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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生氣)와 생명력”: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역동성_2026.3.1. 가해_사순2주일_강론

James Chae 2026. 3. 1. 07:34

 

2026.3.1. 가해_사순2주일

창세 12:1-4 / 시편 121 / 로마 4:1-5, 13-17 / 요한 3:1-17

 

 

생기(生氣) 생명력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역동성-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한은 새로운 생명을새로 태어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니고데모가 이해를 것처럼 생명은 유기물이 단순히 쉬고 활동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생명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전유물로 성서는 말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사도행전 17 25절에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을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함을 창세기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신앙이 탁월한 것은 생명의 근원을 물질과 동일시해서 모든 것이 신이 있는 만물 숭배의 위험을 제거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에게는 과히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신이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이 신이 아니라는 방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중요하면 결국 모든 것이 평범해지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특징은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생명이 예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Ἐγώ εἰμι ἡ ζωή· 에고 에이미 조에”. 헬라어조에(ζωή)” 생명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생물이 활력이 있고, 살아 있는 상태를 지칭할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조에 하느님께 속한 본질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절대적인 충만함 또는 하느님께 속한 존재의 충만함과 관련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죽음과 대조해서 말하곤 합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축복과 저주 대비하여 우리의 선택을 촉구합니다. 심지어 요한복음 3 36절은 이를 극단적으로 설명합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영원한 생명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생명은커녕, 오히려영원한 분노 사게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경고처럼 들리지만, 경고보다는 우리의 선택에 방점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영원한 분노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명히영원한 생명 선택하겠지요. 누가 저주나 분노를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영원한 생명 좋아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은 싫어합니다. 예수님과 영원한 생명 간에 어떠한 연관성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지요. 그래서 니고데모는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 상상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알았지만, 생명이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가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생명과 예수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의 눈에는 한갓 예수는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하느님께서 자신을나는 나다.”라고 설명한 것과 대조해 보면, 유대인 관점에서 예수는 정말 신성모독자로 보였을 겁니다. “에고 에이미 구약의나는 ~이다라는 말에 대응하는 헬라어 구문입니다. 모세에게 자신을나는 나다라고 설명하셨던 구약의 하느님, 자신을 절대로 명사로 규정하시지 않으셨던 구약의 하느님께서 이제 신약의 시대에 와서는 예수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십니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하느님을 구약처럼 동사가 아니라 명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다.”

사실 존재를 명사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인간에게 관념화되고 이념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직 비유를 통해서만 자신의 신원을 정의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신원은 대부분 존재의 어떤 상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자로를 살리신 후에 하신 말씀이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였습니다. 이는 구약의 하느님처럼 예수님 또한 사건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오천 명의 사람을 먹이신 사건 후에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에 관한 사건 이후에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시면서 영적 어둠을 밝히시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드신 후에는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하나의 사건과 가르침 후에 자신을 정의하심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그분을 이해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에 비추어 자신을 정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원과 그분의 사건은 하나가 됩니다. 구약의 하느님이 동사로 사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던 것처럼 예수님도 사건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셨습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선언은 예수가 하느님과 하나이심을 말해줍니다. 

 

요한복음 5 26절은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과 예수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흘러나오고 그분의 말씀으로 유지됩니다(히브 1:3). 따라서 생명에 대한 결정적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한 1:4). 아들은 아버지의 신적 본질을 공유하기 때문에아버지께서 안에 생명을 가지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안에 생명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요한복음 5:26).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고 고백을 있었습니다(로마 14:8). 그는 자신이 생명으로 충만함을 알았고, 그것이 은총임을 누구보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삶과 죽음은 이상 실존의 걸림돌이 아닙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건강을 염려해서 온갖 방법을 찾고 공을 들이지만, 생명의 근원인 예수님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심합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을 단순히 유전자의 생존 의지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생명이 수소 2개와 산소 1개의 원자 간의 수소결합을 통해 생명이 탄생했다고 믿습니다. 이는 그리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가 말했던 것처럼생명의 근원(Arché) 물이다라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는데 인류의 기아를 해결하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명의 시작, 수소와 산소 결합의 정전기적 인력의 작용은 밝혀냈지만, 그러한 현상을 발생하게 만드는궁극적 원인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과학자들의 물리적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성서는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담은 과학 서적은 아니지만, 그러한 모든 생명의 근원과 원인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기인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분은 세상이 있게 원인이십니다. 어쩌면 성서는 기본 개념을 제공하고 과학자들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진화하는지 물리적 현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우연히 발생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우주가 너무나 정교하게 혼돈과 질서 간에 적절한 균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과의 관계를 하느님에게서 찾습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 몸의 원자와 분자들도, 우주의 별과 행성들도 모두 중력과 인력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습니다. 운동이 멈추면 모든 것이 사멸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순간에도 안에 많은 분자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 우리를 살게 하는 . 그리고 우리의 살아 있는 상태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우리는 생명이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활기차고 밝은 사람을 보면 생기(生氣) 넘친다고 말합니다. 말은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로가 말한 말씀의 비밀을 깨닫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1데살 5:16~18

 

이것은 생명 충만함의 결과입니다. 그러한 생명력이 넘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기쁘니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핵심을 이룹니다. 찬양과 축복. 찬양은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축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이 절정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성찬례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생명과 축복의 향연이 아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우리가 예배라는 통로를 통해 생명으로 상호연결됐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이를 기억하라.”라는 말은 우리의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고 그것에 감사하며 생명으로 우리의 실존을 끝까지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의 대표적인 반응이의기소침입니다. 그것은 생명력이 위축되고 축소된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 인간은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합니다. 이발소나 미용실을 다녀오면 뭔지 모를 활기가 생겨납니다. 머리 스타일을 조금 바꾼 것뿐인데도 말입니다. 진심으로 갖고 싶었던 것을 얻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기쁨이 찾아옵니다. 원하던 것을 얻고, 바라던 것을 성취하면 기쁨이 배가 됩니다. 기쁨은 생명이 충만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생명력이 충만해지면 기쁨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표정 관리를 하라고 합니다. 너무 좋아하면 액운이나 질시를 받을 있으므로 어르신들은 겸손을 충고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형수술로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것도 자기 안에  의기소침해진 생명력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의 활기는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영원한 생명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하다는 것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생명력이 계속해서 넘쳐나고 지속됨을 뜻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영원히 살고, 죽지 않는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이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어떠한 좌절과 절망에도 우뚝 일어설  .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은총입니다. 그것은 결국 죽음조차도 생명을 위축시키거나 축소할 없음을 우리는 주님의 부활로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이 가진 힘이며 존재의 역동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 동의를 하고 심적인 위로를 받는 이상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으로 충만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1고린 15:54

 

사도 바울로의 담대한 선포는 오직 생명이 충만한 사람만이 있는 선언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우울, 우리의 의기소침함, 우리의 열등감, 우리의 불안, 우리의 아픔 우리를 어둠 속에 몰아넣는 모든 것들이 바로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에 회개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지만, 우리의 생명은 결코 위축될 없습니다. 우리는 감정이나 상황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충만한 생명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사순절이 우리 안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날같이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그러한 시간이 되길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사순2 (가해)

 

본기도

자애로우신 하느님, 지극한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하느님의 진실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12:1-4

1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것이다. 3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덕을 입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성시_시편 121

1     쳐다본다.
.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2    하늘과 땅을 만드신 ,
.     주님에게서 나의 구원은 오는구나.
3     발이 헛디딜까 , 너를 지키시며
.     졸지 아니하시리라.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
.     졸지 않고 잠들지도 아니하신다.
5    주님은 너의 그늘, 너를 지키시는 ,
.     주께서 오른편에 서계신다.
6    낮의 해가 너를 해치지 않고
.     밤의 달이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7    주께서 너를 모든 재앙에서 지켜 주시고
.     목숨을 지키시리라.
8    떠날 때에도 돌아 때에도
.     너를 항상 지켜 주시리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4:1-5, 13-17

1 우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3 성서에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 창세 15:6” 하지 않았습니까? 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있는 분이십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에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14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상속자가 있다면 믿음은 무의미하게 되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에게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성서에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창세 17:5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복음서_요한 3:1-17

1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사람이었는데 2 어느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또는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4 니고데모는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5 정말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7 새로 나야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8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9 니고데모는 다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0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 11 정말 들어두어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너희는 내가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16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사순2주일 강론 요약

제목: 생기(生氣) 생명력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역동성

 

채야고보 신부(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1. 생명의 근원: 하느님의 선물 요한복음이 말하는 '새로 태어남'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섭니다. 성서에서 생명은 하느님의 전유물이며, 모든 만물은 숭배의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던 고대인들에게 혁명적인 선포였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생명의 기원이 오직 하느님께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사건 속에 드러난 생명 예수님은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조에, ζωή)"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구약의 하느님이 사건 속에서 동사로 자신을 드러내셨듯이, 예수님 또한 '생명의 ', '세상의 ', '부활' 구체적인 사건과 비유를 통해 자신의 신원을 정의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신원과 그분이 일으키신 사건은 하나이며,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3. 과학적 현상을 넘어선 생명의 원인 현대 과학은 생명의 물리적 작용(수소결합 ) 설명하지만, ''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원인은 답하지 못합니다. 성서는 모든 인과의 중심에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주의 정교한 질서와 생명체의 운동 에너지는 우연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생명력의 결과입니다.

 

4. 영원한 생명: 위축되지 않는 기쁨 우리가 겪는 의기소침, 우울, 불안은 생명력이 위축된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있는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배와 성찬례는 생명의 공급원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축제입니다.

 

5. 결론: 사순절, 생명의 회복 사순절은 자신을 낮추는 회개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입니다. 죽음조차 이기신 주님의 생명력을 신뢰하며,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날처럼 담대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