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서로 돕는 조력자”_2025.9.7. 다해_연중23주일_여성선교주일

James Chae 2025. 9. 7. 04:07

 

2025.9.7. 다해_연중23주일_여성선교주일

예레 18:1-11 / 시편 139:1-6, 12-18 / 필레 1:1-21 / 루가 14:25-33

 

 

서로 돕는 조력자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21세기 들어서며 우리의 고정 인식을 변화시킨 제일 사건은호주제 폐지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5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호주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남성 중심의 가계를 중시하던 유가적 전통은 무너지고 “1  1()” 원칙에 따라 개인의 가족관계가 등록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생활의 양성평등과 개인 존엄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충실한가족관계등록부호적 등록부 대체하게 됐습니다. 법이 획기적인 것은 이제 자녀들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도 되는 세상이 것입니다. 딸은 2003 생으로 출생 당시 저희 부부는 아무 생각 없이 관행대로 이름을 따라 성을 결정했습니다. 둘째를 낳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도 낳았다면성씨 결정하는 것에 매우 고민했을 같습니다. 과거에는 이혼할 경우 자녀들이 전남편의 성씨를 따라야 했지만, 이제 엄마의 성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정한 절차를 밟으면 아빠와 엄마의 성씨를 동시에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법을 바꾼 것뿐인데 사실 가족에 대한 근본개념 조차 바뀌게 됐습니다. 부계 혈통을 강조하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이제 대한민국이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법이 바뀌었다고 양성평등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여성들이 사회 참여를 하는데유리천장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이제 시작됐습니다. 아마도 우리 다음 세대들은 많은 변화를 겪게 것입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작은 변화가 결국 대변환을 이끌어올 것입니다.

 

오늘은 [여성선교주일]이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잠시 묵상하길 원합니다. 특별히 창세기의 말씀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창세기에는 인간 공동체 관계성의 근본이 되는 요소들을 자세히 탐구할 있는 좋은 자료들로 넘쳐납니다. 남자와 여자의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최초의 시스템입니다. 이를 사람들은가정 또는 가족이라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드신 것이 인간 공동체의 최초의 모습입니다. 처음에 아담에게 다양한 동물들을 데려다주셨고, 아담은 그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는 아담이과학적인 활동 했다는 뜻입니다. 자연과 생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종을 구분하고 세세한 차이들을 연구했던 거지요. 그러나 그것들과는 상호 관계성을 만들기 어려웠던 같습니다. 창세기 3 20절은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거들 존재와 존재 간에 상호 협력적인 도움의 관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가장적합한 조력자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름이 바로 하와입니다. 이제 아담은 남자란 뜻의이쉬(אישׁ)’ 되고, 하와는 여자라는 뜻의이샤(אִשָּׁה)’ 됩니다. 그래서 사람 또는 남자란 뜻의아담낯과밤으로 시간이 구분된 것처럼 이제이쉬(אישׁ)”이샤(אִשָּׁה)” 구분됐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창세기 2장에 시로 표현되었습니다. 독일의 구약학자클라우스 베스터만 아담의 외침을시적 외침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강한 끌림이 결국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부모를 떠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기존의 공동체에서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지요. 이로써 서로 돕는 조력자들이 함께 생존하고 생명을 보존해 가는가족 공동체”, “생명 공동체 만들어졌습니다. 성서에는 아담의 끌림에 대한 표현만 기록됐지만, 감탄에는 하와의 끌림 또한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서로 돕는 공동체는 이렇게 상호 간의 사랑과 끌림을 바탕으로생활 공동체 형성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기초입니다. 이로써 창세기 2장을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의 가장 근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문명이상호 조력하는 공동체 관계위에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인류는 창세기에 기록한 대로생육하고 번성하는축복을 이어갈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성이 확장되면서 씨족이 생기고 부족과 국가로 점점 확대되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부터 모든 인간 관계성의 기초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 서로 돕는 사랑을 기초로 하여 인간의생활 공동체 확장되어 갑니다. 이러한 사랑은 한쪽으로 쏠려서 균형을 잃으면 관계성이 깨지게 됩니다. 갑과 을의 관계는 더욱 아닙니다. 닭과 달걀이 우선순위를 따질 없듯이, 남녀의 관계나 모든 인간의 관계도 상호 우위를 따질 없습니다. 상호 관계성은 평등한 사랑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래야서로 돕는 조력자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공동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상호 도움을 베풀면서 함께 어울리고, 함께 답을 찾고, 함께 응답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생활 공동체로 나갑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원래의 뜻에 부합한 관계성에 입각한사랑의 본질입니다. 교부들이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삼위일체를 고집한 것도 삼위일체 교리가 가지는 상호 관계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본질은 하나이지만, 상호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각각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며 위격을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상호 어울림과 상호 도움의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 읽은 예레미야서 말씀은흙으로 빚어 사람을 만드셨다.”라는 창세기 2장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옹기장이의 전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옹기그릇이 옹기장이에게 불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주권도 있으시고, 없애버릴 주권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전권을 예레미야가 강조한 이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책망이 극에 달했음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느님은 노아의 홍수처럼 세상을 멸할 전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라고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그분은 공정하시다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관계성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세웠다가도 헐 수 있고 심었다가도 뽑을 수 있다.” 예레 45:4

 

 

이러한 창조 신학에 근거한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냐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지금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인간 공동체의 시작이 우리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일까요? 명절에 가족들이 부모를 중심으로 모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치적 색깔이 달라 서로 다투고, 형제간에 각각 형편의 차이와 성격의 차이로 인해 불편함이 있어도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아닐까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부모님이 우리 가족의 중심이란 뜻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형제자매들을 끈끈하게 묶어 결속시킬 구심점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처럼 교회공동체는, 부모님을 가정 공동체의 중심에 두듯이, 하느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두는 관계성의 결정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인다는 것은 단순한 취미나 취향 때문이 아닙니다. , 자신의 관심이나 사교적인 목적 때문에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과 물질적 축복, 마음과 정신의 안정을 얻기 위해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창세기가 세상의 시작을 기록한 이유는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것처럼 우리가 섬기는 분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축복이 무엇이고, 우리를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기하라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인간 관계성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생각하여 하느님 중심으로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중심에 없으면 우리의 모든 관계성이 무너지고 흩어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가인이 들로 내몰린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에 없는 교회공동체는 서로를 결속시킬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사교 클럽 됩니다.

 

주님께서도 오늘 다음과 같이 관계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 14:26

 

 

말씀은 그동안 제자들이 살아왔던 모든 관계성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자신이 속했던 모든 생활공동체 안에 이제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라는 뜻입니다. 너와 사이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만 계신 것이지요. 그래야만 주님의 제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쌓았던 모든 관계성들의 목적과 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재고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남과 관계의 중심이 하느님이었듯이, 이제 모든 가정과 친족의 중심도, 모든 우정의 중심도, 모든 사회 관계성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심점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제간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 눈치를 봐서라도 참을 때가 있듯이, 교회에서도 서로 간에 문제가 생기면 하느님을 생각해서 참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를 통해 때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호 간에 불만과 불편한 감정이 옅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 고리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관계성은 분명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상호 조력의 관계성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와 나의 관계가 한편으로 쏠리고 균형을 잃게 되는 순간 창세기가 말하는 상호 관계성이 모두 허물어집니다. 

 

대한성공회는서로 돕는 조력자 여성들로부터 많은 빚을 교단입니다. 아마도 우리 대한민국 대부분의 교회가 그럴 것입니다. 20세기에 교회성장의 주역은 단연 여성들이었습니다. 심방을 하면 대부분 여성 신자가 중심이 됩니다. 교회 집회나 예배에서도 여성의 수가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마도 아직도 이런 성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같습니다. 신앙이 모계 혈통을 통해 전수된다는 생각을 유대인들은 일찍이 것인지,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유대인일 때만 자녀에게 유대인 신분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물론 현대에는 조금 변화되어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의 경험에도 아버지의 신앙보다 대체로 어머니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같습니다. 물론 자녀 양육을 어머니들이 도맡아 것도 이유입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아이에게 영향을 그만큼 끼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신앙에 있어서는 남성과는 다른 감수성이 분명 있는 같다는 생각을 지을 없습니다. 아마도 신심의 차이 때문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아무튼 대한성공회는전도부인부터어머니 연합회”, “GFS” 성공회 역사에서 여성 활동의 도도한 흐름이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는어머니 연합회 설립 10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번 9 20일에 서울대성당에서 기념감사성찬례도 있을 예정입니다. 6.25 이후 무너진 교회와 가정, 지역 사회를 세우는 어머니 연합회의 활동은 매우 지대했습니다. 구호와 구제, 주일학교와 자녀 교육까지그리고전도부인들은 성직자가 부족한 교회에서 사제들보다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공회가 전도부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지 못하고 그들의 활동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의 숨은 노력을 기억하실 겁니다.

 

21세기는 벽두부터 호주제의 폐지를 시작으로 다변화의 시대는 이미 예고됐습니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요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저는 이런저런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요즘 뉴스를 접합니다. 과거에는 부끄러워서 없었던 주장들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성공회는 남녀평등의 문제만은 차원 진일보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서로 돕는 조력자이지 절대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억누르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목적에 반하는 일입니다. 모든 교회가 부르짖는 [창조 질서 회복] 비전은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전반에 하느님의 선한 뜻이 회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서로 돕는 조력자 구성된생활 공동체 만드는 것입니다. 상호 신뢰, 상호 섬김, 상호 협력, 상호 사랑이 없으면 관계에서 누구는 반드시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등한 상호 관계성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상사와 부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서로 돕는 조력자 관계성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창조의 선한 목적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황금률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오늘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마태오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 기록한 것은 바로 창세기 기본 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보고 감탄했던 시적 정서가 우리 가운데,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넘쳐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서로 돕는 조력자로 만들어주신 선한 뜻에 따라 우리의 생활공동체를 제대로 세워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를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3 (다해) 1

 

본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어 세상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지혜를 주시어 우리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예언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여 주어진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18:1-11

1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2 너는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줄 말이 있다.” 3 말씀대로 옹기장이 집에 내려가 보았더니, 옹기장이는 마침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그런데 옹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다가 제대로 되면 흙으로 다른 그릇을 다시 빚는 것이었다. 5 마침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왔다. 6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 달렸듯이 너희 이스라엘 가문이 손에 달린 모르느냐?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옹기장이만큼 너희를 주무르지 못할 같으냐? 야훼가 하는 말이다. 7 나는 민족 나라를 뽑아 뒤엎어 없애버리기로 결심하였다가도 8 벌하려던 민족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내리려던 재앙을 거둔다. 9 그렇지만 민족 나라를 심고 세우기로 결심했다가도, 10 민족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나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기만 하면, 약속한 복을 집어 치운다. 11 그러니 너는 이제 야훼의 말이라 하고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내릴 재앙을 옹기장이처럼 마련하여 두었다. 너희를 벌할 계획을 이미 꾸며놓았다. 그러니 모두들 악한 길을 버리고 돌아오너라. 너희 행실과 소행을 뜯어고쳐라.’

 

 

 

성시_시편 139:1-6, 12-18

1,2 주여,
.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시니
.     내가 앉아도 아시고,
.     있어도 아십니다
.     멀리 있어도,
.     당신은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3    걸어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4    내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     무슨 소리 할지, 주께서는 아십니다.
5    앞뒤를 막으시고 
.     당신의 위에 있습니다.
6     지식은 놀라워 미치지 않고 
.      높으심 아득하여 엄두도 아니 납니다.
12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13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주시고  
.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주셨으니
14  내가 있다는 놀라움,
.     하신 일의 놀라움, 모든 신비들,
.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     당신은 몸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
.     깊은 땅속에서 내가 꾸며질  
.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하나도 없었습니다.
16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필레 1:1-21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갇혀 있는 바울로와 교우 디모테오가 친애하는 우리 동료 필레몬과 2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 여러분과 우리 자매 압피아와 우리 전우 아르킵보에게 편지를 씁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4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생각하면서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5 그대가 예수를 굳건히 믿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6 믿음을 통한 우리의 교제가 힘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우리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기를 나는 빕니다. 7 나는 친애하는 그대가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위안을 받았습니다.

8 바울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신이며 그분을 위해서 일하다가 지금 갇혀 있는 몸으로서 그대가 마땅히 해야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9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대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와 나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13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갇혀 있는 터이니 그를 내곁에 두어 그대를 대신해서 시중을 들게 하려고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14 그러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가 선을 행하는 것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15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16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으로 사랑하는 교우로서 그대와 같이 있게 것입니다. 그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교우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보든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견지에서 보든지 그대에게야 그가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되겠습니까?

17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주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책임을 나에게 지우시오. 19 바울로가 그것을 갚겠다.” 이렇게 친필로 보증하는 바입니다. 그대가 지금만큼 것도 나의 덕인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그대에게서 값을 요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20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형제인 그대에게 신세를 지려고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믿는 교우로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오.

21 나는 그대가 나에게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글을 씁니다. 내가 말하는 이상의 일까지도 그대는 해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복음서_루가 14:25-33

25 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없다. 27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제자가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29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30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명으로 당해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 33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