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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 앎의 의지 [요약정리]

James Chae 2011. 9. 4. 17:57

 

 

미셸 푸코 "성의 역사" - 앎의 의지 [요약정리]

 

 

채창완

 

1장 우리들, 또 다른 빅토리아 왕조 사람들

 

17세기 초에는 성적 관행에 대해 어느 정도의 솔직함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 성적 욕망이 조심스럽게 제한되고 성적 욕망은 생식 기능의 중대함 속에 흡수된다. 성에 대해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합법적이고 생식력이 있는 부부가 규범으로 자리잡는다. 부모의 침실 만이 성적 욕망의 처소로 인정된다.(공리적인 생식의 자리) 법의 위반에 이를 수 있는 성적 욕망이 허용된 장소는 유곽과 정신병원이다. 그 밖의 모든 곳에서는 근대의 도덕적 엄격주의가 금지, 비실재, 그리고 침묵이라는 삼중의 법령을 강요한 것 같다. 이러한 성적 억압의 해방은 프로이트 덕분으로 다소간 진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성의 근대적 억압에 관한 담론은 아직 효력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의 발전과 일치시키기에 이른다. 그것이 부르주아적 질서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이다. 성의 억압을 말하는 자의 특전은 기존의 질서에 도전한다는 의식, 체제 전복적인 인물이라는 자기 확신을 보여주는 어조, 현재의 악을 몰아내고 미래의 빛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미래를 불러 오게 하려는 열정 등을 취한다. 이는 이들이 성의 억압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 억압의 관점에서 성에 대해 말하려는 자들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성적 억압에 대해 나는 왜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그토록 대단한 열정과 원한을 지닌 상태에서 우리들이 억압 받고 있다고 말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성은 억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 또는 오히려 성에서 권력에 이르는 관계가 억압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역설로 끝날 위험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경제체계와 이것의 기초를 이루는 모든 담론의 <이해관계>에 맞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바로 이 논점에 일련의 역사적 분석을 설정하려고 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담론의 진상(fait discursif)과 성의 담론화(mise en discours)를 고려해야 한다: 성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과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그것에 대해 말하는 장소와 관점,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부추기고 그것에 대해 말해진 내용을 수집하고 유포시키는 여러 제도들2) 권력의 동질이상적 기술들thechnigues polymorphs : 어떻게 권력이 일상적 쾌락에 침투하여 그것을 통제하는가? (ex. 거부,폐색, 자격박탈,선동,강화 등)3) 담론의 산물들에서 버팀목과 동시에 도구의 역할을 하는 <앎의 의지>를 끄집어내는 일.

 

결과적으로 16세기 이래 성의 <담론화>가 제한의 과정을 겪기는커녕 반대로 증대하는 선동의 기제에 종속되어 왔다는 것, 성에 대해 행사되는 권력의 기술은 엄격한 선별의 원칙이 아니라 반대로 동질이상同質異象적 성적 욕망들의 확산과 정착(착상implantation)*이라는 원칙을 따라왔다는 것, 그리고 앎의 의지는 제거할 수 없는 금기 앞에서 중단된 적이 없으며-틀림없이 많은 오류를 가로질러-성적 욕망에 관한 과학을 정립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2장 억압의 가설

 

1. 담론에의 선동

 

근대 사회에 고유한 특징은 사회가 성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구나 다 아는 비밀로 이용함으로써 한없이 그것에 대해 말하는 데 열중한다는 것이다.(푸코)

 

[17세기의 성의 담론-고해성사]17세기는 성의 억압의 시대가 시작된 시기일 것이다. 성을 성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조차도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 3 세기 동안 담론의 폭발로 이어졌다. , 암시와 은유의 수사기법이 전적으로 체계화되었을 것이다.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화자들 사이에서, 어떤 사회적 관계의 내부에서 가능한가가 훨씬 더 엄밀하게 규정되었다.(ex. 부모와 자녀, 교육자와 학생,주인과 하인 사이)  트렌트 종교회의 이후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성에 관한 질문의 노골성이 미약해졌지만 점점 더 끈질기게, 신중함이 강조된다. 그러나, 언어가 그야말로 세련되게 다듬어진다 하더라도 고백, 특히 육욕에 관한 고백의 범위는 계속 넓어진다. 직접적으로 불리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순화된 언어의 덮개 아래, 성은 그것에 모호함도 유예도 남겨놓으려 하지 않는 담론에 의해 비난 당하고 이를 테면 짐승처럼 내몰린다. 수도원의 금욕적 전통을 통해 형성된 성의 담론화는 17세기에 와서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되었다. , 모든 선량한 기독교도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든 욕망을 담론으로 늘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18세기의 성의 담론-통치]18세기 무렵부터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추기는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선동이 일어난다. <공익>이라는 권력의 기제들에 의해 기독교적인 영역 밖으로 담론이 확대되었다. 성에 대해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의 구분에 종속되지 않을 방식으로 말해야 했다. 성은 심판 받을 뿐만 아니라 관리된다. 18세기에 성은 <통치> 문제가 된다. 성을 대상으로 한 통치, 다시 말해서 금지의 엄격함이 아니라 유용하고 공적인 담론들에 의해 성을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의 통치는 인구, 어린이들의 성, 교육제도 등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인구>가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 등장하고 이는 정부의 통치의 대상이 된다. 한 사회의 미래와 운명이 시민들의 을 이용하는 방식에도 관련되어 있다고 단언된다. 이는 출산장려와 산아제한의 방치에 의해 정해진다. 17세기에는 침묵의 지배 아래 자주 다르게 말해지던 어린이들의 성문제가 18세기의 중등학교의. 건축물과 규정(성적이 부분을 근간에 두고 규칙들을 제정한) 들에서는 어린이들의 성적 욕망을 환기시키는 기재들이 발견되듯이 18세기의 청춘기 성의 담론화는 상당한 규모로 진전된다.(이에 대한 다양한 문헌 증가,성교육의 실시) 교육 제도는 18세기 이래 그들의 성에 관한 담론의 형태들을 세분화시켜 왔고, 그것이 자리잡는 지점들을 확정시켰으며, 내용을 규범화하여 화자들의 자격을 정했다.

 

[18~19세기의 성의 담론-보호,격리,예방]다양한 담론들의 발원지 등장한다. 의학, 정신병학, 형사 법정,사회적 통제(보호,격리,예방)

 

사소한 아이들의 장난도 사법적 소송, 의학의 개입, 주의 깊은 임상적 검사, 그리고 거창한 이론 구축의 대상으로 변할 수 있다.(ex.엉긴 우유놀이와 관련한 어느 날품팔이의 고소사건) 성은 말해져야 할 어떤 것, 그것도 다양하나 제각기 나름대로 구속력을 갖는 담론 장치들에 따라 철저하게 말해져야 할 어떤 것이 되었다. 미묘한 속내이야기의 형태로든 고압적이 심문의 형태로든, 성은 세련된 것이든 촌스러운 것이든 말해져야 한다.

 

 

2. 성적 도착倒錯의 정착定着

 

19세기와 현대는 성적 욕망의 확산, 그것이 지닌 잡다한 형태들의 증강, <성적 도착>의 다양한 정착의 시대였다. 18세기 말까지는 교회법, 기독교 교서와 민사법이 성적 관행을 지배했다. 그러나 혼인관계 내에서의 성에 국한된다. 혼인관계는 가장 강렬한 속박의 발원지였으며 감시의 대상이었다.

 

18~19세기에 합법적인 결합을 중심으로 한 체계에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1)이성애에 바탕을 둔 일부일처제에 대해 점점 더 드물게, 점점 더 간결하게 말해졌다. 2)대신 어린이의 성적 욕망, 광인과 범죄인의 성적 욕망, 동성애자들의 쾌락이며, 몽상, 고정관념, 편집증 등 예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문제들에 사람들은 집중했다.(성적 욕망의 영역에서 자연에 반하는 것들) 이러한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문제가 된다. 그러나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교회의 간섭이 줄어든 대신에 <의학>은 부부의 쾌락 속으로 대거 들어왔다. 의학은 <불완전한>성경험에 대한 병리학을 생각해 냈고 그것들의 관리에 착수했다.

 

-중요한 것은 관용의 수준이나 억압의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권력의 형식에 있다.

 

1) 근친상간이나 간통을 통제하는 권력은 법률이고 어린이들의 성적 욕망에 관련한 <은밀한 습관>에 간섭해 온 것은 의학이다.2) 주변적인 성적 욕망에 대한 이 새로운 추궁은 <성적 도착의 편입> <개인들의 새로운 특성별 분류>를 초래한다. 동성애자의 성적 욕망과 성적 도착증자들의 그것은 습관적인 죄라기보다는 특이한 기질(nature)로서, 그들과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3) 이러한 형태의 권력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낡은 금기의 경우보다 더 절실하게, 끈질기고 주의 깊으며 호기심 많은 존재들이 필요하다. 성적으로 별난 것의 의학화는 그러한 권력 행사의 결과이자 동시에 수단이다. 의심 할 여지 없이 유효성의 증대이고 통제되는 영역의 확대이다. 그러나 또한 권력의 관능화이고 쾌락의 증진이다. 4) 그리하여 19세기의 사회 공간과 사회적 관례를 그토록 특징지었던 <성적 포화의 장치>들이 생겨난다. (일부일처제의 가정 속에 가득 내재해 있는 다양한 성적 욕망들의 포화 상태와 교실, 기숙사, 시찰, 또는 검진과 같은 특권적인 공간이나 관례들로 심한 성적 포화상태)

 

이 권력은 당연하게도 법규의 형태도 금기의 효과도 지니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것은 특이한 성적 욕망들의 세분화를 통해 일을 진행시킨다. 그것은 성적 욕망에 한계를 정하지 않으며, 성적 욕망의 다양한 형태들을 확장시키면서 무한한 침투선 들을 따라 그 형태들을 뒤쫓는다. 그것은 성적 욕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 대한 특성별 분류의 방식으로 육체 속에 포함시키고, 성적 욕망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권력이 서로를 보강하는 나선을 통해 여러 가지 성적 욕망의 변종들을 끌어들이며, 차단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최대로 포화된 장소를 마련한다.

 

성도착은 어떤 유형의 권력이 육체와 육체의 쾌락에 간섭함으로써 생긴 현실적 산물이다. 성적도착의 정착은 결과 겸 수단이다. , 성과 쾌락에 대한 권력의 관계가 세분화되고 증가하고 육체를 평가하고 행동에 스며드는 것은 바로 주변적인 성적 욕망의 격리, 증대, 공고화에 의해서 이다.그러므로 근대 산업사회가 성에 대해 한층 더 억압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가설은 분명히 포기되어야 한다. 일찍이 이보다 더 많은 권력의 중심, 수다스러운 관심, 더 많은 순환적 접촉과 유대, 그리고 농밀한 쾌락과 집요한 권력이 각자 자체의 더 폭넓은 확산을 위해 서로 존재했던 적이 없다.

 

 

 

3장 성의 과학

 

여기서 푸코는 성의 진실을 낳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절차를 제시 한다.

 

1)    성애의 기술(ars erotica) : 중국,일본,인도,로마 그리고 아랍 사회 등에서 비롯된 성애의 기술에서 진리는 실천으로 간주되고 경험으로 축적되는 쾌락 자체로부터 추출된다. 앎은 성적 실천 자체 속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 실천을 부추기고 그것의 효과를 증대시킨다. 그리하여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할 앎이 성립되는데, 그 앎을 감춰야 할 이유는 그것의 대상이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혐오감에 대한 의혹 때문이 아니라, 누설되면 효능과 힘을 잃는다는 전통에 관련된 필요, 곧 가장 깊숙한 저장고에 놓아두어야 할 필요 때문이다. 따라서 이 비법은 도제 방식 의해서만 전수된다.

2)    성의 과학(scientia sexualis) : 이는 전수하는 비법과 엄격하게 대립되는데 고백을 통해 진실이 산출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중세 이래 서양 사회는 이러한 기술을 지니고 있다. 세속과 종교를 막론하고 권력의 영역에서 <고백>에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해왔다. 고백의 의무가 너무나도 많은 갖가지 지점들로부터 이송되어왔고, 너무나도 깊이 우리들과 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그것이 억압적인 권력의 작용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는 우리의 비밀스러운 것을 고백하도록 요구 받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성애의 기술>이라는 전통적 관계를 끊고 <성의 과학>을 갖추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성에 관한 참된 담론을 생산하는 일을, 그것도 곤란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고백이라는 낡은 절차를 과학적 담론의 규칙에 맞춤으로써, 계속해 왔다.19세기부터 발전한 <성의 과학>은 역설적으로 기독교적인 서양에서 성의 진실을 산출하기 위한 최초의 기술이었던 의무적이고 철저한 고백의 특이한 의식을 핵심으로 간직한다. 이 의식은 16세기 이래 고해성사로부터 점차로 떨어져 나왔으며, 영혼의 인도와 신앙의 지도 <기술 중의 기술>(ars atrium) 를 매개로 교육, 성인과 어린이 사이의 관계, 가족 관계, 의학과 정신병학 쪽으로 이동했다. 어쨌든, 거의 150년 전부터, 성에 관해 진실된 담론을 생산하기 위한 복잡한 장치오래된 고백의 명령을 임상적 청취의 방법에 접속시키고 있으므로, 매우 긴 역사에 걸쳐 있는 장치가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성적 욕망>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성과 성적 쾌락의 진실로서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장치(고백을 통한 성의 과학)를 통해서이다.

 

 

 

4장 성적 욕망의 장치

 

1.목적

 

이 장의 목적은 권력에 대한 <이론>보다는 <분석학>쪽으로, 말하자면 권력 관계들이 형성하는 특수한 영역의 확정과 권력의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의 결정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석학은 불필요한 것들을 말끔히 치워 버리고 권력의 어떤 표상(법률적-담론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권력의 표상은 다음과 같다.

 

1)    부정적인 관계: 권력과 성 사이에는 부정적인 방식에 따라서만, 곧 거부, 배제, 거절, 방해 또는 은폐나 가면에 의해서만 관계가 수립된다.

2)    규칙의 결정기관 : 권력은 본질적으로 성에 대해 자체의 법을 강요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3)    금기의 순환성: 성을 다루기 위해 권력은 단지 금지의 법만을 작용하게 한다.

4)    검열의 논리: 이 금지는 세 가지 형태, 곧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단언, 말해지는 것에 대한 방해, 존재의 부정을 취한다고 추정된다.

5)    장치의 통일성:성에 대한 권력은 모든 위상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행사될 것이다. 권력은 획일적이고 동질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왕정의 권력을 불법적인 것, 이를테면 전횡[1], 남용, 변덕, 호의, 특권, 예외 그리고 기정 상태의 관례적인 계승 쪽에 두는 데 익숙해져 왔다. 왕정과 그것의 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이 법적-정치적인 것의 중요성이 확립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권력이 행사되어 온, 그리고 현재 행사되고 있는 방식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이 나타나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권력에 대해 생각하도록 지시하는 기회체계이다. 왕정의 역사와 법적-정치적 담론에 의한 권력의 작용 및 절차의 취급은 어깨를 나란히 해 왔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왕정제도에 대한 비판은 법적-군주제적 체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법의 한계를 넘어서고 스스로 법 위에 올라서는 왕정에 대해 행해졌다. 법은 권력의 형식 자체이어야 하고 권력은 언제나 법의 형태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막스주의의 왕정제도에 대한 비판도 법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공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시대와 목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표상은 군주제의 마력 아래 머물러 왔다. 징수와 죽음에 집중된 권력은 법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규범이 아니라 표준화에 의해, 징벌이 아니라 통제에 의해 기능하며 모든 위상에서 그리고 국가와 국가의 여러 기구들을 벗어나는 형태들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권력운용 방법들과 법적인 것 사이에는 아무런 동질성이 없다. 성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현대의 여러 분석들에서 아직도 작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법적 표상이다. 사람들은 법이론가들과 왕정제도가 가다듬은 권력-, 권력-주권의 어떤 이미지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법을 표본이나 준칙으로 간주하지 않을 권력 분석학 체계를 세워야 한다. 권력의 법적.부정적 표상을 벗어 던지고, ,금기,자유 그리고 주권의 관점에서 권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자. 근대 사회에서는 사실 권력이 법과 주권의 양태를 통해 성적 욕망을 지배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자. 더 효과적인 <기술체계>가 현존한다는 역사분석을 가정하자. 우리는 법 없는 성과 왕 없는 권력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2. 방법

 

억압이나 법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과의 관계에서 성에 관한 몇몇 유형의 앎이 형성된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권력은 매 순간 모든 상황에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경우라면 어느 때라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 이것은 권력이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일부 사람들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하는 특정한 권세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한 사회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권력의 속성? #권력은 표면에 위치하지 않고 내재하고 작용하는 거기에서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권력은 아래로부터 나온다. #권력 관계는 의도적이고 동시에 비주관적이다.[2] #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재하는 것이 아니다.[3]

 

움직이는 균열들을 사회에 야기하여 통일성을 깨뜨리고 재편성을 부추기며, 개인들 자체에 자국을 내고 그들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들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그들의 내부에 다시 말해서 그들의 육체와 영혼에 요지부동의 영역을 구획 짓는 유동적, 과도적 저항점들에 문제가 있다.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저항점들의 전략적 결집화일 것이다. 바로 이 세력관계의 영역에서 권력의 기제를 분석하려고 해야 한다. 반드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주>라는 인물 없이 세력 관계에 내재하는 전략에 입각하여 권력의 기제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

 

[권력의 기제를 분석하는 규칙]

1)    내재성의 규칙(권력-앎의 <국지적 발원지>) : 어떠한 외재성도 없다. 우리는 권력-앎의 <국지적 발원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예컨대 고해자와 고해를 듣는 신부 또는 신자와 영적 지도자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2)    끊임없는 변이의 규칙(변화의 도식 또는 변모의 모체> : 세력관계들의 상호작용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변화의 도식을 찾아야 한다. 권력-앎 관계는 주어진 배분의 형태가 아니라 <변모의 모체>이다.[4]

3)    이중적 조건화의 규칙 : 있음직한 전술들의 특수성이 전략을 조건 짓고 그것들을 기능하게 하는 전략이란 덮개가 전술들을 조건 짓는 이중적 조건화를 생각해야 한다.[5]

4)    담론의 전술적 다가성(多價性)의 규칙 : 권력과 앎이 서로 결부되는 것은 실로 담론에서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에서 담론은 전술적 기능의 한결같지도 항구적이지도 않는 일련의 불연속적인 조각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 다양한 전략에서 작용할 수 있는 많은 담론적 요소들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재구성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배분이다.

 

한쪽에 권력의 담론이 있고 맞은 편에 그것과 정면을 대립하는 또 다른 담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담론은 세력관계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전술적 요소 또는 세력권이고, 따라서 같은 전략내부에서 서로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는 담론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서로 대립하는 전략들 사이에서 모습을 바꾸는 일 없이 유통할 수 있다. 요컨대 법의 특권을 전략적 목표의 관점으로, 금기의 특권을 전술적 유효성의 관점으로 대체하며, 주권이 누리는 특권 대신에 다양하고 유동적인 세력관계의 영역에 대한 분석을 성립시키는 권력 개념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법에 기반을 둔 모형보다는 오히려 전략의 모형 쪽으로 말이다. 여기서 전쟁을 통해 표출되어 온 세력관계가 정치 권력의 분야로 옮겨지는 서양 사회의 근본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3. 영역

 

18세기 이래 성에 대한 앎과 권력의 특수한 장치들을 발전시켜 온 네 가지 중요한 일단의 전략들이 있다. 이것들은 권력의 차원에서는 유효성을 획득했고 앎의 차원에서는 생산성을 얻었다.

 

[성적욕망의 장치를 구성하는 요소들]

1)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 (여체): 여성의 육체는 성적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몸뚱어리로 분석되었고 육체는 의학적 실천의 영역에 통합되었으며 사회체, 가족 공간, 자식들의 삶과 유기적인 교섭을 갖게 되었다.

2)    어린이의 성에 대한 교육화(어린이의 조숙함) : 모든 어린이는 성적 활동에 몰두하거나 몰두하기 쉽고, 그러한 성적 활동은 부당하며 자연스럽고 동시에 자연에 반하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 및 집단과 개인을 해칠 위험이 그것 자체에 도사리고 있다는 이중의 단언.[6]

3)    생식 활동의 사회관리화(출산조절) : <사회복지> 또는 세무상의 조치가 부부의 생식력에 가하는 모든 격려와 제한을 통해 진행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사회관리화, 또 사회체 전체에 대한 부부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함으로써 달성되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사회 관리화, 개인의 경우이든 종족의 경우이든 병원 효과를 산아제한의 실천 탓으로 돌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의학적 측면에서의 사회관리화

4)    도착적 쾌락의 정신의학으로의 편입(성도착자들의 특성 분류) : 성적 본능은 독립된 생물학적, 심층심리적 본능으로 고립되었다. 그러한 본능을 침범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비정상이 임상적으로 분석되었고, 모든 행동을 대상으로 정상화와 병리화에의 편입을 수행하는 역할이 그러한 분석에 부여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그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교정적 기술체계가 탐구되었다.

 

근대의 서양 사회는 특히 18세기부터 그 혼인 장치에 포개지면서 그것을 배제하지 않은 채 그것의 중요성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는 새로운 장치를 고안해서 정립시켰다. 그것이 바로 <성적 욕망의 장치>이다.

 

혼인 장치와 성적 욕망의 장치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혼인장치 성적 욕망의 장치
허가된 것과 금지된 것, 규정된 것과 비합법적인 것을 확정짓는 규칙 체계를 중심으로 구축 유동적이고 동질이상적이며 정세에 의해 좌우되는 권력의 기술에 따라 기능한다.
여러 관계들의 상호작용을 재현하는 것과 그것들을 지배하는 법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의 일부로 삼는다. 통제 영역 및 형태의 영속적인 확대를 가져온다.
관여적인 것은 일정한 신분을 지닌 상대들 사이의 유대 육체의 감각, 쾌락의 질, 그리고 아무리 미묘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라도 감각 반응의 성질이다.
부의 양도 또는 순환에서 그것이 맡을 수 있는 역할 때문에 경제와 굳게 결부되어 있다. 많고 미묘하나 육체-생산하고 소비하는 육체-가 주요한 것인 중계물들을 통해 경제에 연결된다.
자체의 기능상 유지해야 하는 사회체의 항상성[7](homeostasie)에 맞추어진다. 여기엣 법과 혼인 장치 사이의 특권적 관련성이 생기며, 또한 그것의 중요한 국면은 <재생산>이라는 사실이 유래한다.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늘어나고 점점 더 세밀하게 육체를 쇄신하고 병합하고 꾸며대고 통찰하며 점점 더 폭 넓게 주민을 통제하는 데 존재이유가 있다.

 

 

성적 욕망이 최근의 권력 장치에 연결되어 왔고, 17세기부터 점점 확산되었다. 그때부터 그것을 뒷받침해 온 제도가 생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성적 욕망의 장치는 혼인 장치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정립되었다. 고해, 양심의 검증, 영적 지도의 관행이 성적 욕망의 장치를 형성하는 핵이었다. 이 성적 욕망의 장치는 관계의 문제에서 <육욕>의 문제로 초점이 바뀌었다.

 

가족은 그 역할상 성적 욕망을 뿌리내리게 하고 그것의 영속적인 받침돌을 구성하며, 그때까지 무시되어 온 새로운 권력의 책략 전체가 혼인 제도에 스며들 수 있게 하면서도, 혼인의 여러 가지 특권과는 성질이 다른 성적 욕망의 산출을 확고하게 한다. 가족은 성적 욕망과 혼인의 입체교차로이다. 다시 말해서 법적인 것의 차원과 규범을 성적 욕망의 장치 안으로 나르고, 쾌락의 경제체계와 강도 높은 감각들을 혼인의 체제 속으로 운반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적 욕망은 <근친상간적인 것>으로 생겨난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가정이 성적 욕망의 가장 활기 있는 처소이고 틀림없이 성적 욕망에 관련된 요청이 가족의 존재를 유지하고 연장시킬 사회에서(서구사회) 근친상간이 가정의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근친상간에 대한 서구사회의 금지와 관심은 근친상간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적욕망의 장치의 확산에 기인한다.

 

여기서부터 정신분석학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은 신경학적 모형으로 성적 욕망을 뒤덮어 버리지 않고 그 성적 욕망 자체를 백일하에 드러냈으며, 심지어는 가족 관계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그것까지 문제 삼았다. 성적 욕망의 밑바닥에서 부모-자녀 관계가 재발견될 것이 라는 보증은 혼인 제도와 성적 욕망의 장치 사이의 중첩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과거에는 혼인장치에 성적 욕망이 의존했지만 현재는 그 반대가 된다. 정신분석학 탓으로 다름아닌 성적욕망의 혼인의 규칙들을 욕망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그것들에 육체와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4. 시대 구분

 

억압의 기제를 중심으로 성적 욕망의 역사를 쓰려고 한다면 두 가지 단절이 있다. 하나는 17세기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이다. 혹독한 성적 금기에서 혼전이나 혼외 관계에 대한 상대적 관용으로 초점이 바뀌었을 것이다. <도착자들>의 자격박탈이 완화되어 그들에 대한 규범의 비난이 부분적으로 사라졌을 것이고 어린이의 성적 욕망을 짓누르던 금기들이 대부분 폐지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말에 새로운 등장한 성의 기술체계는 대부분 의학적 제도와 정상성의 요구에 따라, 그리고 죽음과 영원한 징벌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삶과 질병의 문제에 관련하여 정립된다. <육욕>이 유기체의 위상으로 낮추어진다.

 

급격한 변화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의 전환기에 일어나는데 성의 의학을 인체에 관한 일반 의학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이다. <성도착>이라는 거창한 의학적-심리적 영역의 개척이 시작된 것이다. 인류라는 종()에 대해 <생물학적 책임>이 주어졌다. 다시 말해서 성은 자체의 고유한 질병에 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통제되지 않으면 질병을 옮기거나 미래의 세대를 괴롭힐 다른 질병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은 종에 관련된 모든 병리학적 자산의 근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결혼,출산,생존에 대한 국가적 관리를 조직하려는 의학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기획이 유래했다. 성의 기술체계에서 성도착의 의학과 우생학의 계획은 19세 후반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이었다.

 

억압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의 역사를 쓴다면 억압의 노동력의 활용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 한다. 성에 대한 통제는 가난한 계층에 가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더 심하고 더 면밀했다는 것을 분명히 전제해야 하며, 그것이 가장 강력한 지배와 가장 체계적인 착취의 노선을 따랐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는 사정이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 반대로 가장 엄밀한 기술들이 형성되었으며, 특히 그것들은 우선 경제적으로 특권이 있고 정치적으로는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계층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적용되었다. 어린이나 청춘기 남녀의 성적 욕망이 문제로 제기된 것은 바로 <부르주아> 또는 <귀족>의 가족에서이다. 여성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

 

그것에 반하여 서민층은 오랫동안 <성적욕망>의 장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혼인>의 장치, 결혼과 다산성에 대한 가치부여, 동족혼의 규정 등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육욕에 관한 기독교의 기술체계가 그들에게 대단한 중요성을 띠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성에 관한 제한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회의 모든 위상과 모든 계층에 동질의 과정이 적용되었다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한다. 성적 욕망의 장치가 전통적으로 <지도층>이라고 불리워 온 것에 의해 정립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쾌락에 대한 제한의 원리로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도층 사람들을 우선 자기 자신들을 대상으로 그 장치를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수명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이 중요하다. 착취당하는 계층의 성에 대한 억압보다는 오히려 맨먼저 지배하는 계층의 육체, 원기, 장수,자녀,가계가 문제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적 욕망의 장치가 일심에서 쾌락,담론,진실,권력의 새로운 유통기구로서 확립되었던 것이다. 스스로 창안한 권력과 앎의 기술체계로 그렇게 자체의 성을 둘러쌈으로써, 부르주아 계층은 그들 자신의 육체,감가,쾌락,건강,남은 삶의 높은 정치적 가치를 돋보이게 했다. 무한한 부르주아지의 경우 <혈통>은 성이었다. 부르주아지의 육체적 특수성을 유지한 방법은 혈통과 유전이다. 그리고 체력,원기,건강,삶의 무한한 확장의 계획 또한 문제되었다. 다시 말해서 성적 욕망의 장치를 조직함으로써 그러한 육체의 힘과 영속성과 여러 세기에 걸친 증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19세기에 프롤레타리아가 육체와 성적 욕망을 갖추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부르주아지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도시 공간과 관련한 공동 생활의 증가로 전염병(성병)의 위험이 높아갔기 때문이고, 또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유능한 노동력의 필요와 인구 통제의 필요에 의해서 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와 병원 등과 같이 육체와 성적 욕망을 통제할 기술 체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부르주아지는 다른 계급들의 성적 욕망에 맞서 그들 자신의 성적 욕망의 특수성을 재규정하고 그들 자신의 육체를 유별난 것으로 만들어 보호하는 분할선을 그으려고 한다. 이 분할선은 성적 욕망을 성립시키는 선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가로막는 선일 것이며, 차이를 만들 금기나 금기가 강요되는 엄격함이다. 점차로 모든 성적 욕망의 장치를 포괄하고 그것에 일반화된 금기의 의미를 부여해나갈 억압의 이론은 바로 거기에 기원이 있다.

 

그러나 법과 욕망의 본질적 귀속관계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 또 금기의 엄격함이 금기 자체를 병의 원인으로 만드는 바로 거기에서 금기의 효력을 없애기 위한 기술로서의 정신분석학이 끼어든다. 이 정신분석학의 임무는 정신분석학에 도움을 청하는 입장에 처한 이들을 위해 근친상간의 금지가 유발시킬 수 있는 억압적 결과를 없애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반화된 성적 욕망의 장치 안에서, 정신분석학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치료술로서 다른 절차들에 대해 차별화 역할을 수행했다.

 

고전주의 시대부터 전개되어 온 그러한 성적 욕망의 장치에 관련된 역사는 정신분석의 고고학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성적 욕망을 혼인 제도에 고정시키는 기제이고, 병적 변질의 이론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며, 성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체계에서는 차별화의 요소로 기능한다. 모든 성적 욕망의 장치를 일반화된 억압과 관련 지어 재해석하고 그러한 억압을 전반적인 지배와 착취의 기제들에 결부시키고, 억압과 지배 및 착취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들을 서로 연결시킬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하여 라이히를 중심으로 성적 억압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비판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비판의 성공 가능성 자체는 언제나 성적 욕망의 장치 안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에 연결되어 있었다. 성에 대한 그 모든 <혁명>, 억압에 대항하는 그 모든 투쟁이 구현하는 것은 거대한 성적 욕망의 장치 안에서의 전술적 자리 옮김과 반전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5장 죽음에 대한 권리와 삶에 대한 권력

 

군주의 권력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군주는 군주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 이 권력을 사용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는 징벌이란 방법으로도 나타났다. 삶과 죽음에 대한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권리는 사실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둘> 권리이다. 그것은 로 상징되었다.

 

이러한 권력은 <징수>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권리의 권력은 삶에 대한 권력으로 이동한다. 전쟁은 더 이상 수호되어야 할 군주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공익의 명목으로 전쟁이 행해지며, 주민들 전체가 생존의 필요라는 명목 아래 서로를 죽이도록 훈련 받는다. 따라서 권력은 한편에서는 주민전체를 죽음에 직면케 하면서 또 다른 주민에게는 생존의 유지를 보증하는 이중적 권력이다. 죽게 <하든가> 살게 <내버려둔다>는 낡은 권리 대신에 살게 <하든가> 죽음 속으로 <내쫓는> 권력이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1] 전횡專橫: 권세를 오로지하여 제 마음대로 휘두름.

[2] 일련의 목표와 목적 없이 행사되는 권력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이 개별적인 주체의 선택 또는 결정에서 유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의 고안자 또는 책임자가 흔히 위선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게 끔 떠들썩한 책략들을 조정하는 익명의 그리고 거의 무언의 대단한 전략이 갖는 암묵적인 성격을 가진다.

[3] 권력 관계는 다양한 저항점들과의 관련 아래서만 존재한다. 그것들은 권력 관계에서 반대자, 표적,버팀목, 공략해야 할 모난 부분의 역할을 수행한다.

[4] 의사와 부모 사이에서 확립된 어린이의 성적 욕망의 문제가 정신병 의사와 어린이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인 자신의 성적 욕망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5] 따라서 가정에서의 아버지가 군주 또는 국가의 <표본>인 것도 아니며 군주나 국가도 아버지가 다른 차원에 투사된 것이 아니다. 가족이 사회를 재현하는 것도 아니며, 거꾸로 사회가 가족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

[6] 이 교육화는 서양에서 거의 두 세기 동안 지속된 자위에 대한 싸움으로 나타난다.

[7] 생리학적 용어, 여기서는 사회를 하나의 육체 내지는 생태계로 보고 이 말을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