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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마음”_2025.8.24. 다해_연중21주일

James Chae 2025. 8. 24. 07:31

 

2025.8.24. 다해_연중21주일

예레 1:4-10 / 시편 71:1-6 / 히브 12:18-29 / 루가 13:10-17

 

 

흔들리지 않는 마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저는 아침기도를 드리고 나면 그날 하루가 미리 준비된 듯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떠한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평정심을 아침에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그러한 기분이 하루 종일 유지되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에, 내리쬐는 햇볕의 뜨거움과 쥐어짜는 듯한 습도의 갑갑함에, 그리고 갑자기 닥친 이런저런 요구들과 일들로 쉽게 평정심을 잃습니다. 그러면 아침에 느꼈던 충만함은 삽시간에 없었던 일이 되곤 합니다. 모두 외부적 자극에 마음이 흔들린 결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외부적 자극이나, 머리를 스치는 자기 생각이나, 감정과 느낌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리고 흔들린 마음은 관성의 법칙 때문인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흔들림은 운동에너지가 되어 마음과 생각과 영혼까지도 단계적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지낸 날은 몸과 마음이 피곤으로 녹초가 되곤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개인적인 일상도 크고 작은 자극으로 여러 다방면에서 영향을 받는데, 최근 수년 간의 대한민국의 사회적 현상은 상상도 없는 방향으로 우리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21세기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너무나 사회적 사건들이 없이 많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2008)”, “용산 참사(2009)”, “쌍용자동차 파업 폭력 진압 사건(2009)”, “연평도 포격 사건2010)”, “세월호 참사(2014)”,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2016)”, “이태원 참사(2022)”,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2023)”, “12.3 계엄 내란(2024)”,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2024)”, “서울서부지법 점거 폭동(2025)” .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대한민국을 격변으로 몰아넣는 사건들이 연달아 생긴 것도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매우 집단적 감정에 영향을 끼쳐 우리 사회를사회적 우울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예전에는 무시하고 넘어갔던 사회적 현상이 이제 개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결과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현상 속에서 세상이 긍정적으로 자정능력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가 퇴보되는 같은 착시현상에 빠집니다. 진실과 정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향하는 가치들이 이상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 힘을 잃었습니다. 사회시스템의 개혁과 제도의 개선으로 나은 내일을 약속했던 진보의 희망도 희미해졌습니다. 크고 자극적인 충격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이미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요즘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마음의 정치학이란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격변 속에 우리 사회는 더욱 ·우측으로 극명하게 갈려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진보가 지탱하던 진영은 흔적을 감추고, 자리를 보수가 차지했고, 보수가 자리하던 영역을 이제 수구와 사이비 집단 세력들이 차지하게 됐습니다. 공동체성은 점점 흐려지고, 사이버 공간으로 숨은 소심하고 무심한 시민들과 길거리에서 자기의 주장을 외치는 맹신적인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아직도 정의와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며 화합과 공생을 외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탱하는 힘이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푸는 열쇠로정동’(定洞, Affect)”이란 말에 집중합니다. “정동이란 말은 우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 있는 지명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간이 느끼는감정, 정서, 기분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경험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입니다.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과 동물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외부의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정동은 인간의 목소리, 표정, 몸짓 등을 통해 외부로 발현됩니다. 이런 반응에서 행동과 인간 인지능력과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반응의 문제점들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대해서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학자들의 연구가 한참 진행 중입니다. 앞에 제가 나열했던 21세기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다양한 정동들을 생산했습니다. 격렬하게 반응하는 대중과 그것에 무관심한 대중. 이러한 현상들 속에 사회공동체 안에 개인들은 나름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됐습니다. 인지부조화의 상태에 빠진 것이지요. 개인이 감당할 없는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의 정동은 회피, 무관심 또는 극렬한 지지 등으로 극단적인 감정으로 표출됐습니다. 그래서 말도 되는 주장들을 양극단에서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팩트보다 감정적 대립이 격화됩니다. 양극단끼리의 대화나 타협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 극한 대립의 연속입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극단 대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적 대치에서는 대화나 타협이 어렵습니다. 개인의 심리적 붕괴와 공동체의 심리적 붕괴가 함께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문제는 20세기 이데올로기 갈등 시대보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것입니다. 이제 개인의 심리적 평정심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시스템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리적 차원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것이 이제는 사회학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고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개인이 전체를, 전체가 개인에게 상호 영향을 주는 시대가 것이지요.

 

“나는 한번 더 내 음성으로 세상을 뒤흔들겠다. 이번에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뒤흔들겠다.” 히브 12:26

 

 

오늘 히브리서는 하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마지막 주님께서 세상을 요동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사용한흔들림 관련된 헬라어 동사살레우σαλεύω” 아래, 인간의 마음속, 하늘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움직임을 묘사합니다. 신약성서에서 15 사용된 단어는 문자적으로지진이란 뜻에서부터 영적인 동요에까지 두루 사용됩니다. 그리고 동요와 흔들림과 대비되는 의미로 하느님의 흔들리지 않는 왕국이 종말에 대우주적 격변 속에서 등장함을 뜻합니다. 모두 묵시 문학적 표현들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종말의 심판을 불로 묘사했지만, 히브리서는 이와 같이 흔들림, 요동, 동요로 묘사했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모두 유한한 것이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요동침 속에서도 요지부동한 것들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말에 세상을 흔드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때에는 땅과 하늘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요동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때에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진과 같은 요동침은 물리적인 현상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살레우라는 동사는 물리적인 흔들림의 현상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내면적인 흔들림에도 사용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 같다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만큼 요동치는 있을까 싶습니다. 외부적인 흔들림보다 우리 내적인 흔들림이 사실은 우리에게 치명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리적 흔들림은 우리를 육체적으로 해하지만, 내적인 흔들림은 우리의 생각과 영혼까지도 붕괴시킵니다. 그래서 맹자도부동심 대해서 말씀하신 같습니다. 

 

부동심(不動心)”, 흔들리지 않는 마음.

인간은 타고나면서 원래 가능태로써인의예지(仁義禮智)” 내면에 있다고 맹자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완전한 덕의 형태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를 맹자는단서(端緖)”라고 불렀습니다. “단서 우리말로 실마리라는 뜻이지요. 수사관들도 사건을 풀어가는 단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인간 내면의 선한 가능성으로서착하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운본성을 따라가다 보면 완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단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다양한 외부적 자극과 충동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있고, 심하게 왜곡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러한 선한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흔들리지 않는 마음 필요합니다. 이러한 부동심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극과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을용기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용기를 키우는 것이 부동심을 기르는 수양의 과정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굳게 지킬 것을 붙들고 어떠한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 이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있는 도덕적 깨끗함에 바탕을 둡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시인의 몸부림은 바로 이러한 내면적 용기의 바탕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여줍니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있을 정도로 깨끗한 사람은 천만 대군 앞에서도 무서울 없습니다. 프란시스가 십자군 전쟁 무시무시한 이슬람 대군을 거느린 술탄과 홀로 만나 당당히 대화하며 복음을 전할 있었던 것도 그의 흠결 없는 깨끗함에서 나온 용기였습니다. 그의 말과 당당한 태도에술탄 -카림 수사에게 감명을 받아 극진한 대접과 함께 선물도 줘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서로 적군이었지만, 둘의 만남은 매우 품격 있는 덕을 지닌 사람들의 만남으로 기억됩니다. 아마도 술탄 앞에 섰던 프란시스는 이러한 부동심을 지녔을 겁니다. 그의 흔들림 없는 마음은 적도 감동하게 것입니다. 고수는 고수를 서로 알아본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잠언 4:23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흔들림 없이 한다는 뜻입니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아니라, 올곧고 흔들리지 않는 반듯한 마음. 부동심입니다. 성서는 이러한 부동심을 기르는 실제적인 방법을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 스승에게 이러한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맹자는 이러한 부동심을 수양하는 방법으로양기(養氣)”지언(知言)” 기르라고 조언합니다. “양기 감각적, 육체적 충동과 관련되며, 이러한 외적인 자극은 결국에는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러한 외적인 기는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기는 도덕적인 수양을 통해 길러집니다. 바른 행동과 바른 마음가짐이 좋은 기를 만들고, 선한 기운이 마음을 붙드는 용기가 됩니다. 

 

지언(知言)” 말씀 ”, , 말을 아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된 마음, 사상, 주장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지언 통해 자기 말을 지키고, 타자의 말을 이해하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말을 지킴으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할 있습니다. 그래서 몸가짐과 말씨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품격은 사람의 행동거지와 말투, 말의 수준에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말과 행동거지를 삼가면 우리의 마음도 평정심을 유지할 있습니다. 이것이 맹자의 수양 방법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수양을 인류의 스승들은 가르쳤습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3년에 걸쳐 함께 먹고 마시며 동행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행위, 말투, 습관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각인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와 동고동락하며 그분에게서 훈련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의 훈련의 결과들이 오늘날 우리 신약성서의 배경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에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으셨지만, 예수를 추종하던 자들의 행동과 행위 그리고 말로 우리에게 예수의 가르침이 전수됐습니다. 

 

18 동안 허리가 굽어 제대로 하늘을 없었던 여인의 삶은 이러한 부동심이나 평정심과는 거리가 있는 삶이었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고통을 보시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측은지심(惻隱之心)”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임에도 그녀를 고쳐주셨습니다. 함께 있던 회당장은 그런 예수를 보고 오늘 안식일은 되고 다른 날에 고칠 있다고 예수를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요동쳤지만, 회당장은 자기가 고수하는 원칙이 무너진 것에 분개하여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하나는 생명을, 다른 하나는 죽음을 지향했습니다. 

 

히브리서가 말한 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흔들 때는 모든 것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격변의 시대는 우리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일상, 우리의 관계성 등을 말입니다. 그러나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게마련이라고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믿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 이외에 어떤 것도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하느님을 향한경건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삶은 분명 여러 면에서 손해를 보게 마련이고, 우리 삶을 부담스럽게 만들 겁니다. 먼저 양보해야 하고, 먼저 참아야 하며,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에도 귀찮지만 먼저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에게는바보라는 수식어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결국은 영생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부동심은 이렇게 믿음을 통해 영원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부동심이 우리 마음 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1 (다해) 1

 

본기도

심판의 하느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나이다. 비오니, 교회가 주님을 더욱 경외하며,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1:4-10

4 내가 받은 야훼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5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     나는 너를 만방에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6 “!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7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8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     내가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9 그러시고 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10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성시_시편 71:1-6

1    주여, 당신께 피신합니다.

.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2    당신의 정의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주소서.

.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구해주소서.

3    의지할 바위 되시고 목숨 구원하는 성채 되소서.

.     나의 바위, 나의 성채는 당신이십니다.

4    나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주시고

.     흉악하고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하소서.

5    주여, 바라느니 당신뿐이요

.     어려서부터 믿느니, 주님 당신입니다.

6    모태에서부터 나는 당신께 의지하였고,

.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당신은 나의 힘이었으니

.     언제나 당신을 찬양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12:18-29

18 여러분이 있는 곳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갔던 시나이 산은 아닙니다. 산은 손으로 만져볼 있고 불이 타오르고 검은 구름과 암흑에 싸인 폭풍이 일고 19 나팔 소리가 울리고 굉장한 음성이 들려오는 산이었습니다.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이상 말씀하지 마시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20 “비록 짐승이라도 산에 닿기만 하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출애 19:12-13하신 하느님의 명령이 견딜 없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21 사실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까지도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떨린다. 신명 9:19하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25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이를 거역한 자들도 형벌을 면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분을 우리가 뿌리친다면 형벌을 어떻게 면할 있겠습니까? 26 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나는 한번 음성으로 세상을 뒤흔들겠다. 이번에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뒤흔들겠다. 하깨 2:6하고 다짐하셨습니다. 27 라는 말은 피조물들을 흔들어서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28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차지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그리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29 사실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신명 31:6).

 

 

 

복음서_루가 13:10-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11 마침 거기에 열여덟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12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여인아,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하시고 13 여자에게 손을 얹어주셨다. 그러자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모였던 사람들에게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됩니다.” 하고 말하였다. 15 주께서 말을 들으시고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16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다. 17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나 군중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