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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신 하느님, 구원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부활하신 하느님”_2026.4.4. 가해_부활밤예식_강론

James Chae 2026. 4. 4. 22:34

 

 

2026.4.4. 가해_부활밤예식

로마 6:3-11 / 시편 114 / 마태 28:1~10

 

 

생명이신 하느님, 구원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부활하신 하느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마르코 복음은 원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이 함께 예수의 무덤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나중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마르코 사가는 빈무덤 사화 외에 부활 이야기에 침묵합니다. 마르코 복음 이후에 나온 마태오와 루가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구성에 자신들의 추가 자료를 첨부하여 부활 증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루가는 마르코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의 빈무덤 이야기를 전하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 첨부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구운 생선 토막까지 드셨다고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요한복음도 마르코의 빈무덤 사화에 자신의 전승 자료를 합쳐서 편집했습니다.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셨고, 이후에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으며, 마지막으로는 부활을 믿지 못하던 토마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후에 갈릴래아로 돌아간 일곱 제자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시몬의 사랑을 확인하고 소명을 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에는 무덤 사화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발현하신 이야기에 덧붙여서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목격자로 등장하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경비병들이 대사제들에게 매수되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 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부활에 관한 보도가 다양한 것은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체험이 그만큼 많았음을 말해 줍니다. 기록의 일관성이 없다고 현상이나 사건마저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바, 예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 갔다는 소문은 매우 신빙성 있는 진술입니다. 아마도 유대계 그리스도 공동체였던 마태오 공동체는 이러한 문제로 논란이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다양한 복음서의 진술 가장 일치하는 가지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빈무덤을 목격한 최초 증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부장적인 초대 교회의 분위기, 그리고 여자의 증언은 법정에서도 증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유대 사회의 보수적 관점에서도 여자가 부활의 목격자라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진술이 아닐 없습니다. 복음사가들이 이야기를 창작한 것이라면 분명 최초의 목격자를 베드로나 요한처럼 예수의 남성 제자들로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의 목격자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에 초대 교회는 이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의 목격자가 사도로 불리지 못한 것은 분명 초대 교회와 유대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하대했던 당시의 분위기로 이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도의 뜻이 예수의 제자이면서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란 뜻에서 분명 막달라 마리아도 사도로 불려야 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그녀의 이름이 빠진 것은 너무 아쉬운 대목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그분의 현현을 목격한 이후 초대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부활을 체험했다는 주장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그러한 부활 증언들은 유월절 이후 50일간 집중적으로 지속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님의 성령 강림 사건 후에는 부활 현현에 관한 증언이 드뭅니다. 유일하게 사도 바울로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전합니다. 복음사가들은 많은 부활 현현 이야기 중에 가장 신빙성 있는 것들만 자료로 채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 이야기가 복음서 사가마다 다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이 실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하나의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중요한 것은 모든 증언이 부활한 주님을 직접봤다라는 방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난 제자는 예수와 하루 종일 동행을 했으면서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처음에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열리기 전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먼저 드러내시기 전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본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년을 주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도 부활한 주님을 직접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은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부활을 믿을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활은 우리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이해할 없습니다. 우리가 믿으려고 노력해도 믿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에게서 오듯이 부활에 관한 믿음 또한 그러합니다. 그분의 은총, 그분께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실 , 우리는 그분을 보고, 부활을 믿을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부활 예수를 순간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던 , 본다고 확신했던 것들로부터 시각장애인이 됐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알았던 모든 것이 어둠 속에 놓인 후에나 그는 진정한 빛을 있게 됐습니다. 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진 후에 다시 보게 되었다고 루가는 기록합니다. 

 

비늘은 우리가 그동안 믿고 확신했던 모든 것을 암시합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비늘처럼 우리의 눈을 가려 부활한 예수를 없게 만듭니다. 우리의 이성, 우리의 지성, 우리의 실증적 관점, 우리의 지식, 우리의 편견들이 부활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을 심지어 까무러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도 처음에 예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체험에 관해 설명한 것과도 유사합니다. 하느님을 봄이란 인간이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재했던 하느님께서 오시는 ,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시면 누구도 그분을 알아볼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관한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과 다릅니다. 라자로는 죽음에서 소생했지만, 결국에는 나이 들어 죽었을 겁니다. 부활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생명이 결코 죽음과 나란히 없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생명과 함께 없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과 함께 없습니다. 절망의 상태는 결코 은총과 양립될 없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을 창조하셨지, 죽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생명을 잠시 축소한 듯하지만 결국에는 죽음은 생명을 이길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죽음은 결코 함께할 없습니다. 죽음이 만연한 곳에 생명의 숨결이 들어가면마른 뼈들 다시 살아납니다. 빛이 비치니 어둠은 즉각적으로 물러납니다. 오늘 우리는 축복식을 통해 부활초를 밝히며 이를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몸소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부활에 관한 믿음이 어떤지를 각자 돌아보길 바랍니다. 부활에 대한 개인적 체험이 있으신 분도 있습니다. 부활에 관해 지적 깨달음을 가지신 분도 계십니다. 부활에 관해 강한 믿음이 있으신 분도 계십니다. 아니면 그냥 부활을 교회의 중요한 절기 하나로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가 부활에 관해 어떤 자세를 가지든, 부활은 분명 초대 교회나 현재 우리에게나 하나의 충격적 사건으로 제시됨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경이와 놀라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이러한 신비 체험을누미노제(Numinose)”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에 관한 우리의 믿음은 그러한 체험 외에도 사도들의 증언 위에 놓여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고백이 그들의 증언이 참됨을 우리에게 증명했습니다. 부활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사도들의 증언 위에서 믿음을 세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사도들의 보편적 믿음 위에 부활의 신앙을 세워왔습니다. 삼성직의 전통을 통해 현재까지 부활 신앙이 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교와 사제와 부제는 이러한 부활 증언의 계승자입니다. 그러한 증언이 계속해서 고백 되므로 우리 교회는 부활에 관한 풍부한 체험과 고백을 계속 이어갈 있습니다. 이것이 천년 동안 고백 되어 부활의 신비가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배를 시작하면서 불을 지피고, 불에서 부활을 상징하는 부활초에 불을 지폈습니다. 불은 창세기의 빛이고, 빛은 이제 부활의 빛이 됨을 상징합니다. 이는 부활이 하느님의 창조임을 뜻합니다. 그런 후에 창세기부터 예언서까지 구약이 예언된 부활에 관한 증언을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은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냅니다. 부활초가 어둠을 밝히듯이 부활의 힘은 모든 죽음과 어둠을 몰아내고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구원 역사로 초대합니다. 오늘 전례는 이를 표현하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활이 하느님의 영광임을 우리는 노래했습니다. 생명이신 하느님은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며, 부활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이러한 부활에 관한 신앙으로 언제나 굳건히 일어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영광 가운데 주님과 동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충만한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내가 죽고 완전히 새롭게 부활하는 새로운 자아를 직면하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여러분에게 그러한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길 기도합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 됐던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들의 증언 위에 굳건히 서서 부활의 신앙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례독서_부활밤(가해)

 

본기도

 

 

1독서_ 로마 6:3-11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생명 얻어 살아가게 것입니다.

5.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것입니다.

6.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7.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9.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성시_시편 114

  1. 할렐루야.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야곱 집안이 야만족을 떠나올
  2. 유다는 그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치고 요르단 강은 뒤로 물러섰으며
  4. 산들은 염소처럼 뛰놀았고 언덕들은 양처럼 뛰었다.
  5. 바다야! 어찌하여 도망치느냐? 요르단아! 어찌하여 물러서느냐?
  6. 산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염소처럼 뛰며 언덕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양처럼 뛰느냐?
  7. 이여, 너는 주인 앞에서, 야곱 하느님 앞에서 떨어라.
  8. 그분은 바위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바위로 하여금 샘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복음서_ 마태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갔다. 2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위에 앉았다. 3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 4 광경을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쳤다.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말을 전하러 왔다.” 8 여자들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다. 9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 여자들을 향하여 걸어오셔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그러자 예수께서는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