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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물 속으로” _2026.3.8. 가해_사순3주일_강론

James Chae 2026. 3. 8. 07:07

 

2026.3.8. 가해_사순3주일

출애 17:1-7 / 시편 95 / 로마 5:1-11 / 요한 4:5-42

 

 

마르지 않는 샘물 속으로 

-영적인 아사(餓死)상태에서 벗어나기-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신앙과 아사(餓死) 현상은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서, 예수의 하느님께서는 생명, 모든 생명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스따보 구띠에레스 <생명이신 하느님> 중에서

 

남미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띠에레스는 하느님께서 생명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아사(餓死) 현상 신앙은 양립할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사 현상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현상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결핍은 생명의 근원과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이러한아사 상태 빠졌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적인 갈증과 아사 상태만 생각했지, 자신들이 영적인 아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한낮 가장 뜨거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여인도 갈증에 지친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인이 남의 눈을 피해서 물을 길으러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인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심한 영적인 아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께서 영원히샘솟는 샘물 관해 말씀하시니 귀가 쫑긋해져 어서 물을 달라고 예수께 졸랐습니다. 중동 지역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해 사람은 아실 겁니다. 그곳은 물이 없이는 하루도 생활하기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그러니 이사악의 업적도 일생 우물 이야기만 기록됐을 정도로 물은 그들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해갈은 일시적일 , 사람은 계속해서 해갈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샘솟는 샘물 관해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우리나 요한복음을 들었던 초대 교회 교인들이나 샘솟는 샘물 일반적인 물과는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육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물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것이 하느님의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나, 현대 과학자들이나, 모두가 생명의 근원을 물에 두고 있습니다. 존재의 가장 핵심인아르케(ἀρχή)” 물이란 것이지요. 아르케는시원, 시초 뜻하는 헬라어인데, 이는 세상의 본질적인 원리나 원인을 설명할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의 주장처럼, 요한복음도 이러한아르케 대한 정의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요한 1:1

 

요한복음은 세상의 시작이고, 본질인 아르케 로고스라고 선포했습니다.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안한 아르케입니다. 그리고 아르케인 로고스가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요한복음은 선포합니다. 이로써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의에 마침표가 찍힙니다. 유한한 인간을 세상의 중심, 세상의 근원에 놓은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서는 결코 상상도 없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중의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이 거짓말을 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참이든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지난주에 우리가 봤던 니고데모처럼, 아직도샘솟는 샘물 육신의 생존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영원히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그녀의 말이나, “어미의 태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은 같은 결을 가집니다. 모두가 생명을 단순히 쉬고 활동하고 생존하는 것과 연관시켰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생명이 존재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관계성과 관련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나무의 뿌리가 물과 습기에 맞닿아 있듯이 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마치 시편 1편 말하듯이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죽음의 가뭄에도 결코 생명력이 결핍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육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 모든 관계성과 관련된 총체적인 것임을 있습니다. 생명을 뜻하는 헬라어조에(ζωή)” 생물학적 삶을 넘어 하느님께 맞닿은 생명을 뜻합니다. 그것은(프쉬케,ψυχή)”이나 외형적 삶을 뜻하는비오스(βίος)” 다른 독특한 의미로 요한복음은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대로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생명을 뜻합니다.

 

이러한 풍성한 생명이 오늘 예수님 말씀에서 예배와 연결이 됩니다. 물론 오늘 시편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명이 예배와 관련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요한 4:24

 

“어서 와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무릎을 꿇자.” 시편 95:6

 

 

시편이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모두 하느님께 예배하는 이미지를 생명과 관련지어 제시합니다. 결국은 예배가 영원한 생명이 흘러나오는 솟는 샘물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영적으로 참되게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영적으로 참되게라는 말을허리 굽혀”, “무릎을 꿇어라는 구체적 행위와 연결해 표현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바로 예배이고, 동시에 예배는 축복의 통로도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인간의 편에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예배에 하느님께서는축복하시는 하느님으로 풍성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풍성한 생명이 하느님의 성령이십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가 11:13

 

루가복음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참되게하느님께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 선물로 주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령님과 관련됨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극렬한 성령론자들 때문에 성령을 마치 에너지나 어떤 영적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충전하듯이 생명력이 약해지면 기도로 성령을 보충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무지는 육적인 아사 상태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마치 성령이 자신의 의지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착각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에너지나 힘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상호 관계성 속에서 하나의 신성을 공유하십니다. 그것은 상호 있음으로 인해 상호 관계성을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은 사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우리는 성령을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예배 가운데, 우리의 기도 가운데, 우리의 영성체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심의 증거는 우리 안에 넘쳐나는 생명력으로 있습니다. 마치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성령은 우리 안에 죄책감과 의기소침함과 자격지심과 모든 열등감을 몰아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생명력이 충만해지고, 생명력이 충만하면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의기양양(意氣揚揚)”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아사 상태 놓이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과 양립할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죽음과 생명이 결코 함께할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다양한 아사 상태에 놓이곤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분오열되는 이유는 바로 예배의 중심에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놓이기 때문입니다. 성사에 있어서인효성(人效性, ex opere operantis)”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인효성 성사의 효력이 집전자의 인격과 영적인 상태, 그리고 성사를 받는 사람의 믿음 상태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뜻입니다. 이와 달리사효성(事效性, ex opere operato)” 인간의 인격이나 행위, 영적인 상태와 관계없이 전적인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성사적 효력이 발생한다는 주장입니다. 종교 개혁 당시에 개신교 교회는 천주교 사제들을 비난하는 무기로 인효성 강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성사의 중요성보다 사람을 성사의 기준에 놓게 되었습니다. 사제와 신자의 인격, 됨됨이, 윤리적 행실 등을 하느님의 은총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이렇게 은총이나 하느님보다 사람이 먼저 중심에 놓이게 되면 교회는 영적인 아사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니 신자들은 누군가 마음에 들면 교회를 너무 쉽게 떠나게 됩니다. 전적인 하느님의 은총을 나의 기준으로 거부하게 것이지요. 성사는 성사 자체만으로 효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집전하는 사제의 인격이나 행업 또는 그것을 받는 신자의 믿음보다 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인간의 것으로 무효화시킬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에는 인간의 어떠한 것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인효성은 사효성 다음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사효성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효성으로 성장해 가게 마련입니다. 은총으로 생명을 받았으니, 그것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서 결국에는 인격이 자연스럽게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예배를 통해 흘러 들어옵니다. 설교는 성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설교를 들으면 은혜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지적인 깨달음과 동의이지 성사적 은총과는 구별됩니다. 성사적 은총은 깊은 물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은총의 샘에서 생명을 끌어 올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성사를 통해, 예배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러한 것입니다. 그냥 의무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찬양하고 설교를 듣고 영성체를 하는 종교적 행위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성사적 뿌리가 예배의 가장 중요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아닌지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시편에서 표현된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는행위를 통해 표상화된영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는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이 행위로 표출된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다하면 행동과 자세와 말투가 바뀌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사람 앞에 서면 모든 사람이 예의를 다하듯이 우리의 마음 가짐도 예배에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예배드려도 성사적 은총을 흡수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은총의 샘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은 예배를 통해 생명을 길어 올립니다. 그래서 예배는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마음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편에서 하느님께 우리가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성사적 은총은 이렇게 예배와 성사를 통해 우리 서로를 하나로 연결하고 연결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함께 나아갑니다. 이러한 은총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은총을 갈망하게 되고 예배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가 바로 오늘 말씀에서 나온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교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사람 사람이 이러한 은총을 받으면 우리의 예배가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넘쳐나게 것은 당연합니다. 이번 사순절이 그러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영적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로 우리가 성장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사순3 (가해)

 

본기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목마른 이들에게 영원한 생수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이제 헛된 갈망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출애 17:1-7

1 이스라엘 백성 회중은 광야를 떠나 야훼의 지시대로 진지를 옮겨 가면서 전진하였다. 르비딤에 이르러 먹을 물이 없는 것을 보고, 2 백성들은 모세에게 먹을 물을 내라고 들이대었다. 모세가어찌하여 나에게 대드느냐? 어찌하여 야훼를 시험하느냐?” 하고 말했지만, 3 백성들은 당장 목이 말라 견딜 없었으므로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작정이냐?4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다. “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장 저를 돌로 쳐죽일 것만 같습니다.” 5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 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6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들었다고 해서 고장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했다고 해서 마싸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성시_시편 95

1    어서 주님께
.     기쁜 노래 부르자
.     우리 구원의 바위 앞에서
.     환성을 올리자.
2    감사노래 부르며 앞에 나아가자
.     노랫가락에 맞추어 환성을 올리자.
3    주님은 높으신 하느님 
.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높으신 임금님,
4    깊고 깊은 속도 그분 수중에 
.     높고 높은 산들도 그분의 ,
5    바다도 그의 , 그분이 만드신  
.     굳은 땅도 그분 손이 빚어내신 ,
6    어서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느님,
.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     이끄시는 양떼,
.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라.
8    그때에 너희는 므리바에서,
.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마라.
9    그들은 거기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     나의 속을 떠보고 나를 시험하였다.
10  사십 동안 나는 세대에 싫증이나
.     마침내 말하였다.
.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구나.
.     나의 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구나.”
11  나는 울화가 터져 맹세까지 하였다.
.   “이들은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5:1-11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서_요한 4:5-42

5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동네는 옛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7 마침 때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달라고 청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10 예수께서는 여자에게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 무엇인지,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11 여자는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12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것이다.” 하셨다. 15 말씀을 듣고 여자는선생님,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16 예수께서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17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19 그랬더니 여자는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그런데 우리 조상은 산에서 하느님께 예배 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산이다.’ 또는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때가 것이다. 22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분을 알고 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터인데 바로 지금이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25 여자가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26 예수께서는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때에 예수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여자에게 무엇을 청하셨는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28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29나의 지난 일을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렸다. 30 말을 듣고 그들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모여들었다.

31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선생님, 무엇을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예수께서는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누가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34 그러자 예수께서는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양식이다. 35 너희는아직도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 하지 않느냐? 그러나 말을 들어라.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36 거두는 사람은 이미 삯을 받고 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알곡을 모아들인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게 것이다. 37 과연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속담이 맞다. 38 남들이 수고하여 지은 곡식을 거두라고 나는 너희를 보냈다. 수고는 다른 사람들이 하였지만 수고의 열매는 너희가 거두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9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알아맞히셨다고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40 예수께서는 그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므로 거기에서 이틀 동안 묵으셨는데 41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리고 여자에게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

20: ‘그리짐 의미한다. 하느님은그리짐 에서 축복을, ‘에발 에서 저주를 선포하게 하셨다 (신명 11:29, 신명 27:12-13, 여호 8:33). 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그리짐 산에 자기 들만의 성전을 세웠는데, 안티오쿠스 왕은 성전을 제우스를 위한 성전으로 오염시켰다(2마카 6:2). 성전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사마리아인들은 계속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