. 그러나 4세기에 곱트어로 기록된 [유다의 복음서] 발견되면서 그에 대한 다른 기록을 봅니다. 복음서는 위경으로 영지주의적 예수 추종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서는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의 수제자로 그려졌습니다. 예수께서 인류 구원 과업을 유다와 상의했고, 유다의 배반은 모의의 결과라고 합니다. 특히 유월절 사흘 , 일주일 동안 유다가 예수의 비밀스러운 계시를 혼자 받았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직 유다만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다가 배신으로 인해 제자들과 후대 사람들로부터 저주받을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디로 예수보다 유다에게 고난받는 종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복음서입니다.

 

이러한 위경의 복음서가 있었다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유다의 배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왜냐하면 가리옷 사람 유다만 예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제자가 예수의 수난 예수를 버리고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기둥인 베드로는 번이나 예수를 저주하며 모른다고 배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배신자는 유다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믿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를 배신할 개연성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익에 밝아 언제든지 주님께등을 돌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말입니다. 이것이 수난 이야기가 우리를 주님 앞에 겸손하게 만드는 다른 지점입니다.

 

복음서는 배신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부활과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계기로 회개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가리옷 사람 유다의 최후는 비참하게 기록됐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회개의 기회를 저버렸다고 해석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예수를 배반했지만, 누군가는 회개의 기회를 가졌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에 인간의 선택이 작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수난 이야기가 전하는 인간의 본모습이기도 합니다.

 

매년 묵상하는 수난 이야기와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에 나오지만, 각자가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어느 정도 유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섬깁니다. 그러한 유익이 불편함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개연성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배반하지 않지만, 언제든 교회를 떠날 있는 존재들입니다. 누구도 교회에 나오는 것을, 주님의 성사에 참여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막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여 있습니다. 제자들도 모두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높은 자리를 놓고 서로 다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모두 각자의 형편에 따라 예수를 따랐음을 부인할 없습니다.

 

예수께서 누군가의 배신을 언급했을 제자들은 혹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모종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은 예수께서 배신자에 대해 이야기했을 제자들 각자가저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와 다르게 예수의 애제자였던 요한이 예수의 품에 기대어 제자들을 대표하여 배신할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다고 기록했습니다. 마르코복음 기자는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에 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은 제자들이 예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예수를 따랐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 죽음을 암시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뭔가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간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들은 스승이 직접 자신들의 발을 씻어 주실 기쁨보다는 당황했습니다. 가리옷 사람만 순간에 마음에 찔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예수의 수난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도망한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사람은 미리 마음에 정한 대로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반사적으로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따라 죽을 각오가 섰다면 아마도 그들은 절대로 도망가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의 반복된 수난 예고는 그들을 분명 공포와 의심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니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듣고 반발하다가사탄이란 비난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하신 말씀을 나중에 회심 후에나 다시 기억해 냈을 겁니다. 주님께서도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13:14~15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두의 배반을 예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젠가는 다시 모여 예수 공동체를 이어갈 것도 아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억에 깊이 새겨질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족례입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종이나 자녀들이 아버지의 발을 씻는 것이 통상적 정결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족례는 식사 도중에 전격적으로 이뤄집니다. 교부들은 가리옷 사람 유다가 성찬례와 세족례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해석했지만, 이야기를 읽어보면 분명 가리옷 사람 유다도 모든 과정에 참여했음을 있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를 배신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치러진 성찬례와 세족례는 과연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아마도 제자들 모두 무척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배신에 대한 예언. 모두가 한자리에 있었지만, 모두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엄중한 시간에 모두가 딴생각하고 있었으니, 주님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주님의 마지막 고별사를 13장에서 16장까지 장장 장에 걸쳐 기록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기자가 예수께서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해 오셨으므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13:1(천주교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성서보다 [천주교 200주년 성서] 번역본이 마음에 와닿아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당신의 사람들 결국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주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도 포함됩니다. 그분께서는 배신할 제자들과 자신을 팔아넘길 가리옷 사람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한번 부른자기의 사람들을절대로 포기하는 법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요한 10:11

 

이것이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사랑입니다. 제자들의 배신을 아셨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에게로 나온 사람이면 누구이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절대로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미 교회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모두주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으며, 남을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주님의 성찬을 나누고, 세족례를 합니다. 이는 예수의 제자단 구성이 다양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성사는 모든 신분과 인종, 직업과 남녀노소 가릴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심기는 주님의 사랑은 누구도 간섭할 없는 주님의 전적인 은총입니다. 성사가 지닌 힘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이든,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있든,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관계없이 주님의 사랑 앞에 차별은 없습니다. 우리가 은총을아멘으로 고백하고 받을 준비가 됐다면, 우리는 그분의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동시에 깨닫게 됩니다.

 

오늘 , 세족례가 주님께서 베푸신 세족례의 밤과 같은 밤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날의 긴장감을 가지고 세족례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 우리가 어떤 상태이든, 모두 주님 아래 자신을 내려놓고, 은총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족례를 통해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우리 각자에게 이뤄지기를 빕니다. 그것은 전격적으로 부어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이렇게 형제자매의 발을 씻는 사랑은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이므로 우리도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제자들을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목요일 / 성찬제정일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성체성사를 세우시어 구원의 신비를 보여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계명을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출애 12:1-4(5-10), 11-14

1 야훼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너희는 달을 해의 달로 삼고, 달수를 달에서 시작하여 계산하여라. 3 너희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알려라. 십일에 사람마다 가문에 마리씩, 집에 마리씩 새끼 양을 마련해 놓아라. 4 만일 식구가 적어 새끼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여 옆집에서 그만큼 사람을 불러다가 먹도록 하여라. (5 흠이 없는 수컷이면 양이든 염소든 상관없다. 6 너희는 그것을 십사일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무렵에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피를 받아, 그것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여라. 8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나물을 곁들여 먹도록 하는데, 9 날로 먹거나 삶아 먹어서는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도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도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살라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 12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전국에 있는 맏이들을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조리 치리라. 이집트의 신들도 모조리 심판하리라. 나는 야훼다. 13 집에 피가 묻어 있으면, 그것이 너희가 있는 집이라는 표가 되리라. 나는 이집트 땅을 때에 피를 보고 너희를 쳐죽이지 않고 넘어가겠다. 너희가 재앙을 피하여 살리라. 14 날이야말로 너희가 기념해야 날이니, 너희는 날을 야훼께 올리는 축제일로 삼아 대대로 길이 지키도록 하여라.

 

 

 

성시_시편 116:1-2, 12-19

1,2 주님은 나의 사랑,
.     나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주셨다.
.     내가 부르짖을 때마다
.     귀를 기울여 주셨다.
12  주께서 베푸신 크신 은혜
.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구원의 감사 잔을 받들고서
.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14  주님께 서약한 , 내가 채워 드리리니
.     당신의 백성은 빠짐없이 모여라.
15  주님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     그분께 귀중하다.
16  주여, 몸은 당신의 종이옵니다.
.     당신 여종의 아들인 종을
.     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17  내가 당신께 감사제를 드리고
.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주님의 모든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     주님께 나의 서원을 채워드리리라.
19  주님의 안에서,
.     예루살렘 가운데서 
.     나의 서원을 바치리라.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1고린 11:23-26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24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5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그러므로 여러분은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복음서_요한 13:1-17, 31-35

1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것을 아시고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2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한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5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주께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께서는너는 내가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베드로가 됩니다.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예수께서는목욕을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11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으므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는지 알겠느냐? 13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14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16 정말 들어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나을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다. 17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

31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주실 것이다. 33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없다. 34 나는 너희에게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